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음악 이야기 및 간략한 리뷰
영화 보신분들은 아시다시피 이 영화에는 음악이 딱 두 번 등장합니다.
그런데 저는 정확히 2.5번 등장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엔딩의 그 음악, 비발디의 사계 여름 3악장
사실 저택에서 피아노로 더듬더듬 멜로디를 짚어보는 장면에서 먼저 나오죠ㅎㅎ
다른 하나는 모닥불 앞에섰을 때 흐르는 성가...랄까 원시적이고 제의적인 느낌의 목소리만으로 부르는 음악이 흐르죠. 찾아보니 우리는 벗어날 수 없다 라는 뜻의 라틴어 가사가 사용 됐고 이게 니체의 글이 출처라고 얼핏 들었는데 확실치는 않네요..
저는 이 두 음악만으로 한 시간은 떠들 수 있을 것 같아요.
영화만큼이나 클래식을 좋아해서 비발디 사계 여름 3악장이 나왔을 때 정말 반가웠습니다.
피아노를 짚어보는 장면에서 마리안느가 관현악을 들어봤냐고 물었더니 엘로이즈가 못들어봤다고 합니다.
엘로이즈는 수녀원에서 목소리로만 노래를 했었다고 답하죠.
디피에도 클래식 애호가들이 많은걸로 아는데..아시다시피 음악사에서 바로크 음악(비발디 등)가 등장하기 전에 그레고리안 같은 성가 음악이 주를 이루었었죠. 악기는 그 이후에 등장합니다.
모닥불 앞에서의 음악이 딱 엘로이즈다운 음악 같았습니다. 관현악 보다는 순수 사람의 목소리 만으로 이루어져 자연적이고 본능에 충실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영화는 본격적으로 두 사람의 사랑을 확인하죠. (물론 바로크 이전의 음악은 종교적 색체가 짙었기 때문에 이 영화에서는 최대한 배제하고 원시적인 느낌을 강조한 것 같습니다)
반면...
엔딩에서의 힘찬 관현악의 여름 3악장은 날카로우면서도 인위적입니다. 앞의 음악과 매우 상반되었죠. 그래서 이 영화의 엔딩이 더 새드엔딩같았습니다. 오르페우스의 신화처럼요.
관현악의 여름 3악장은 마리안느 다운 음악이었습니다. 딱 부러지게 각각의 음악이 두 사람을 상징하는 것은 아니나, 엔딩에서 엘로이즈의 표정은 명확하게 마리안느를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신세를 돌아보며 말이지요. 그 격렬하고 복잡한 감정이 여름 3악장의 폭풍우처럼 들이닥쳐 잊을 수 없는 엔딩을 만든 것 같습니다.
짤막하게 비발디 사계는 비발디가 밀라노에 있을 때 작곡한 곡이라서 밀라노 얘기가 나왔을 때 또 한 번 디테일에 감탄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영화의 주제 이자 핵심 이라고 생각하는 사랑과 예술의 모방성 또한 표면적으로는 초상화 그리기라는 창작행위를 통해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이게 또 비발디 사계 만큼 음악의 모방성을 잘 드러내는 곡이 없어서 적확한 선곡인 것 같습니다. 사랑하고 좋아하는 것을 담고 싶고 모방하는 것이 결국 예술의 기원이고 시작이니까요.
짧게 쓰려 했으나 글 재주가 없어서 길어졌네요.
영화에 딱 두 번 나오는 음악만으로 이만큼인데
촬영, 조명부터 미장센, 연기, 각본, 젠더와 시선까지.....하고싶은 이야기가 정말 많은 영화였습니다.
1월 부터 올해 베스트가 나왔네요.
저는 작년에 로마 이후로 가장 마음에 드는 영화였습니다.
글쓰기 |
리뷰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