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게] [잡담/스포] 유전과 미드소마
어제 <유전>을 다시 봤네요.
<유전>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내가 바로 악마 파이몬이구나.'
이걸 다시 <미드소마>에 풀면, '어머 내가 메이퀸이 되었네.'
성별의 차이는 있지만, 피터와 대니, 둘 다 추대를 받는 입장이죠. 어떤 것도 적극적으로 한 게 없는데, 어쩌다 보니, 궁극의 위치에 오르게 된 겁니다. 특히 유전 엔딩, 마지막 표정은, 정말 오만가지 생각을 다 하는 것 같더라고요. 벙찌고, 황당하고, 엄마랑 아빠 가족 다 죽고 미치겠는데, 왕이라서 좋은데, 악마라서 학교에서 자랑하기도 뭐하고, 등등.
최근 <킬링 디어>처럼 영문도 모르고 당하는 희생양의 입장에서 풀어나가는 영화라서, 개운한 맛은 없지만, 주인공들은 소시민에서 다스베이다 급으로 일취월장을 하게 되니, 엔딩의 쾌감은 사이다에 생맥주를 더한 맛이죠. 다른 (종류의 개운한) 영화라면 악마를 무찌르거나, 컬트교를 잔혹하게 몰살 시키거나, 인신공양 하는 요상한 마을을 불태우고 탈출하거나 그랬을 텐데 말입니다. 하지만 장르의 개운함은 이쪽이 훨씬 더 큽니다. 오컬트 영환데, 악마가 제대로 나와야죠. <로즈마리의 아기>를 떠올려 보세요.
(<킬링 디어>와 <유전> 모두 신화에서 모티브를 따왔죠. 두 영화 모두 신화 비틀기에 정신이 없지만요.)
<유전>을 티비에서 우연히 보게 된 사람들은 철저하게 (이안의 '아이스트톰'같은) '패밀리 무비' 장르에 녹아들어 가서 보다가, 오컬트의 조크와 악마의 유희에 빠져서 허우적거릴거고, <미드소마> 역시 철저히 데이트 무비와 힐링 트립이라는 인트로에 취해 보다가,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상황을 맞이하게 됩니다. 저를 포함해서요.
패밀리 무비를 가장한 <유전>, 데이트 무비처럼 시작하는 <미드소마>. 하지만 주인공은 희생양. 하지만 엔딩은 해피엔딩. 이런 식입니다. 비틀고 비틀고 또 비트니 곧게 펴지는 마법 같은 스토리 텔링.
어제 새벽에 <유전>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대사가 너무 좋다. 정말 가족 드라마 보는 것 같다. 감독 역시 각본을 공포가 아닌 패밀리 무비로 시작했다고 했고, 대부분 잘려 나간 장면들은 '가족 간의 대화'라고 했으니까요. 마치 김다미의 <마녀> 기차 장면에서 삶은 달걀 먹고 나누는 대화 장면이 그렇게 좋았던 것 처럼요. <유전>의 대사는 여자 드라마 작가가 쓴 것처럼 정말 잘 썼어요. (호러) 장르 안의 다른 (드라마) 장르 역시 충실하다 못해 거장의 솜씨입니다.
<미드소마>는 아직 재감상 전이지만, 처음에 봤던 블랙코미디 느낌을 더 받을지 아니면 다른 느낌으로 볼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저에게 <유전>은 좋은 패밀리 무비입니다. 관람 대상을 말하는 게 아니에요. 소재가 그렇다는 겁니다. 소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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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에서 파이몬은 피터가 아니고 찰리입니다.
피터는 아마도 추락하고 나서 빛이 몸 속으로 들어왔을 때 죽은게 아닐까 싶네요.
최후반부 광신도가 피터더러 '찰리'라고 부르는 게 확인사살.
조금 비틀어 본다면, 그 끔찍한 일련의 의식은 광신도들의 착각이고
피터는 여전히 살아서 멍하고 당황한 상태로 엔딩을 맞이했다고 해석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 되면 그 수많은 오컬트적 현상들을 설명하기 어려워지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