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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기]  파워 오브 도그 (The Power Of The Dog)(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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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1-29 01:00:55



지푸라기 개들의 서바이벌 게임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제인 캠피언 감독 신작 <파워 오브 도그> 는 시대 연도인 1925년과 지명인 미국 몬태나를 명확히 알리는 자막을 삽입한다. 도입부를 제외하면 자막이 삽입되지 않기에 여기서 발생한 호기심이 질문 하나를 만든다. 시공간에 관한 정보를 구체적으로 나타내는 자막을 삽입한 이유가 무엇일까. 이런 자막 넣는 작품이 한둘이 아닌데 <파워 오브 도그> 에만 이런 의문이 떠올랐던게 스스로도 재밌었다. 예시가 하나 있다. 이 작품은 상대가 되지 않을 정도로 본편에 적극적으로 자막을 활용했던 임권택의 시대극 <개벽> 이다. 임권택은 2012년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이뤄진 관객과의 대화를 통해 연출자로서 자막을 다량 삽입한 의도를 설명했다. 당시 GV는 검색해보면 텍스트 자료로 볼 수 있는데 주목할 만한 대목은 아래 임권택 감독의 발언이다.

 

 

"...몇 년도에 무슨 일이 있었음을 일일이 다 기억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때 나라는 이러했고 민생은 이렇게 굴러갔구나 하는 총체적 느낌으로 알아채면 된다는 생각에 자막을 많이 넣었다."



위 발언을 통해 <파워 오브 도그> 도 비슷한 측면으로 생각할 여지가 생긴다. 예고편, 포스터 등 홍보 자료에서는 통상적인 서부극 외피를 지녔다는 인상을 준다. 예고편은 주로 장대한 산맥을 담아낸 롱 샷이나 수십 마리 소떼가 이동하는 모습을 고정된 앵글로 촬영하는 등 고전기 시네마스코프 화면비로 촬영된 작품들에서나 나올 법한 미장센을 강조한다. 무엇보다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지극히 서부극 주인공다운 복장을 고수하는 필립 역을 맡아 예고편 대부분에서 얼굴을 비추고 있다. 그러다 로즈를 연기한 키얼스틴 던스트가 등장하는 샷들이 삽입되자 더는 서부극 특유의 분위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로즈는 의상이나 외모로 보면 2색 테크니컬러 필름 촬영작들에 나올 법한 도회적인 분위기라 서부극에 등장하거나 활약하기에는 어울리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예고편은 남녀 등장인물의 외적인 차이를 부각하며 서부극의 레퍼런스적인 모습을 경계하는 만듦새를 보인다. 본편도 그렇다. 야외 촬영 분량만큼이나 필립과 동생 조지가 사는 고딕 풍 저택 내부에서 진행되는 실내극 비중도 큰 편이다. 작품은 서부극 장르를 다른 측면에서 다루기 위해 장소가 주는 익숙함부터 줄여 나간다. 그래서인지 제인 캠피언이 생각하는 서부는 정소동, 당계례가 연출한 <동방불패> 에서 일월신교 교주 임아행이 주인공 영호충에게 정의한 '강호'와 비슷하다.


 


"하하하. 잘 듣게 영호충. 강호에 사람이 있으면 반드시 불화가 있기 마련이지. 불화가 있으면 반드시 강호도 있게 마련이고. 결국 사람이 있으면 그 곳이 곧 강호이거늘, 어찌 강호를 떠날 수 있겠는가?"



<동방불패> 속 임아행의 대사 중 강호를 '서부'로 치환하면 곧 <파워 오브 도그> 속 세상이 된다. 서부극은 일면 관습적이고 배타적으로 보이는 장르다. 존 포드가 영화연출과 더불어 개인적인 차원에서 애착을 가졌던 모뉴먼트 밸리 같은 곳이 아니라면 성립될 수 없을 분위기를 풍긴다. 그러나 서부극은 생각보다 많은 변용을 허용했다. 미국과 외관이 비슷해 보인다는 이유로 이탈리아 감독들이 자주 찾았던 스페인 알메리아 사막에서도 본토 서부극에 대응하는 수많은 스파게티 '서부극' 이 제작됐다. 자파타 서부극에서 자주 볼 수 있었던 멕시코 사막은 또 어떤가. 서부극은 개척 정신이라는 모토 아래 대자연에 맞서 정착하고 뿌리내린 인간의 모습에서 특유의 무드를 조성한다. 특정 국가나 문화에 국한되지 않고 보편성을 획득할 수 있었던 장르 나름의 방법이었다. 그러나 자연환경이나 장소에 방점을 찍으려는 의도는 아니다. ’자연에 살고 있었던 사람들을 개척' 하는 행위야말로 서부극의 진정한 본질이다. <파워 오브 도그> 역시 몬태나가 배경이지만 그 주에 사는 필립과 조지의 저택이야말로 진정한 영화 속 세상임을 알리고 있다. 그 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개척해야 하므로 서부극이다. 작품은 어느 국가에서 찍었는지, 대자연인지 아닌지 상관하지 않고 사람이 있으면 그곳이 곧 서부라는 장르의 본질을 이해하고 있다. 자막에는 미국 몬태나로 적혀있지만 실제 촬영은 뉴질랜드 오타와에서 이뤄졌듯이 말이다.


 


<파워 오브 도그> 는 필립을 중심으로 두 인물이 얽히면서 이야기를 진행하며 여러 장으로 나눈 구성을 취한다. 전반부는 필립과 함께 목장을 경영하는 동생 조지 (제시 플레먼스) 와 사랑에 빠지는 바람에 험한 일을 겪는 미망인 로즈의 수난사가 다뤄진다. 카우보이 복장을 고수하며 가히 서부의 화신이라 할 만한 필립이 그녀를 괴롭히는 탓이다. 윌리엄 셰익스피어 희곡 속 리차드 3세 마냥 당장이라도 "말을 다오, 말을 다오. 말을 가져오면 내 왕국을 주리라!" 를 외칠 법한 필립은 마초스러움과 용맹함이 같다고 착각하는 남자다. 초반부, 로즈가 조지와 만나기 전에 운영했던 여관에서 식사하는 시퀀스가 대표적이다. 필립은 악기를 연주하며 노는 다른 이용객들이 거슬리자 고함을 치며 험악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그들을 공포에 떨게 한다. 물론 작품 속 시대상에서는 필립보다 탄저병이 더 두려운 존재다. 가축들은 탄저균에 취약해 속수무책으로 죽어 나가는 중이었고 사람들 역시 병에 대한 두려움과 더불어 위생에 신경을 쓰기 시작하던 시점이었다. 필립은 이런 현실조차 영향받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목장 카우보이들을 이끌던 그는 과시라도 하듯 평소 개방파 방주 같은 행색을 유지하며 씻지 않은 맨손으로 수천마리 소들을 거세한다. 이런 필립에게 여자를 비롯해 연약하게 보이거나 남자답지 못하다고 판단되는 존재들은 능욕해야할 대상이다. 자신이 부리는 사람들 앞에서도 동생 조지의 통통한 체격을 문제 삼아 험담을 하는 그의 언변은 행동만큼 자비가 없다. 그런 필립의 행각은 조지와 로즈를 거쳐 코디 스콧-맥피가 연기한 그녀의 아들, 평소 종이로 꽃을 만들고 짐승을 해부하며 분석하는 마른 체격의 섬세한 청년 피터에 이른다. 섬세함 역시 필립이 보기에 남자답지 못하기 때문이다.




필립의 인물형은 다른 감독들이 연출한 스릴러물의 정서를 연상시킨다. 존 부어맨의 <서바이벌 게임> (1972) 과 샘 페킨파의 <지푸라기 개> (1971) (한국에 공식적으로 소개된 제목은 '어둠의 표적' 이다. 그러나 '파워 오브 도그' 와 의미를 비슷하게 맞추고 싶어서 원제이자 공식 제목과 함께 통용되는 제목을 쓰고자 한다.) 가 그렇다. 뉴질랜드 출신인 제인 캠피온처럼 외국인인 영국 감독 존 부어맨은 댐 건설로 수몰 직전인 미국 남부 카훌라와시 강에 래프팅을 하러 온 도시 남자 넷이 정체불명의 산 사냥꾼들에게 살해될 위기에 처하는 이야기를 연출했다. <서바이벌 게임> 초반부에서 주인공들이 탄 자동차가 기름을 넣으러 강가 인근 낡은 주유소에 정차하고 일행 중 한 명인 젊은 날의 로니 콕스가 이 남는 시간에 기타를 연주한다. 이때 주유소 사장의 가족으로 보이는 한 다운증후군 소년이 놀라운 실력으로 밴조를 연주하는 유명한 시퀀스가 등장한다. 소년은 처음 만나는 사람이 연주하는 기타 가락을 금방 따라잡는다. 이 시퀀스는 울창한 자연 풍광 아래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진행되며 추후 주인공들에게 펼쳐질 모험을 기대하게 만든다. 그래서 드러나는 자연의 거친 면모 아래 평범한 사람들이 강간을 당하고 살인을 저지르는 잔혹한 전개를 마주하는 순간 충격이 배가 되는 효과를 만든다.

 

 

* <서바이벌 게임> 속 밴조 연주 시퀀스 *



<파워 오브 도그> 는 밴조를 피아노와 어우러지게 하는 형태로 <서바이벌 게임> 속 연주 시퀀스를 오마주 한다. 로즈는 아들 피터를 의과대학에 보내는 과정에서 남편 조지의 돈을 활용한다. 이를 안 필립은 안 그래도 하찮고 못마땅하게 봐 왔던 그녀를 소에게 들러붙어 피 빨아먹는 쇠파리 같은 존재로 여긴다. 로즈는 조지의 주도로 주지사 부부와 시부모가 목장에 찾아올 일이 생기자 한 때 즐겨 쳤던 피아노 연습에 열을 올린다. 그녀는 조지와 만나기 전에는 아들이 있는 미망인이었고 재혼 후에는 시아주버니 되는 필에게 모욕적 발언을 들은 바 있다. 이제는 시부모님을 처음 상대해야 한다. 자신에게 붙은 수많은 약점들을 극복하고 현 남편과 살 자격을 갖췄음을 증명하고 싶지만 이를 뒷받침할 수단인 피아노 연주가 잘 되지 않는다. 이때 필립은 일부러 존재를 들키지 않은 채 가장 절박한 상황에 처한 로즈의 연주를 밴조로 따라 하면서 그녀에게 조롱과 섬뜩함을 안긴다. 먹잇감을 갖고 놀려는 맹수의 가학적 장난처럼 보일 정도다. 초반부의 피터는 <서바이벌 게임> 속 자연처럼 태고적 위협같다.


 


<지푸라기 개> 의 영향 역시 다른 형태로 체화되어 있다. 해당 작품을 연출한 미국 감독 샘 페킨파는 장르, 소재가 다르거나 현대가 배경일지라도 서부극을 연상시키는 작품을 연출해 왔다. <지푸라기 개> 는 고든 윌리엄스의 원작소설이 존재했던 탓에 영국이 배경이며 현대적 외피를 쓰고 있지만 역시 서부극 에센스가 농축되어 있다. 왜소한 인상을 지닌 미국인 수학자가 영국인 아내와 함께 그녀의 고향인 시골 마을로 이사를 왔다가 야만적인 마을 사람들로부터 강간과 살인을 당할 상황에 직면한다. 그들 모두가 아니라 한 명도 감당하기 힘들어 보였던 수학자 부부, 그 중 특히 남자의 모습을 은유하는 의미로 쓰인 제목이 <지푸라기 개> 였다. 그러나 연이어 인내를 거듭하던 수학자는 마을 사람들이 집을 공격하고 침범하자 이를 빌미 삼아 잠재된 폭력성을 표출하면서 그들을 몰살한다. 수적으로 열세인 주인공들이 그들 기준에서 사악하게 볼 수 있을 다수 세력에 포위되어 위기에 처하는 전개는 서부극 클리셰 중 하나였다. 그리고 샘 페킨파는 세련된 동시에 지나칠 정도로 폭력적인 액션 연출에 일가견이 있었다. 당시 영화계가 그에게 기대했던 부분이 잔혹한 묘사인 만큼 <지푸라기 개> 주인공은 나약해 보이는 외형 속에 잠재된 무한한 폭력성을 화끈하게 분출했다.


 


* <지푸라기 개>의 주인공 더스틴 호프먼 *

 

 

샘 페킨파에게 있어 폭력이란 생애 대부분을 주류 산업과 불화하게 만든 원인인 동시에 주류 안에 포함될 수 있게 해 줬던 방편이었다. 그도 현실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실생활에서 알콜 중독에 시달렸고, 잔혹한 피바다를 펼치거나 여성을 가학적으로 다루었으며, 어린이들을 애새끼로 묘사하는 연출 등, 표현 수위 문제로 틈만 나면 영화사와 편집권을 두고 싸우기도 했으며 비지니스 관계서 불친절하고 괴팍한 모습을 많이 보였다. 평단으로부터 호불호를 양산했음은 물론이다. 그런데 정작 생전의 그는 악명과 유명세를 동시에 안겨준 폭력적인 액션 영화 연출자로만 기억되는 현실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지푸라기 개> 바로 전작이며 사적으로 가장 마음에 들어했던 잔잔한 서부 코미디인 <케이블 호그의 발라드> 같은 작품들이 대표 연출작이 되길 바랐다. 하지만 그 바람은 페킨파 생전에도, 사후에도 이뤄지지는 않는 모양새다. 술에 취해있던 괴팍한 인생은 샘 페킨파의 본성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벗어나고 싶었을지라도 산업적 요구에 의해 유지해야 했거나, 혹은 예술적 비전을 마음껏 펼치지 못하게 하는 산업의 압박으로부터 버티기 위한 수단이었을지도 모른다. <파워 오브 도그> 가 미국 영화산업에서 외부인처럼 존재했던 미국 태생 감독 샘 페킨파와 공명하는 모습은 의외의 흥미를 유발한다. 존 부어맨과는 같은 외지인적 시선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어울려 보이지만 말이다. 필립은 샘 페킨파 연출작에 등장해도 어울릴 인물이다. <파워 오브 도그>가 이야기를 진행하면서 필립이 안하무인에 잔혹하고 혐오스러운 인물이긴 하지만, 섣불리 동정하지 않으면서 그의 내면에 다양한 결이 있다는 점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 결과, 필립은 전체 이야기 구조에서 자연의 법칙인양 태생부터 잔인한 인물이 아니라 잔인해 보이고 싶어 노력하는 인물이 된다. 들키고 싶지 않은 나약함을 감추고자 허세를 부리거나 위악에 가까운 야만적인 행동을 벌인다는 점이 드러나는 것이다.



작품은 필립의 위악을 표현하는 과정에서 그를 괴물처럼 보이게 하려는 연출도 구사한다. 필립이 울창하게 우거진 숲속에서 진흙으로 목욕하는 전반부 시퀀스는 서부극이 아니라 과거 B급 공포물에서 볼 수 있었을 늪지대 괴물 클리셰 수준이다. 그리고 후반부 돌입 전, 필립이 여태껏 감춰왔던 비밀을 피터에게 들켰을 때 그는 강가에서 네스 호수에 사는 괴물 같은 자태로 목욕을 하고 있었다. (배우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실생활에서 찍힌 파파라치 사진이 온라인에서 네스호 괴물 사진과 합성되는 형태로 소재거리가 된 적이 있어 짖궃은 유머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나체 노출을 수위 높게 포착한 감독의 연출이 과하게 느껴지는 구석도 있다. 감독의 전작인 <피아노>나 <여인의 초상> 같은 작품들 생각하면 제 버릇 개 못 줬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 하지만 비밀을 들킨 후 이어지는 다음 장 도입부에서 상의를 벗고 노닥거리거나 일하는 카우보이들의 모습을 촬영한 설정 샷을 마주하면 앞서 필립이 보여줬던 잔인하고 냉정한 성품이 이해된다. 사실 그는 동성애 성향이 있으며, 매 순간 함께 일하는 사람들로 인해 조성되는 섹슈얼한 기운을 참아내고 있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내면에 품은 본성을 숨기기 위해서 어떤 형태로든 과하게 위장을 할 수밖에 없는 인물이 필립이다. 이런 노력이 그에게 함부로 범접할 수 없는 괴물의 이미지를 성공적으로 구축하게 만든다. 밴조를 이용해 로즈를 심리적으로 몰아붙였던 행위는 어떻게 보면 이미지 관리를 위한 메소드 연기였던 셈이다. (친해지고 싶어서 그랬을 수도 있겠지만, 그런 의도로 저지른 행동이라기에는 꽤 섬찟했다.)



그렇다면 퀴어와 관련된 요소는 <파워 오브 도그> 속 세상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 다시 <서바이벌 게임> 과 <지푸라기 개> 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서바이벌 게임> 에는 개봉 당시부터 지금까지 악명처럼 회자 되는 동성 강간 시퀀스가 있다. 래프팅을 하던 네 주인공이 숲속에서 총을 든 산 사냥꾼들과 처음 만난 후 협박을 당한다. 이 과정에서 한 명이 그들 앞에서 돼지를 흉내내며 굴욕을 당하다 끝내 강간까지 당한다. 이 폭력적인 시퀀스는 동성 간에 이뤄졌다는 이유로 퀴어적인 행위로 거론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적절치 못한 분류다. <서바이벌 게임> 속 동성 강간은 수컷들이 짐승보다 더한 방식으로 완력, 혹은 권력 서열적인 면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시도다. <지푸라기 개> 에도 수학자의 아내가 집에 혼자 머무르다가 침입한 마을 청년들에게 강간당하는 시퀀스가 있다. 청년들은 저항하는 수학자의 아내를 폭력과 총으로 굴종시키며 결국 목적을 달성한다. 두 작품을 보고 있으면 한 가지 생각에 이른다. 자본을 비롯한 물질적 요소로부터 멀어진 사회일수록 힘이나 잔인함으로 대표되는 남성성이 상황을 좌지우지 하는데 많은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서부사회라면 두 말 할 필요도 없다. 문득 자막 사용에 대한 임권택 감독의 발언을 다시 떠올린다. 그때 나라는 이랬고 민생이 이렇게 굴러갔다는 말. ‘파워 오브 도그’ 속 1925년의 몬태나는 그런 곳이었다.

 

 


* <서바이벌 게임> 의 네드 비티 (위), <지푸라기 개>의 수잔 조지 (아래) 가 강간 직전 위협당하는 상황 *



퀴어적 요소의 개입은 <파워 오브 도그>가 야만과 개척의 얼굴을 함께 지닌 이중적인 서부시대의 얼굴을 전시하고 고발하는 선 이상으로 나아가게 하는 길이 된다. 작품은 전반부에서 필립에게 시달리는 로즈를 통해 사이코 스릴러의 흐름을 만들다 피터가 재등장하는 후반부에 이르러 동성애를 소재로 새로운 서스펜스를 형성한다. 이는 필립이 비밀을 알게 된 피터를 회유할 목적으로 접근하다 감정적 기류가 조성되는 데서 기인한다. 필립은 피터가 서부에 어울리는 사내가 될 수 있게 말을 타는 법, 가죽으로 올가미를 만드는 법 등 여러 가지를 가르친다. 필립 입장에서 피터가 자신과 비슷한 부류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점은 작품 제목과 비슷한 시퀀스가 재등장하는 순간에 알 수 있다. 필립이 일부러 마초성을 과시하던 전반부에서 자신을 따르는 카우보이들과 함께 전방에 보이는 산을 향해 무엇이 숨겨져 있는지 이야기하는 시퀀스가 있다. 무언가를 발견한 필립과 달리 나머지 카우보이들은 그가 본 형상을 끝내 인지하지 못한다.



후반부에 필립과 피터 사이에서 한 번 더 상황이 반복된다. 이 때 피터는 단번에 산맥에 드리워진 개의 형상을 발견한다. 필립은 지금까지 자신만 알아볼 수 있던 형상을 피터가 인지하자 놀라워한다. 작품은 개 형상을 인지하는 순간이 제목과도 연관되는 상징적인 부분이라 결말부에 피터가 읽는 성경구절을 통해 다시 그 의미를 떠올리게 만들어 주기도 한다. 하지만 굳이 성경의 측면으로 신경쓰지 않아도 상관없다. 놀라워 하는 피터의 모습으로도 마치 홀로 외롭게 살아왔던 괴물이 평생의 동반자를 만났을 때 느꼈을 환희와 비슷해 보이는 식으로 읽히니까.



그러나 피터는 개 형상을 알아볼 수 있는 눈을 갖췄다는 점에서 필립과 같을 뿐이다. 그가 필립에게 접근한 이유는 어머니 로즈를 못살게 만들었으니 복수하려는 목적에서다. 작품에서는 오직 필립만이 권세를 누리거나 많은 추종자를 거느리면서 혼자 서부사회를 이끌어 가는 것만 같다. 그러나 필립에게 짓눌렸을 뿐 목장을 경영하고 유지될 수 있게 실질적으로 노력하는 사람은 동생 조지다. 그와 아내 로즈는 가족이나 다른 주변 사람들로부터 동정이나 호의를 받으며 적절히 인간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들을 비하하거나 모욕하는 필립은 주변 사람들로부터 꺼림칙한 존재가 된 지 오래이며 함께 하는 목장의 카우보이들만 그를 따를 뿐이다. 그러나 카우보이들이 피터를 대하는 행동을 보면 필립 역시 본 모습을 드러냈을 때 똑같은 운명에 처하리라는 점은 불 보듯 뻔하다. 사나운 개처럼 굴지만 실은 지푸라기 같은 존재가 필립인 셈이다. 알고 보면 서부의 상징적인 인물처럼 보였던 그가 가장 어두운 눈과 귀를 가졌으며 고립되어 있다. 반면 지푸라기 같아 보이던 피터는 지독한 개다. 그는 중반 이후 재등장하면서 목장 카우보이들에게 끊임없는 혐오와 성희롱 발언을 듣지만 모욕적 표현들에 대해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는다. 나약해서가 아니라 인내하고 분석하기 위해서다. 피터는 필립으로부터 호의를 받으며 그와 같은 인물들이 만족할만한 행동, 예컨대 가죽을 엮어 올가미를 만들거나 승마를 배우고 발전하는 모습을 보인다. 피터는 숨길 것이 없는 만큼 모자라거나 타인이 보기에 이상하다고 느낄 부분도 거리낌 없이 드러낸다. 이 태도가 필립의 시선에서 어딘가 '퀴어' 해 보이거나, 같은 편으로 회유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착각하게 만든다. 결국 필립은 방심한다.


 

 


<파워 오브 도그> 는 제인 캠피언 감독이 선배, 특히 남자 연출자들의 작품들을 작가적 시선으로 해체하고 재조합한 결과물이다. 그러므로 해체의 답과 재조합의 결과물을 영화, 혹은 역사적으로 남자들 전유물 중 하나였던 서부극으로 만들어질 일은 필연이었으리라. 감독의 연출은 피터를 통해 필립이란 인물을 생물학적 성의 관점 이상으로 탐구할 여지를 남긴다. 이 남자가 동물의 왕국 같은 서부사회에서 특정 위치에 오르기 위해 자신을 어떻게 만들었는지에 관한 것이다. 필립은 더러움, 포악함, 잔인함이야말로 서부사회가 요구하는 남성성이라 생각하며 충실히 흉내 내어왔다. 그래서 피터의 질문에 정체를 들킨 순간 그는 파멸할 일만 남았다. 하지만 동시에 구원이 된다. 필립이 지금까지 지켜왔던 모든 기반을 잃을 수는 있겠지만, 스스로 남성성을 위장하느라 안간힘을 쓸 필요도 없다. 마침내 필립은 안식을 얻는다. 아이러니 하게도 그가 안식을 얻으면서 다른 인물들까지 모두 평온해진다. 필립은 작품 속 수많은 인물들에게 고통을 안긴 만큼 없어져야 할 악당이지만, 말미에 이르렀을 때 그를 향한 작품의 시각에는 의외로 온정적인 구석이 있다. 살아남기 위해 마초적으로 굴었던 모습을 애써 남자다운 본성이라 생각하며 괴물이 된 하드 바디 워너비들은, 남들 눈에 이렇게 애처로운 존재로 비춰지고 있었음을 알기나 할지.

 

 

<파워 오브 도그> 는 기존에 익숙했던 서부극의 위악적 측면으로 바라보고는 장르를 새롭게 써내려간다. 서부를 개척해가는 사람들은 총과 살인, 언어와 신체적 폭력이 일상화된 카우보이들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에게 약자로 취급될만한 인물들이다. 목장을 운영하는 사람이 땅을 개척하고 뿌리내리며, 청결에 신경 쓰고 병균을 개척한다. 그리고 남자답지 못하다며 카우보이들에게 희롱 당하던 사람이 오히려 그들의 우두머리를 ’개척‘ 한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파워 오브 도그‘ 도입부에 등장한 유일한 자막인 1925년 몬태나를 떠올린다. 더 이상 영화에서 바에 들어가 말술을 들이키며 폭력을 일삼거나, 총을 쏘고 말을 달릴 카우보이들의 모습은 연상되지 않는다. 캠피온은 부어맨과 페킨파를 거치면서 가공된 마초 남성성을 탐구하고는 그들이 만든 개척 서부의 오래된 문을 닫는다. 그리고 문은 조지와 로즈, 피터만이 남은 자리에서 다시 열린다. 1925년 몬태나는 새로운 서부의 원년이자 더 이상 마초 카우보이들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선언인 셈이다. 물론 그들의 자리가 없어졌다고 해서 더 낫거나 평화로운 서부가 만들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사람이 있으면 반드시 불화가 있고, 불화가 있으면 반드시 강호도 있을 것이라는 임아행 선생의 정의처럼, 서부도 그런 곳일테니까. 그래서인지 필립이 사라졌음에도 장례식장에서 돌아오는 환한 모습의 로즈와 조지, 그들을 웃으며 바라보는 피터의 모습이 어쩐지 불안하거나 섬뜩하게 느껴진다. 지푸라기 개들이 펼치는 서바이벌 게임은 반복될지도 모른다. 지금은 그 마음이 잠시 침대 밑 어두운 공간에서 잠자고 있을 뿐이다.


 

 

 


p.s.


1) 본문에서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파워 오브 도그>를 보면 이상하게 리차드 도너 감독의 <오멘>이 떠오르기도 했다. <오멘>의 데미안이 개과 포유동물인 자칼의 자식이기도 했고, 2~3편과 달리 천진난만한 아이로서의 모습이 좀 더 부각됐던 1편에서 그 스스로 악마임을 자각하는지에 대해 애매모호한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일까. <파워 오브 도그>를 코디 스콧-맥피가 연기한 피터의 관점에서 본다면 '서부시대의 데미안 탄생기' 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2) 베네딕트 컴버배치는 실제로도 리차드 3세의 후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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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
2022-01-29 17:35:14

방금 보고 정독했습니다.
공짜로 읽기 미안할 글입니다. 준호님 ^^

WR
2022-02-15 16:27:53

좋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쿠우 님. 한 때 DP에서 좋은 게시글을 업로드한 회원에게 돈으로 후원해주는 시스템이 있었던 걸로 기억하고 있는데... 말이죠.. 하하.

1
2022-01-29 17:53:04

 잘 읽었습니다!

WR
2022-02-15 16:28:37

좋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Wkfn77 님.

2
2022-02-08 00:45:50

간혹 있는 이런글들이 디피가 존재하는 이유일 것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WR
2022-02-15 16:29:52

좋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달빛설현 님. 확실히 요즘은 장문 리뷰 올라오는 빈도가 전에 비해 좀 줄긴 했는데, 언젠가 다시 그런 문화가 활성화 되리라고 생각됩니다.

2
2022-02-12 23:16:47

와우! 이래서 디피에 옵니다.

저의 짧은 식견을 넓혀 주는 글이네요.

잘봤습니다.

 

WR
2022-02-15 16:33:31

오르페 님의 감상에 도움이 된 것 같아 기쁩니다. 좋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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