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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기]  <그린 나이트> ㅡ 용기의 모순과 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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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2-01-22 23:58:17

 

 

 

 <'그린 나이트' The Green Knight (2021)> 

스포 有

 

 

 

 

Director &  Writer

David Lowery 

 

 


ThGreen Knight

(2021)


 

원탁의 기사를 다룬 영화안에서 관객들이 기대하는 모습은 무엇일까?

아서왕의 전설과 함께 시작되어 성검 (聖劍) 엑스칼리버의 위용을 찬양하며 그곁에서 아서왕을 도와주는 불세출 영웅들의 활약을 그네들은 보고 싶어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린 나이트' The Green Knight (2021)>는 이와같은 기대를 품었던 이들에게 피 묻은 도끼 한자루를 내던진다. 그리고 눈 앞에는 누군가의 잘려진 목만이 바닥에 떨어진 채 당신을 응시한다.


데이비드 로워리 감독의 <그린 나이트>는 작자미상의 중세 원전 '가웨인 경과 녹색의 기사'를 바탕으로 본인이 직접 각색까지 한 작품이였는데 이미 <'고스트 스토리 'A Ghost Story (2017)>를 통해 감독의 심연 (深淵)에 몸을 담가 본 사람이라면 <그린 나이트>의 여정은 어쩌면 그리 낯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중세의 세상 안에서도 감독의 독백은 유지되고 있었다.

 

 

12. 25.

 

 

 

12월 25일.

성 안에 저마다의 무용담을 자랑하며 오랜만에 아서왕과 원탁의 기사가 모인 자리에 누구의 초대도 받지 않고 등장한 녹색 기사의 뜻하지 않은 제안은 아서왕이 아닌 그의 조카 가웨인 (데브 파텔)을 만찬의 주인공으로 만들며  그를 무대 위에 서게 만든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가웨인은 아서왕과 원탁의 기사가 모인 그 자리에서 홀로 어울리지 않았던 인물이였으며 기사의 자격을 온당히 갖춘 자도 아니였다.

그래서 였을까? 어찌보면 녹색 기사의 도발에 가장 흔들렸던 인물은 가웨인 일 수 밖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날 가웨인은 만인 앞에 자신의 용기를 증명해 보인것처럼 당당하게 큰 소리를 쳤지만 이미 우린 아무런 일도 하지 않고 그저 술집과 여자를 찾아 세월을 허비하고 있는 한 젊은 사내를 오프닝에서 지켜보지 않았는가.

웨인은 녹색 기사의 도발에 반응하며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고 1년 뒤 자신의 목을 마치 단두대 (斷頭臺) 위에  내맡겨야 하는 상황과 직면하게 되어있음을 결국 어리석은 사내는 인지하지 못한것이다.

 

그날 하루 가웨인이 보인 행동은 용기가 아닌 그저 기사가 되고픈 전시(展示) 하고 싶은 욕망의 결과였다. 녹색 기사는 유유히 자신의 목을 가져갔으며 사내는 1년 뒤 무거운 발걸음을 스스로에게 재촉하도록 만들었다.

 

 

 기사의 욕망.

 

 

 

<그린 나이트 The Green Knight>는 원작인 중세 원전(가웨인 경과 녹색의 기사)이 가진 의미를 그저 따라가기 보단 감독의 재해석을 권하며 21세기에도 여전히 이 이야기가 충분히 매력적일 수 있다는 점을 유효화 시킨다.

 

녹색 기사와의 제안을 이행하기 위한 가웨인의 여정은 새로운 등장 인물들을 동참시키며 이를 뒷받침 한다. 그러면서 녹색 기사를 다시 만나기까지 1년이라는 시간이 이사내에게 있어서 만큼은 그를 성장시키기에 충분한 시간이 되어주지 못했다는 점을 영화는 부각시키는데 그리 오래 분량을 할애하지 않는다.

 

처음 만나는 무리 속 스캐빈저 (배리 케오간)에게 속아 넘어가 손발이 묶인 채 백골이 되어버린 360도 회전 패닝씬은 그 자체만으로도 죽음에 대한 허무함을 극단적으로 회계시킨다.

또한 가웨인이 타지로 들어서는 순간부터 이내 스스로의 목숨마저 지켜 나갈 수 없으며 기사로서도 실력을 겸비하지 못했음을 그자체로 반박하지 않는다.

 

 

 

  

따라서 패닝씬에서 보인 허무한 주검은 짧지만 강한 인상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무엇도 쉽게 믿어서는 안되며 누구의 말도 쉽게 믿어서는 안된다는 명제를 망각한 자의 몫이였다.

그렇게 백골의 잔상이 쉽게 사라지지 않은것도 잠시. 영화는 또 한번의 패닝씬으로 방향을 바꾸어 그리며 가웨인의 목숨을 연명 시켜준다. 동시에 녹색 예배당에 도착하는 과정이 순탄치 않음을 암시한다.

 

 

 

 

이어진 두번째 여정에서 가웨인은 어느 젊은 여인의 부탁으로 연못 깊은 곳에 잠긴 녀의 잘린 목을 찾아주게 되는데 그녀는 이미 오래전에 죽은 사람이였으며 살아있을 당시 한 영주에게 겁탈 당할 위기에 저항하다 목이 잘리게 된 자신의 사연을 가웨인에게 전한다.

 

목이 잘린 여인과의 대화 씬에서 가웨인은 목을 찾게 해준것에 대한 댓가를 요구하는듯한 태도를 보이는데 이는 기사 내지 선행을 바라는 동화 속 세상의 이야기가 아닌 어둡고 차 세상의 이면(裏面)이 작품이 추구하는 방향임을 재확인 시켜주는 대목이 된다.

 

 

 

 

녹색 예배당에 도착해야하는 12월 25일까지 이제 겨우 나흘을 앞둔 시점에서 버틸락 성주의 집에 머물면서 겪게 되는 일은 가웨인이 자신의 욕망과 직접적으로 대면하는 순간이 된다.

녹색 기사와의 약속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자신의 목이 잘려나간다는 불안감을 피할수 없는 가웨인에게 사랑하는 여인 에셀과 똑같은 외모를 하고 있는 성주의 아내가  보내는 유혹의 눈길은 그래서 더욱 대담해진다. (ps. 실제로 알리시아 비칸데르가 1인 2역을 연기했다.) 

 

결국 첫번째 여정에서 빼앗겼던 어미인 모건 르 페이가 준 허리띠를 찾음과 동시에 자신의 욕망을 노출시킨 가웨인은 허리띠의 능력을 인지하나 진정한 기사와는 거리가 멀어지고 있음을 느낄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인지 이시점에서부터 가웨인의 행동은 겉으로는 확고해 보이지만 여정의 처음보다 더욱 연약해져 보였다.

동행을 자처했던 여우 마저 조롱과 회유를 통해 가웨인에게 여기서 그만 멈추라고 부추기지만 가웨인은 이를 거절하면서 자신의 선택에 대한 답을 듣길 원한다.

  

 

 용기의 모순.

 

 

모든 여정을 마치고 녹색 예배당에 도래하게 된 가웨인 앞에 녹색 기사는 미동도 하지 않은 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고요함과 적막함만이 둘 사이를 지나갈 무렵 가웨인은 약속대로 목을 맡길 채비를 하나 원탁의 자리에서 보인 행동은 용기가 아닌 욕망이였으며 녹색 기사와의 약속 또한 감당할 수 없는 자리였다.

 

 

 The Last Temptation of Christ (1988) 

 

 

영화는 마치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 [마틴 스콜세지 감독작] The Last Temptation of Christ (1988) > 처럼 예수가 십자가의 무게를 회피(回避)한 뒤 거짓된 삶으로부터 스스로에게 배신감과 모멸감을 느낀것과 같은 감정을 가웨인에게 상기시킨다.

 

 

 

 

가웨인은 결국 자신의 용기를 증명하기 위해선.

아니, 어쩌면 이제는 타자가 아닌 스스로에게 증명 받기 위해선 자신의 목이 잘려 나갈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영화 <그린 나이트>는 동화를 가장한 용기의 모순에 대한 위험한 경고이자 경계선임을 고백한다. 

 

 

 

 

 

 

The Green Knight 

Director &  Writer

David Lowery 

 

 

 

원작: 가웨인 경과 녹색 기사

Based on Sir Gawain and the Green Kn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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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2022-01-23 01:35:51

 인상적인 감상기 잘 읽었습니다.    글 정말 좋군요. ㅎ

덕분에 다시 함 보면서 영화적 해석을 할 동기를 찾았네요. 

이건 제게 도전의 영역입니다.   한글 자막의 부재로요..^^

1
2022-01-23 02:24:05

개인적으로 직무와 관련해 큰 선택의 기로에서 관람했던 영화였고 위로 보다는 주인공의 심난함에 극히 동화되었던 경험으로 기억하는데, 글을 읽고나니 어쩌면 저 역시 욕망을 용기로 속이고 싶었던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잘 읽었습니다.

2
2022-01-23 07:27:23

중세를 배경으로 한 오래된 영국 전설을 그리면서
왜 어울리지 않은 인도계 배우를 주인공으로 기용했는지
이것도 인식의 경계를 허무는 PC의 일종인지
타 인종을 캐스팅힌 이유와 의미에 대해 의문하느라
집중이 안된 채 관람하느라 작품의 진면목을 스치며 지나간
비운의 영화로 남은 게 유감이네요

WR
3
2022-01-23 10:18:36

데이비드 로워리 감독은 가웨인 역에 데브 파텔(Dev Patel)를 캐스팅 한 이유에 대해 언급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참고로 배우 데브 파텔은 영국 출생의 인도계 영국 배우입니다.)

 

로워리 감독의 인터뷰 발언을 함께 소개해봅니다.

''우리가 얽매여야 하는 역사적 근거가 없어 캐스팅에 개방적이었다.

그전의 아서왕 소재 작품에서 볼 수 없었던 기사들로 원탁을 채울 좋은 기회였다.

그런 변화가 궁극적으로 플롯을 바꾸지 않는다는 점이 이 소재의 유연성을 잘 보여준다.

이야기만 좋다면 피부색은 상관없었다.''

-<그린 나이트> 감독 데이비드 로워리

 

2022-01-23 20:38:00

저 그린 나이트도 버전이 여러가지라고 하더군요.
그리고 아서왕 이야기 속의 여러 기사들의 모험담은 시대가 지나면서 주인공이 바뀌기도 하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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