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게] 김재규의 실제 성격과 <남산의 부장들> 마지막 부분에 대하여(스포)
의외로 김재규에 대해선 알려지지 않은 게 많다는 생각이 드는 게 이번 <남산의 부장들> 개봉 후에 사람들이 보이는 반응이어서 몇 자 적어 봅니다.
<남산의 부장들>은 이런 류의 역사물이 그렇듯 사전 정보를 알고 있으면 재밌게 볼 수 있는 부분들이 많습니다. 특히 김재규 개인에 대해서 알고 있으면 더 재밌게 볼 수 있는 부분들이 있는데, 문제는 그걸 잘 모르는 사람에게는 혼돈을 줄 수 있다는 것이겠죠. 그런데 사실 김재규는 바깥에서 보기엔 혼돈스러운 사람이었습니다.
<남산의 부장들>의 정체성을 이해하려면 무엇보다도 김재규라는 실제 인물 자체가 굉장히 복잡한 인물이라는 걸 전제로 깔아야 합니다. 기존의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김재규를 입체적으로 그리기보다는 확 하는 성미나 질투와 권력욕 때문에 사고를 친 걸로 많이 몰았는데, 사실 10.26 사건이 워낙 이상한 사건이라서 더 그렇게 단순 정신병적인 동기들로 퉁치려 한 경향이 있습니다. 대통령의 오른팔이 대통령을 죽이고, 자신의 본부가 아닌 적의 아가리로 들어가서 끝난 사건이니까요.
그러나 정작 그 사건의 엔진이 된 사람들은 다 죽었습니다. 따라서 10.26사건은 '사건의 내용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없기에 다들 안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대체 왜 그 일이 벌어졌는지에 대해선 설명하기는 어려운 사건'입니다.
이러한 사건의 성격에 김재규의 복잡한 성격과 행보가 상황을 더 꼬아놓습니다. 그는 가차없는 군인 출신이고 일 처리도 그렇게 하는 사람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안중근 의사를 숭배했으며 '군인은 정치에 관여해선 안 된다'라는 지론을 가진 이종찬 장군을 의부로 여길 정도였고, 그 신념을 따라 5.16 참여를 거부했다가 반동으로 몰리기까지 합니다. 건설부 장관으로서 업적도 있으며 야권과 소통하던 몇 안 되던 정부 인사기도 했습니다. 박정희와는 6.25 때부터 알고 지냈고 중정부장이라는 가장 더러운 자리를 맡았지만 그 안에서 보인 행보들은 그 전까지의 중정부장들과는 다른 묘한 부분들이 많습니다. 이러한 내용들은 책들이나 위키에 나와 있으니 찾아보시면 좋을 듯합니다. 얼마 전에는 부마항쟁 관련 정부 보고 문서가 공개되서 기록으로도 증명이 됐죠.
성격 면에서 보면 '평소에는 온순한 편이지만 한 번 화가 나면 굉장했다'는 게 주변의 평들이었습니다. 이러한 부분은 <남산의 부장들>에서 종종 드러나는데 차지철과 대거리하는 장면, 그리고 김형욱을 처리한 후 박정희에게 보고했더니 돈타령이나 듣고, 담배를 가져다 주려다 도저히 못 참겠어서 담배를 구겨버리는 장면이 그렇습니다. 이병헌의 힘줄 연기를 볼 수 있는 장면이죠.
그리고 그 모든 게 총합적으로 잘 구현된 장면이 마지막 궁정동 파트입니다. 특히 사람들을 오글거리게 만들 수도 있는 "혁명의 배신자를 처단한다"는 대사 부분이야말로 감독이 김재규에 대한 연구를 많이 했다는 증거라고 봅니다.
원래 김재규는 허세가 있는 사람이고 감정도 갑툭튀하는 타입이라 전기를 읽으면 그런 내용들이 생뚱맞게 튀어나오거든요. 한시도 짓고 일본 전국시대 드라마에서 나오는 캐릭터와 자신을 대입하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가 말하는 신념이나 대의가 가끔씩 우스꽝스럽게 보이긴 해도 그의 진심이었고 그가 살아온 삶에서는 일부일 수밖에 없었다는 겁니다. 정말 '혁명'과 '대의'가 일상어처럼 쓰이는 시공간이고 그런 삶이었거든요.
영화는 마지막 부분에서 그런 거의 허세처럼 느껴지는 대의가 담긴, 그리고 돌발적인 김재규의 성격을 드러내는 대사를 친 후 바로 우스꽝스럽게 미끄러지게 하죠. 그리고 미끄러진 후에는 자신이 만든 피에 피범벅이 된 장면을 넣음으로써 허세->코미디->현실 범죄 자각을 의도한 감각들을 배치하여 김재규에 대한 중립적인 시선과 함께 마지막으로 이어지는 김재규의 방황에 대한 감정선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방황은 이해하기 힘든 육본으로의 선택을 정당화하는 서사적 기제로 쓰이죠. 현실의 인물과 허구의 시나리오를 연결해 잘 연출된 씬이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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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해석 감사합니다.
저 역시 영화 속에서 김재규란 인물을 여러 면으로 보여준게 참 좋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