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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조조 래빗(스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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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19 19:38:34

[조조 래빗]은 크리스틴 뢰넨스가 2008년 발표한 [갇힌 하늘]([Caging Skies])을 각색한 작품이다. 원작은 영화 각색 이전에 이미 해외에서 호평 받은 화제작이다. 장편 소설로 국내엔 2014년에 열림원에서 번역됐다. 크리스틴 뢰넨스는 미국계 프랑스 작가라고 보면 된다. 출생지는 미국 코네티컷 주이지만 유럽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활동했다. 십대에 프랑스로 건너가 발망, 지방시 등 명품 광고의 사진 모델로 활동했고 하버드에서 영문학을 수학한 독특한 이력의 작가이다.

원작은 프랑스에서 출판됐다. [갇힌 하늘]은 크리스틴 뢰넨스의 두 번째 장편 소설로 프랑스 문학상인 메디치 상의 외국 문학 부문과 프낙 상 그랑프리 후보까지 오르며 주목을 받았다. 열림원에서 6년 전에 출판한 원작이 국내에선 별로 주목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이번 영화 개봉에 맞춰 개정판이 기획될법도 한데 의외로 출판사도 그대로이고 절판도 안 됐다.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원작은 2014년 판본이다.

각색된 영화가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까지 오르며 선전했는데 왜 열림원 같은 큰 출판사가 영화에 묻어가려는 영상 소설의 전략을 펼치지 않는걸까 싶다. 하다못해 띠지 하나 새로 만들지 않았다. 영화만 만들어지면 절판된 소설도 신판이 나오고 개정판이 나오는데 [조조 래빗]의 경우는 이런 현상에 숟가락을 얹지 않은 드문 경우이다.

타이카 와이티티 감독은 크리스틴 뢰넨스의 [갇힌 하늘]을 편의적으로 각색한 것 같다. 저작권 골치를 앓고 싶지 않아 판권 사서 각색을 했지만 원작의 기본적인 골격만 딴 상태에서 동화적인 요소에 힘을 기울인게 아닐까 싶다. 일단 원작에서 주인공 소년은 영화에서처럼 엄마하고만 사는게 아니라 부모하고 산다. 원작은 1인칭 시점의 회고록 구성이며 과거형 시제로 전개된다. 온라인 서점 미리보기 서비스로 간단하게 살펴봐도 원작과 영화가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원작은 영화처럼 웨스 앤더슨 영화에서 영향 받은 키덜트 풍의 동화 정서와는 거리가 멀다.

영화는 히틀러 유겐트 캠프에서 겁쟁이라 놀림 받으며 래빗이란 애칭을 달게 되는 10살 소년의 유아적 시선과 상상으로 전개되지만 원작의 주인공 소년은 일단 연령부터가 유아가 아니다. 독일이 패망한 1945년에서 극이 끝나는 작품인데 원작의 주인공은 정확히 1927년 3월 25일 빈에서 출생한 것으로 설정됐다. 극이 끝날 때 원작의 주인공은 이미 성인이 된 나이인 것이다. 아마 원작에선 영화에서 비중있게 그려지는 상상 속 친구 히틀러의 모습도 없을 것이다. 동심의 기운으로 전쟁의 참상을 은유하는 극의 결정적인 열쇠부터가 원작과 동떨어져 있기 때문에 영화와 원작은 많이 다를 것으로 보인다.

[조조 래빗]은 이 시대에 맞는 [인생은 아름다워]의 변주이다. [조조 래빗]은 눈을 호강시켜 주는 웨스 앤더슨 풍의 키덜트 적인 미장센 구축으로 시각적인 면을 만족시켜 주며 스타 배우들의 조역 배치로 친근감을 형성한다. 전쟁과 학살의 광기로 얼룩진 비극의 시대를 10살 소년의 유아적 시선에서 풀어낸 은유의 방식도 중반부까진 효과적이다.

전반부는 상상 속 친구인 히틀러와 유대하는 소년의 일상을 홈드라마로 유쾌하게 풀어가며 홀로코스트의 공포가 일상 곳곳을 침투하는 중반 이후부터는 전쟁 우화의 아픔과 성장극의 공감대를 선사한다. 유대인, 그 시대 금기였던 동성애자 등 약자와 소수자를 바라보는 시선도 따뜻하다. 욕심 부리지 않고 제 역할에 충실한 성인 배우들의 안정감과 재능 많은 아역 배우들의 연기도 뛰어나게 조화됐다. 물이 오른 샘 록웰와 스칼렛 요한슨의 호연이 아름다운 앙상블을 만들어낸다.

중반부까지는 나치즘과 홀로코스트의 참상을 너무 단순화시키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인간애가 발휘되는 후반부의 전환점들이 짙은 여운을 남긴다. [인생은 아름다워]와 달리 [조조 래빗]의 소년은 후반에서 현실을 자각하고 성장한다. 아이는 자신에게 깊은 영향을 끼쳤던 어른들의 죽음을 눈앞에서 목도하고 홀로서기를 해야 하는 상황이다. 아무리 상상 속 친구 히틀러로 우화의 성격을 취했더라도 현실을 대입하는 순간 드라마는 처절해질 수 밖에 없다. 우화가 극복할 수 없는 현실의 문제가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다만 우화의 균형 감각이 후반으로 갈수록 유지되지 못한 것은 아쉽다. 아이가 결국에는 공개 처형 당한 엄마의 시체를 보게 되고 독일 패망으로 붙잡힌 캠프장 지휘관인 클렌젠도프가 총살 당하는 것까지 알게 되는 순간 극이 애써 표현한 우화의 표면에 균열이 생긴다. 히틀러 친구를 둔 상상의 세계로 극복할 수 없는 현실의 문제가 도사리고 있는데 이게 굉장히 구체적으로 묘사된다. 후반으로 갈수록 홀로코스트 회고록 식으로 담담하게 가는 원작의 시선과 [문라이즈 킹덤] 분위기의 포장지에 [인생은 아름다워]의 우화 정서로 가려는 각색의 방향에서 충돌이 생긴다.

전쟁이 끝나고 벽장에서 숨어 지냈던 유대인 소녀와 나치즘에 빠졌던 10살 소년이 연대하는 것으로 마무리가 되지만 소년이 그 후 받을 전쟁의 상처가 떠올라서 감동과 함께 찝찝함을 동시에 남긴다. 우화의 측면에서 보자면 타이카 와이티티는 후반에서 다소 균형을 잃은 것 같다. [조조 래빗]은 좋은 작품이지만 아이의 시선에서 바라본 동화같은 세계관이 깨지는 후반부의 드라마가 너무 아슬아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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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2020-02-20 01:34:41

해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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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20 10:47:00

저는 아슬아슬해서 좋던데...

굳이 명확할 필요가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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