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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아워 바디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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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26 01:29:25

 

Her Body, Her Self



[스포일러 있음]

<아워 바디> 는 초반부터 젊은 관객이 PTSD 증세를 일으킬 수준의 식사장면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성인이 사회인으로서 제 몫을 하고 있지 못할 경우에 어떤 대우를 받는지 뼈저리게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는데, 작년 개봉작 중 이상근 감독의 <엑시트> 초반부와 함께 쌍벽을 이루는 수준이다. 8년간 공무원을 준비했던 주인공 자영 (최희서) 은 홀로 시험을 포기하고 본가로 잠시 와서 무심하게 밥을 먹고 있다. 자영을 부른 어머니 (김정영) 는 딸이 시험에 합격하리라고 가정한 채 벌써부터 전셋집을 찾아줄 생각에 들떠있다. 마침내 진실이 밝혀지고 자영 어머니는 자영이 먹던 밥그릇을 빼앗아 던져버린다. 이야기가 시작된지 9분만에 벌어진 살얼음판 같은 풍경이다.



현실적인 가족개념, 자녀로서 지켜야 할 의무 등을 배제한 채 철저히 식사 장면에만 집중하자. 그럼 가장 서러운 순간은 무엇일까. 단연 먹던 밥 뺏길 때다. 먹는다는 것은 사람의 몸이 원활히 돌아갈 수 있게 영양분을 보급하는 행위다. 내 몸을 위해 취식도구로 음식을 들어 입 안에 집어넣는 행위는 온전히 스스로를 위하는 시간이다. 밥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는 속담이 괜히 있지 않다는 얘기다. 그런데 생애에서 엄청난 결정을 내렸을 자신을 위한 식사가 가족에게 강제로 방해받고 중단된다. 식사장면보다 앞선 도입부에서 급작스럽게 등장한 자영과 남자친구 경수 (오동민) 의 섹스 장면 역시 그런 점에서 다소 의미심장하다. 용 쓰는 경수와 무표정한 자영의 얼굴이 보여주는 대비는 인간미 있어야 할 의무방어전을 좀 더 심각하게 만든다. 경수는 무표정한 자영을 바라보다가 체위를 바꾸길 요청하고 그녀는 기승위 자세로 섹스를 계속한다. 애인에 대한 배려가 아니라 요구에 맞춰주기만 하는 수동적인 면모만 돋보이던 행위가 끝났을 때, 배역을 맡은 최희서 배우가 짓는 미묘한 표정변화를 통해 자영 입장에서도 의문일 결과가 도출된다. 굉장히 피곤하게 끝마쳤건만 별다른 쾌락이 없어서다. 경수가 더럽게 못해서 그럴 수도 있지만, 자영 스스로 컨트롤 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자기 몸에서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것도 커 보인다. 작품은 섹스와 식사라는 본능적인 장면에서 자영의 몸이 그녀 자신의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파국 그 자체인 식사를 하기 전, 본가에 있는 방에서 자영은 한문과 수학 등의 분야에서 받은 상장들을 보고 있었다. 해당 장면을 토대로 생각해보면 공무원의 꿈은 자영이 혼자서 꿨다기 보다 여러 사람들의 욕망이 얽혀 들어간 형태에 가깝다. 아마도 어머니 입김이 세지 않았을까. 자영 어머니는 결말에서도 공무원에 대한 미련을 남겨두기 때문이다. 자영에게도 나름대로 꿈이 있었겠지만 그녀는 욕망의 주체가 되지 못한다. 섹스에서 제대로 쾌감을 느끼지도 못하고 부모에게 손 벌려서 자취 생활을 하고 있으며, 꿈조차 자기 것이 아니다.



* 이 정도 했으면 입에서 자연스럽게 "I'm queen of the world!" 나와주는게 국룰인데 거기까지 가지 못하는 자영 


그러던 <아워 바디>는 식사 장면에서 자영 어머니를 통해 평범하지만 흥미로운 대사를 하나 들려준다. "너 때문에 내가 죽겠다." 엄밀히 따지면 자영이 시험을 보지 않는 결정을 내렸다고 어머니가 죽어야 할 의무는 없다. 자영 입장에서도 위 발언의 인과관계를 따져봤을 때 정말 누군가 죽는다면 그 대상은 어머니가 될 일이지 그녀는 아니다. 그러나 작품은 어머니로부터 나온 대사일지라도 '너' 와 '내' 가 지닌 경계를 흐릿하게 만든다. 때문에 둘 중 특정 상대방만이 상처받아야 하는 구조를 지닌 대사인데 어머니와 자영이 함께 심적으로 고통받는 상태로 식사가 끝난다. 모녀는 각자 독립된 몸을 갖고 있어도 온전히 자기 생각과 의지대로 다루거나 느끼지 못하는 셈이다. 그런 점에서 극도로 막막한 심정을 가진 채 무작정 본가에서 나온 자영이 조깅하는 사람들, 즉 '러닝 크루' 를 마주하는 샷은 한 줄기 구원처럼 보인다.



'한 줄기' 라는 표현을 쓰기 적합하게 한 열로 나란히 일사불란하게 달리는 사람들이 자영에게 깊은 인상을 준 이유가 뭘까. 사실 자영은 본가에 돌아오기 전에 러닝 크루 일원 중 하나이자, 그녀에게 큰 영향을 주는 인물인 현주 (안지혜) 를 본 적이 있다. 이 때는 그녀가 경수와 섹스를 하고 바로 이별당하긴 했지만 공무원 시험을 포기하기 전이다. 그래서 자영은 땀에 범벅된 현주의 매끈한 육체에 잠시 시선을 빼앗겨도 나름 매진했던 일이 있어서인지 지나가는 우연처럼 대한다. 그러나 현재 자영은 오랜 시간동안 의욕이 고갈된 채 꿈까지 포기하고 더이상 뭘 해야할지 모르는 막막한 상황이다. 누구보다 확신이 필요한 그녀에게 여럿이 행렬을 이뤄 어디론가 달려나가는 풍경이 마치 명확한 목적지를 향해 거침없이 발을 내딛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자영은 달리기 연습을 시작하고, 현주가 속한 러닝 크루에도 참여한다.


<아워 바디> 에 대한 오해가 발생하는 지점은 여기서부터다. 자영이 현주와 가까워지고, 이후 갑작스러운 죽음에 관한 설정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미시마 유키오가 썼던 평론인 <소설가의 휴가> 에서 쓰였던 문장을 연상케 하는 분위기로 진행된다. 해당 평론은 같은 소설가이자 자살로 생을 마감했던 다자이 오사무에 대한 경멸적 비판으로 가득차 있다. 미시마는 다자이의 우울한 성격을 두고 '냉수마찰이나 기계체조나 규칙적인 생활로 절반 정도는 고칠 수 있다' 고 썼다. <아워 바디> 도 그렇게 보인다. 작품은 자영과 러닝 크루가 달리기를 하는 장면을 가장 아름답게 찍고 있다. 더불어 운동을 통해 육체를 바꾸는 행위만이 만사형통이라는 듯 자영의 성격도 점점 밝아진다. 그러나 아워 바디는 사실 <소설가의 휴가> 라기 보다는 마루야마 겐지 작가의 <소설가의 각오> 쪽에 더 가까워 보이는 작품이다. 마루야마 겐지는 해당 저서에서 '다자이 오사무는 스스로를 너무 부정한 나머지 죽었고, 미시마 유키오는 지나치게 긍정한 나머지 죽었다' 고 기발하게 두 인물을 정의한 바 있다. 정말 그렇다. 다자이 오사무를 비웃으며 몸을 단련하는 운동에 힘썼던 미시마 유키오도 자살로 생을 마감하지 않았던가.



이 작품에서 자영이 러닝 크루와 함께하는 서사는 의외로 짧다. 그녀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하며 밝은 미소로 달리기 대회까지 출전하는 등 생각보다 다양한 일들이 있었지만, 이런 사실들을 부각하는데 별 관심이 없다. 운동과 상관없는 대화 장면들에서 스마트폰 속 사진으로 간략하게 다뤄질 뿐이다. 오히려 자영이 육체의 변화만으로 자신을 지나치게 긍정하고 있지는 않은지 지속적인 의문을 제시하는 데 비중을 두고 있다. 이 역할을 담당하는 인물들은 자영 어머니, 그리고 시험을 포기한 자영에게 본인이 다니는 회사로 인턴 자리까지 알아봐주는 친구인 민지 (노수산나) 다.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등장인물 중 가장 오래 알고 지냈을 두 사람과 자영이 주로 불편한 관계로 만나는 점이 꽤 기묘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이들은 오직 운동만으로는 삶에 산재한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자영에게 끊임없이 인지시키는 인물들이다.


 그럴만도 하다. 자영이 운동에 익숙해 지면서 다들 한 번쯤 그녀의 몸으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활력에 매혹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단순히 건강과 젊음 등 사람이 본능적으로 지닌 욕망 외에도 한국사회를 살아가며 숙명처럼 인지되는 현실에서 비롯되는 이유도 있다. 집도, 일도, 미래도 내 것이라고 하기 불확실한 이 사회에서 사람들이 온전하게 소유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의 몸 뿐이다. 그런 몸을 가진 상태에서 자영은 간만에 어머니와 재회한다. 한결 누그러진 모녀 간 대화에서 자영은 몸에 칭찬을 보내고 세월의 흐름을 구실삼아 푸념하는 어머니를 보며 자신만만해 한다. 그녀는 이전보다 건강해졌고 월세도 혼자서 잘 내고 있다. 어머니 그늘로부터 벗어나 온전히 자기 의지대로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 때 어머니의 한마디가 자영의 환상을 깬다. "달리기 할 근성이면 뭐라도 하겠다, 나 같으면." 누군가에게는 사람을 살게 만드는 목적 그 자체가 부가적인 요소에 불과해질 수 있는 것이다. 모녀의 재회는 떨떠름하게 끝나고, 작품은 곧바로 홈 트레이닝을 하다 플랭크에 집중하는 자영을 보여주는 샷으로 넘어간다. 플랭크는 버티는 운동이다. 자영은 운동을 통해 스스로 거듭났다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어머니와 만나면서 운동은 현재 처한 상황을 좀 더 버틸 수 있게 만들어주는 방편에 불과할 수 있음이 드러난다.



이렇게 자영이 운동에서 느끼는 착각은 현주에게서 그 근원을 찾을 수 있다. 현주는 자영에게 달리기를 가르치면서, 뛰다 힘들면 앞서 달리는 사람의 기운을 빨아 먹는다고 생각하며 뒤에 바짝 붙어보라는 말을 한다. 자영은 현주를 뒤따르면서 자신만의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본다. 자영이 바라보는 현주는 소설을 쓰는 출판사 직원이다. 그리고 현주가 속한 러닝 크루 멤버인 태식 (김사권) 과 민호 (최준영) 는 모두 안정적인 직장을 가진 상황에서 운동을 병행하고 있다. 자영은 현주 역시 그들과 대등한 존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작품은 현주가 소설을 쓰고 있다는 점만 사실로 확인시켜 줄 뿐, 그녀가 본인 주장대로 출판사 직원인지는 확인시켜주지 않는다. 오랫동안 함께 달렸던 다른 팀원들 역시 "현주 글 쓰잖아", "현주 누나는 진짜 작가 될 걸" 이라는 말만 할 뿐이다. 중반부에 이르러 자영도 동생인 화영 (이재인) 에게 선물을 주려고 만난 카페에서 우연히 출판사 관계자로 보이는 사람들과 계약 건으로 만나는 현주를 목격한다. 해당 장면에서 현주는 출판사 직원도, 소설가도 아닌 소설가 지망생이라는 분위기를 강하게 풍긴다. 그녀가 짓는 표정을 통해 만남이 성공적이지 못했다는 암시도 전해진다.



현주의 카페 장면은 바로 앞 장면이 건물 계단에서 자영과 다른 아르바이트생들이 몰래 음식을 나눠먹는 장면이라 더 비관적으로 느껴지는 측면이 있다. 인턴직 지원을 놓고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서 자영은 문득 자신이 가장 나이가 많다는 사실을 체감한다. 편집을 통해 두 인물의 처지가 드러나는 장면을 붙여 놓음으로서 <아워 바디>는 현주에게 의문을 갖게 만든다. 혹시 그녀는 러닝 크루의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자존감과 안정성을 유지하려고 출판사에 다닌다며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닐까. 그리고 카페에 있었던 날 이후 현주가 달리기에 불참하는 횟수가 늘어나고, 운동하는 모습도 현실로부터 버티기 위해서라는 인상을 준다. 스포츠 청춘물 같았던 작품이 예상 외 방향으로 흐르는 순간이다. 마주한 현실 앞에서 느꼈던 자괴감과 허무로 인해 몸에 대한 긍정이 더이상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면 그때는 어떻게 되는가. 이 순간 작품은 자영이 현주의 죽음을 목격하는 충격적인 전개를 제시한다.


 

현주의 죽음은 모호하게 처리되어 있다. 달리기를 하던 도중 교통사고를 당했음이 분명한데 직접적으로 보여주지 않는다. 게다가 현주가 사망 직전에 뒤따라오던 자영과 거리를 둔 채 잠시 서서 의미심장한 눈빛을 교환하는 샷이 존재한다. 현주는 스스로에 관해 말하지 않는 성향 탓에 러닝 크루에서는 베일에 싸여 있는 존재다. 드물게 자영과 많은 대화를 나누지만 이는 구현해 보고 싶은 성적 판타지 등 개인적 욕망과 관련된 것들이다. 내밀하지만 현실성있는 대화 소재와는 거리가 있다. 현주가 죽은 후, 자영은 애착을 가지고 뒤를 따랐던 사람의 라이프스타일을 모방하듯 그녀로부터 들었던 성적 판타지를 직장에서 직접 실천하기도 한다. 이로 인해 직장이라는 현실과 불화를 일으킨다. 초반부에서 어머니로 인해 주체적인 삶을 살지 못하다가 현주를 만나며 활력을 얻었던 자영이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중반부에는 현주로 인해 친구 민지가 마련해준 현실에서 온전한 자기 삶을 살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현주는 러닝 크루의 다른 사람들이 아니라 자영과 비슷한 존재였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작품도 현주의 죽음이 마무리된 후 그녀가 속했던 러닝 크루 속 인물들을 이야기에서 퇴장시키고 다시 보여주지 않는다.

 

 

자영이 현주를 만나고 나서 보였던 모든 행동들은 전보다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한 내적인 방황이다. 타인을 통해 조금이라도 더 나아질 수 있을 가능성이 보인다면 필사적으로 그 사람 뒤에 붙으며, 그러니까 작품 속 표현으로는 '기운을 빨아먹으며' 영향 받고자 애쓴다. 이런 자영의 행동은 이해할만하다. 생각해보면 그녀가 과거에 비해 잘 달릴 수 있게 됐다는 이유만으로 먼저 직장에 정착한 민지의 여유로움이나 사회적 입지를 가지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어머니처럼 사회와 상대방에 대해 통찰할 수 있는 연륜을 가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둘 다 시간의 축적이 필요한 일이니까. 러닝 크루도 그렇다. 현주가 사망한 직후, 자영이 민호와 술을 먹다 충동적으로 섹스를 하는 장면이 있다. 벼락같은 거사를 치룬 후 민호의 복근을 어루만지던 자영은 운동의 고됨을 토로하는 그에게 힘든데 왜 하냐고 묻는다. 민호는 예상 외의 답변을 한다. "궁금하더라고 계속. 안에 뭐가 있긴 있는 것 같은데." 그는 온전히 자기 육체에 대한 궁금증으로 운동을 시작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다. 반면 옆에서 듣고 있던 자영은 아무 말이 없다. 버텨오기만 했던 그녀는 최소한 그 장면에서 자신은 무엇때문에 운동하는지를 말하지 않는다. 이후 자영은 함께 뛰었던 달리기 코스를 혼자서 뛰기 시작한다. 버티는 것 외에 삶의 일부가 된 달리기를 왜 하는지 스스로 알지 못한다면 그저 소모적인 활동에 불과하지 않은가.

 


자영은 인턴으로 일하던 회사에서 갈등이 최고조에 이른 후인 후반에 이르러서야 이유를 찾을 용기를 얻는다. 여전히 달리기만 하던 그녀는 뒤에서 쫓아오는 현주를 느낀다. 작품에서 죽긴 했지만, 현주는 자영의 플래시백이나 꿈 속 환상으로 두어번 짤막하게 재등장한다. 환상으로 추정되는 현주가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장면은 다름 아닌 그녀가 죽었던 장소 부근에서다. 이런 연출 때문인지 개봉 당시 김혜리 평론가는 '일부는 유령영화' 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물론 그럴 수 있겠지만, 이 장면은 자영이 여러모로 애착을 느꼈던 인물로부터 도움을 받아 스스로 외면했던 현실을 마주하는 방편에 가깝다. 자영과 (영혼인지 환상인지 모를) 현주는 서로에게 질문한다. "달릴 때 무슨 생각해?" 여기서 방점은 달리기가 아니라 '무슨 생각' 에 맞춰진다. 굳이 답변을 하지 않고 눈빛만 교환할 뿐이지만, 이 질문은 많은 여운을 남긴다. 죽기 직전 뒤돌아서 자영을 바라봤었던 현주가 하고 싶어했던 질문 같아서다. 끊임없이 몸을 움직이는 행위는 살기 위한 기운을 내는데 도움을 줄 수 있지만, 완전히 소모시킬 수도 있다. 자영에게 자기 기운을 빼먹으라고 했던 현주는 어쩌면 완전히 소진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좋은 선택이었을지는 알 수 없지만 현주는 자신의 선택을 했다.

 


그렇다면 자영은? <아워 바디>는 이 순간 자영에게 의견을 구한다. 몸에 관해서 그 누구의 영향도 받지 않은 자신만의 의견을. 자영은 마침내 달리고 있던 몸이 누구도 아닌 그 자신의 소유임을 깨닫는다. 그래서 현주가 죽었던 장소에서 그녀와 똑같은 길을 가지 않고 살아남는다. 무사히 달리기를 끝낸 후, 인턴 일을 하던 회사에서 애써 버티지도 않는다. 그 곳에서 나와서는 묵고 싶은 곳에서 묵고 먹고 싶은 것을 먹으며 하고 싶은 것을 한다. 말할 필요가 없으면 하지 않는다. 마지막, 회사에 관해 묻는 어머니에게 자영은 아무렇지 않게 둘러댄다. 자기 일이니까. 그녀는 더이상 어머니의 몸도, 현주의 몸도 아닌 그 자신의 몸으로 자위를 하며 아래에서부터 차오르는 쾌감을 느낀다. 마침내 '아워 바디' 는 '허 바디' 가 된다.

 


<아워 바디> 는 단순히 달리기로 대표되는 운동으로 몸이 변화한다고 해서 사람이 더 나아진다고 하지 않는다. 몸이 발전한들 마음이 이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않으면 암만 가꿔봐야 무슨 소용이랴. 그런 점에서 자영의 얼굴을 클로즈업하는 마무리는 굉장히 확고해 보인다. 그녀의 몸은 그녀 것이라는 인증이다. 앞으로 자영은 어떤 삶을 살까. 최소한 어디서 무얼 하며 살든 더이상 자기 자신을 잃지는 않을 것 같다. 작품은 그렇게 멀어져 있었던 마음과 몸을 한데 모아 어루만진다. 아 너무 좋은 작품이다.

 

 

p.s.

1) 민호 역의 최준영 배우는 최근 이경미 감독의 넷플릭스 드라마인 <보건교사 안은영> 5회에서 강선 역으로 인상적인 존재감을 남긴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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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
2020-11-26 12:07:39

상세한 리뷰 잘 봤습니다. 포스터, 예고편만 보고 상상했던 그런 운동하는 영화랑 너무 달라서 당황했지만 그만큼 신선해서 좋았어요. 색다른 시선으로 만들어낸 성장영화 같아요.

WR
2021-05-05 18:15:45

감사합니다, 젊은이를위한나라도없다 님. 뭔가 한 가지 이야기로 요약하기에는 상당히 섬세하게 여러 레이어가 겹쳐진 작품이었죠. 뛰는게 장땡이라고 생각하며 운동으로 막막한 상황을 극복했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보시면 많이 당황하셨을 법한 그런 작품이었습니다. 하하.

1
2020-11-26 19:30:32

감상기 잘 읽었습니다. 저도 자영처럼 고시를 준비한건 아니지만 오랜 시간 공시생이었다가 때려친 경험이 있어서 더욱 몰입할수있었던 작품이었습니다. 최근 한국에서 많이 나오는 여성영화들중 상당히 좋은 작품이었는데 상대적으로 묻혀버려서 아쉽다는...

WR
2021-05-05 18:05:18

어이쿠.. 이 댓글들을 왜 이제야 봤는지. 늦게 답글을 남겨 죄송합니다. 개봉 당시만 해도 이쪽 영화에서는 <벌새>를 <기생충>에 맞먹게 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일 때라 <아워 바디> 신경 쓰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죠. 정작 감독과 배우도 단호하게 우리 영화를 여성 영화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가 분위기 싸해진 것도 한 몫 했을 겁니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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