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게] 겨울왕국을 아무런 사전정보 없이 보았던 때의 추억...
어제 간만에 라따뚜이를 다시 봤습니다. 여전히 재미있고 잘 만든 수작이더군요.
라따뚜이는 확실히 제가 애정을 가지고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애니메이션 중
하나네요. (라따뚜이, 인크레더블 1,2, 인사이드 아웃, 겨울왕국 1,2)
요새 본 이들은 어떤 평을 하고 있을까 궁금해 네이버 평을 찾아 봤습니다.
그런데 베댓 중 하나가 '겨울뭐시기보다 훨씬 재밌다..'였는데 보고 좀 웃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요새는 어딜 가나 이런 류의 평을 많이 보는 것 같더군요.
특히 애니메이션 영화라면 거의 100%입니다.
얼핏 보면 겨울왕국은 세상에서 제일 잼없는 애니메이션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왜냐면 거의 모든 애니메이션 영화의 관객평에는 '겨울왕국 보다는 재밌다'는 소감이
빠지지가 않거든요; 뭐 이젠 싫어도 사실상 '국민 애니메이션' 타이틀을 거머쥐게 된
숙명에 따른 반대급부려나요.
문득 제가 겨울왕국을 처음 접했던 때의 추억을 떠올려 봅니다.
원래 공포/고어영화 팬이었던 저는 데드 얼라이브의 피터 잭슨을 따라
전에는 존재조차 몰랐던 반지의 제왕 팬이 자연스레 되었습니다.
디피 영게를 눈팅하다 슬그머니 눌러 앉게 된 것도 그 덕분이구요.
그래서 호빗 시리즈에도 기대가 상당히 컸습니다. 시작부터 평이 미적지근했던 호빗 1편도
저는 굉장히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런데 2편은 저도 좀...
특히 갑분싸 타우리엘 로맨스는...쌍둥이 자녀를 둔 애아빠가 그려냈다고 믿기 힘들 정도로
닭살 돋더군요.
호빗 2편이 실망스러웠던 것과는 별개로 최소한 흥행 면에서 그 해 겨울의 승자가 되어 주기를
팬심으로 바랐습니다. 그런데 미국 현지에서 들려오는 소식은 웬걸... 먼저 개봉한 디즈니 애니의
역주행에 뒤처지고 있다는 겁니다!
디즈니 애니라... 소위 디즈니 르네상스 때 저는 이미 머리가 좀 커진 머스마라 시큰둥했기에
거의 본 기억이 없습니다. 그보다 좀더 이전엔 일요일 아침 미키 구피 플루토 등이 나오는
디즈니 만화극장을 종종 보긴 했지만 그냥 TV에서 해주니까 관성적으로 본 거고
그때도 톰과 제리나 딱따구리 등이 훨씬 재밌었으니까요.
여하간 도대체 어떤 작품이길래...? 전 호기심이 커져 갔죠. 일단 보기로 한 영화는 예고편이나
포스터 조차 스포가 될까봐 꺼려 하기에 다 피해 갔습니다.
하지만 우연히 포스터 한 장을 곁눈질하는 것마저 막을 순 없었는데 그때 본 게 이겁니다.
보자마자 시선을 돌렸기에 가운데 올라프만 얼핏 눈에 들어왔는데
그때도 그게 딱히 눈사람이라는 인식은 못하고 무슨 눈요정 같은 건 줄 알았습니다.
흠...예전 윌 패럴이 나왔던 엘프(사실 그 영화 본 적도 없지만..)같은
크리스마스 소재의 우당탕 코미디 같은 건가... 근데 왜 그렇게 입소문이 나고 인기가 있을까..
알 수 없는 의문은 커져 갔죠.
그래도 용케 모든 스포일러를 피하고 마침내 거진 두 달 가까이 늦은 국내개봉을 맞아
드디어 볼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 꼬맹이 엘사 안나가 등장할 때만 해도 얘네가 주역이리라곤 생각을 못했습니다.
전 이게 인간을, 특히 자매애를 다룬 작품이라곤 전혀 몰랐으니까요.
'흠 애들 나오네..뭐 나름 하는 짓이 귀엽네...어 근데 평화롭게 잘 놀다가 갑자기 돌발 사고가?
비밀을 숨긴다라...이 설정은 흥미롭네 이렇게 주욱 진행되는 건가
어 근데 김새게 벌써 들통나? 그리고 도망까지? 전개 개빨라!'
그리고 마침내 이어진 렛잇고씬. 끝나고 나서 전 제가 방금 본 걸 믿을 수가 없더군요.
그야말로 컬쳐 쇼크. 애니란 매체를 다시 돌아보게 된 순간이라 할까요.
한편으로 초반 30분 이내에 이런 굉장한 걸 보여줬으니 헐리웃 영화의 특성상 클라이막스엔
더한 게 기다리고 있겠지? 굉장한 기대감을 가졌습니다.
근데 그 뒤로 영화가 좀 푸시식... 불완전 연소로 끝난 느낌. 그때도 첫 감상평을 썼던 거 같은데
아마 일단 렛잇고를 중심에 딱 박아넣고 주변에 모래성을 대충 쌓은 느낌이라 뒷맛이 씁쓸하다..
이런 요지였습니다.
그래도 렛잇고뽕의 위력이 워낙 강력했기에 끌리듯이 다회차를 했고 점차 다른 요소들도
좋아하게 되더군요.
어쨌든 겨울왕국은 그때까지 제가 갖고 있던 애니에 대한, 특히 디즈니 작품들에 대한 시각을
완전히 뒤바꾸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건 비단 저 뿐만이 아니라 국내 관객 상당수가 공유하는
경험일 듯 하네요.
지금 돌아보면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겨울왕국을 본 건 정말로 상당한 행운이었습니다.
렛잇고라는 킬러 시퀀스가 있대. 엘사란 애가 그렇게 이쁘고 매력적으로 나온대.
이 정도만 알고 보는 것과 비교해도 천지차이가 있으니까요.
해석: 이생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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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회차 보면 후반부도 괜찮죠ㅋㅋ
워낙 렛잇고까지가 미친 완성도라 그렇지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