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2021 vs 1961) (스포 많습니다)
얼마전에 스티븐 스필버그의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를 보고, 1961년 로버트 와이즈의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를 다시 보았습니다.
두 영화를 비교하니, 왜 스필버그가 이 영화를 다시 찍었는지 이해가 되더군요. 결론적으로 말하면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라는 영화로 보면 2021년작이 1961년작에 비해 압도적으로 훌륭합니다.
일단 이 영화는 스필버그가 단순히 똑같이 찍은게 아닙니다. 조금씩 그 설정을 바꾸어놓았고, 그 설정이 이 영화의 개연성을 더욱 풍성하게 해주고 있습니다.
일단 처음 시작을 보죠. 처음 시작에서 1961년작은 아이들이 노는 장소에서 찍었습니다만, 2021년작은 재개발이 이루어지고 있는 장소를 위주로 찍었습니다. 그리고 이전작에서는 제트파와 샤크파가 단순히 구역다툼을 한다는 설정이지만, 2021년작은 미국인 아이들인 제트파의 구역이 재개발로 사라질 위기에 처하자, 푸에르토리코인들이 사는 지역으로 제트파가 침공을 하고 (1961년작에는 없었던, 푸에르토리코 국기를 제트파애들이 페인트로 더럽히는 장면이 있습니다), 이에 대해 샤크파가 대처하는 양식으로 바꾸었습니다.
이야기를 더 진행하기 전에, 푸에르토리코라는 곳에 대해 생각해보았습니다. 푸에르토리코는 미국의 행정구역이긴 하지만 자치주이죠. 그래서 사실 푸에르토리코인들도 미국 시민권이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의 주가 아니기 때문에, 이들은 푸에르토리코에 살면 미국 대통령 선거를 할 권리가 없습니다. 물론 샤크파들은 뉴욕에 살고 있으니 성인이 되면 선거권을 갖게 되겠지만, 본토 미국인들 입장에서 본다면, 이들은 이등 시민 정도로 볼 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치 일제 식민지 시대에 일본인이 조선인을 보는 시각이 이런거 아니었을까요?
1961년작과의 큰 차이점 하나는 2021년작의 제트파 애들은 직업이 없는 갱들이지만, 샤크파 애들은 직업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샤크파의 리더 베르나르도만 해도 1961년작에서는 그냥 백수로 나오지만, 2021년작에서는 권투 선수입니다. 베르나르도를 흠모하고, 마리아를 사랑하는 치노의 경우도 2021년작에서는 야간학교를 다니면서 계산기 수리를 배우고 있다고 나오지요. 그러면서 경찰이 제트파 애들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너희 구역은 재개발 되어 멋진 아파트가 들어서게 될 거다. 그렇게 되면 너희들은 저 푸에르토리코 경비원들에게 쫓겨나게 되겠지" 이 말은 어찌보면 백인들이 가지고 있었던 근원적인 두려움을 건드리는 말입니다. 언젠가는 저 푸에르토리코인들이 몰려와서 자신들 보다 훨씬 더 많이 아이들을 낳아서 결국 자기들이 소수파가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1961년작에서 닥 아저씨의 가게에서 벌어졌던 제트파와 샤크파의 전쟁회의 후 경찰이 들어와 샤크파를 쫓아내던 장면을 2021년작에서는 앞으로 당겨놨습니다. 그리고 베르나르도를 위시한 샤크파가 물러서면서 1961년작에서 휘파람으로 불던 미국찬가가 2021년작에서는 목청좋게 부르는 푸에르토리코의 노래인 La Borinquena로 바꾸어놓았지요. 그 노래가 끝나자 푸에르토리코인들은 박수를 보냅니다. 당연하겠죠. 일제시대 동경 한복판에서 조선인 청년이 애국가를 부르면 그 노래를 들은 조선인들이 박수를 치지 않았겠습니까.
https://youtu.be/TTFPsBT27hg
2021년 영화에서 가장 큰 특징은 1961년 영화에서는 거의 없었던 스페인어를 전면에 끌어올린 것입니다. 게다가 이 스페인어는 번역을 하지 않죠. 다시 말해 스페인어를 모르면 이 영화 대사의 많은 부분을 듣지 못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건 이 영화의 장점입니다. 즉 제트파와 샤크파는 서로간에 소통을 거부합니다. 제트파는 샤크파의 스페인어를 듣지 않으려 하고 (샤크파 애들이 스페인어를 외칠때 마다 제트파는 영어로 말하라고 소리칩니다), 샤크파는 제트파에게 자신의 말을 들려주려 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유일한 예외가 바로 토니입니다. 토니는 마리아에게 자기 진심을 말하기 위해 스페인어를 배우려고 노력합니다. 그리고 이 스페인어를 가르쳐주는 사람이 1961년작에서는 등장하지 않았던 인물, 바로 푸에르토리코 출신의 여자인 발렌티나입니다.
발렌티나는 1961년작의 가게 주인이었던 닥의 아내로 설정되어 있습니다. 발렌티나는 원래 푸에르토리코 출신이지만 미국인인 닥과 결혼해서 미국인처럼 살아가지요. 하지만 그 결과 제트파에서는 푸에르토리코 아줌마 취급을 받고, 샤크파에서는 배신자 취급을 받습니다. 양쪽의 입장을 유일하게 이해하며 토니를 돌봐주는 발렌티나의 존재는 이 영화에서 이전의 닥 아저씨의 역할에 비해 엄청나게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발렌티나 역을 맡은 리타 모레노는 1961년작에서는 아니타 역을 맡았습니다. 그녀는 1961년작과 2021년작에 다 같이 등장하면서 이 영화에 하나의 시선을 가지도록 합니다. 바로 그건 현자의 시선이고, 그녀는 이 작품에서 유일하게 과거와 현재를 다 바라볼 수 있는 인물입니다. 그래서 그녀는 제트파와 샤크파의 대결 직전 샷에서도 등장하여 불안한 눈초리로 밖을 내다봅니다. 다른 등장인물들에게는 없는 불안의 샷. 다른 등장인물들이 제각각의 희망과 소망을 노래할 때, 그녀만이 유일하게 미래의 비극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토니가 베르나르도를 죽였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녀는 혼자서 가게의 셔터를 닫습니다.
또 하나의 큰 차이점은 토니의 친구 리프입니다. 원래 이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가 <로미오와 줄리엣>을 차용한 작품이기에, 리프 역시 <로미오와 줄리엣>에서의 머큐쇼와 같은 역할을 합니다. 토니의 친구이자, 토니가 베르나르도를 죽이게끔 만드는 동기를 부여하죠. 그래서 1961년작의 리프는 머큐쇼와 같이 쾌활합니다. 농담도 잘하죠. 반면에 2021년의 리프는 진중합니다. 머큐쇼가 가지고 있는 유머러스함을 제거해버렸죠. (사실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머큐쇼가 진중해지는 때는 딱 한 번 죽기 직전입니다. 저는 이 작품에서 머큐쇼가 진중해지는게 좀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했었지요) 그 증거가 1961년작의 우스꽝스러운 노래 'Gee, Officer Krupke'입니다. 1961년작에서는 이 노래를 부르는게 리프였지요. 하지만 2021년작에서는 이 우스꽝스러운 노래를 리프가 부르지 않고 스노우보이에게 부르게 합니다. 리프의 카리스마를 건드리고 싶지 않아서겠지요.
https://youtu.be/j7TT4jnnWys
무엇보다도 2021년작에서 총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1961년작에서도 토니는 치노가 쏜 총에 맞아 죽습니다. (1961년작은 단 한발에, 2021년작은 두 발 맞습니다만) 하지만 1961년작에서는 총이 어디서 났는지에 대해서는 나오지 않죠. 그냥 치노가 총을 구해서 토니를 쏩니다. 반면에 2021년작에서는 총의 소재가 분명합니다. 리프가 대결 전에 암시장에서 총을 구하고, 그 총을 토니에게 맡기고 베르나르도와 싸우는데, 여기에 토니가 끼어들어 그 와중에 총을 떨어뜨리고, 나중에 리프와 베르나르도가 죽은 뒤에 그 떨어진 총을 치노가 줍는 것으로 나오죠.
제일 큰 변화 중의 하나는 토니가 제트파를 나온 이유를 명확히 밝힌 것입니다. 1961년작에서는 토니가 청소년위원회의 감화를 받았다고 이야기하지만, 2021년작에서는 토니가 이집트 파와 싸우다가 한 소년을 심하게 다치게 해서 감옥에 갔고, 현재 가석방 상태라고 이야기 합니다. 이 차이를 만든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 이야기는 바로 마리아와의 데이트, 그리고 베르나르도의 대결로 이어집니다.
이전작이 마리아가 일하는 가게에서의 소꿉장난같은 장면에서 갑자기 결혼식으로 점프하는 황당한 편집이었다면, 2021년작은 무대를 성당으로 옮깁니다. 그리고 그 성당에서 토니는 마리아에게 자기가 왜 감옥에 갔고, 왜 더이상 깡패짓을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는지에 대해 말합니다. 자기가 이집트 갱의 소년을 때렸을 때, 한 주먹만 더 하면 걔를 죽일 뻔 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그리고 그 순간 자신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가를 깨달았다는 이야기. 그리고 그는 발렌티나에게 배운 서투른 스페인어로 마리아에게 영원히 함께 하고 싶다는 말을 하죠. 그리고 마리아는 그를 십자가 앞으로 이끌고 거기에서 둘은 결혼식을 올립니다. 훨씬 자연스러운 전개가 이루어졌죠.
그리고 그 이집트 갱과의 일전에 대한 고백은, 이후 베르나르도와의 대결과 연결됩니다. 토니는 베르나르도와 어쩔 수 없이 주먹 싸움을 벌이게 되는데 (베르나르도를 권투 선수로 설정한 것도 이유가 될 거라고 생각됩니다), 거기에서 토니는 베르나르도를 몰아붙여 얼굴에 연거푸 펀치를 날리죠. 하지만 마지막 일격을 가하려는 순간, 그는 자신의 피에 물든 손을 바라보며 그와의 싸움을 멈춥니다. 싸움 장면의 진행 역시 2021년작의 압도적인 우세라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발렌티나 가게로 토니를 찾아온 아니타를 제트 패거리는 무자비하게 성폭행합니다. 그걸 말리는 발렌티나. 그녀의 눈에는 1961년 작의 자신(리타 모레노)과 마찬가지로 2021년의 아니타(아리아나 데보스)가 쓰러져있습니다. 그걸 망연자실하게 바라보는 발렌티나. 그녀는 제트파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나는 너희들이 어릴 적부터 봐 왔었어. 그런 놈들이 이제는 강간범이 되었구나." 1961년의 아니타가 2021년에 하는 말.
아니타 역시 변화합니다. 아니타는 푸에르토리코 등장인물 중에 가장 미국을 흠모하던 인물이지요. 그녀는 스페인어를 쓰는 베르나르도와 마리아에게 계속 입버릇처럼 "영어를 써!"라고 소리칩니다. 그리고 그녀는 이 영화에서 가장 화려한 노래인, 미국을 찬양하는 노래인 '아메리카'를 부르죠. 하지만 성폭행을 당한 후에 그녀는 제트파 애들에게 저주의 말을 남깁니다. 1961년작에서는 "너희놈들 중 누군가가 길에서 피흘리고 누워 있으면 침을 뱉어 줄거야"라고 '영어'로 말하죠. 2021년작에서는 그녀는 이 말을 '스페인어'로 말합니다. 제트파 애들은 그녀가 무슨 소리 하는지도 모르죠. 이제 그녀는 더이상 미국을 이상향으로 노래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 스필버그는 이 영화를 찍었을까요? 그는 <쉰들러 리스트>에서 한 인간의 선의가 수많은 사람들을 구한다는 영화를 찍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에서 선의를 가진 인간이 결국 세상을 바꾸지 못하고 죽어가는 이야기를 찍었습니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서로간의 소통 불가능이라는 것이 놓여있지요. 그는 어쩌면 더이상 인간에 대한 믿음을 상실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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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읽었습니다. 스필버그의 의도는 이해가 가지만 그럼에도 현대적인 각색으로 시대의 간극을 메우기엔 한계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특히 하루 만에 사랑에 빠져 결혼을 결심하고 남자가 친오빠를 죽여도 여전히 사랑한다는 부분이요.
또한 집단 성폭행 시도에 대한 시선은 60년대보다 훨씬 엄격해졌죠. 요즘 관객들은 아니타의 거짓말로 인해 일어나는 사고보다 아니타가 입을 뻔한 피해에 더 이입할 것 같아요. 그런데 원작에서도 성폭행은 안 당하지 않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