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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원작과 영화 - 허영의 불꽃(The Bonfire of the Vanit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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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0-08-09 16:34:17

 

 

 

민음사 모던 클래식 23번, 24번으로 출간된 톰 울프의 [허영의 불꽃]. 번역 수준은 끔찍하다. 비문에 오타 투성. 2010년 5월 17일자로 국내 출간됐다. 톰 울프는 1984년부터 롤링 스톤에 27회에 걸쳐 [허영의 불꽃]을 연재했고 1987년 10월에 단행본으로 출간했다. 연재 당시부터 좋은 평가를 받은 [허영의 불꽃]은 단행본으로 출간되면서 금세 베스트셀러로 자리 잡았고 톰 울프의 대표작으로 남았다. 1980년대 시대 흐름을 광범위하게 짚어낸 소설은 호평 속에서 1990년 1월 1일 타임지 신년호가 선정한 1980년대 소설 베스트 10에 [우연한 여행자][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콜레라 시대의 사랑][빌리 베스게이트] 등과 함께 뽑히기도 했다.

 

 

허영의 불꽃(The Bonfire of the Vanities)

톰 울프 원작 - 1987년 10월 초판

브라이언 드 팔마 연출의 영화 - 1990년 12월 22일 개봉(북미)

국내 출간 - 2010년 5월 17일 민음사(민음사 모던 클래식 23,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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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에서 2010년 원작이 출간됐을 때 무척 반가웠고 얼마 뒤 구입해서 쟁여두었다가 2013년에 완독했다. 브라이언 드 팔마가 연출한 영화는 보지 않은 상태로 원작부터 읽었다. 원작을 읽기 전엔 궁금하지 않았던 영화다. 톰 울프 원작의 명성이 자자했기 때문에 궁금했고 국내 출간을 기다렸었다. 영화는 복습 차원에서 뒤늦게 번역된 원작을 읽고 뒤늦게 접했다. 영화부터 보기엔 영화평이 너무 안 좋아서 굳이 찾아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영화가 1990년 실패작으로 꾸준히 언급되고 있기 때문에 기대할 것은 없었고 전성기 시절 브루스 윌리스 주연작임에도 국내에선 비디오로 직행했을만큼 망한 영화란 인식이 강했다. 원작을 망친 대표적인 작품, 평단의 조롱, 박스오피스 참패에 대한 후유증으로 톰 행크스를 잠시동안 휴식에 들어가게 했던 졸작으로 설명되는 영화라서 원작 읽기 전엔 감상할 엄두가 나지도 않았다. 1990년 할리우드 실패작을 논할 때 [허영의 불꽃]은 항상 중심부에 놓여 있어서 볼 맛이 안 났다.

 

하도 망한 영화 취급을 당해서 골든 라즈베리라도 석권했는 줄 알았는데 최악의 작품상, 여우주조연상, 각본상, 감독상 후보로 지명돼 다행이 무관에 머물렀다. 잘 나가던 톰 행크스 경력을 휘청거리게 했던 작품이고 실패한 연기였지만 골든 라즈베리 후보에 오르는 망신을 당하진 않았다. 각색이 굉장히 별로라서 골든 라즈베리 후보 지명은 당해도 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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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이나 각색이나 1980년대 미국 사회를 신랄하게 풍자한 원작의 핵심을 놓치고 양심 찾기, 인간성 회복이란 도덕적 교훈으로 마무리를 지어서 원작을 어리둥절하게 재해석했다. 허영으로 가득한 나약한 인간 본성과 몰락하는 과정에서 겪는 갈등과 혼란의 지점을 예리하게 관찰한 원작의 날카롭고 냉소적인 시선을 떠올렸을 때 상당히 맥빠지는 구성이라 할 수 있다. 영화는 4천 7백만불이나 들여 만든 대작 규모의 드라마였으나 1990년 개봉 당시 제작비의 3분의 1도 건지지 못했다. 영화를 보면 예산에 비해 소품 규모라서 제작비의 흔적을 느끼기란 쉽지 않다. 1987년 출간된 화제의 원작, 톰 행크스, 브루스 윌리스, 멜라니 그리피스 같은 스타 섭외에서 자신감을 갖고 모든 분야에 아낌없이 투자했나 보다.  

 

1988년 [빅]으로 연기력을 인정 받은 톰 행크스, 1988년 [워킹 걸]의 성공으로 [빅]의 톰 행크스처럼 오스카 후보까지 오른 멜라니 그리피스, 1988년 [다이하드]의 선전으로 세계적인 액션 스타로 부상한 브루스 윌리스의 기용. 영화 [허영의 불꽃]은 1988년 출연작으로 크게 도약한 배우 셋이 새롭게 도전하는 사회 풍자극이었고 여기에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 이후에 나온 모건 프리먼 출연작이기도 했다. 크레딧에 오르지 않았던 F. 머레이 에이브러햄도 비중있는 역할로 등장한다. 1980년대를 대표하는 원작에 대규모 자본, 호화 출연진 구성으로 기획 단계부터 주목을 받았으나 개봉 후에는 1990년 할리우드의 오점으로 기억되며 잊혀졌다.  

   

톰 행크스는 [빅]의 성공으로 도전할 수 있었던 대자본 드라마의 진지한 배역 표현을 위해 머리는 짙은 갈색으로 염색했고 특유의 곱슬머리도 부드럽게 펴서 모처럼만에 외양적 변신을 신도했다. 원작에서 톰 행크스가 연기한 셔먼 매코이는 부유한 귀족 가문의 자제로 예일대를 졸업한 38살의 성공한 월 스트리트 채권 트레이더이다. 귀티가 좔좔 흐르는 외모로 삶의 고급화를 추구하는 허영 가득한 인물로 자기도취에 빠져 산다. 설정부터가 톰 행크스에 어울리지 않는데 완성된 영화에서도 배역과 겉돈다. 배역 소화는 차치하고 외모부터가 친근한 이웃집 아저씨 느낌인 톰 행크스와 너무 안 맞는다. 톰 행크스의 외모 변신 영향으로 톰 행크스의 딸로 두 장면 등장하는 금발의 어린 키어스틴 던스트도 두발이 갈색이다.  

 

멜라니 그리피스가 영화 촬영 중간에 유방 확대 수술을 받은 사실이 두고두고 놀림감이 되었는데 멜라니 그리피스가 맡은 배역을 떠올려 보면 부자연스런 모습이라 할 수는 없다. 남부 출신의 마리아 러스킨은 화려한 삶을 위해서라면 사회적 신분이 높은 남자들과 거리낌없이 어울리는 출세지향적인 인물이다. 그녀는 난잡하다. 잘 빠진 육체를 빌미로 자신의 허영심을 충족시키려는 속물이라 배우 개인의 유방 확대 수술이 배역의 몰입을 떨어뜨릴 것도 없다.

 

오히려 마리아 러스킨의 욕망 서린 창부 같은 모습에선 부담스럽게 커진 가슴이 잘 어울린다. 마리아 러스킨은 남편의 장례식장에서도 정부와 섹스를 하려는 여자다. 이런 배역을 연기하는 배우가 촬영 중간에 유방 확대 수술을 받은게 그렇게 비난 받을 일인가 싶다. 포스터엔 주인공처럼 등장했지만 분량도 조연급이다. 마리아 러스킨은 원작에선 고혹적인 흑발 미녀로 묘사되는데 영화에선 멜라니 그리피스에 어울리게 금발로 설정돼 있다. 머리색의 변화 외에는 멜라니 그리피스가 가지고 있는 백치미가 배역을 무난하게 살렸다.

 

영화 개봉 후 가슴 확대 수술로 제일 욕 먹은 멜라니 그리피스가 보기보다 배역과 잘 어울린 반면 극을 이끌어 가는 톰 행크스와 화자로 설정된 브루스 윌리스는 심각한 미스캐스팅이다. 원작에서 셔먼 매코이와 피터 팰로의 귀족적 외모 묘사와 외모에서 기인한 자기도취적인 모습은 인물의 속물 근성과 허영의 민낯을 해부하는 극의 주요 장치이다. 톰 울프는 셔먼 매코이의 오만한 자기애와 피터 팰로의 세속적인 모습을 훌륭한 외모와 대조시키며 화려한 겉모습과 달리 썩어빠진 사회의 추악한 이면을 해부한다.

 

외모가 주는 영향, 외모에서 풍기는 분위기, 자신의 외모에 갖고 있는 자부심 등 외모 그 자체에서 기인하여 발산되는 분위기가 배역과 드라마의 흐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데 브루스 윌리스나 톰 행크스는 피터 팰로와 셔먼 매코이를 맡기엔 너무 중산계층, 서민층 분위기를 풍긴다. 영국 귀족 혈통이라는 것을 자부하며 강한 영국식 악센트를 고집스럽게 고수하며 남에게 기생하는 알콜중독자 피터 팰로를 맡기엔 브루스 윌리스는 너무 날티 나 있다.

 

영화가 배역 해석을 이상하게 한 탓인지 아니면 진지한 드라마 장르에 도전한 브루스 윌리스의 영향력 탓인지 하는 일 없이 배역 비중만 쓸데없이 늘었다. 피터 팰로는 셔면 매코이와 다를 게 없는 속물이고 도덕적 결함이 많은 인물이라 그가 뺑소니 교통사고로 몰락하는 셔먼 매코이 사건을 놓고 전반적인 사회 현상을 분석한다는게 모순적인데 영화는 이런 모순을 통한 풍자극 조성에도 실패해 브루스 윌리스의 나레이션도 내내 겉돈다.

 

소설을 읽을 때는 도무지 셔먼 매코이와 톰 행크스는 매치되지 않는데 결과도 마찬가지다. 그 당시 주인공으로 활발하게 활동한 비슷한 연령대의 배우 중에는 매튜 모딘이나 윌리엄 허트 같은 배우가 원작의 묘사와 근접하다. 원작에서 셔먼 매코이는 잘 생긴 턱을 치켜 세우며 오만하고 허영심이 가득한 현대의 속물 귀족층으로 묘사가 되는데 매튜 모딘이나 윌리엄 허트라면 자연스럽게 소화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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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입후의 화려한 롱테이크 연출이나 증권가의 정신없는 사무실 묘사는 압도적으로 잘 구성됐다. 현란하고 세련됐다. 처음 구치소에 수감되는 셔면 매코이의 복잡하고 절망적인 묘사는 소설이 굉장히 인상적으로 그리긴 했지만 영화에서도 셔먼의 암담한 상황을 긴박하게 담았다. 그러나 셔면이 자멸하는 장면을 무차별 총기 난사로 은유한건 우스꽝스럽고 후반부 모건 프리먼이 연기한 판사의 일장연설은 지나치게 교훈을 의식한 훈계조라 짜증난다. 많은 제작비가 투입된 작품임에도 모건 프리먼의 대머리 가발은 가발 표시가 너무 나서 어색했다. 드라마는 얕고 인물은 단순하며 풍자극의 성격은 어정쩡하다.

 

원작이 마땅한 결말없이 흐지부지하게 사건을 처리한게 걸렸는지 영화는 확실히 결론을 내리는데 그게 양심을 회복한 셔면 매코이의 인간 승리쯤으로 바꿔놔서 원작을 떠올렸을 땐 황당하다. 원작은 누구 하나 동조하기 힘든 인간군상의 묘사로 건조하게 마무리 된다. 인간승리 드라마로 포장할 수 있는 성질이 아닌데 재판까진 그런대로 원작의 냉소를 따라가다가 난데없이 셔먼의 깨우침으로 내일의 희망을 암시한다. 온갖 의견을 반영하다가 이야기가 산으로 가버리는 [플레이어] 풍의 할리우드 각색이 떠오르는 처리 방식이다.

 

원작은 이디스 와튼의 [순수의 시대]와 비교되는데 읽다보면 [순수의 시대]의 1980년대판 월스트리트 버전같다는 생각도 든다. 기자 출신 작가가 써서 치밀하게 뉴욕 증권가를 조사해서 쓴 흔적이 느껴진다. 다만 오랜 기자 생활 탓인지 상황이나 인물 묘사에 있어서 이야기적인 재미는 떨어지고 묘사 방식도 한정적이다. 한 장 걸러 강조되는 굵은 글씨 남발도 지나쳐서 읽다보면 지치는 구석이 있다. 꼭 그렇게 작가가 굵은 글씨로 일일이 강조하지 않아도 중점을 둬서 읽어야 할 부분은 독자가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나친 굵은 글씨 남발이 주제 주입으로 느껴져 부담스러웠다.

 

민음사 판 번역은 암담하다. 가뜩이나 묘사가 풍부하지 못한 소설을 비문 투성이에 두 쪽 걸러 나오는 맞춤법과 띄어쓰기의 잦은 오타로 거슬린다. 가편집본 같은 조악한 번역으로 1000쪽 넘는 방대한 분량을 따라가는 과정이 녹록치 않다. 유일한 번역본이라 대체품도 없다. 그래도 좋은 이야기이다. 연기, 구성 등 모든 부분이 어수선한 영화는 원작의 복습 차원에서 참고 삼아 볼 정도이지만 원작은 추천한다.

 

 

원작 초반에 셔먼 매코이의 외모와 성격을 묘사한 부분. 영화의 톰 행크스와 전혀 매치가 안 된다.

 

 

[빅]의 성공 덕분에 야심차게 준비된 진지한 드라마에 도전할 수 있었던 톰 행크스는 갈색으로 머리색을 바꾸고 곱슬머리도 매직 스트레이트로 부드럽게 펴가며 의욕적으로 연기했지만 원작이 묘사한 셔먼 매코이의 귀족적인 용모와 귀티를 자아내는데 실패했다.연기도 부자연스럽다.  

 

 

 

1988년 출연작의 성공으로 그때까지의 영화 경력에서 최고로 잘 풀렸던 톰 행크스, 브루스 윌리스, 멜라니 그리피스는 1990년을 대표한 실패작 [허영의 불꽃]으로 1988년에 얻은 명성을 잔뜩 구겼다. 톰 행크스는 [허영의 불꽃]의 실패로 1년 가까이 반강제적인 휴지기에 들어갔다.  

 

 

▲ 1990년 12월 19일 [허영의 불꽃] 웨스트우드 시사회에서 톰 행크스 부부

 

 

 

 

도입부 5분여의 롱테이크 연출이 압도적이다. 그 뒤부턴 끝날때까지 맥빠지는 연출을 보여준다. 마이클 크리스토퍼의 각색은 골든 라즈베리에 지명됐다.  

 

 

멜라니 그리피스가 영화 촬영 중간에 유방 확대 수술을 받은게 두고두고 놀림감이 됐지만 멜라니 그리피스가 연기한 마리아 러스킨의 속물적 태도를 봤을 때 지나치게 욕을 먹은 면이 있다. 영화에서도 가슴 크기로 몰입을 방해하진 않는다.

 

 

해외에서 쫄딱 망한 영향 탓인지 브루스 윌리스, 톰 행크스가 출연했음에도 국내에선 1991년 비디오로 직행했다.

 

 

2000년 4월 출시된 dvd. 제목에서 비디오 때와 동일한 글씨체를 사용했다.

 

 

 

 

1987년 10월 단행본으로 출간된 톰 울프의 [허영의 불꽃] 1987년 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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