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게] 정성일 평론가 인터뷰 (이창동,봉준호 최근평가 언급)
정성일 영화평론가의 인터뷰 글을 소개합니다.
로만 폴란스키 감독과 그의 영화를 바라보는 입장에 관한 정성일의 답변 및
이창동 감독,
봉준호 감독에 대한 이야기도 인터뷰 자리를 통해 언급을 하였답니다.
https://www.readers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00779
‘‘ 영화는 결국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의 문제다 ’’
평론가 정성일 인터뷰 中.
Roman Polanski
성범죄 혐의로 수십 년간 도피 생활을 한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영화를 소비해야 하느냐, 포기해야 하느냐에 관해 지난한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창작자와 예술을 분리해야 하는 게 맞는가?
(정성일)
나는 예술과 예술가의 사회적 삶은 분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들이 도덕적으로 문제를 저질렀다면 당연히 처벌을 받아야 한다.
그렇다고 그들의 예술을 다 분서갱유(焚書坑儒) 해야 한다?
그렇다면 대부분의 예술이 불타버려야 하지 않을까?
슈베르트는 성매매하다가 매독으로 인한 합병증으로 죽었다.
하지만 그의 음악은 여전히 아름답다.
어느 누구도 성매매하러 다니는 슈베르트를 떠올리며 그의 음악을 듣지 않는다.
도덕과 윤리의 문제는 다르다.
우선 그 둘을 구분하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
책 『필사의 탐독』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이창동 감독의 <오아시스>(2002)에 관한
혹독한(?) 비평문이었다.
<오아시스> 이후 이창동 감독의 영화들이 진일보했다고 생각하는지?
Directed by Lee Chang-dong
<버닝> 이창동 감독
(정성일)
나는 이창동 감독이 훌륭한 감독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한국영화계의 소중한 존재다.
특히 <박하사탕>을 찍은 이후로 그렇다고 생각한다.
다만 <밀양>이나 <시>를 보면서 별로 흥미롭지 않았다.
말하자면 그 영화들에서 영화적인 순간을 발견하지 못했다.
스토리텔링을 뛰어넘는, 영화만이 가능한 어떤 순간이 내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예컨대 <밀양>은 우아한 영화다.
좋은 이야기이고, 이청준 작가의 원작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한 부분들이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이 이 영화의 미덕이지, 내가 말하는 영화적 순간과는 결이 다르다.
말하자면 <밀양>은 너무 투명한 영화다.
‘이걸 보고 이해 못 하는 사람도 있나?’라는 생각이 드니까.
평론가의 입장에서 영화에 질문을 던지거나 개입할 여지가 없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에 반해 <버닝>은 굉장히 불투명한 영화다.
그래서 당황스러웠다.
왜냐하면 그 이전까지 이창동의 영화는 모두 투명한 스토리텔링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버닝>은 모든 게 불투명했다.
투명성에서 불투명성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작동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에 관한 대답을
내가 아직 찾지 못했다.
그래서 <버닝>에 관한 판단은 보류 상태다.
나는 영화를 보자마자 즉각적인 판단을 내려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만족스러운 대답을 얻을 때까지 생각해야 한다.
<버닝>은 다른 사람에게는 이미 상영이 끝났을지 모르지만, 내 머릿속에서는 아직 상영 중인 영화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2019)이 칸영화제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이뤄낸 성취는
어떻게 바라보고 있나?
<기생충> 봉준호 감독
(정성일)
나는 상에 관심이 없다.
그리고 상은 영화를 판단하는 기준이 아니다.
상을 받았다고 해서 영화가 더 좋게 보인다거나,
상을 받지 못했다고 해서 안 좋게 보이거나 하는 일은 적어도 나에겐 없다.
단지 영화가 궁금할 뿐이다.
나는 <기생충>이 봉준호 감독의 최고작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봉준호의 가장 세련된 영화인 건 사실이다.
봉준호를 만나서 “당신의 두 번째 데뷔작 같다”는 말을 했다.
봉준호는 <옥자>까지 계속 같은 얘길 반복했다.
모든 영화의 줄거리가 ‘seek and find’다.
<플란다스의 개>는 잃어버린 개를 찾으러 다니는 영화다.
<살인의 추억>은 살인범을 찾으러 다니는데, 제대로 찾은 건지 알 수 없는 영화다.
<괴물>은 잃어버린 딸을 찾으러 다니는데, 너무 늦게 찾은 영화다.
<마더>는 살인범을 찾으러 다니는데, 제대로 찾아서 문제인 영화다.
<설국열차>는 탈출문을 찾으러 다니는데, 그 문이 바로 옆에 있었던 영화다.
<옥자>는 빼앗긴 옥자를 찾고 다시 돌아오는 영화다.
봉준호에게 물었다.
왜 맨날 같은 얘기를 반복하느냐고.
그러자 그가 “다음 영화는 다를 거예요”라고 하더라.
그래서 “어디 한번 보자”라고 했는데, 진짜 다른 얘기였다. 말하자면 구조는 같은데 패턴이 달랐다.
봉준호의 영화는 항상 절반으로 나뉜다.
아니나 다를까, 영화가 절반이 됐을 때 갑자기 초인종이 울리는 거다.
속으로 ‘찾아올 사람이 없는데?’라고 생각했다.
나는 거기서 문광이 등장할 거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전반부는 너무 지루했는데, 그때부터 영화가 굉장해지더라.
일곱 번째 장편을 만들었는데, 다시 시작한다는 느낌을 주는 감독은 흥미롭다.
그의 다음 영화가 궁금하다.
안타까운 얘기인데, 나는 아직 포스트 봉준호를 발견하지 못했다.
한국 독립영화 진영에서 나름대로 성과를 거두고 있는 감독들이 있는데 어떤가?
표현 그대로 ‘나름대로’다.
홍상수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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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일 평론가의 글은 공감하지 않는 내용임에도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힘이 있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