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 콰이어트 플레이스: 파트2 (스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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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1-06-19 10:16:23
오프닝...
텅빈 거리...
1편과 같이 '레건'이 중심인 상황에서는 모든 사운드를 없애고 진행하는 형식은 같네요.
관객의 몰입과 이입을 유도하게 하는 장치로써 아주 멋진 역할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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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에서 사람이 죽음을 예고하는 소리는 고함입니다.
고통의 소리인 것이죠.
숲속의 할아버지, 아버지의 고함, 에블린의 못과 출산의 고함
하지만 침묵 또한 고통입니다.
맨 뒤로 방치된 막내...
막내를 잃을 때 억지로 참아야 했던 침묵은 표현할 수 없는 것에 대한 또다른 고통인 것이죠.
하지만 예외도 있었습니다.
아기가 태어나면서 터졌던 폭죽은 새생명의 축복이기도 하며 괴물들 유인해 가족을 살리기도 합니다.
이야기는 모든 이들에게 결핍(장애)을 갖게 합니다.
엄마는 아기는 물론이고 두 아이를 돌봐야 하면서 이끌어야 하죠.
더군다나 출산 직후이며 한쪽 발도 다쳤죠.
레건은 청각장애를 갖고 있고 마커스는 쫄보이며 덫에 걸려 한쪽 다리를 크게 다쳤습니다.
에멧은 온 가족을 잃어 절망감에 묻혀 살죠.
'에멧'이 등장할 땐 속으로 '저놈이 또 엄한짓 하겠구나... 또 어떤 못된 짓 하려나...' 하는 우려로 응시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에멧~! 1편 아버지처럼 죽지 마라~ 죽지 마라~!! 괜한 희생이라며 죽지 마라~~!!!'
이런 맘으로 봤네요~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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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제발 그 못 좀 어떻게 좀 하지 쫌~~!!!!!!! 다시 나올 땐 나도 모르게 소름~!!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우주선 장난감은 아이들 입장에서는 그냥 막연한 상상의 물건이지만
본작은 그냥 막연함에서나 있을 수 있을 만한 상상이 바로 현실인 것입니다.
1편은 어떻게 해서든 소리를 내지 말아야 하는 그러니까 억압된 상항에 놓이지만
2편은 1편의 상황을 고스란히 이어나가지만 결국은 그 소리를 어떻게 내야 하는지
그러니까 소통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현명한 방식을 장애가 있는 레건을 통해 전달되기에
그 효력은 극대화가 됩니다.
소리 그러니까 소통을 원할히 나눌 수 없다는 게 얼마나 큰 장애이며 고통인가를
현실의 장애를 극복하면서 나타내고 있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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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를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 두 군데 등장하는데
첫 번째는 오프닝 시퀀스에 우주선 장난감이 스치듯 지나가고
두 번째는 다리 끝에 있는 십자가가 나옵니다.
여기서 십자가는 막내 뿐만 아니라 남편 '리'도 떠올리게 하는데
'에블린'이 십자가에 반지를 놓고 가는 것은 어쩌면 남편에 대한 그리움 뿐만 아니라 남편을 대신해
가족을 이끌어야 한다는 책임감에서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싶네요.
'에멧'을 만났을 때도 남편을 언급하면서 '그이는...', '그는...' 이렇게 말하며
남편의 빈자리를 스스로가 아쉬워 하죠.
하지만 이제 남편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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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얼마지 않아 이제는 레건이 가장의 역할을 대신합니다. 아버지의 시계를 차고서 말이죠.
더 나아가야 함을 알고 길을 찾습니다.
희망을 보는 이해력이 생겼으며 때로는 동행을 해야 한다는 것도 깨닫습니다.
보통 소통이라 함은 언어 즉 말이라는 것에서 연결이 되는데 애보트 가족은
레건의 장애를 극복하기 위한 수화가 소통의 전부가 되어버립니다.
말로 전할 수 있는 소통은 흔히들 일상이라 생각하겠지만 잘못 전달되는 소통은
오히려 독이된다는 얘길 합니다.
또한 그 소통 그러니까 그 말에 힘을 얻으려면 행동으로도 옮겨져야 합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자신의 사랑을 아이들의 자립으로 성장할 수 있게 보호도 하며
다양한 것들을 경험케 하고 보청기라는 사랑의 결정체도 제작합니다.
이렇게 1편은 아버지가 만들어 놓은 길을 따라 걷듯 가장의 둘레에 있었던 가족의 이야기라면
2편은 그 끝나버린 가장의 길을 넘어 생소한 그래서 두려운 길을 떠나는 남은 가족의 이야기가 되겠죠.
그래서 보청기는 사랑의 산물이며 그것으로 인해 사랑은 전파되고
고통을 이겨낼 수 있을 희망을 얻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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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는 자신들이 극복해 나가는 그 범위이고 그 범위라는 건 경험이고 또 익숙함이며
이는 안전함을 대신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번은 그 모래를 벗어나야 합니다.
보통 아버지가 길을 만들어 놓지만 이번은 모두 다같이 새 길을 나서야 하죠.
새로운 세상에 대한 발디딤입니다.
가장은 가족을 구하기 위해 희생을 선택했기 때문에 새로운 길에 대한 안내자는 이젠 존재하지 않는 거죠.
그리고 그 우려는 금새 나타납니다.
바로 줄로 연결된 덫에 걸리고 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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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의 없이 그냥 어른들의 말에만 의존하다 보면 부둣가의 여자애처럼
어른들에게 이용만 당하면서 살 수도 있을테지요.
오히려 비장애인 사람들이 장애를 격고 있는 레건 만도 못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냥 그 범위 내에서 보이지 않는 테두리를 긋고 그 안에서만 생존을 위해 근근히 지낸 이들은
자신들의 미래인 아이를 미끼로만 이용할 뿐이고 헤쳐나가야 할 궁리조차도 안 하고 있습니다.
둘러보면 온통 배였음에도 생존의 시도도 하지 못한 그들은
자신이 어떠한 소리를 내면서 이동하고 있는지 조차도 모르는 레건만도 못한
그래서 사랑도 없이 소통하지 못한 그들은 도퇴되어 가는 인간들의 본모습이자
추악한 어른들의 내면입니다.
헤엄을 치지 못 한다는 얘기가 있었고 12척 중에 겨우 2척의 배만 빠져나올 수 있었다는 것만 봐도
궁지에 몰리고 희망도 잊어버린 사람들은 지척에 둔 생존의 길(배)도 찾질 못 했고
자신들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희망(여자 아이)은 미천하게 이용만 당할 뿐이죠.
또한 어쩌면 유일한 희망일 수 있을 레건마저 욕구에 희생될 위험에 빠지기도 합니다.
바로 서로간 소통의 결여인 것이지요.
하지만 '에멧'은 보청기를 지켜냅니다. 바로 사랑을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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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에 도착해 차 한 잔의 여유는 갖는 '에멧'과 '레건'은 위험에 처해있는 엄마의 상황을 전혀 몰랐으니
서둘러야 한다는 느낌 보다는 자신들의 생각이 옳았고 또 그만큼의 목적도 이룰 수 있겠다는 기쁨에 찾은
아주 자그마한 여유로 보였습니다.
보는 관객들이야 미춰버리겠지만 당사자들이야 큰 희망을 앞두고
잠시동안 누리는 사람들과의 공동체 생활인 것이지요.
더군다나 괴물들 걱정도 없으니 그 여유는 얼마나 달았을까요...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가족과 안전을 지키는 데 만전을 기하지 못 하고 그냥 안주해 버렸기 때문에
불행은 언제든 다시금 닥쳐오는 것이지요.
그 괴물도 하늘에서 떨어졌듯 그 섬에 들어온 배 이름에도 'Star'라는 단어가 있죠.
https://variety.com/wp-content/uploads/2021/05/A-Quiet-Place.jpg?w=681&h=383&crop=1
겁많던 쫄보 마커스도 둥지 밖으로 나오는 모험도 가맹하게 됩니다.
엄마도 없고 누나도 아저씨도 없는데 더군다나 아기까지 봐야 하는 상황인데도 말입니다.
호기심...
자기만의 생존방식을 터득하려고 하는 본능인 거죠.
물론 소리를 내서 괴물을 불러들이게도 하고 잠금장치도 제대로 하지 않아 산소가 통하지 않는 곳에
갖히게 되지만 이 또한 실수로 격게 되는 성장통인 것을요.
아버지나 엄마가 격었을 그러한 경험들을 체험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라디오를 내밀며 그 공포를 직접 대면하게 됩니다. 총까지 들고는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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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 스스로의 현실이 힘에 겹다고 해서 아이들을 방치하거나
혹은 어른들의 보살핌에도 불구하고 현명하지 못한 행실로 사회적인 문제가 돼버린 '반딧물이의 묘'는
어른과 아이들간의 애정결핍이 어떠한 결과를 낳는지를 아주 잘 나타내는 작품이라 봅니다.
마냥 범주 안에 갇혀있는 것도 그렇다고 그 범위를 넘어선 방치의 상황 또한 모두가 위험하다고 말합니다.
중요한 건 그 어디에 있느냐가 아니라 보호받든 자립을 하든 그 바탕은 사랑이어야 한다는 거죠.
그래야 사회는 희망이라는 것을 먹고 자라날테니까 말이죠...
독단적 행동에서 오는 불안감은 관객들이나 어른들의 입장 그러니까 관찰자시점에서나 그러하지
아버지가 했던 방식들도 어짜피 경험에서 오는 행동들이기 때문에 관객들이 우려하는 범주 내에서만
동선이 짜여진다면 레건과 마커스는 앞으로 현명한 삶을 이어나가기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을 겁니다.
위험하지만 걱정스럽지만 어쩔 수 없이 경험해야 얻어지는 것들인 것이지요.
물론 거기에 서스펜스는 덤이구요. ㅋㅋ
후반의 세 군데 교차편집에서 두 군데의 교차편집으로 이어지는 부분은 정말 잘 섞었다고 생각이 드네요.
엄마, 마커스와 아기, 레건과 에멧...
그러다가 엄마와 마커스 그리고 아기, 레건과 에멧...
이 교차편집은 어지간히 좋은 교차편집 작품들과 비벼도 될 정도라 여겨집니다.
앗싸리 음악을 아주 빼고 제작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서스펜스를 위한 요소로 쓰이기는 하지만
어쩌면 음악을 아예 뺐으면 좀 더 현장감에 몰입시킬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맨 인 더 다크'나 '버드박스'가 새삼 떠올리게 하는 독특한 작품이고
전편 만큼이나 이야기 또한 멋진 작품이었습니다.
과연 그 괴물은 어떤식으로 생존해 가는 걸까...
1, 2편에서 보듯 괴물들은 외계에서 온듯 하며 소리로 인식하는 생명체입니다.
자, 첫 번째는 그냥 그렇다 치고
두 번째는 본 작품의 가장 큰 핸디캡입니다.
소리...
뭐 인간이야 소리에 익숙해져 살다 묵음으로 살려니 죽을 맛이겠지만
정작 괴물들은 어떤 식으로 생존하는 걸까요?
뭐 물론 이런 것까지 따지고 들면 대부분의 작품들의 요소나 설정에 이의를 제시하는 게 되겠지만
본 작품은 이게 가장 큰 그리고 가장 중요한 설정이기 때문에
괴물은 소리를 통해 무언가를 인식하고 또 생명체를 죽이려듭니다.
소리로 인식을 한다...?!
머리 뚜껑이 통체로 열리면서 소리의 정보를 수집하는 거 같습니다.
여기서 하나 궁금한 거...
그럼 소리가 없을 땐 어떻게 생활하지...?!
그 괴물들은 "끄르르륵~!"하면서 이상한 소리를 내는데 이동할 땐
혹시 음파를 활용해서 장애물을 구별할까...?
박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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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도 그렇고 이번 2편도 그렇고 소리를 내면 미친듯이 달려들다가
소리를 안 내면 천천히 움직이면서 주변을 살핍니다.
그 이상한 괴물소리도 내면서 말이죠.
그럼 혹 음파를 이용한다고 한다면 장애물 만큼이나 인간들도 감지할 수가 있어야 하는데
그리고 그만큼이나 인간들을 사냥하면서 다녔는데 음파를 사용한다면
근처에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는 물체가 보일테고 그럼 즉각 반응을 보여야 하는데...
이상하게도 그렇진 않습니다...!
그러면 그 괴물들은 어떻게 활동하는 걸까요~?
음파로 장애물을 감지하고 자신들이 움직여야 하는 방향에 대한 공간성을 인지해야 하는데
그런 모습은 전혀 보여주지 않죠.
그러면 그 괴물은 벽이나 기둥 등 움직일 때마다 매번 부딪치고 떨어지면서 다녀야 한다는 얘기가 되는데
이 괴물들은 소리를 듣고 공격을 합니다. 아니 공격이기 전에 모여들죠.
인류는 아니 최소한 대륙 정도의 범위의 사람들이 작살이 날 만큼 강력한 존재인 건데
또 그런 망할 존재가 소리만 민감하게 반응을 보이는 괴물들이죠.
1년 이상의 시간도 흘렀죠...
그럼 그동안 정말 그 괴물들을 처리할 방법은 전혀 찾지 못한 건가요...?!
소리에 모여드는 괴물들...
그냥 간단합니다~!
어떤 특정 장소에 수류탄 하다 던져놓고 폭발음에 모여들면 비행기나 헬기로 그냥 폭격하면 됩니다~!
그럼 그 소리에 또 모여들면 또 폭격하고 또 모여들면 또 폭격하고...
3편이 제작되면 이런 맹점을 좀 시원하게 이해시킬 만한 내용이 있었음 좋겠군요~ ㅋㅋ
뭐 안타까운 설정이 계속 거슬려서 주저리 주저리 해봤네요~
관람한 후 떠오르는 대로 급하게 끼적여 봤네요.
아주 훌륭하진 않아도 아무 멋진 작품임에는 틀림이 없어 보입니다.
왜냐면 설정상 걸리는 부분도 작품의 매력으로 어느정도 커버가 되니깐요... ㅋㅋ
근래의 2분기에 본 작품들 중에는 가장 재밌게 봤습니다.
이렇게 개봉이 미뤄졌던 작품들이 서서히 개봉을 하는데
계속해서 많은 작품들이 개봉을 서둘렀으면 좋겠군요.
감사합니다~
님의 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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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계단의 못이 1편에선 주연이였는데
이번 2편에선 카메오더군요....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