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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스포] '파워 오브 도그' 내게는 그냥 한니발의 탄생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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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3-05-02 12:59:43

훌륭한 상을 받은 영화이고 감독이 굉장히 유명한 여성 감독인데 공감하기 힘든 부분이 있어서 과연 내가 이 영화에서 무엇을 보았는지 스스로 정리해 보기 위해 글을 남겨 봅니다.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전 영화를 다 보고나 지금도 '파워 오브 도그'라는 이 영화의 제목이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정확히 누가 도그인지, 파워는 무엇을 뜻하는지 이해가 잘 안 가더라고요. 영화의 마지막에 성경 구절을 직접 읽어주는 장면이 나오는데 감독이 직접적으로 보여준 이 장면을 보고도 잘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제가 영화를 보고난 다음에 떠오른 저만의 제목은 '한니발의 탄생' 혹은 '한니발의 시조'이라고 짓겠습니다. 물론 제가 개인적으로 장르 영화를 좋아하기 때문에 떠오른 생각이긴 합니다. 제목이 그리 멋있지는 않지만 제가 이 영화를 보고 느낀 점을 표현한 제목입니다. 

 

제가 이 영화를 이해하기 위해 몇 개의 유튜브와 팟캐스트를 들어봤는데, 대부부의 유튜브나 팟캐스트에서 이 영화를 로즈나 피터의 입장에서 해석하고 로즈, 필, 조지의 반대편에 피터를 놓습니다. 필을 굉장히 폭력적이고 무자비하며 힘의 근원으로 해석하고 있는데, 아마도 그 해석이 맞는 해석이겠지만(영화의 이해에 있어서 정답은 없지만 큰 기류는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 오히려 필의 입장에 공감하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해 이 영화는 자신의 인생을 열심히 살아간 '필'이라는 인물이 자신이 거두려 했던 인물에 의해 살해당하는 사건을 다룬 영화라고 생각했습니다. 

 

영화에서는 필이 피터를 동성애자를 모욕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대부분은 이 장면을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기 위해 상대를 그 대상으로 정하고 공격하는 모습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제가 생각하기에는 '필'을  '동성애자'와 엮은 의미는 필이 갖고 있는 힘이 피터와 역전되는 순간, 즉 사람이 갖고 있는 숨겨진 부분이 다른 사람에게 드러나는 순간 일어나는 힘의 역전에 대해 감독이 말하기 위해 쓴 하나의 장치로 해석 했습니다. 

 

다시 말해 ' 필'이 동성애자라고 놀린 '피터'에게 자신이 동성애자 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들켰거나 혹은 그럴 수도 있다는 의혹을 피터가 갖게 된 후 주도권의 역전이 일어났다는 사실입니다.'아...너 동성애자 구나'라는 생각을 피터가 하는 순간부터 필과 피터의 주도권이 바뀝니다. 그 장면이 바로 담배에 관한 장면입니다. 이 부분은 뒤에 설명하겠습니다.

 

우선 이 영화의 배경은 '1925년' 이고, '미국' '목장', '사업' 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필'과 '조지'는 형제이면서 소를 키우는 목장을 운영하는 '동업자' 입니다. 카우보이를 고용할 수 있고, 하녀를 두 명정도 둘 수 있으며 주지사를 저녁에 초대할 수 있을 만큼의 부를 축적한 지역 유지입니다. '필'은 유명한 대학을 다녔지만, 목장 사업을 선택한 것으로 보이고, 벤조를 굉장히 잘 다루며, 거친 카우보이들을 이끄는 리더쉽을 갖고 있습니다. 

 

영화에서 처음 카우보이들이 술집에 들어갔을 때 동생 '조지'가 식사를 하러 가야 할 시간이라고 말하지만, 그 누구도 듣지 않습니다. 하지만 '필'이 식사하러 가자고 말하자 카우보이들이 모두 움직여서 나가죠. 즉, '필'은 누군가를 움직일 힘을 갖고 있는 두목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 장면이 굉장히 이상했습니다. 악기를 잘 다루며(섬세한) 무리를 이끌 '마초'적인 모습이 있고, 좋은 대학을 다닐 정도로 '머리가 좋을 수' 있을까요??? 머리가 좋은 섬세한 마초... 라는 캐릭터가 세상에 존재 할 수 있을까? 그것도 1920년대 미국에서? 이건 거의 '전생했더니 카우보이' 이런 수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필이 전생했을 리는 없으니 이렇게 생각 할 수 있습니다. '필'은 사업을 하는데도 뛰어난 감각이 있었고, 거친 카우보이를 상대하며 사업을 하기 위해 '거친 두목'을 '연기' 했을 거라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그런 연기 속에 동생과 피터에게 손가락질하고(손가락질을 해도 자신을 이해해 줄 사람 혹은 완전한 타인이기 때문에) 그들의 약한 고리를 드러내는 역할 을 '연기'하게 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통해 내부를 결속하고 자신이 우두머리 임을 증명하는 것이죠.

 

그리고 필은 나이 먹은 동생이 늦게 들어오자 편히 잠들지 못할 정도로 애착이 심한 남자입니다. (극 중에서 필이 동생을 기다리며 널브러져 잠을 자다가 동생이 들어오자 이불을 덮고 편히 잠드는 모습이 나옵니다. 이 장면을 동생과의 동성애 암시로 생각하는 해석도 있었는데, 형의 동성애적인 성격을 받아들일 동생이 아닙니다.)

 

동생 '조지'는 형과 같이 사업을 하지만 사업에서 회계를 담당하고 있을 뿐이라고 생각 할 수 있습니다. 우선 카우보이 무리는 그 누구도 동생 '조지'를 따르지 않습니다. 그리고 조지는 소의 거세를 직접 하는 장면이 나오지 않습니다. 복장도 카우보이라기 보다는 회계사에 가까운 정장 스타일을 보입니다. 

 

그는 평소 형의 조롱을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잘 넘기는 방법을 알고 있고, 주지사를 초대했을 때의 대화로 유추해 보면 평소에도 뛰어난 형과 계속해서 비교 당하며 살아왔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자식들 간의 비교는 지금도 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인물이 자신의 신분 상승 욕구를 위해 주지사를 초대하고, 그 주지사의 눈에 들고자 아내에게 피아노 연주를 부탁하고, 가족과 상의 없이 결혼하고 형에게는 결혼식을 초대도 하지 않고, 통보해 버리는 상당히 자기 주관이 뚜렷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애착 인형인 동생에게 결혼식을 초대가 아닌 통보 받은 '필'은 과연 어떤 기분이었을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조지'와 결혼한 '로즈'라는 인물은 등장하는데 굉장히 수동적인 인물입니다. 제가 보기에 극 중에서 그녀가 자신의 소리를 냈어야 할 장면이 세 번의 있습니다. 

 

그 장면을 설명하기 전에 저는 처음 등장한 로즈를 보면서부터 이 캐릭터가 싫었는데 대단한 이유는 아니고, 로즈는 식당을 운영하는데 바닥이 당연히 나무로 되어 있습니다. 세로로 긴 나무판자를 가로로 쭉 붙여서 바닥을 만든 것이죠. 국민학교때 교실 나무 바닥에 왁스 칠 좀 해 본 분들을 알 텐데 세로 판자는 세로 방향으로 청소하고 왁스를 칠해야 청소가 쉽습니다. 세로 판자에 가로로 비질을 하거나 왁스 묻은 걸레를 가로로 문지르면 오히려 판자 틈새의 먼지가 일고, 왁스가 틈새에 끼어서 오히려 청소를 다시 해야 하는 상황이 오기도 합니다. 

 

이 마룻바닥 청소가 동서양의 차이 인지 단순히 취향의 차이인지 저는 알 수 없지만 식당을 청소하는 로즈가 세로 나무 바닥을 가로로 물걸레질을 하는 것을 보고 그녀가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 하는 모든 행동이 다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파워 오브 독을 감상하는 저의 관점은 이때 모든 것이 결정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영화를 보다 보면 이 식당에서 나름 중요한 장면이 하나 등장하는데 자동차를 운전하는 여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필 무리가 식사를 위해 자리에 앉고 그 옆 테이블의 식사를 하는 무리를 보여주면서 뜬금없이 그 사람들의 대화가 자막으로 나옵니다. 그 대화의 내용은 운전하는 여자를 처음 본 듯이 봤다는 내용입니다. 

 

처음에는 왜 이 대사가 번역된 거지 라고 궁금했는데 영화가 끝나고 보니 이 1920년대의 여성 인권이 낮지 않았다. 혹은 남자와 동등했다는 사실을 감독이 알려주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위에서 말한 세 가지 장면에 대해서 말해 보자면 

 

1. 자기 아들이 '필'에게 동성애자라고 놀림을 받았을 때 아무리 '필'이 막강한 권력을 갖고 있다 하더라고 '어머니'로서 자신의 아들을 보호 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습니다. 

 

2. 결혼 후 자신에게 피아노 연주를 부탁한 남편을 위해 피아노 연습하고 있을 때 자신을 방해하는 '필'에게 자신이 피아노 연습을 하고 있으니 멈추라고 하던가 아니면 자신보다 뛰어난 연주 실력을 갖고 있는 '필'에게 같이 연습을 하거나 도와 달라고 '요청'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피아노에서 도망가는 것을 선택합니다. 물론 자신을 창녀라고 말한 사람에게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 힘든 일이지만, 그녀가 온실속의 화초처럼 자란 인물이 아닙니다. 이미 한 번 결혼했고, 자신 혼자서 식당을 경영 했으며, 자신이 환대받을 지 알 수 없는 결혼을 치른 사람입니다. 이 정도면 굉장히 거칠게 삶을 살아온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이 피아노 연주를 방해한다고, 도망간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 장면을 한국식 드라마로 해석해 보자면 부잣집에 갑자기 애 딸린 유부녀가 자기 아들과 결혼 한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부모나 그들의 형제 자매가 새로 들어온 사람에게 '둘이 사랑했구나! 열심히 살아보렴, 두 사람의 삶을 축하한다. 사랑한다. 며늘아기야….'라는 말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즉, 자신이 처한 상황은 로즈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2-1 '필'은 왜 '로즈'가 피아노 치는 동안 같이 벤조를 치면서 방해했을까? 그리고 그것은 방해가 맞는가? 단순히 자신이 연주를 더 잘하기 때문에 로즈의 연주를 방해하려고 한 것일까? '필'은 집안의 기둥이자 주지사도 관심을 둘 정도의 유력인사이며 실질적으로 사업을 운영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굳이 로즈에게 관심을 둘 이유가 있을까요? 결혼은 자신의 동생과 한 것이지 자신과 한 것이 아닙니다. 즉, 필이 관심 없어 하면 아무 상관 없이 그냥 '남'으로 대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벤조를 통해 그녀를 불편하게 한 것일까요? 

 

제가 생각하기에 필은 밴조를 연주하면서 '로즈'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려 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필의 입장에서 '넌 피아노 연습을 하고 있고, 난 벤조로 같은 곡을 더 잘 쳐내고 있어... 넌 날 어떻게 할 거지?'라고 도발 한 것이죠. 그 상황에서 로즈가 반발하던 도움을 요청하던 둘 중 하나를 했으면 필은 로즈를 자신의 가족으로 받아들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로즈'는 도망을 선택하고, 그 결과 필은 로즈를 완전한 타인으로 결정했습니다. 타인이기 때문에 로즈가 자신의 소가죽을 처분했을 때 그 분노를 참아내고 로즈에게 직접적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남이니까… 필은 남에게 자신이 어떻게 보이는지 신경쓰고 있으면 자신이 보여주기 원하는 모습만 보여줍니다. 그리고 소가죽을 잃은 분노는 자신이 남에게 보여줄 모습이 아니기 때문에 로즈에게 아무말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때 동생은 굉장히 이상한 행동을 합니다. 형의 소가죽을 와이프가 허락없이 처분했는데...'왜그래?' 정도로 처리 하려고 합니다. 사과는 일절 하지 않습니다. 이 장면이 저에게는 정말 이상하게 다가왔습니다. 

 

3. 로즈는 주지사 앞에서 피아노를 연주해야 했습니다. '조지'가 주지사를 초대했을 때는 단순한 식사가 아닙니다. 자신이 좀 더 상류층으로 가기 위한 포석이죠. 그 포석의 하나로 아내의 피아노를 선택했습니다. 그렇다면 아내 '로즈'는 남편의 출세를 위해 자신도 무언가를 해야 했습니다. 

 

만약 로즈가 극장에서 피아노를 친 경험이 없는데 조지가 무작정 로즈에게 피아노를 배우고 주지사 앞에서 연주하라고 했으면 조지가 매우 나쁜 사람이지만, 조지는 로즈가 극장에서 피아노를 연주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고, 그것을 바탕으로 저녁 이벤트를 준비한 것입니다. 그 상황에서 로즈가 피아노를 연주하지 않는 것은 단순한 피아노를 못 치는 것이 아닌 남편의 출세욕, 상류층으로 진입에 찬물을 끼얹는 것입니다. 

 

남편 조지 입장에서는 두 가지 실패를 겪게 되는 것입니다. 첫 번째는 저녁 식사에 초대한 주지사 부부가 자신이 아닌 형에게'만' 관심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고, 두 번째는 그나마 자신에게 눈길을 주려던 주지사 부부에게 준비한 이벤트가 망한 것이죠. 이로 인해 아마 조지는 한참 동안은 상류층 진입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너무 과한 해석인가요? 

 

4. 남편이 장기간 집을 비울 때 로즈가 한 행동은 저녁 식사를 거르고, 침대에서 술을 마시는 것입니다. 다른 관점에서는 자신을 보호해 줄 남편이 없고, 식사하려면 자신을 창녀라 부른 사람과 같이 식사를 하게 될 상황이 싫어서 피한 것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과연 그런 행동이 이해가 가는 행동일까요? 

 

로즈는 자신이 아들을 위해 나서야 할 때 식당 뒤에서 우는 것으로 도피하고, 자신이 힘을 내야 할 때 '술'로 피하는 것을 결정해 버립니다. 이 영화의 감독이 여성인데 어떤 이유로 로즈를 이런 모습으로 묘사한 것인지 궁금합니다.' 필'의 입장에서 보면 이 여자는 굉장히 위험합니다. 남편을 위해 피아노 연주를 하지도 않고, 아들을 챙기지도 않고, 술로 도피하는 사람이 집안에 들어온 것입니다. 

 

먹고 살기 위해 식당을 운영하던 여자가 자신의 힘으로 먹고사는 것을 해결하지 않아도 되는 순간이 오자 '술'을 마시기 시작합니다. '필'의 입장에서 보면 굉장히 위험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필은 로즈를 '남'으로 결정한 후 로즈에서 '피터'를 빼앗고자 합니다. 

 

필이 피터에게 '필'이라고 부르라고 말하면서 로즈를 바라보는 장면이 나옵니다. '내꺼야' 라는 뜻이죠. '필'은 꾸준히 누군가를 옆에 두길 원합니다. 자신이 가면을 쓰고 살아가기 때문에 말로 표현이 안 되는 공허함을 느끼는 것이죠. 그래서 그 자리를 채우고자 처음에는 브롱코 헨리, 그다음에 동생 조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피터'를 자신의 관심 안에 두려고 합니다. 그리고 술꾼 엄마에게서 '필'을 떼어 놓으려고 합니다. 우두머리는 그렇게 자신의 무리를 보호 하려고 합니다. 필요한 자는 거두고 필요 없는 자는 내치는 것이죠.

 

필은 피터를 거두기로 결정 하고 화해의 의미로 피터에게 자신이 직접 꼰 밧줄을 선물하기로 합니다. 자신이 숭배하는 이의 안장에 태워 승마를 가르쳐 주고, 승마를 할 줄 알게 되면 같이 탐험을 가보자고 제안을 합니다. 그리고 너의 어머니는 알코올중독이다. 라고 말합니다. 즉, 현실을 직시하고 자신을 따르라고 권유하는 것이죠. 또한 남자는 누군가의 도움없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시기가 옵니다. 승마 연습을 하던 우리를 열어 피터를 자유롭게 내보내고, 그를 돕기 위해 나서는 카우보이에게 스스로 해낼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피터는 해냅니다. 물론 낙마라는 실패를 경험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정말 성공하기 위한 실패일 뿐입니다.

 

필은 어쩌면 자신이 존경했던 인물을 이제는 자신이 해내려고 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극 중에서 '필'은 마초적인 모습을 보이지만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마초의 '폭력'을 행사하지 않습니다. 그는 자신이 관리하는 카우보이에게 무리한 일을 시키거나 부당한 대우를 하지도 않고, 말이나 소를 채찍으로 후려치는 장면도 나오지 않습니다. 유일하게 폭력 비슷하게 나오는 장면이 말에게 큰 천을 휘두르는 장면이 전부입니다. 

 

다른 관점에서 필이 로즈나 피터를 정신적으로 괴롭힌다. 혹은 동생을 남들 앞에서 뚱보라고 비웃는 장면을 통해 폭력성을 보여준다고 한다면... 영화 스케일이 너무 작아집니다. 이 정도는 심리 스릴러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한 수준 입니다. 이건 마초가 아니라 그냥 동네 양아치가 하는 행동입니다. 

 

오히려 무언가를 결정하는 사람은 그 결정으로 인해 때로는 주변에 피해를 주기도 한다... 정도로 해석하는 것이 더 어울립니다. 모두를 만족시키는 의사 결정은 없습니다. 필은 자신이 가진 것을 지켜야 하는 의무가 있습니다. 집안의 장남이자 카우보이의 우두머리로서 해내야 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그로 인해 발생하는 부수적인 문제들을 당연히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무언가를 만들어가기 위해서 무언가가 사라지거나 부서지는 일은 피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필의 관심을 받는 피터는 자신의 캐릭터를 명확히 보여주는 장면이 두 곳 있습니다. 하나는 자신이 잡아 온 토끼를 해부한 것이고, 두 번째는 다리를 다친 토끼를 죽여버리는 장면입니다. 이 두 장면은 다양한 해석이 있을 수 있겠지만 저에게는 한가지 의미로 다가왔는데, '힘'에 관한 것입니다. 

 

두 번째 토끼가 나오는 장면에서 필은 다리를 다친 토끼를 자연으로 돌려보내서 자연(힘)이 문제를 해결하도록 하지만, 필은 자신의 힘으로 토끼를 죽여 버립니다. 의사와 수의사는 다르지만 의사 공부를 하는 피터가 부러진 혹은 상처입은 토끼 다리를 못 고칠리 없다고 생각 합니다. 그리고 바로 이 장면이 피터가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을 보여주는 장면이고 제가 한니발을 떠올리게 된 장면입니다.(작은 동물 해부-작은 동물 살해-인간 살해는 살인마의 특징으로 장르에서 많이 쓰입니다)

 

 피터는 처음에 필에게 동성애자로 조롱받았지만 결코 약한 사람이 아닙니다.(배우의 외모도 한 몫 크게 하지만...) 오히려 자신이 해야 할 일은 하고 마는 무서운 사람입니다. 자신이 잡아 온 토끼를 어머니에게 보여주고, 그리고 그 토끼를 해부합니다. 물론 의대생이기 때문에 해부했다고 하면 반박할 수 없지만 피터의 엄마 로즈가 자신의 집에서 해부는 안 된다고 하는 걸로 봐서, 이 행동은 잘못된 행동입니다. 

 

김용 소설중에 멀쩡한 토끼의 다리를 분지르고 그걸 어머니에게 드려 치료하게 하는 정신 나간 놈이 나오는데, 이 두 놈을 비교한다면 누가 더 나쁜 놈인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자신을 동성애자라고 모욕한 필을 따르는 척하면서 기회가(힘을 쓸 수 있는 기회) 오자 가차 없이 죽여 버립니다. 

 

영화 초반에 힘들어 하는 어머니를 구하지 않으면 남자도 아니다. 라는 자막이 나오는데 피터가 필을 대하는 방식으로 보자면 이 자막으로 처리되는 대사는 피터가 관객을 우롱하는 장면으로 해석 할 수 있습니다. 극 중 그 어디서도 피터가 어머니를 위하는 장면은 나오지 않습니다. 상식적으로 어머니가 좋아하는 동물을 해부하는 사람이 어머니를 위한다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현대에서 레지던트 과정의 아들이나 딸이 자신의 집에 있는 개나 고양이를 공부를 위해 해부하는 일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이 장면은 피터에게 있어서 맨 마지막 필의 죽음에 대한 변론 스스로의 변론일 뿐이고 제가 이영화를 장르 영화로 인식하게 된 결정적인 장면입니다.  그래서 이 영화를 장르적으로 해석하는 글을 쓰게 된 계기 입니다.(심지어 장르 영화에 살인자가 성경구절을 인용하는 것은 클리세입니다)

 

여기서부터는 장르적인 해석입니다. (중요한 스포 포함입니다. 영화 보고 읽으세요)

 

 

 

 

 

피터는 필의 손에 난 상처를 이용해 필을 죽일 생각으로 필이 알려준 승마술을 이용해 탄저균으로 죽은 소의 사체를 찾아내고 그 소의 사체에서 장갑을 착용하고, 소가죽을 벗겨 내서 그 가죽을 사용할 수 있는 완벽한 상황(로즈가 소가죽을 인디언에게 넘겨 버림)이 오자 자신에게 줄 선물(꼰 밧줄)을 만들고 있는 필에게 자신이 소가죽을 갖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것으로 자신의 밧줄을 완성하면 된다고 말하고 소의 생가죽을 넘깁니다. 필은 그 생각죽을 이용해 선물을 완성하지만 생가죽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손의 상처로 인해 탄저균 감염을 일으켜 필은 사망해 버립니다. 그리고 장례식을 치르고 돌아오는 자신의 부모를 이상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피터의 얼굴이 나옵니다. (장르적으로 보자면 유산은 언젠가 피터의 손에 들어오게 됩니다)

 

만약 이 영화에서 탄저병으로 죽은 필의 장례식장이나 혹은 장례식을 치르고 돌아온 부모에게 필이 나를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동성애자로 모욕하고, 어머니를 알코올중독이라고 모욕하고, 정신적으로 괴롭혔기 때문에 아들로서 그걸 지켜볼 수 없었다고, 그래서 죽였다 라고 자책하는 장면이 나왔다면 전 피터의 행동을 지지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피터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필의 죽음에 전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가 처음에 말한 한니발의 탄생이라는 제목이 어울린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영화에 중요한 소재로 쓰이고 있는 동성애, 그리고 그 동성애를 이용한 비밀이 밝혀지는 순간의 힘의 역전에 대해 말해 보겠습니다. 과연 피터는 언제부터 필에게 힘의 우위를 느낀 것일까요? 이 힘의 우위를 느끼는 것이 중요합니다. 피터는 문제를 힘으로 해결하는 사람입니다. 힘의 우위를 느끼지 못했다면 피터는 방학 기간 내에 필을 죽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첫 번째는 필의 아지트에 있는 남성의 육체를 그린 잡지? 를 본 순간이고, 두 번째는 필이 자신의 우상에게 구조를 받았을 때 알몸인 순간이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피터는 그 힘의 우위를 확인하기 위해 필이 건네준 담배를 말아 자신이 한 대 피고 필에게 자신이 피던 담배를 입에 물려 줍니다.(권유는 가진 사람이 가지지 않은 사람에게 할 수 있는 행동입니다.) 필이 여전히 피터에게서 힘의 우위를 갖고 있었다면 필은 피터의 담배 제안을 거절하거나 자신이 담배는 이렇게 마는 것이야 라고 새로운 담배를 꺼내 시범을 보였을 것입니다. (요즘도 그러는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어렸을 때 남자는 아버지에게서 처음으로 술과 담배, 면도를 배웁니다. 그 과정을 거치고 나면 아버지는 아들을 한 명의 남자로 인정해 줍니다.) 하지만 필은 피터에게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들킨 순간, 혹은 알려준 순간 힘의 우위를 잃게 되고, 피터가 권한 담배를 받아 들입니다. 

 

아마도 필은 자신의 비밀이 들어나는 그 순간을 피터와 비밀을 공유하는 동지(자신을 알아주는 사람, 봐주는 사람, 찾아주는 사람, 짓는 개의 형상을 알아 본 사람) 혹은 연애의 대상으로 여겼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피터는 바로 그 순간이 필에게 힘의 우위를 느끼는 순간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피터는 필을 하나의 문제(상처입은 토끼)로 여겼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죽여 버립니다. 피터는 그런 한니발적인 인물입니다.

 

그리고 피터는 필을 죽인 단 하나의 증거를 숨기거나 태우거나 처분하지 않고,(죄책감이 있다면 살인에 관한 자신의 행동이 들킬것을 우려해 증거를 없에는게 보통입니다) 자기의 침대 아래에 숨기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흔히 연쇄 살인범들이 자신이 죽인 피해자의 물품을 전리품으로 수집하는 것은 장르의 특징 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특징 때문에 '파워 오브 도그'를 '한니발'적으로 해석하는 글을 쓰게 됐습니다.

 

갑자기 글을 끝맺음하는 기분이지만 이상으로 극찬을 받은 영화를 이해하지 못해 나름 소화하기 위해 몇 자 적어 보았습니다.  만약 로즈가 걸레질을 '세로'로만 했어도 이런 글은 쓰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글을 마치려 합니다.

13
Comments
3
2022-01-23 02:47:37

 필은 전근대적인 인물이고 영화상에서 이는 극복해야 할 해결 대상으로 바라봅니다. 작성자님이 필에게 공감이 많이 되실수록 영화가 매정하게 보이실 겁니다.

WR
2022-01-24 08:58:20

혹시 필이 '전근대적인 인물'인지 아니면 '전근대적 인물을 연기' 한 것인지 구분할 장면이나 대사가 있을까요?? 데어 윌 비 블러드 같은 경우는 주인공이 마초라는 것이 단 번에 느껴 졌는데, 파워 오브 도그는 딱히 그런 느낌이 들지 않아서요... 배우의 차이 일까요???

1
2022-01-24 13:53:24

저는 예술 작품은 감상자와 대화한다는 현대 미학이론을 견지하는 편이라서 작성자님에게 마치 문제풀이의 힌트를 제공하는 입장이 되는 상황이 꺼림칙합니다. 안 알려주지 식의 유아적인 태도라 여기시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다만 데어 윌 비 블러드와의 비교가 매우 재밌기에 거기에 대해서는 조금 더 생각해보고 싶네요. 데어 윌 비 블러드의 주인공이 좀 더 명확한 마초(라고 하긴 이상하지만 어쨌든 러프하게 분류하겠습니다)라고 납득이 되신다면, 이는 아마도 영화의 상황 자체가 보다 원초적이고 여성이 끼어들 틈이 없어서일 겁니다. 그렇다면 그 정도 사회적 배경과 상황이어야 마초는 권력을 얻고 축출되어야 할 대상이 될까요?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받아들였고 더욱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데어 윌 비 블러드에서 주인공이 늙고 등이 굽은 모습이 필연적으로 당면해야 할 상황이라고 납득되신다면, 필이 수염이 다 깎여서 관짝에 눕는 모습도 납득하셔야 할겁니다. 그게 아쉽든 아니든 적어도 그게 감독이 원하는 바고, 어쩌면 시대가 원하는 바이니까요.

WR
2022-01-25 14:32:27

댓글 감사합니다. 전 필이 드디어 본연에 모습으로 죽는구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양복을 자기가 입고 말을 타고 집을 떠났으니까요... 역시 좋은 영화는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에 좋은 영화 인거 같습니다. 

2022-01-23 03:36:19

저에게는 이런 시각도 충분히 납득이 가는 좋은 해석이었습니다.
추천하고 잘 읽었습니다.

WR
2022-01-24 08:58:38

감사합니다.

Updated at 2022-01-23 07:17:06

저는 이 영화를 네명의 인물의 힘이 아닌 내면이 가진 페르소나(개,악)를 각 인물 별로 연출을 잘 한것이라 느꼈습니다.말씀하신 필이 스마트하고 부유하고 동생을 끔찍히 생각하지만, 두목으로서의 '연기'를 하셨다는 말과 결이 같습니다.4명의 각각의 내면에 펼쳐진 특유의 페르소나를 영화는 천천히 그러나 너무나도 정확하게 묘사해줌을 알 수 있습니다.이러한 연출로인해서 감상자는 각각의 캐릭터의 몰입과 치중도에 따라 각기 여러가지 다양한 해석과 메타포를 가져다 주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듭니다.개라는것은 즉 인간 내면에 자리잡고있는 필의 동성애,조지의 방관.로즈의 알콜,피터의 내면깊은곳은 악의 욕망.이것들이 저는 (개,악)으로부터 구원받길..이라는 의미로 제목을 생각할수있었습니다.저는 필의 원인에서 기반한 조지의 작용으로 둘의 관계에서의 파워오브도그가 아닌 인간의 내제된 내적 욕망과 그릇된 행동들의 표출들을 중점으로 느껴졌습니다.필의 독단적이고 강압적인 행동들로인해서 모든사건이흘러간다고 보는것이 아닌 각각 내재된 페르소나를 가짐으로서 그 화약고가 이른바 두목으로서의 '연기'를 한 필의 하나의 장치일뿐 사건의 시작이 필의 그것을 기준으로 삼지는 않았습니다.해석이 정말 난해하고 다양하며 연출과연기가 너무도 훌륭하기에 정말 좋은영화라 생각됩니다^^

WR
2022-01-24 08:59:43

좋은 댓글 감사합니다

 

1
Updated at 2022-01-23 09:35:19

Deliver my soul from the sword; my darling from the power of the dog

내 생명을 칼에서 건지시며 내 유일한 것을 개의 세력에서 구하소서

위 성경 구절이 영화 마지막에 나오는데 여기서 개는 필을 의미하고 그 개가 나중에 죽음으로서 그 나머지 사람들이 구원을 얻는 것이라는 해석을 하더군요. 또한 내 유일한 것 또는 darling 은 여기서 엄마인 로즈라는 해석입니다.

 

또한 영화에는 성경과 관련된 장면이 또 나오는데 필의 카우보이 무리가 피터를 둘러싸고 조롱하는 내용이 아래 시편 내용과 흡사합니다.

 

많은 황소가 나를 에워싸며 바산의 힘센 소들이 나를 둘러쌌으며 내게 그 입을 벌림이 찢으며 부르짖는 사자 같으니이다. 개들이 나를 에워쌌으며 악한 무리가 나를 둘러 내 수족을 찔렀나이다.

https://screenrant.com/power-dog-movie-title-bible-psalms-2220-meaning/

WR
2022-01-24 09:00:06

원문 링크까지 감사합니다. 파파고 돌려야겠네요..

2022-01-23 12:42:27

저랑 정확하게 동일한 평을 하셨네요 ^^

WR
2022-01-24 09:00:16

감사합니다

2023-04-24 11:00:45

제가 이 영화에서 느낀 감정 및 해석과 매우 비슷한 글을 써 주셨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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