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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2021년 하반기 개봉작 베스트 10+1/3 을 생각해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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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2-01-07 00:07:27

이 리스트는 2021년 12월 31일에 만들었습니다. 12월 개봉작을 당해 말고 그 다음해에 꼽아야 맞지 않나 싶어 2021년 6월부터 11월 개봉 / 공개작 중 좋다고 생각한 작품들을 꼽았습니다. 

 

그런데 2022년 1월 4일에 리스트 중 하나를 급작스럽게 고쳐 5월 말에 개봉한 작품을 한 편 넣어 보았습니다. 사실 그 작품 전체를 좋아하는 것도 아닙니다. 1/3 정도만 좋아하는데, 억지로라도 기준에 맞추려 했습니다만 그 작품의 1/3이 더 잘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고 마음이 끌리는 것이 어쩔 수가 없더군요.

 

읽으시다가 "아니 왜 그 영화가 없어!?" 라고 분노하실 분들이 계실텐데, 그건 그 작품을 좋게 보지 않았던 이유도 있지만 사실 못 봐서 안 넣었을 가능성이 훨씬 크니까 그러려니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작품에 대한 코멘트는 반말로 썼음을 알립니다. 개봉일 순이고 따로 순위는 없습니다. 

 

 

 

루카 

(Luca)

- 엔리코 카사로사 (2021년 6월 17일 개봉)


유구한 인종차별 역사를 자랑하지만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언제든 올바른 척 할 수 있는 디즈니가 인종과 소수자를 비롯한 정치적 올바름의 개념을 작품에 융합하려는 시도가 제법 많아졌다. 그러나 해당 개념으로 기존 캐릭터 성향을 바꾸거나 프랜차이즈에서 조그맣게 존재를 드러내는 정도로 적용했을 뿐 무언가 새로운 컨텐츠를 창작하려는 의지는 없어서인지 한동안 그저 그런 결과물만 생산하곤 했다. <루카>는 디즈니 / 픽사가 비로소 자신들만의 테이스트로 소수자 이야기를 완성했다고 볼 수 있다. 처음엔 엔니오 모리꼬네에게 헌정하려는 의미로 제작하려 했다지만 (엔리코 카사로사 감독은 엔니오 모리꼬네에게 음악을 부탁하려 했지만 그의 타계로 성사되지 못했고, 결국 개인적인 헌정작이 됐다.) 최종 결과물은 작품 속 표현대로 '물 밑에 숨어살던 존재들로 하여금 물 밖으로 나오게 할 생각' 을 조금이나마 심어주는 멋진 이야기가 됐다. 흔히 이름값 있는 존재들이 경력을 확장하거나 갱신하면서 규모도 점점 메머드급이 되어 간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언제든 소박한 이야기로도 돌아갈 수 있는 디즈니와 픽사의 유연함도 돋보인다.

 



액션히어로 

- 이진호 (2021년 7월 21일 개봉)


<액션히어로> 는 아버지 뻘에서나 좋아할 법한 쇼 브라더스 감성을 무리하게 흉내내지 않는다. 작품에는 감독 제 나이대에 맞을 골든 하베스트를 비롯해 그 시절 홍콩영화들에 대한 신명나는 오마주로 가득차 있다. (물론 주인공이 빡빡머리라서 저거 쇼 브라더스 시절 유가휘 흉내내는게 아니냐고 생각할 수는 있겠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홍콩영화 감성이란 호모섹슈얼에 가깝게 보이는 남자 캐릭터들 간의 찐득한 우정이라기 보다, 어떤 비극이라도 쾌활하게 감당하며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라도 해내는 특유의 저돌성에 방점이 찍혀있다. 어른들이 만든 추악한 사회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는 (대)학교 속 부패한 자들 손아귀 아래 젊은이들은 뛰고 맞고 쓰러지지만 결코 지치지 않는다. 이런 유쾌함과 후반부에서 쏟아져 나오는 역동적인 액션 연출도 좋다. 쇼 브라더스 작품들처럼 비평적으로 진지하게 다뤄지지는 못했을지라도, 스턴트와 출연배우들이 수십개의 뼈를 부러뜨려 가며 이뤄낸 짜임새 있는 액션 연출로 관객들의 오락적 재미를 책임졌던 골든 하베스트의 후예라고 칭할만하다.

 

 


잘리카투 

(ജെല്ലിക്കെട്ട്)

- 리조 조세 펠리세리 (2021년 8월 5일 개봉)


소 영화의 막강한 경쟁자인 <퍼스트 카우>가 있다 보니 잠시 고민을 해야했다. 그러나 이 고민은 남들이 다 <퍼스트 카우> 를 베스트로 꼽고 있으니 나도 대세를 따라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었을 뿐 나는 이 쪽 소에 끌린 만큼 마음을 따라가기로 했다. 마지막 결말 장면으로 인도사회 구성원들 문제를 인간 본성으로 비겁하게 덮어씌운다는 의구심도 들지만, 그런 막무가내적 면모가 <잘리카투>의 매력이다. 본격 사람보다 소가 더 지혜로운 작품. 도축용 물소 추격이란 소재와 소를 비롯한 종교적 상징들을 이용해 인간이 종교를 면피 삼아 표출하는 천태만상 욕망세상 사는 것도 가지가지를 추악하고 적나라하게 그려낸다. 후반부로 갈수록 통제불능이 되는 작품 꼬락서니가 일품이며, 집단적 움직임을 잘 담아낸 촬영과 더불어 무시무시한 음향 또한 압권이다. 정체불명의 구음으로 주문같은 스코어를 만들어낸 프라샨트 필라이와 사운드 디자인 팀이 만든 음향효과가 아수라장의 충격을 배가시키며 태고적 광기의 현장으로 데려가는 힘을 발휘한다. 거대한 시네마스코프 관에서 봤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안타깝게도 극장가는 이 작품에게 큰 상영관을 허용하지 않았다. 

 



올드

(Old)

- M. 나이트 샤말란 (2021년 8월 18일 개봉)


그래픽 노블 <샌드캐슬>을 영화화한 <올드>는 과거보다 한층 더 말초적이고 크리피한 묘사에 힘 쓰는 샤말란의 요즘 행보에 부응한다. 노화를 촉진시키는 해변에서 무력해진 사람들이 느끼는 공포를 A4 용지에 손가락 베이는 듯한 자극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올드> 의 자극적인 서스펜스는 장르에 대한 기대 부응이라기 보다 운명에 이르기 위한 일종의 과정으로 기능한다. 누구보다 운명과 삶을 사랑하고 이를 영화적으로 잘 표현하는 샤말란이다. 운수없게 늙어가는 상황에 처해도 어차피 겪어야 할 일이라면, 흘러가는 이 시간을 어떻게 써야하는지에 관해 반추하게 만든다. 아침에 네 발, 점심에 두 발, 저녁엔 세 발로 걷는게 무엇이냐는 스핑크스의 질문과도 같지 않냐며 뻔하다면 뻔히 여길 수 있겠다. 그러나 자기 영화를 감상하는 경험이 곧 시간에 대한 낭비로 받아들여지지 않게 하려는 연출적인 고군분투 덕에 뻔한 서스펜스 공포를 넘어선다. 하루를 살아낸다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하루를 죽어가는 것과 같다. 우리는 잘 살거나, 혹은 잘 죽어가고 있는가? 이 장르에서 이런 사유를 하게 만드는 연출자는 샤말란이 독보적이다.

 



언더그라운드 

- 김정근 (2021년 8월 19일 개봉)


김정근 감독의 다큐멘터리 <언더그라운드> 는 올 해 본 한국영화들 중 심미적으로 만족스럽게 촬영된 작품이다. 프레임 중앙 끝에서부터 한무리 사람들이 다가오면서 이들이 부산 지하철을 움직이고 있음을 보여준다. 첫 출근만큼은 모두 평등한 하나의 덩어리 같았던 이들은 작품 속에서 수직과 수평 공간 구분을 통해 정규직과 비정규직이라는 사회적 계급으로 나뉜다. 그리고 음악이나 나레이션 없이 엄격히 준수된 구도 속에 촬영된 현 지하철 근로자들, 모두 같다는 듯 러프하게 찍힌 공고 학생들의 모습을 교차하며 사회에 의해 사람들 마음 속에 심어진 계급 의식을 논하던 이야기는 어느 순간 무인자동화 아래 모두 무의미해질 수 있음을 암시한다. 노동자들에 대한 헌정으로 시작해서 사회적 사안으로 빌드업 하는 과정이 빈틈없다. <언더그라운드> 는 비정규와 정규에 대한 화두가 개인이 아니라 사회적 차원에서 논의해야 한다는 결론으로 인도한다. 부산 시민들이거나, 지하철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면 필히 봐야할 다큐. 그러나 관객동원 수가 1700명이 채 안 돼서 안타깝다. 다들 자기네들이 필히 봐야 할 작품은 안 보고 뭣들 하는지 모르겠다.

 



말리그넌트

(Malignant)

- 제임스 완 (2021년 9월 15일 개봉)


제임스 완 감독은 <말리그넌트>야말로 본인 영화인생에서 가장 야심찬 작업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유명 프랜차이즈와 슈퍼히어로물을 성공적으로 연출한 시점에 개또라이 쌈마이 같은 영화 찍을 생각 했으니 이를 야심으로 표현한 것일까? 그러나 <말리그넌트> 는 제임스 완의 감독 경력을 활짝 피게 해 준 공포 장르가 무서움을 유지하면서 다른 장르와 어디까지 교배가 가능한지를 실험했다는 점에서 진정 '야심' 이라 할만하다. 작품은 70년대 지알로 / 수사물의 첫인상을 주며 역시나 공포영화의 활로는 복고 재현밖에 없는지를 생각하게 만들더니, 곧 80년대 수위 높은 슬래셔물로 돌변했다가 크로넨버그 식 신체변형과 브라이언 드 팔마의 <시스터즈> 감성을 뒤섞으며 새로운 형태의 슈퍼히어로물 영역까지 넘본다. 동시에 올 해 개봉한 영화들 중 손에 꼽을만한 훌륭한 액션 시퀀스를 보유한 작품도 <말리그넌트> 다. 남에게 추천하기엔 심히 두렵다. 그래도 주변에 이 작품을 보지 못했거나, 매력을 느끼지 못한 사람이 있다면 난 그 분을 좀 안타깝게 생각하고 싶다. 장르의 바다 위를 화려하게 활공하는 모습을 보며 극장에서 열광할 수 밖에 없었던 골 때리는 작품이다.

 



할로윈 킬즈 

(Halloween Kills)

- 데이빗 고든 그린 (2021년 10월 27일 개봉)


중반부까지 감탄했다가 후반부 돌입하면서 완전히 죽을 쒔던 2018년 리부트 버전 <할로윈> 의 파멸적 행보 때문일까. 데이빗 고든 그린 감독이 또 연출을 맡은 속편 <할로윈 킬즈>를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마침내 개봉한 이 작품은, 피곤에 쩔어든 몸으로 얼마 없는 상영관을 겨우겨우 찾아 한밤중에 관람하고 막차를 타기 위해 지하철역까지 전속력으로 뛰어갔던 보람이 있었을 정도로 한 직장인의 뒷통수를 마이클 마이어스의 거대한 손으로 수십차례 때리며 예상을 빗나가는 여정을 전시했다. 거의 슬래셔 호러계의 <스타워즈 에피소드 8: 라스트 제다이>, <에반게리온: 파> 라고 해도 되겠다. 전자의 제목을 보고 몸서리 치실 분들이 계실텐데 정말 그렇다. 간만에 보는 마이클 마이어스의 압도적이고 강력한 공포스러움, 드물게 전면에 나선 해든필드 마을 주민들이 표출하는 광기가 합쳐지며 그들의 명을 재촉하는 풍경은 뭐랄까. 살인마 하나로는 구현 못 할 코스믹 공포의 단계에 이른다. 어차피 존 카펜터 감독이 연출한 기념비적인 78년 버전을 뛰어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본다. 그러니 욕 좀 먹더라도 방향을 확 틀어버리는 쪽이 낫다. 이 작품은 사람들이 모두 건너왔음을 확인한 후 카펜터의 명성에 기댈 수 있을 연결다리를 불태워 버렸다. 경악스러운 엔딩까지 보고 나면 3편으로 이어질 연결다리 역할만 할 줄 알았던 <할로윈 킬즈> 가 <할로윈> 리부트 연작에서 잊을 수 없는 위치를 점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러브 어페어: 우리가 말하는 것, 우리가 하는 것 

(Les Choses Qu'on Dit, Les Choses Qu'on Fait)

- 엠마뉴엘 무레 (2021년 11월 11일 개봉)


<러브 어페어: 우리가 말하는 것, 우리가 하는 것> 은 불란서 종자들의 재수없는 쿨한 척이 어느 단계까지 유지되는지 본격적으로 시험하는 작품이다. 보는 동안 아주 기가 막혔다. 할 게 있고 안 할 게 있지. 불륜까지 '나는 너를 이해할 수 없다. 그러니 우리는 토론한다' 식 태도로 논하는게 말이 되나 싶더라고. 그러나 작품은 자칫하면 자극적으로 소비될 수 있을 소재를 프랑스식 연애담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것도 모자라 신비로운 고전민담처럼 승화시키는 유려한 연출을 선보인다. 사람과 사랑이 얽히고 설키는 와중에 사랑과 본성이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해야 하는지에 관한 불가능에 가까운 질문들이 사건으로 형상화된다. 그리고 재수없는 쿨함을 넘어 마침내 ‘슈퍼 쿨'의 경지에 오른 인물들이 여지껏 염병을 떨고도 멀쩡히 제자리로 돌아와 다시 사랑하며 살 수 있는 이유를 납득시킨다. 이 점은 아람 하차투리안의 발레 <가야네>를 비롯해 거의 음악영화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탁월한 사운드트랙 선곡 솜씨 덕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세상에서 가장 재밌는게 사람구경이라는 점을 작품이 알고 있어서일지도 모른다. 적나라하면서 재밌는 사랑이야기다.

 



틱, 틱... 붐! 

(Tick, Tick... Boom!)

- 린 마누엘 미란다 (2021년 11월 12일 개봉 / 11월 19일 넷플릭스 공개)


스티븐 손드하임이 작년 12월에 타계했기 때문에 <틱, 틱... 붐!>을 골랐을 수도 있다. 하지만 부차적일 수 있어도 주된 이유는 아니다. 린 마누엘 미란다는 본인이 원작자고 영화 버전 제작자로 참여했던 존 추 감독의 <인 더 하이츠> 보다 영화감독으로서 처음 연출한 이 작품에 훨씬 공을 들인 것 같다. 그레타 거윅 감독이 <작은 아씨들>을 영화화하면서 각색했던 방향처럼 린 마누엘 미란다의 <틱, 틱... 붐!> 역시 자전적 이야기였더라도 티 내지는 않았던 원작과 달리 직접적으로 원작자이자 뮤지컬 극작가인 조나단 라슨의 전기물임을 직접적으로 티내며 원작과 구분짓는다. 정식 무대에 올리기 직전 안타깝게 사망했던 조나단 라슨이 생전에 워크샵 무대에서 모놀로그 뮤지컬로 공연했던 형식, 그의 사후에 친구들이 3인극으로 대신 각색한 정식 공연 방식을 뒤섞은 이야기 형태는 꿈과 현실 사이 간극, 주인공의 비애와 좌절을 효과적으로 부각한다. 이는 어떻게 보면 생전의 조나단에게 가해졌거나 영화 속의 조나단에게 가해졌던 세간의 평가인 '브로드웨이에 올리기에는 지나치게 예술적' 이란 평을 훌륭하게 불식시키는 증명이다. <틱, 틱... 붐!> 은 앤드류 가필드의 사실상 초월적인 원맨쇼까지 더하며 조나단 라슨을 향한 훌륭한 헌정사로 완성되었다.

 



파워 오브 도그 

(The Power Of The Dog)

- 제인 캠피온 (2021년 11월 17일 개봉 / 12월 1일 넷플릭스 공개)


중견감독 제인 캠피온이 신작 <파워 오브 도그> 로 돌아오기까지 12년이나 걸린 이유는 빈틈없는 성 같은 스타일을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흔히들 치밀하게 설계된 형태에서 슬그머니 구멍 한두개 빼 놓는 솜씨야말로 더 높은 경지라고들 하며 이에 동의한다. 그러나 모든 플롯과 설정, 샷과 샷이 톱니처럼 철저하게 맞물리며 연결하는 능력 또한 아무나 하기 힘들다. 게다가 치밀한 설계가 장쾌한 서부 스펙터클이 아니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로부터 발생하는 긴장감으로부터 발생한다는 점에서 <파워 오브 도그>는 신선함까지 준다. <동방불패>의 임아행이 그랬던가. 강호에 사람이 있으면 불화가 있고 불화가 있으면 강호도 있으니 결국 사람이 있으면 그 곳이 곧 강호라고. 제인 캠피온 역시 서부의 풍경보다는 고딕스러운 저택 내부 풍경 비중을 더 크게 다뤄내면서 외친다. 서부에 사람이 있으면 불화가 있고 불화가 있으면 서부도 있으니 결국 사람이 있는 그 곳이 곧 서부라고 말이다. 개척의 이면에 가려진 약자, 혹은 선의를 가진 사람들에 대한 학살과 억압. 그리고 억압을 주도한 존재들이 자신의 내면마저 나약함으로 인식하고 들키지 않으려는 전전긍긍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탁월한 서부 스릴러다.


+

 

 


인트로덕션 ......의 3부

- 홍상수 (2021년 5월 27일 개봉 / 본편 34분 ~ 1시간 5분 15초)


하반기에 좋게 봤던 영화인만큼 이 자리에 당연히 홍상수 감독의 <당신얼굴 앞에서> 가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올 해 개봉했던 감독의 전작인 <인트로덕션>은 상반기 리스트를 생각할 때도 제외였다. 요즘 시대에 반항하는지 DV캠으로 촬영됐는데 카메라 잡은 사람이 감독인 홍상수인지라 그나마 의도가 있겠거니 하지, 다른 연출자 작품이었으면 뭉개지는 픽셀에 70분도 안 되면서 관람가격은 다른 극장개봉작과 똑같이 받아먹는 짓에 '진짜 쳐 돌았나?' 라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사실 감독이 홍상수임을 알고도 여전히 양심없다는 생각은 든다. 도그마 '95 의 한국대표는 변혁 말고 자신이 했어야 한다며 뒤늦은 몽니를 부리는걸까.


그런데 시간이 지나 되돌아보니 <당신얼굴 앞에서> 보다 <인트로덕션>..의 전체는 아니고, 3부가 참 기억에 오래 남았다. 동일한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이 등장하는 세 이야기로 구성됐으며 1, 2부를 보며 구축된 정서 덕에 3부가 돋보였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내게 1, 2부는 존재 자체가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매력이 없었다. 마지막 이야기만이 수많은 감정들이 소용돌이치는 총합체로서 존재감을 드러냈다. 주인공 영호에게 연기의 본질에 관해 명언을 남기는 현자같은 외모의 대배우 역으로 등장하지만 현실에선 대마초 전과자 기주봉 선생은 존재 자체만으로 모순같으며, 유사 아버지 같은 그와 영호의 어머니 같은 부모들은 나름 심각한 한 청년의 고뇌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결국 스스로 마주하는 방법 뿐. 영호가 자살인지 맞서는건지 모를 정도로 갑작스럽게 겨울바다에 뛰어드는 샷과 묵묵하게 포옹과 체온을 나누는 방식으로 연대하는 결말은 '김민희 유니버스' 시작 후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 <풀잎들>을 제외하고 오랫동안 영화와 현실을 분리해내지 못했던 홍상수 감독이 현실적 맥락과 잡념을 지우고 투명하게 영화적 상황을 보여준 순간이라고 할만하다. <인트로덕션>이 3부만 떼어내서 단편영화로 공개되었다면 더 좋았을지도 모르겠다.

 

 

여튼 이렇게 꼽아보았습니다. DP 회원 분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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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
2022-01-07 07:44:17

이 리스트 영화는 한편도 못봤네요~
챙겨봐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WR
2022-01-07 14:43:11

아니.. 아직 한 편도 안 보셨다니. 어여 챙겨보십시오. <루카>부터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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