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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디 갈란드와 라이자 미넬리, 게이와 엮인 모녀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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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0-03-28 03:14:07

영화 [주디]를 보고 궁금해서 실존 인물에 대해 찾아봤습니다. 실존 인물에 대해 잘 모르고 봤는데 전기물을 보고 나니 관심이 생기더군요. 그동안 기구했던 주디 갈란드나 우스꽝스러운 풍자 대상으로 소비되곤 하는 라이자 미넬리나 그저 남자 관계 되게 복잡하고 게이 남편들에게 사기 결혼 당한 게이 아이콘 정도로 큼직하게 묶어서 기억하고 있었는데 보다 자세한 내막을 살펴보니 놀라운 일화가 많네요. 이미 되게 유명한 사실인데 나만 모르고 있었구나 싶은 모녀의 연애사들. 자료를 찾아보면서 정리를 해봤습니다.  

 

주디 갈란드 ▼

 

프란시스 아벤트 검

 

1. 주디 갈란드 아버지

 

* 프란시스 아벤트 검 (Francis Avent Gumm)

1886년 3월 20일~1935년 11월 17일

주디 갈란드의 부친은 보드빌 배우 출신으로 1886년 3월 20일 미국 테네시에서 출생하여 1935년 11월 17일 로스앤젤레스에서 사망. 동성애 행각이 들통나어 살던 마을에서 쫓겨났다는 소문이 있음. 수막염으로 사망. 배우 출신으로 스타가 되지 못한 것에 대한 대리만족을 채우기 위해 딸 주디 갈란드를 가혹하게 통제했던 어머니 에셀과 달리 아버지 프란시스 아벤트 검은 주디 갈란드에겐 자상했음.  

 

2. 다섯 번 결혼하고 네 번 이혼한 주디 갈란드의 남편들

 

* 데이비드 로스 (1941~1943)

 - 밴드 리더로 전처와 이혼한지 불과 두 달만인 1941년 3월 주디 갈란드와 약혼, 그해 결혼했으나 1943년 1월 이혼했다. 주디 갈란드는 1942년 11월 데이비드 로스 사이에서 생긴 아이를 지우게 되는데 이는 돈줄이었던 주디 갈란드의 착한 소녀 이미지를 지속시키기 위해 주디 갈란드의 소속사인 MGM과 데이비드 로스의 종용에 못이겨 어쩔 수 없이 한 강제적인 낙태였다. 주디 갈란드는 낙태 후 죄책감으로 괴로워했다.

 

* 빈센트 미넬리 (1945~1951)

 - 양성애자. 동성애 행각으로 주디 갈란드와 이혼한 영화 감독. 주디 갈란드의 장녀 라이자 미넬리의 아버지. 라이자 미넬리도 엄마 주디 갈란드가 동성애자 아버지를 더 따랐던 것처럼 동성애자 아버지인 빈센트 미넬리와 더 돈독했음. 주디 갈란드와 빈센트 미넬리의 이혼 뒤에도 라이자 미넬리는 빈센트 미넬리와 살면서 성장.


* 시드니 루프트 (1952~1965)

 - 공연 프로모터로 주디 갈란드의 세 번째 남편. 시드니 루프트와는 13년간 살면서 다섯 번의 결혼 중 가장 오랜 시간 결혼 생활을 유지하였고 남매도 낳았지만 시드니 루프트의 상습 도박으로 경제 사정이 안 좋아하지면서 이혼하게 됐다. 시드니 루프트 사이에서 낳은 자녀는 배우로 활동한 딸 로나 루프트(Lorna Luft 1952년 11월 21일생)와 아들 조이 루프트(Joey Luft 1955년 3월 29일생)이다.

 
시드니 루프트는 본의 아니게 주디 갈란드와 라이자 미넬리에게 최악의 이혼 경험을 남기게 한 원인 제공자이기도 하다. 공연 프로모터인 시드니 루프트는 주디 갈란드 공연의 오프닝을 장식할 가수로 호주와 홍콩 외 아시아 지역을 오가며 활동하던 호주 출신의 무명 싱어송라이터 피터 앨런을 세운다. 주디 갈란드가 피터 앨런을 알게된건 1964년 주디 갈란드의 홍콩 공연에서부터다. 이 인연으로 피터 앨런은 주디 갈란드의 장녀인 라이자 미넬리와 사귀게 되고 1967년 주디 갈란드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한다. 라이자 미넬리에겐 첫 결혼이었다.
 
주디 갈란드는 1965년에 시드니 루프트와 이혼하고 같은 해 11월 30일에 배우인 마크 헤론과 재혼하는데 2년 뒤인 1967년에 마크 헤론이 라이자 미넬리와 갓 결혼한 사위 피터 앨런과 눈이 맞으면서 네 번째 결혼도 파경을 맞는다. 첫 남편이 계부와 바람이 나면서 라이자 미넬리도 피터 앨런과 헤어지게 되지만 1974년 재혼 전까지 피터 앨런과 법적으론 혼인 상태를 유지했다.
 
호주 출신인 피터 앨런은 미국 시장에서 가수로는 큰 성공을 거두진 못했지만 작곡가로는 명성을 높였다. 올리비아 뉴튼 존의 첫 빌보드 1위곡이자 1975년 제17회 그래미 올해의 레코드상을 수상한 I Honestly Love You(1974년 10월 2주 1위)와 빌보드 1위곡이자 1982년 제54회 아카데미 주제가상을 받은 [미스터 아더]의 Arthur's Theme(Best That You Can Do)등이 그의 작품.
 
1992년 6월 18일 에이즈 합병증으로 인후염이 악화되면서 사망했다. 그의 생애를 다룬 브로드웨이 주크박스 뮤지컬 [오즈에서 온 소년]이 2003년 10월 16일 개막하였고 완성도에 대해선 여느 주크박스 뮤지컬처럼 이견이 갈리는 가운데 피터 앨런 역을 맡은 휴 잭맨만은 호평 속에서 토니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 마크 헤론 (1965~1967)

 - 주디 갈란드의 네 번째 남편. 배우이며 주디 갈란드와 실제로 같이 산 기간은 5개월 남짓이다. 시드니 루프트와의 이혼이 법적으로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강행한 결혼이라 논란이 있었다. 주디 갈란드와 마크 헤론은 1965년 11월 14일 라스베가스에서 결혼식을 올렸지만 위장 결혼이었다. 동성애자였던 마크 헤론은 처음부터 속일 작정으로 주디 갈란드와 결혼했다. 마크 헤론이 라이자 미넬리의 남편인 피터 앨런과 눈이 맞으면서 사랑의 도피로 뒤통수를 쳤을 때는 주디 갈란드와 서류상으로만 부부였다. 장인과 사위 관계가 연인 관계로 발전하면서 모녀를 이혼시킨 희대의 막장 결혼 사기극.

 

* 미키 딘스 (1969)

 - 미키 딘스(Mickey Deans). 주디 갈란드와 띠동갑인 마지막 남편이다. 영화 [주디]에선 굉장히 어린 남편처럼 묘사되나 주디 갈란드와 결혼했을 때 서른 중반이었다. 1934년 9월 24일 뉴저지 출생이다. [주디]에서 미키 딘스 역을 맡은 핀 위트록은 1984년생으로 제 나이에 맡는 배역을 연기한 것이다. 미키 딘스는 음악인 집안에서 성장하였고 주디 갈란드를 만났을 무렵엔 맨하탄 나이트클럽의 별볼일 없는 피아노 연주가였다. 

 

미키 딘스는 주디 갈란드에게 암페타민을 배달해 주면서 주디 갈란드와 인연을 맺게 됐고 3년여간 가볍게 연애를 하다가 1969년 3월 15일 런던에서 결혼하였다. 주디 갈란드가 죽을 때까지 같이 살았다. 주디 갈란드의 약물 중독 치료를 위해 애썼지만 호전되진 않았다. 미키 딘스는 주디 갈란드와 결혼 3개월만인 1969년 6월 22일 아침에 욕실 변기 위에 앉은 상태로 죽어 있는 주디 갈란드를 발견하였다. 부검 결과 주디 갈란드의 사인은 바비투르산 과다 복용에 의한 심장마비다.

 

미키 딘스와 주디 갈란드의 인연을 맺어준 암페타민은 [오즈의 마법사] 촬영 당시 주디 갈란드에게 강제로 투여된 약물이다. 암페타민은 피로와 식욕을 낮춰주지만 뇌 손상과 호흡곤란, 심장마비를 일으킬 성분이 들어있다. 미키 딘스는 울형성 심부전으로 2003년 7월 11일 사망했다. 1972년 피라미드 북스에서 주디 갈란드에 대한 회고록을 출간했다.   

 

이 외 양성애자로 알려진 타이론 파워와의 관계는 와전된 부분이 많다. 타이론 파워의 동성애 사실은 정확하게 확인된 바도 없다. 타이론 파워가 주디 갈란드의 첫 연인이었다가 동성애 문제로 헤어졌다는것도 아티 쇼가 라나 터너와 주디 갈란드 사이에서 양다리를 걸치다가 주디 갈란드를 차버렸다는 것에서 와전된 것이다. 이게 이상하게 섞이면서 1951년에 빈센트 미넬리가 타이론 파워와 정사를 벌이다가 주디 갈란드에게 발각되어 이혼에 이르게 된 것이라는 야사까지 완성됐다. 

 

 

 

 

주디 갈란드의 자녀들 - 라이자 미넬리, 조이 루프트, 로나 루프트

 

 

주디 갈란드와 라이자 미넬리

 

 

 

세 번째 남편 시드니 루프트 사이에서 낳은 조이 루프트와 로나 루프트와 함께

  

라이자 미넬리 ▼

 

 

라이자 미넬리와 이부형제들 - (좌측부터)로나 루프트, 라이자 미넬리, 조이 루프트
 
엄마 주디 갈란드처럼 수차례 결혼과 이혼을 반복한 라이자 미넬리. 라이자 미넬리는 공교롭게도 네 번의 실패한 결혼에서 주디 갈란드처럼 게이 남편에게 사기 결혼도 당했다. 아버지가 동성애자였던 것도 똑같다. 보드빌 배우 출신인 외할아버지도 게이, 할리우드 유명 감독인 아버지도 게이, 첫 남편도 게이. 아무리 모녀가 게이 아이콘으로 사랑받고 있지만 사생활에서도 어쩜 이렇게 게이들과 엮이면서 인생이 꼬일 수 있는지. 거기다 잦은 결혼과 이혼의 과정을 보면 마치 환승이라도 하듯 이혼 기간과 결혼 시기가 딱딱 맞물리는 것까지도 겹친다.  
 
연예계 종사자들 중 게이가 많고 주디 갈란드와 라이자 미넬리가 활약한 무대 쪽에선 특히 더 몰려 있다보니 정에 약한 모녀의 연예계 삶에서 게이를 만날 확률이 높았나 보다. 그래도 게이와 엮인 삶, 특히 장인과 사위가 바람이 난 과거는 정말 엽기적이다.
 
네 번 결혼하고 네 번 이혼한 라이자 미넬리의 남편들
 
* 피터 앨런 (1967~1974)
 - 1967년 3월 3일 결혼. 호주 출신의 싱어송라이터인 피터 앨런은 1964년 봄 주디 갈란드 공연의 오프닝을 담당하게 되면서 주디 갈란드 모녀와 친분을 쌓게 됐고 라이자 미넬리와 결혼까지 갔지만 1974년 7월 24일에 이혼을 확정한다. 게이였던 피터 앨런이 장모인 주디 갈란드의 네 번째 남편이자 장인인 마크 헤론과 눈이 맞으면서 사랑의 도피를 벌였기 때문이다.
 
세상을 놀라게 한 떠들석한 불륜 사건이었지만 주디 갈란드가 딸과 결혼한지 몇달 되지도 않은 사위가 남편과 바람이 난 문제로 1967년에 이혼을 한 것과 달리 라이자 미넬리와 피터 앨런은 그 뒤로도 7년이나 법적 혼인 상태로 지냈다. 라이자 미넬리의 세계적인 출세작인 [캬바레]에서 라이자 미넬리가 연기한 샐리 보울스는 양성애자 남자와 사귀다가 친구로 지내는데 영화에서와 같은 일이 현실에서도 일어난거다. 주디 갈란드처럼 라이자 미넬리도 주변에 게이 남자들이 주렁주렁.
 
라이자 미넬리는 자신을 속인 첫 남편 피터 앨런이 계부와 동성 불륜까지 저질렀는데도 헤어지고 나서도 피터 앨런과 비교적 잘 지냈던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법적 혼인 관계를 7년이나 지속시킬 수가 없다. 피터 앨런이 장인 관계인 마크 헤론과 불륜이 난건 라이자 미넬리와 결혼식을 올린 1967년이었고 라이자 미넬리와 이혼한건 1974년이었다.
 
라이자 미넬리와 1974년 법적으로도 갈라선 피터 앨런은 1981년 개봉한 라이자 미넬리 주연의 영화 [미스터 아더]의 사운드트랙 작업을 해서 이듬해 아카데미 주제가상을 수상했다. 피터 앨런이 아카데미 주제가상을 수상한 [미스터 아더]의 사운드트랙은 크리스토퍼 크로스가 부른 The Best That You Can Do ("Arthur's Theme")이다. 이 곡은 피터 앨런과 크리스토퍼 크로스, 버트 바카락이 공동으로 작곡했다. 이혼 뒤에도 영화 사운드트랙 작업으로 피터 앨런과 라이자 미넬리는 접점이 있었다.
 
* 잭 헤일리 주니어 (1974년~1979년)
 - 영화 감독이자 작가, 프로듀서. 1974년 9월 15일 결혼하였고 1979년 4월에 이혼했다. 잭 헤일리 주니어의 부친인 잭 헤일리는 배우로 주디 갈란드와 함께 한 [오즈의 마법사]의 양철나무 역으로 유명하다.    
 
* 마크 게로 (1979년~1992년)
 - 조각가이자 무대 관리자인 마크 게로와 1979년 12월 4일 결혼하여 1992년 1월 이혼했다.
 
* 데이빗 게스트(2002~2007)
 - 엄마 주디 갈란드의 세 번째 남편과 같은 직군인 콘서트 프로모터인 데이빗 게스트와 2002년 3월 16일에 결혼했지만 2003년 7월에 이혼 소송에 들어갔다. 결혼 당시 420만불이나 들인 호화 결혼식이 화제를 모았다. 2014년 베니스에서 1,300만불을 들인 호화 결혼식을 한 조지 클루니의 결혼 소식이 나오면서 역대 유명인들의 사치스러운 결혼식 톱10 기사가 작성됐는데 라이자 미넬리와 데이빗 게스트의 2002년 결혼식이 6위로 선정됐다.
 
라이자 미넬리와 데이빗 게스트는 마이클 잭슨의 소개로 알게 됐다. 중년의 나이에 16명의 신부 들러리, 60인조 오케스트라 동원 등 요란스럽게 결혼식을 올렸지만 만난지 6개월만에 결혼해서 결혼식 16개월만에 별거에 들어갔고 결혼식 5년 후 이혼이 확정됐다. 2003년에 데이빗 게스트가 술 취한 라이자 미넬리에서 수차례 폭행을 당했다며 1천만달러를 요구하는 소송을 내자 그해 10월에 라이자 미넬리도 맞소송을 걸었다.
 
다섯 번의 결혼에서 세 자녀를 얻은 주디 갈란드와 달리 라이자 미넬리는 네 번의 결혼에서 자녀는 없다.
 
 
라이자 미넬리 같은 경우는 주디 갈란드처럼 잦은 결혼과 이혼, 알콜과 약물 중독으로 고생은 했어도 이른 나이에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한게 아니어서 그런가 미국에선 게이 아이콘인 동시에 김수미 같은 이미지로 희화화 되는 측면이 있는데 어느 정도는 게이들과 얽힌 복잡한 사생활 문제가 농담으로 뭉개진 것 같다.   
 

주디 갈란드와 마크 헤론 - 1965년 11월 30일 결혼

 

라이자 미넬리와 피터 앨런 - 1967년 3월 3일 결혼

 

1965년 1월 - (좌측부터) 피터 앨런, 주디 갈란드,  크리스 앨런, 마크 헤런, 라이자 미넬리. 크리스 앨런은 피터 앨런과 듀오인 앨런 브라더스로 활동한 호주 출신의 기타리스트 겸 가수로 듀오를 위해 크리스 앨런이란 예명을 사용했다. 원래 이름은 크리스 벨이다.

 

 - 위 사진에서 2년 뒤 장인과 사위가 될 피터 앨런과 마크 헤론은 연인 사이로 발전한다.

 

 

 

1967년 3월 3일 피터 앨런과 라이자 미넬리 결혼식. 라이자 미넬리의 부친인 빈센트 미넬리 감독도 참석.

 

 - 피터 앨런은 1992년 시드니에서 마지막 공연 직후인 1992년 6월 18일 동성애로 인한 에이즈 합병증으로 인후암이 악화되어 사망했다. 유골은 바다에 뿌려졌다. 2003년에 피터 앨런의 생애를 다룬 브로드웨이 주크박스 뮤지컬 [오즈에서 온 소년]에서 피터 앨런 역을 맡은 휴 잭맨은 굉장한 열연으로 토니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피터 앨런, 라이자 미넬리, 주디 갈란드의 다정한 한때. 모녀를 엿먹인 피터 앨런

 

라이자 미넬리, 주디 갈란드, 마크 헤론의 다정한 한때. 아내와 의붓딸을 엿먹인 마크 헤론

 

앨런 브라더스와 텔레비전 쇼에 선 라이자 미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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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2020-03-27 09:03:52

그냥 읽기만 하는데도 복잡하네요.

대단한 사생활입니다. 잘 읽었어요. 머드님. ^^

Updated at 2020-03-27 10:36:22

사진을 보니 주디 영화의 라이자 캐스팅은 아주 훌륭했군요
국내엔 별로 알려지지 않은듯 한데 Life with Judy garland me and my shadows 라는 주디 갈란드 전기영화가 있습니다
올려주신 내용이나 주디 영화에서 잠깐 언급하고 지나가는 부분들을 좀 더 구체적으로 보여줍니다(러닝타임이 3시간 가까이 됩니다) 유튜브에 있긴 한데 한글자막이 없어서 전 DVD를 사서 봤습니다 단 DVD의 한글자막도 번역의 질이 몰입을 방해할 만큼 안좋은 편입니다..
정보공유삼아 적어 봅니다

2020-03-27 10:39:00

장인과 사위 ㄷㄷ 놀라운데요? ㅋ 근데 주디갈란드의 사진들을 볼수록 주디에서의 르네젤위거를 보는듯 합니다

2020-03-27 12:31:55

게이도 결혼을 안하고 혼자 살면

인간으로 인정을 못받는 사회 분위기의 피해자들이군요

개인의 불행은 개인의 문제만이 아닌 거죠

2020-03-27 15:34:31

가끔 일본av에서 나오는 사위와 장모도 아니고 사위와 장인;; 주디 갈란드도 참 불행으로 점철된 삶을 살았네요. 헤어진것도 속상할텐데 자기 남편이 사위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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