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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6 언더그라운드 (6 Underground)(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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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0-01-10 20:24:12

 

예술은 폭발이다

 

 

[스포일러 있음]

마이클 베이 감독 신작 <6 언더그라운드> 를 봤다. 스스로도 "예전부터 사람들이 날 보고 시네마를 파괴했다고 말한다" 라고 말하며 자기 주제를 잘 알던 사람이다. 그런 연출자가 자유도를 최대한 보장한다고 알려진 넷플릭스 제작 하에 신작을 만들었으니, 감독의 본류라고 할만한 <13시간>과 (내가 너무나 좋아하는) <나쁜 녀석들 2> 가 합쳐진 형태의 작품이 튀어나왔다. <6 언더그라운드> 는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봤으면 아이고 풍 온다 하면서 뒷목 잡고 쓰러질만한 장면들이 연속해서 등장한다. 파편적이다 못해 폭력적인 편집은 여전하며 날아가던 새들이 비싼 스포츠카 앞유리에 똥을 싸지르고, 의사 얼굴에다 부카케 하듯 피를 튀게 만드는 장면도 있다. 무엇보다 박살난 사이드 미러와 흠집 난 형광색 스포츠카 차문이 다음 샷에서는 멀쩡해지는 상황이 반복되기도 한다.


외관 상태가 오락가락하는 초반부 스포츠카 장면을 보며 잠시 스탠리 큐브릭 감독을 생각했다. 그도 <시계태엽 오렌지> 에서 샷이 바뀔 때마다 잔에 담겨진 우유 양이 변하는 연출을 구사한 바 있었지. 그러나 큐브릭은 옥의 티라기 보다는 작품에 대한 과한 몰입을 방지하는 소격효과로서 의도한 것이다. 마이클 베이는 큐브릭이 아니지 않나. 아무리 봐도 신경쓰지 않고 막 찍은 듯 한데 여기에 의미부여를 해도 괜찮을까? 디테일도 무시해가며 초장부터 말초적 쾌감을 몰아붙이는 파괴미학은 이번 작품에서 정말 극점에 이르렀다는 인상을 준다. 특히 피렌체에서 20분 가깝게 벌어지는 차량 액션은 가장 먼저 등장함에도 가장 짜증나는 시퀀스다. 주인공들은 길 가던 개새끼가 무사한지는 걱정하면서 차에 치어 죽어나가는 일반인들에게는 전혀 신경쓰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감독이 평소 보여줬던 액션 스타일을 도저히 유희적으로 즐길 수 없는 상황이라 초장부터 오만정이 다 떨어지는 셈이다. 생각해보면 감독이 직접 '평론가들을 향한 Big Fuck You' 자세로 만들었다던 <나쁜 녀석들 2> 에도 유사한 장면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 작품은 최소한 '통나무' 용으로 쓰이기 위한 시신들과 악역에게만 그런 수난을 당하게끔 연출했다. 악취미적 개그라고 생각하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이 작품은 유희적인 척 하지만 실제로는 영 즐기지 못하게 만들며 사람 속 부대끼게 만든다.


 

이 문제는 주인공들의 신분으로부터 받은 영향도 있다. <6 언더그라운드> 주인공인 6인조 남녀는 전부 죽음을 위장한 사람들이다. 스스로를 '고스트'라 칭하며 서로 본명 대신 숫자로 부르는 이 사람들은 평범하게 살아갔을 때도 여러가지 의미에서 한 가닥 한 바 있다. 이들은 백만장자 출신인 넘버 1 (라이언 레이놀즈) 의 제안에 따라 세계평화를 위협하는 악역들을 잡아 암살한다. 대부분 국민들을 착취하는 독재자들을 목표로 노리고 있으며, 고스트들이 죽음을 위장하는 식으로 뒤에서 이런 일을 벌이는 점은 자연스럽게 현대 역사 속에서의 미국을 생각하게 만든다. 도널드 트럼프 현 미국 대통령은 취임기간 중 국제적으로 평화를 추구하고 중재하는 '국제경찰 이미지' 로부터 자국을 자유롭게 만들겠다는 발언을 한 바 있다. 말이 좋아 국제평화 수호지, 실제 미국은 <6 언더그라운드> 속 고스트들처럼 은밀하게 세계정세를 변화시켜 온 흑막이었다. 그리고 웬일인지 마이클 베이 감독은 미국이 지닌 흑막의 이미지를 본인 작품 속 인물들에게 부여하고 있다. 세계평화를 추구한다지만 정작 죽어나가는 피렌체 사람들 말고 개만 신경쓰는 것처럼 말이다. 게다가 고스트들이 세상을 구하려는 행보를 펼치다 초반부터 본인 팀원까지 희생시키는 참혹한 비극을 보여주기도 한다. 처음부터 이런 장면 연출과 설정을 보여주는 덕에 작품을 관람하는 동안 고스트들이 영웅적인 업적을 세우더라도 큰 쾌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위대하신 미국이 지구를 구했다며 세계인들을 환호시켰던 <아마겟돈> 같은 모습은 볼 수 없다는 얘기다. 감독과 작품은 한 때 자국사회를 실제보다 더 멋져 보이게 만들었던 거품을 살살 빼 버린다. 현 미국정부가 국제 중재자, 혹은 경찰 이미지를 공식적으로 거부했으니 그 트렌드를 따른 결과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덕분에 감독 작품들 중에서도 꽤나 덜 위선적인 축에 속해있다.


 

국가주의를 버리면서까지 <6 언더그라운드>가 부각하려 드는 지점은 사연 있는 고스트들로부터 피어나는 측은지심이다. 넘버 1은 피렌체에서 나대다가 목격한 파국으로 큰 충격을 받고, 진지하게 임무에 임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여섯명은 후반으로 향할수록 서로에게 조금씩 관심을 가지며 가족같은 감정을 지니기 시작한다. 국가가 우선시되는 과정에서 고통받거나 소외된 사람들에게도 시선을 뒀던 전작 <13시간>의 정서가 녹아 들어간 셈인데, 그 작품과 달리 <6 언더그라운드>는 꼭 군인 캐릭터들로만 구성된 것이 아니라서일까. 이번 작품 들어서 측은지심이 더 내밀해졌다. 그래서 독재자를 바로 처단할 수 있는 결정적 순간이 닥쳐왔음에도 과감히 죽어가는 동료를 구하러 가는 넘버 1의 모습이 꽤 찡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작품 속 등장인물들은 고스트가 되는 과정에서 사회와 가족 등 모든 사람들과 관계를 끊어버렸다. 어떤 국가나 제도도 이들을 보호해주지 못하니 서로 돕는 수 밖에 없다. 범상치 않은 인생을 살아온만큼 서로만이 그 욕망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6 언더그라운드>는 평소 마이클 베이 감독의 연출에서 보기 힘들었던 절실함의 감정을 많이 다루고 있다.


어디 그 뿐인가. 작품은 중국과 홍콩에 관해 의미심장한 견해를 제시하는 모습까지 보여주기도 한다. 작품은 고스트들이 정의구현 해야 할 대상으로 선정되는 국가로 '투르기스탄' 을 등장시킨다. 작품 속 설정으로 따지면 가상이지만 실제로 투르기스탄은 존재했다. 현재 중국 지배를 받는 위구르 족이 과거에 살던 국가였더. 위구르 족은 동투르키스탄 1공화국과 2공화국을 건국했다가 이후 본격적인 중국 지배 하에 들어가게 된다. <6 언더그라운드> 속 투르기스탄 독재자에게는 정반대 성향인 민주주의자 동생이 있다. 재밌게도 그는 형의 계략으로 하고 많은 도시 중에서 홍콩에 유배되어 있다. 투르기스탄의 기원을 몰라도 민주화를 지향하는 지도자가 홍콩에 갇혔다는 점에서 시진핑 치하 중국과 홍콩 간 관계를 자연스럽게 떠올릴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끝내 독재자가 파멸하는 이야기를 지닌 만큼 민중을 지지하는 포지션을 취하고 있다. 미국의 위대함 등에 관해서 나름대로 딴지를 걸고 있는 와중에, 그동안 변압기 시리즈 연출 맡으면서 잘 받아먹었을 법한 차이나 머니도 포기하는 짓을 저지르는 셈이다.

 


<6 언더그라운드>가 넷플릭스 용으로 제작된 데는 이런 이유들이 작용하지 않았을까. 물론 그렇다고 이 작품이 쓸데없이 무게감 잡는다는 소리는 아니다. 감독이 연출한 작품에게 기대하는 폭력적인 액션과 더러운 유머, 그 특유의 스타일은 유지되고 있다. 그러나 국가나 집단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측은지심이 등장하고 있어서가 아닐까. 아니면 트럼프에 대해서는 온갖 말을 다 하지만 중국 앞에서는 입을 다물고 있는 할리우드 셀레브리티들이 많아서 더 그렇게 느껴지는 것일까. 느낌이 많이 다르다. 작품과 감독은 그 어느 때보다 도발적이다. 한 때 이 시네마 파괴자가 본인 주제를 망각하고 '스필버그가 <트랜스포머: 패자의 역습> 을 잘 만들었다고 칭찬했다' 며 뭐라도 된 양 자부심을 부리는 꼴이 영 못마땅했다. 멍청아. 스필버그 옹은 본인 회사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면 <캣츠>도 재밌다고 하는 사람이야. 그 말을 믿냐! 하지만 따로 떼어놓자 마이클 베이는 달라진다. 최근 몇 년간 <페인 앤 게인>, <13시간> 그리고 <6 언더그라운드>까지. 감독은 영화계에 악영향을 끼쳤다고 알려진 본인 스타일을 변주하며 나름대로 다른 차원을 향해 걸어나가고 있다. 이 차원의 끝에 무엇이 있을지는 모르겠다. 단순히 무언가를 향해 가운데 손가락을 올리겠다는 의지만으로 계속 일관하지 않는다면 굉장히 인상적이고 전복적인 결과물을 보게될 것만 같다. <6 언더그라운드> 가 앞으로 계속 기억될 작품일지는 확신 못하겠지만, 최소한 재밌는 전복성을 가진 작품인 것은 확실하다. 마이클 베이 감독은 이 작품을 통해서 따박따박 돈 벌었던 자신의 안식처를 불사르고 떠난다. 그도 생각이라는 걸 하고 사는 엄연한 사람인데, 나도 참 그를 우습게 생각하고 살았다.


 

p.s.


1) 리뷰의 부제는 일본 화가 오카모토 타로의 책 <내 안의 독을 품고> 속 문장 중 일부를 인용했다. 물론 오카모토 타로의 말은 '폭발' 이 아니라 '예술' 에 무게중심이 실려있다.


2) <6 언더그라운드>에 대한 내 호감은 거대한 착각일 수도 있다. 마이클 베이는 작품으로서 정당하게 평가받기 보다는, 어느새 입방아나 온라인에서 오르내릴 수 밖에 없는 '밈' 감독 된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그냥 작품 전체를 별 생각없이 만든 것일 수도 있다.


3) 가장 웃기면서도 슬펐던 장면은 넘버 1이 THX 트레일러에서 영감을 얻은 기술로 건물 유리창을 파괴하는 순간이었다. 그가 THX를 얘기하자 못 알아듣는 일원들이 나온다. 애초에 <6 언더그라운드>를 제작할 때 '이 작품을 볼 관객들 중 THX 트레일러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를 가정하고 대본을 썼을테니 이런 장면이 나왔을텐데.. 당연히 모를 수도 있겠지만 조금 슬펐다. 내가 동시대에 알고 있었던 걸 모르는 세대들이 있구나 싶어서. 요컨대 '약속의 땅 웸등포' 에 들락날락하던 사람들 중에서는 CGV 웸등포에 있는 THX관이 무슨 의미인지 모른다는 얘기겠지. 스스로 인정하지 않아도 세상이 알아서 너 나이 들었다고 대신 일깨워 주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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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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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0-01-02 13:07:44

THX... DVD가 Blu-ray 에게 밀려나기 전만 해도

나름 대중적이랄 수 있었는데 말이죠...

저는 애니메이션 '헷지 : Over the Hedge (2006)' 이후로

THX를 영화에서 가장 잘 쓴거 같아 기뻐하면서 봤었어요...

https://youtu.be/Tzt0KBZ59LE

WR
2020-01-02 13:12:10

말씀대로 마이클 베이 감독이 THX가 미국 대중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는지를 아주 잘 이해한 순간이었죠. 의외로 THX 인증이 센서라운드하고 비슷한 느낌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더군요. 과거 <타이니 툰> 극장판에서도 이걸 패러디하던데, 특유의 사운드가 들리고 나서 'the audience is deaf' 라고 나오는게 인상적이었습니다. 한 몇 년 간 트레일러가 없더니 2019년에 다시 하나 만들었더라고요. 약간 돌비 애트모스 트레일러 스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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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04 20:46:53

역시 장르를 넘나드는 진짜배기 갓준호 ㄷㄷㄷㄷㄷ 포드V페라리 리뷰도 부탁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승하세요 

WR
2020-01-05 22:19:56

아니 급작스러운 리뷰 요청.. 포드 V 페라리는 안 그래도 궁금은 했는데 상영하는 극장이 거의 없어서 볼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하. 일단 한 번 보겠습니다. 마키세 크리스 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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