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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차한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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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소리도 없이 악은 행해지고 있다 (스포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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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0-10-25 14:21:59

아이히만.


유태인은 들으면 치를 떠는 이름이죠. 독일 나치 친위대 장교였던 그는 6백만명의 유태인의 사형을 총괄했습니다. 아이히만이 체포되어 재판하는 과정을  끝까지 지켜보았던 독일 출생 유대인 여성철학자 아렌트는 아이히만의 얼굴을 처음 보고 “악의 얼굴이 이토록 평범하다니”라는 말을 남깁니다.

외모뿐만 아니라 그는 성격이 착했고 개인적으로는 도덕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아이히만의 사례를 통해 악이란 특별한 악인에 의해 자행된다는 고정관념에서 악이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서도 충분히 저질러질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기 시작합니다.

 

"소리도 없이"는 바로 악의 평범성을 말하고 있습니다.

악이 일상가운데서 얼마나 자연스럽게 친숙하게 일어날 수 있는지 그려주고 있는거죠.


 유재명과 유아인도 그렇습니다. 착하고 인자한 예절바르고 교회에 다니는 유재명, 모자란듯 하지만 순진하고 인간미가 있는 유아인. 이 둘은 계란을 팔면서 생계를 유지하는 긋 하지만 태연하게 조폭과 연계하여 시체를 처리하는 사업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에서 잔인하게 악을 행할 것 같은 인물은 조폭 실장이 유일합니다. 


 차갑고 냉정하고 거만한 조폭 실장은 이 작품에서 가장 잔혹한 일을 저지를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소리없이 제압당하고 죽임을 당하게 되죠. 이 잔혹 캐릭터 없이도 평범해보이는 사람들에 의해 악은 매끄럽게 진행됩니다.

 

이들이 어린이 인신유괴범과 협력할 때도 양측에서 기존 폭력영화에서 나타나는 허세와 거들먹거림, 무례함과 배신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양측은 서로를 존중하고 깍듯이 예의를 지키며 협력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것은 코메디 요소를 가미한 것이 아니라 악이 이렇게 신사적인 모습으로 진행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감독의 의도로 파악합니다. 

 

어린이 장기매매를 하는 양계장 부부도 부부사이도 좋고 동네 아저씨같은 순박한 캐릭터로 나타납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신경 쓴 장치는 자전거를 탄 아저씨입니다. 초희가 밤에 탈출해서 자전거를 탄 아저씨를 만나 구조를 요청했을때 이 아저씨는 술에 취해있었고 느끼한 웃음을 지으면서 자기가 경찰이라고 같이 가자고 합니다.  위험을 감지한 초희는 아저씨를 뿌리치고 다시 도망갑니다. 한번 더 반전이 일어나는데 이 아저씨는 진짜 경찰이었습니다. 이 아저씨는 공권력을 상징한다고 봅니다. 지금까지 공권력을 이용해서 일어난 수많은 범죄와 악이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었는지 생각해봅니다.  

 


 유괴당한 초희를 중심으로 악이 벌어집니다. 초희는 악에 의한 희생자입니다. 관객들은 초희에게 조여오는 악에 대해 긴장하고 초희의 구원을 갈망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초희도 악에 녹아드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희생자의 피로 꽃그림을 그리고 범죄의 현장에서 자연스럽게 함께합니다. 나중에는 범죄은닉을 도와주는 모습까지 보입니다. 희생자까지 악에 녹아들고 그 평범함에 익숙해질 수 있습니다.

유아인이 생활하는 농촌의 아름다운 풍광도 이 평범함을 더욱 강조하고 있습니다.

 

초희를 데리고 간 유아인의 집은 악이 자연스럽게 공존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이 공간에서 초희는 유아인의 여동생과 자매처럼 지내고 유아인, 유재명과 허물없이 지냅니다. 이 공간에서는 악에 악의가 느껴지지 않습니다. 잘하면 계속 공존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초희를 장기매매 부부에게 데려다주면서 공존이 어렵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착하고 초희를 좋아하고 계획하지도 않은 범죄에 휘말린 유아인이었지만 초희의 애처러운 눈빛을 외면하고 장기매매 부부에게 넘겨줍니다. 


유아인이 집에서 자신이 혐오하면서도 선망했던 조폭 실장의 검은 양복을 보면서 갑자기 각성하게 되고 태도를 바꿔 초희를 구합니다. 관객들은 다시 선한 악이라면 공존할 수 있을까하는 기대를 가지게 됩니다.

 

그러나 마지막 초희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초희가 선생님에게 유아인이 어떤 사람인지 말할 때 악이라는 정체성은 변질 될 수 없음을 재확인하게 됩니다. "유괴범이에요."

 

큰 바위든 작은 모래든지 돌은 결국 물에 가라앉습니다. 화려한 물수제비로 감탄을 자아내도 그 돌은 결국 물 아래로 가라앉습니다. 영화에서 착한 유아인은 관객들에게 물수제비의 모습을 마지막까지 보여준거죠. 

 

소리도 없이 악은 일어나고 있다.

악은 생각보다 평범하고 친숙한 모습으로 일상에서 일어나고 있고 그 악의 현장에 나도 함께 참여할 수 있다.

악이 얼마나 평범하고 착한 모습으로 다가올지라도 공존은 한시적이고 결국 물과 기름처럼 분리된다.

홍의정감독이 영화에서 들려주고 싶었던 이야기일 것입니다.

 

오랜만에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수작이었습니다. 


님의 서명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살아가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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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3
Updated at 2020-10-25 09:51:49

순간과 찰나의

슬프디 슬픈 존재인
인간과 인간사는
우주 세계 자연계의
자체이자 일부 ~
세상사의 일부 ~
선따위도 악따위도 아닌 거실지니 ~

지진이나 해일이
화산폭발이
혜성충돌이
독감이나 코로나가
선따위도 악따위도 아니듯 ~





순간과 찰나의

슬프디 슬픈 존재인
인간과 인간사에 이써서
'굳이'
평범한 거시 이따면
'이런' '저런'
광기가
'여차' '저차'
'그' 지극히 평범할 뿐 ~

WR
1
2020-10-25 12:03:51

^^

2
2020-10-25 10:53:12

오~ 잘 읽었습니다

필력 좋으시네요 ^^

WR
1
2020-10-25 12:04:03

갑사합니다~

1
2020-10-25 13:14:33

 영화를 아직 안보았지만, 글을 읽고 보니 이영화를 3번 이상 보고 완전 이해한 것같은 느낌이... 

WR
1
2020-10-25 13:33:44

그런가요? ㅎㅎ

1
2020-10-25 14:03:12

영화의 주제를 구체적인 장면까지 해석해 주시니 의아했던 장면도 달리 보이네요.
다만 영화외적인 측면에서, 농촌(시골)이 이상하고 무서운 곳이라 여겨질까봐 걱정이 되었습니다. 한국 영화 일부를 보면 시골은 폐쇄적이고 미신적이고 부조리하며 악이 배후에서 지배하고 있는 곳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WR
Updated at 2020-10-25 19:01:32

이끼같은 영화는 그런 우려를 할 수 있겠네요.
소라도 없이는 시골을 아름답게 묘사했기 때문에 무서운 곳이라는 이미지는 덜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1
2020-10-25 22:15:57

 제가 이 영화를 보면서 정말 생각을 많이 하게되는 좋은 영화구나라는 생각이 들게 됐던 것들을 아주 명확하게 짚어주셨습니다. 수작이라는 것이 더 명확해지는 순간입니다. 

WR
2020-10-26 00:22:52

메시지가 오버하지도 지나치게 난해하지도 않고 깔끔하게 표현되었습니다.

WR
Updated at 2020-10-26 00: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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