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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영화리뷰] <헌트>:  막나가는 사회를 담으려면, 함께 막나가는 것이 하나의 방법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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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1-11-26 02:11:50

<헌트>:  막나가는 사회를 담으려면,  함께 막나가는 것이 하나의 방법일까.  

<헌트>는 올해 초에 큰 기대도 안했다 넷플릭스에서 재밌게 감상했었는데, <오징어 게임>을 보고 여려 생각을 하다가 <헌트> 리뷰 쓰다 말았던 것이 기억나서 마무리해봤습니다. 생존게임물로도 재밌지만, 미국 정치 풍자극으로서 더 재밌게 보았는데, 미국에서 평이 썩 좋지 않은 것을 보면 멀리서 팔짱끼고 보는 입장이라 그런걸지도 모르겠네요. 디테일한 부분은 언급하지 않았지만, 영화의 전반적인 흐름에 대한 스포일러가 담겨있습니다. 반말체 양해부탁드립니다 : )

 



2021년 세계는, 적어도 미국은 변화를 맞이했다. 2017년 도널드 트럼프는 청중을 주목케 하는 탁월 능력을 바탕으로 정치사의 오래되고 확실한 기술인 갈라치기를 효과적으로 사용하여 미국 대통령에 취임했다. 트럼프 현상은 주목받지 못했던 미국 사회의 현실을 보여줬지만, ‘자신의 편’과 ‘적’을 나누는 리더는 공동체가 단합된 힘을 보여주기는커녕 극단으로 치달으며 분열하게 만들었다. 그 결과 트럼프 정부는 뛰어난 의료기술과 막대한 부를 가지고도 코로나19 방역에 완전히 실패하고 말았고, 새로이 들어선 바이든 정부는 보다 ‘전통적인’ 정책들로 돌아왔다. 진저리나는 정치가 돌아왔지만, 지난 4년간의 혼란은 끝났다.


반대로 말해 2020년은, 미국인들에게 갈등과 긴장으로 가득한 끔직한 해였다. 미국은 물론 한국에서도 베스트셀러로 자리한 마이클 센델의 저서 『공정하다는 착각』은 트럼프의 당선 기저에 있었던 사람들의 불만과 그것을 증폭시키는 극단주의, 가짜뉴스 등이 힘을 얻게 되는 원인을 설득력 있게 분석했다. 성공한 자들이 자신의 독점을 합리화하고, 덜 성공자들에게 모욕을 주는 ‘능력주의’ 부작용이 그 대표적 원인이다. 힘들게 살아가는 이들에게, ‘당신은 그럴만해서 그렇게 사는 거야’라는 냉소가 극단주의가 자랄 토양이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마이클 센델의 저서가 출간되기도 전에 미국 사회의 갈등을 탁월하게 담아낸 영화가 존재했다. 흥행과 비평 양쪽 면에서 큰 재미를 보지 못한 B급 영화 〈헌트〉(2020)가 그 주인공이다.1 국내 개봉 시 1만 명도 관람하지 않을 정도로 주목받지 못한 영화지만, 넷플릭스 덕에 어렵지 않게 감상할 수 있었다. 땡큐 넷플릭스. 

 

제법 재밌는 B급 영화 〈헌트〉


앞서 언급한 대로 〈헌트〉는 B급 감성의 영화다. 비교적 적은 제작비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인간 사냥의 사냥감이 되었다는 이제는 클리셰가 되어버린 설정, 코메디와 스릴러가 뒤섞인 연출, 그리고 메이저 영화라면 문제가 될 수 있는 과감한 연출과 대사들까지 대규모 예산으로는 오히려 만들 수 없는 작은 영화만의 매력이 담겨있다. 〈헌트〉를 만든 블룸하우스는 〈파라노말 액티비티〉, 〈더 퍼지〉 등 아이디어 하나로 성공적인 프렌차이즈를 만든 경력이 있는, 이 분야에서 가장 뛰어난 제작사다. 그리고 〈헌트〉는 블롬하우스의 다양한 작품 중에도 내 마음을 사로잡은 영화다.


〈헌트〉가 모두를 위한 영화는 아니다. 폭력성(그렇다고 신체 훼손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고어 영화는 아니다)과 직접적인 사회풍자적 요소의 강도는 총기 난사 사건이 일어난 미국에서 영화의 개봉시기를 한참 미루게 만들 정도였으니 말이다. 사실 이러한 장르영화는 등장인물들을 극한의 상황으로 몰아넣어 긴장감을 형성하고 상영시간 동안 그 텐션을 떨어뜨리지 않는 것이 작품의 존재 목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적나라한 폭력과 함께 시작되는 이 영화는 '인간 사냥? 시간 때우면서 스트레스 풀기로 딱인데'하는 사람을 위한 영화다. 사람을 장난삼아 죽이는 것을 보며 심한 스트레스를 받는 이에게 〈헌트〉를 감상을 굳이 추천하고 싶지는 않다.


반대로 장르 영화의 팬이라면, 〈헌트〉는 오락성만 따지더라도 충분히 추천할만한 영화다. 전개도 시원시원하고, 웃음 포인트들의 타율도 높다. 비록 위대한 액션 영화들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영화를 계속해서 잡고 있을 만한 액션씬들이 이어진다. 이는 상당 부분 크리스탈 역의 베티 길핀에게 빚진 부분이다. 나쁘지도 좋지도 않은 애매한 액션은 속을 알 수 없는 실력자 크리스탈의 존재감으로 인해 무게감을 얻었다. 이제 우리는 크리스탈의 뒤를 쫓으며 갑작스럽게 시작한 인간사냥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따라가면 된다. 영화의 영리함은 크고 작은 반전들을 끊임없이 배치하여 유사한 영화를 여럿 관람한 이들에게도 예상 적중과 실패의 묘미를 계속해서 느끼게 하는 데에 있다. 재밌는 아이디어 하나만 믿고 제작된 영화들이 상영시간 동안 끌고 갈 이야기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망가지곤 하는 것과 달리, 이러한 비틀기 자체가 영화의 주제와 직접적으로 연결되며 끝까지 힘을 잃지 않는다.


설명도 없이 사람 죽이는 거 보고 재밌어하냐고 물어보면 머쩍지만, <헌트>는 도입부 사냥장면부터 연출이 재밌어서 완전 즐겁게 봤다.

 

기대 이상으로 재밌는 풍자 영화 〈헌트〉


〈헌트〉가 가지는 ‘이야기의 재미’는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명확하다는 데에서 기인한다. 일반적인 B급 영화라면 주인공을 극한상황으로 몰아넣은 인간사냥과 관련된 아이디어가 영화의 A이자 Z일 태지만, 〈헌트〉에서는 영화가 풍자하고자 하는 인물들을 모아놓기 위한 장치에 가깝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따로 있기 때문. 제작 당시 영화의 가제가 사실상 ‘공화당 vs 민주당’을 뜻하는 〈레드스테이드vs블루스테이트〉였다고 하니 풍자가 얼마나 직접적인지는 예상이 될 것이다.


이제야 말하는 것이지만, 〈헌트〉에서 사냥의 희생양이 된 인간들은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다. 지구 온난화는 거짓이라는 말도 안 되는 음모론을 믿고, 총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영화에서는 직접 언급되지는 않지만) 트럼프 지지자들, 지식인들이 무식하다고 놀리는 '레드넥'의 전형적인 인물들이다. 무지와 열정이 만나 주위에 해악을 끼치는 그런 사람들 말이다. 그렇기에 자칭 진보적 엘리트들은 사냥을 기획하고 이들을 납치했다. 이들은 사냥감으로 사냥감들을 경멸한다. 이웃을 도우려기 보다는 평가하고, 친절함보다는 무례함을 택한 재수 없는 이들이다. 그렇다, 영화의 등장인물들은 2020년 미국의 아수라장을 만든 주역들이다.


〈헌트〉는 무식한 보수와 싸가지 없는 진보(어라? 남의 나라 이야기 같지가 않다)의 싸움을 보다 못해 서로 총을 들고 싸워보라고 부추기며 비웃는 듯한 영화다. 이러니 총기 사고를 우려하여 미국 개봉일이 밀리고, 영화를 감상한 이들이 불쾌함을 토로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쪽이든, 저쪽이든 자신이 속한 진영이 존재한다고 생각한 관객에게 이 영화의 태도는 유쾌함과 거리가 멀 테니 말이다.


다행스러운 일은 〈헌트〉가 기분 나쁜 냉소에 머물지 않고 한 발짝 더 나아간다는 점이다. 영화는 자신이 비판하는 이들은 그들이 스스로 말하는 것과 달리 보수적 가치나 진보적 가치를 추구하는 이들이 아님을 분명히 밝힌다. 영화에서 때로는 처절하고 때로는 우스꽝스러운 죽음을 맞이하는 이들은 현실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바꾸기 위해 노력한다기보다는, 그럴싸한 말로 자신의 입장을 합리화하며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사는 가짜들이다. 보수주의자라는 가면 뒤에는 학습하고 변화하여 현실을 바꾸느니 가만히 방에 앉아 음모론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고 위안을 찾는 무지하고 게으른 고집불통들이, 진보주의자라는 가면 뒤에는 자신들이 누리는 호사를 합리화하기 위해 현실에 존재하는 다른 이들을 무시하고 자신들만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스노비즘에 빠진 엘리트들이 있다. 영화의 이들은 서로가 상대의 그릇된 확신을 강화시켜 주며 그들이 안주한 작은 세계가 진짜 세계인 것처럼 착각하게 만들어주는 관계에 있음을 보여준다.


멍청이와 헛똑똑이들로 가득한 영화에서 눈앞에 있는 현실을 바라보고, 스스로 판단하는 사람은 크리스탈뿐이다. 전진 군인인 만큼 진정한 보수를 상징하는 인물일까? 영화 내내 보수를 상징하는 인물들의 몰지각함과 거리를 두고, 스놉들과 달리 화려하지 않지만 차곡차곡 쌓은 교양을 바탕으로 이상을 말하는 만큼 진정한 진보주의자일까? 영화에서 알 수 있는 것은 그가 현실주의자라는 점이다. 그래서 그는 문제를 해결하고 해피엔딩으로 이끌 능력을 지닌 인물이고, 영화에 등장하는 위선자들보다 훨씬 위험한 인물이기도 하다. 영화는 현실을 똑바로 바라보는 이가 세상과 동떨어진 이들이 만든 아수라장을 뚫고 나오며 막을 내린다.

 

대사도 많지 않은 크리스탈의 카리스마가 영화를 이끌고 간다.

 


 

마이클 센델은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사회 불평등이 심화되고, 그로 인한 문제가 도처에 자리하여 분노가 부글대고 있음에도 성장을 중요시하는 보수 정치인들은 물론 오바마 전 대통령 등 진보 정치인들마저 사회 문제를 직시하지 못하고, 능력이 있으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는 말만을 반복하다가 2016년 트럼프의 당선이나 브렉시트 같은 사건을 일으켰다고 진단했다. 마이클 센델이 능력 있는 사람을 적재적소에서 능력을 펼쳐야 한다는 능력주의의 근본 원리마저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성공한 이들이 자신의 능력이 온전히 자신의 노력에 의한 것임이 아님을 인정해야 함을, 재능을 타고나는 것도, 그것을 성장시킬 조건을 갖게 되는 것도 모두 자신의 통제 범위 밖에 있음을 인정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공동체를 생각해야 함을 역설할 뿐이다.


우리가 속한 공동체를 번영시키기 위해서(최소한 몰락시키지 않기 위해서)는 함께 살아가는 이들의 현실을 바라보는 것에서 시작해야 할 것이다. 2008년 금융위기를 예견한 것으로 유명한 나심 탈레브는 『블랙스완』에서 검은백조처럼 예상하기 힘들지만 존재하는 것들이 큰 사건을 일으킴을 강조했다. 이론과 선입견의 틀에 세상을 바라보고 맞추다 보면, 눈앞에 존재하는 명백한 현실도 놓치게 되고 놓친 것들이 쌓여 걷잡을 수 파도를 일으키기 마련이다. 앞으로 미국 사회가 어느 방향으로 나아갈지는 모르지만, 양극단의 목소리가 어느 때 보다 높았던 2020년을 담은 우화로서 〈헌트〉는 독특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




〈헌트〉리뷰: https://blog.naver.com/backmogun/222577963633

『공정하다는 착각』 리뷰: https://blog.naver.com/backmogun/222390848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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