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 미드웨이 (Midway)(2019)
인디펜던스 데이 프로펠러 버전
[스포일러 있음]
2020년을 기념하며 극장에 갔다. 극장에 설치된 TV 속 예고편을 찬찬히 감상하며 뭘 볼지 고민했다. 에머리히 언니의 '와장창' 을 마주친 것은 그때였다. 나는 홀린 듯 티켓을 샀다. 대부분에게 환영받지 못했지만 감독 전작인 <인디펜더스 데이: 리써전스>를 꽤 재밌게 봐서 세번째 편을 기다리고 있던 차였다. 그러나 아시다시피 우주에서 본격적으로 별들의 전쟁을 연출하려 했던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의 야망은 거의 실현이 불가능해진 상태다. 2편이 망해가지고. 이제 어떻게 할지 궁금해지던 차였는데 감독은 묘하게도 여러가지 의미에서 '시간을 되돌리는' 일을 선택했다. 1942년에 일어난 미드웨이 해전 소재의 작품을 연출하게 됐고, 전처럼 돈을 펑펑 써가며 만들지도 못하게 됐다. <미드웨이>는 감독 연출작 치고는 저예산으로 만들어 졌으며, 제작을 위해 감독이 직접 개인 투자를 유치하기도 했다. 감독 기준에서는 나름 신인 시절로 돌아가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아시다시피 <미드웨이>는 잭 스마이트 감독이 1976년에 연출한 원작이 있다. 에머리히 감독이나 영화사가 딱히 의식하거나 연관성을 갖지 않았더라도, 동일소재와 동일제목이니 보는 입장에서는 자연스레 원조와 리메이크로 비교하게 된다. 나는 원작을 그렇게 좋게 기억하지 않는다. 해전의 진행 추이와 등장인물들 간 개인사를 섞은 전개방식은 진중하고 유려했지만, 전체적 만듦새는 내셔널 지오그래픽 채널에서 방영됐어야 할 TV 다큐멘터리를 무리해서 35mm 필름으로 찍었다고 할만한 수준이다. 쟁쟁한 배우들만을 스크린에 채워넣으면 얼굴의 스펙터클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었나 보다. 그래서 76년판 <미드웨이>는 전쟁 장면 연출에는 별로 공들이지 않는다. 진주만 공습을 소재로 한 <도라! 도라! 도라!> 속 전투 장면이나 44년에 제작된 <도쿄 상공 30초> 장면들을 상당수를 가져와 전투 장면에다 어설프게 붙여놨고, 어떤 때는 기록 필름을 확대해 본편에 삽입하기도 했다. 원작은 짭짤한 흥행성적을 거두긴 했지만, 결국 전쟁물인데 전쟁 장면 연출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희한한 작품이다.
2019년판 <미드웨이>는 그런 점에서 나름대로 원작과 구분되는 장점을 갖췄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이 작품은 시사회부터 시각 효과 부문에서 악평이 나왔던 탓에 사람을 염려시키는 부분이 있었다. 주로 컴퓨터 그래픽이 지나치게 인위적으로 보인다는 평들이었다. 막상 보니 시각효과는 별 문제없이 우수한 편이다. 비처럼 쏟아지는 총알을 뚫고 급강하 공격을 하는 전투기의 모습은 컴퓨터 그래픽 범벅임을 알면서도 장관으로 느껴진다. 오히려 아쉬운 부분은 음향. 2000년대 후반까지 화려하게 영화계를 수놓았던 특유의 스펙터클한 재난물이 들려줬던 청각적 감동을 기대했다면 실망할 가능성이 크다. 냉정히 이야기 하면 디즈니 사에 의해 하향평준화된 마블 스튜디오 영화 음향보다 약간 더 낫다고 볼 수 있는 수준의 빈약함이다. 이 감독 작품 치고 대규모 예산으로 제작되지 못한 탓에 유려하게 믹싱할 여유가 없었던 이유가 더 클지도 모른다. 하지만 <미드웨이>는 이런 기술적 미비함마저도 일종의 작가주의적 의도로 여기게 하는 이상한 마력이 있다.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어째서 이 작품에 너그러워지는 것일까. 감독이 롤랜드 에머리히고, 그에게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던 차에 예상 외로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서다. <투모로우> 에서 미국 국기 좀 얼렸다고 감독에 대한 평이 달라졌던 것과 비슷한 셈이다. <미드웨이>는 예상 외로 전쟁 장면들을 쾌감으로 소비할 가능성을 시종일관 견제하고 줄이려는 노력을 보이는 작품이다. 미드웨이 해전을 유발한 일본의 진주만 공습을 다룬 마이클 베이 감독의 <진주만>만 해도, 일본 전투기가 추락할 때마다 백인마저도 카니예 웨스트가 된 양 힙합스러운 감탄사를 내뱉게 한 바 있다. 그러나 에머리히 언니 남자 취향이 십분 반영된 듯한 <미드웨이> 속 선 굵고 이마가 넓은 사내들은 일본군을 사살할 때마다 통쾌한 함성 대신 살아남아서 다행이라는 듯 한숨을 내쉰다. 감탄사는 별로 없다. 한동안 재난물 연출에 몰두해서일까. 작품은 실제 역사 속 전쟁과 전투 장면을 승리가 아닌 생존의 역사로서 대하려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덕분에 총기류 발사 음향의 빈약함마저도 전쟁을 쾌감으로서 소비하려는 태도를 견제하기 위한 의도처럼 느껴질 정도다.
이는 전범국가인 만큼 악질적으로 묘사됐어야 마땅할 일본마저 진지하게 다뤄지는 이유도 될 것이다. 작품은 국가를 위해 전쟁을 벌이고 승리로 이끌고자 했던 일본군인들의 심적 고뇌까지 꽤 절묘하게 거리감을 유지하면서 다뤄내고 있다. 당시 전쟁 영웅들을 추모하는 지극히 할리우드적인 블록버스터물을 만들었지만 사실 감독은 독일인이다. 그리고 재밌게도 <미드웨이>의 제작에는 중국자본이 꽤 반영되어 있다. 중국 자본 입장에서는 (미일간 전쟁 이야기임에도) 전범으로서 일본 측 악행이 자신들에게 행한 것을 중심으로 보여지길 원했을텐데, 감독은 이를 잘 이용할 줄 안다. 미국과 해전을 벌이는 일본군들의 전략 / 전술 회의, 내부적인 다툼과 고뇌를 꽤 입체적으로 전시하는 와중에도 초반 진주만 공습과 미국 측에서 일본에 폭탄을 투하하는 일명 '둘리틀 작전' 을 통해 일본군의 끔찍한 만행을 부각시킨다. 요컨대 중국인들이 둘리틀 소령과 그 대원들을 피신시키다가 일본군에 의해 학살 당한다는 식이다. 결과적으로 일본군의 만행도 빠뜨리지 않는다.
감독은 특유의 와장창적인 스타일을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차분함과 죽음이 감도는 허무한 정서로 풀어냈다. 물론 재난 스케일 만큼 욕심 많은 에머리히라서 <미드웨이>에도 수많은 인물들이 정신없이 등장하고 퇴장한다. 당시 전쟁 다큐멘터리인 <배틀 오브 미드웨이>를 찍으러 온 존 포드 감독 일행까지 묘사할 정도니까 말 다 했다. 덕분에 역사를 모르는 사람이 보면 전체적으로 산만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역사를 알고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산호해 해전이 생략되다시피 해서 불만을 느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할리우드 영화계를 대표하는 철거와 파괴 전문가, 롤랜드 에머리히 필모그래피에서 <미드웨이>는 새로운 여운을 남긴다. 할리우드 재난 블록버스터에서 필수적이었던 최루성 이야기들과 감독의 이전 연출작에서 볼 수 있었던 특유의 정신나간 캐릭터들이 (아마도 본인 내면에 있는 기갈스러움을 그런 캐릭터를 삽입하는 식으로 푸는 듯.) 빠진 점이 작품을 달리 보이게 하는 원동력이 된 듯하다. 원래는 그 정신나간 캐릭터들이 또 죽을 때까지 웃음을 주곤 했는데, 죽음과 가장 가까이 맞닿아 있는 전쟁물이다 보니 이 작품에서는 그 누구도 한심하게 사망하지 않는다. 기본적으로는 영웅들에 대한 헌정사다. 그러나 무언가를 파괴하고 철거시키는 것으로 최대의 쾌감을 선사했던 연출자가 본인 장기를 절제하고 공허함을 남기자, 전쟁의 무용함까지 효과적으로 전달된다. 사람이라는게 배가 고프면 이렇게 또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나 보다. 이전만큼 지구적 스케일의 파괴와 폭죽놀이를 못하게 된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이 (본인 기준) 저예산에서 좋은 작품을 만들었다.
p.s.
1) 쿠니무라 준이 등장하는데, 예전 기타노 다케시 감독의 <아웃레이지> 에서 보여준 스타일로 눈치 보는 연기를 해서 본의 아니게 많이 웃었다. 패트릭 윌슨은 매번 볼 때마다 느끼지만, 긍정적인 의미에서 참 복고적인 외모를 지녔다.
2) 작품 초반부에 진주만 공습이 묘사되는 만큼 <도라! 도라! 도라!> 에서도 들을 수 있었던 야마모토 이소로쿠 사령장관의 유명한 발언이 나온다. 잠자는 거인을 깨웠으니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낳을 것 같아 두렵다는 말. 실제로 당시 다른 일본 군인들과는 다르게 미국과 벌이는 전쟁에서 승산이 없다는 사실을 일찌감치 파악하고 있었다는데, 실제로 저 말을 했는지 잘 모르겠다. 나는 당연히 그가 한 말이라고 생각했는데 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있길래. 좀 헷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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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용4디로 봤는데 급강하 폭격기 탄 느낌 제대로 보여주더군요
초반 진주만 기습 군함에서 군함 건너갈 때 사람이랑 불 배경이 어서픈거 뺴곤 나머지 cg는 괜찮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