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를 위한 변명
안녕하세요 카페인중독입니다.
기대를 하고 관람했던 스필버그의 웨스트사이드스토리를 보고 왔습니다.,
DP의 후기를 읽어보니 많은 분들의 실망했다는 의견도 많고 좋다는 의견도 많더군요.
그런데 찬반이 갈리는 건 국내 반응이고 미국에선 꽤 반응이 좋은 편입니다.
그래서 일단 국내 반응과 미국 반응의 온도차이가 왜 그렇게 큰지,
스필버그는 왜 하필 이 영화를 리메이크했는지에 대해서 짧게 감상을 적어보고자 합니다.
먼저, 아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스필버그 버전을 포함해서 웨스트사이드스토리는 버전이 4가지 존재합니다.
가장 먼저, '로미오와 줄리엣'을 각색하고 레너드 번스타인이 작곡한 57년도 브로드웨이 뮤지컬이 오리지날입니다. 현재까지 국내에서 많이 알려진 뮤지컬은 이 버전입니다. 저도 10대때 남경주, 최정원 배우 주연으로 본 기억이 있고, 브로드웨이에서도 여러번 재연을 했습니다만, 오리지날과 크게 달라진 내용은 없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걸 영화로 만든 (나탈리 우드 주연) 61년도 뮤지컬 영화가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에 잘 알려지지 않았는데, 舊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리메이크한 09년도 브로드웨이 뮤지컬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개봉한 스필버그의 21년도 뮤지컬 영화가 4번째 버전입니다. (한국개봉은 22년이지만 미국개봉은 21년 12월이므로 21년이라고 쓰겠습니다)
그래서 총 4개의 버전이 존재하게 됩니다. 57년뮤지컬, 61년영화, 09년 뮤지컬, 21년 영화..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21년도 스필버그는 57년도 뮤지컬의 영화화도 아니고, 61년 영화의 리메이크도 아니고 09년 뮤지컬의 영화화를 목표로 한 것 같다는 느낌입니다.
웨스트사이드 스토리의 기본 플롯은 백인 이민자와 히스패닉 이민자 집단의 갈등과 서로 다른 인종 출신의 남녀간 사랑인데요. 이걸 '로미오와 줄리엣'의 플롯에 대비해보면,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두 부유한 '가문'의 갈등이고, 그냥 서로간의 이기심에서 비롯된,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도 모르는 갈등입니다만, 웨스트사이드스토리는 슬럼 클리어런스 작업중인 슬럼 거주민들의 갈등입니다. 곧 쫒겨날 것이 분명한, 본인들의 생존문제가 걸린 와중에 서로 영역싸움을 하는 상황인거죠. 이에 대한 이야기는 배드테이스트에서 잘 풀어주셨던데, 부연설명을 더 하자면, 백인이민자들은 미국 사회에 굉장히 빠르게 흡수되어 중산층과 다를 바 없는 대우를 받는데 비해서 푸에르토리코 출신은 청소부 같은 잡일을 하면서 도시의 하부구조의 노동을 주로 합니다. (영화에서도 마리아가 야간에 백화점 청소를 하는 장면이 나오지요) 이게 인종 갈등의 주 원인이기도 한데, 푸에르토리코 이민자들은 시민권이 있으면서도 정당하게 미국시민 취급을 받지 못하고, 백인 이민자들은 시민권이 없어도 피부색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빠르게 백인 기득권층에 흡수되는 아이러니가 존재하는거죠.
스필버그가 리메이크영화화를 하면서 중점을 둔 부분이 이 인종간 갈등이었던 것 같은데, 아마 토니-마리아의 사랑은 곁다리이고, 진짜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이 50년대 슬림클리어런스 시대의 이민자 사회의 갈등을 재조명하면서 21세기의 미국 사회를 되돌아보도록 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아마 그 배경적 갈등이 지구 반대편의 한국 관객에게는 크게 와닿지 않았고, 심지어 '로미오와줄리엣'의 플롯을 가져다가 사랑이야기는 별로 안하고 계속 춤추면서 쌈박질 흉내만 내는 모습이 관객들에게 일종의 지루함을 유발했고, 그것이 평단과 관객의 온도차를 만들어낸 원인인 것 같습니다.
두번째로 09년도 뮤지컬이 언어적 측면에서 상당히 센세이셔널 했다는 점을 주지해야 할 것 같습니다. 푸에르토리코 이민자들 대사의 일부를 스페인어로 하고, 심지어 영어대사에서도 히스패닉들의 독특한 영어 악센트를 그대로 한것인데... (21년도 영화가 이걸 참고했을것이라 추정하는 이유입니다) 제 주변의 많은 분들이 영화를 보시고 이 부분을 상당히 불편해 하시더군요. 아마 낮은 평가의 가장 큰 원인 중 하나가 아닐까 싶습니다만, 저도 미국 체류 시절에 브로드웨이에서 공연을 보고 엄청 당황했거든요 (영어도 못알아듣는데 스페인어라니...) 심지어 제가 관람했을때 마리아 역 여배우는 레이첼 제글러처럼 예쁘지도 않았어요. 진짜 키작고 못생긴 히스패닉 여배우가 훤칠한 아이리쉬 남주와 사랑 노래를 할때의 그 이질감이란...
그런데 돌이켜보면 히스패닉 배우와 스페인어 대사를 쓰는것이 오히려 더욱 현실감을 높여주는 장치이기도 합니다. 57년도 당시에 흑인/히스패닉 배우가 브로드웨이에 앙상블 출연도 힘든 시기였으니 주조연 캐스팅은 당연히 불가능한 일이었죠. 61년도 영화를 보시면 샤크파 일원들 중에 흑인/히스패닉 배우는 일부이고, 심지어 백인배우가 얼굴에 검은 분장을 하고 나오는 걸 보실 수 있어요. (80년대 이후 브로드웨이 캐스팅부터 히스패닉 배우 캐스팅이 점점 늘어납니다.) 그리고 언어도 스페인어도 아니고, 히스패닉 악센트의 영어가 아닌 그냥 전형적인 동부 악센트의 영어를 쓰죠. 57년, 61년의 당시에는 그러한 방식이 어쩔수 없거나 당연한 일이었겠으나, 21세기의 상황에서는 오히려 어색하게 느껴지는 부분입니다.
음악이 별로였다는 글도 본거 같은데.. 이건 온전히 개인취향인것 같아서 패스하겠습니다.
(작곡가가 무려 레너드 번스타인이고, 브로드웨이에서는 고전중의 고전으로 취급받는 작품이라..)
참고로 전 음악에 아주 만족했고, 배우들도 좋았습니다.
여주가 너무 노래를 잘해서 남주 노래실력이 묻히는 느낌은 좀 있긴 했습니다만..
개인적으로는 5~60년대 기록영화같은 느낌의 화질도 좋았고
당시 뉴욕의 거리 풍경과 슬럼가의 모습, 클래식 자동차의 등장도 좋았습니다.
무대장치를 재현한 듯한 세트도 좋았습니다.
무대안무를 영화적으로 풀어낸 안무와 카메라워크도 좋았습니다.
흠잡을 데가 있다면 좀 후반부에서 텐션이 좀 떨어지는 듯한 느낌이랄까... 거장 스필버그라면 더 획기적인 방식으로 풀어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너무 연극적으로 풀어낸 것 같아 아쉬웠습니다.
마지막으로 09년 뮤지컬 버전 몇개 올리고 글 마무리 하겠습니다.
09년 토니어워즈 시상식 - 체육관 떼춤 + 토니와 마리아의 첫만남 씬입니다.
그리고 그 유명한 America 입니다. 보라색 옷입은 아니타 역의 카렌올리비오 Karen Olivio는 09년도 토니어워즈에서 여우조연상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마리아가 부르는 스페인어 버전의 I Feel Pretty 입니다(09뮤지컬 초연에서 마리아역을 맡은 조세피나 스칼리오네는 토니어워드 후보에는 올랐는데 상은 못받았네요. 화질 양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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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년도 뮤지컬이 있다는 건 이번에 처음 알았네요
이 또한 시대를 반영한 새로운 각색이었겠죠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