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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 도망친 여자 단평.....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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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22 16:34:21

 

수탉이 암탉 위에 올라타 부리로 쫀다. 
제딴에는 전희(前戲)랍시고 한다고 생각했는데 웬걸 그냥 괴롭히는 거란다. 
암탉은 머리에 깃털이 다빠져 주눅들어 있다. 
수탉은 의기양양하게 여전히 힘을 과시한다. '참 나쁜 닭이네.' 절로 혀를 차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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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 여성들을 만난다. 여성이 여성에게만 은근하게 털어놓는다. 
과거의 섭섭함에 원망하지 않으며 고민을 나누고 조언을 구하며 미운 놈을 같이 험담한다.
감독의 영화에 나오는 남자들은 대걔 그러하지만 본작에선 작정을 하고 남성성을 야유한다. 
시대의 트랜드이겠거니 하지만 감독은 근 20년을 넘게 반복하고 있는것이라 편승하고자 하는 적당함은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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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감희는 남편과 5년동안 한 번도 떨어져본 적이 없지만 그가 장기출장은 간 새 마음먹고 마실 다닌다. 
감희가 만난 세명의 여인들은 모두 남자에 대해 털어 놓는다. 
첫번째 여인은 남자를 떠나 이제는 여자와 함께 살고 있다. 좋아 보인다. 
두번째 여인은 남자를 만나려 하지만 마음에 없는 또 다른 남자의 추파에 곤경이다. 
세번째 여인은 남자와 함께 살지만 행복하지 않노라 고백한다. 
감희는 세명의 여인과 만나 세번의 이야기를 들으며 생각한다.
사랑의 영속과 권태로움에 대해 생각한다. 반복에 진정성이 있는지 의심한다.
진짜같지 않은 그저 관계의 유지를 위한 계속된 시간이라는 위장은 갸우뚱하기만 하다.
'그럼 넌 여기 왜 왔니?' 기가 질려 아무 말도 못한다. 
'설마 당신을 만나러 왔겠어요?' 차마 입에 내뱉지 못하고 왔던 길을 돌아간다. 
'전 저 쪽으로 가야겠어요' 처음 정했던 동선을 포기하고 돌아서 나간다.
대화의 차단과 관계의 종말과 자리를 뜨는 것은 비겁한 걸까?
감희는 카페 정문을 통해 나가려다 또 다시 되돌아 간다. 
이번엔 도주가 아닌 자주적 선택이다. 봤던 영화를 한 번더 보는 건 비겁이 아닌 취향이다. 
그럼에도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가끔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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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수 감독 전작들 다 보았는데 이번에도 좋네요.

'홍상수 감독 영화는 다 똑같은 것 같은데? 자기 복제 아니야?'

이런 말을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서인지 다분히 의식하고 인물의 입을 통해 농을 칩니다.

자신의 창작물에 대한 자부와 긍지가 없으면 내보일 수 없는 배짱이라고 생각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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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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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22 16:49:31

매우 지극히 개인적이고 까탈시러운 표현을 하자면...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지 마느님 맘도 몰랐으면서...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어요....

영화를 보면 볼수록 뭔가 신물이 넘어오는 느낌이 들어서

안본지 오래되었습니다...

WR
1
2020-09-22 21:38:16

충분히 그러실수 있어요. 아마도 대부분의 대중들의 감정이 그러하겠구요. 오히려 이렇게 핀치에 몰리면 소수자들 끼리 더 끈끈해지더라구요. 저라도 열심히 봐야겠습니다.

1
2020-09-22 17:35:20

 홍상수 작품 많이 보지 않았지만 솔직한 작품으로 보이더군요. 김민희의 연기도 비슷비슷 해도 항상 보면서 좋아요. 이작품 기대 중입니다. 

WR
2020-09-22 21:38:57

김민희씨 연기 좋아하신다면 이 영화도 만족하실겁니다 

1
2020-09-22 21:21:07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보고 열광했다가 이후 작품에 갸우뚱했습니다.  

그런데 이후에는 그의 일관되면서도 새로운 연출에 매료되었네요. 

기대됩니다. 

 

 

 

WR
2020-09-22 21:39:40

김민희씨와 함께하면서 새로운 페이즈를 열어 젖힌 것 같아요. 이 영화도 참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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