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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놉>: 폭력의 시선을 거둘 때 (스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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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18 00:29:07

*본 글은 본인의 브런치에 쓴 글을 옮겨왔습니다.

 

 2020년대에 UFO는 유치하고 뻔하다는 소리를 듣기 좋은 소재이다. 게다가 UFO를 소재로 한 '호러' 장르를 구현한다는 것은 이쪽 장르에서 상당한 역량을 보여준 조던 필 입장에서도 꽤나 큰 모험이었을 거다. <에이리언> 같은 시리즈처럼 외계생물과 쫓고 쫓기는 혈투를 벌이는 그런 게 아니고, 단순히 UFO 자체로 공포를 구현한다니. 평소 정통 사회파 호러를 추구하는 조던 필이기에, 이 소재에 어떤 정치적인 메시지를 함축시킬지도 궁금했다. 결국 참지 못하고 개봉 당일 아이맥스로 관람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다양한 층위의 메시지가 복합적인 메타포로 얽혀있어 난해하게 다가오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뚝심이 느껴지는 훌륭한 각본을 지닌 영화다. 거기에 극장에서의 경험을 만족시켜주는 훌륭한 영상미, 상상 이상의 서스펜스와 장르적 재미 또한 겸비하고 있다.

 이 영화에서 UFO는 뭐라 딱 잘라서 설명하기 힘든 존재로 그려진다. 우주선보다는 외계 생명체에 가깝긴 하겠다만,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외계인이랑은 거리가 멀다. 그보다는 야생동물에 가까운 인상이다. 실제로 이 영화에서 동물은 가장 중요한 요소일 것이다. 각 챕터는 모두 등장하는 동물(생명체)의 이름이다. 영화의 첫 시퀀스는 침팬지 고디의 얼굴을 비추며 시작한다. TV 쇼의 웃음거리로 소모되던 고디는 스트레스를 참지 못하고 인간들을 무참히 살육한다. 당시 어린 배우였던 리키(스티븐 연)는 탁자 밑에서 숨죽이며 그 살육의 현장을 지켜보고 있다. 고디와 눈이 마주치고, 리키는 죽음을 각오한다. 두려움에 벌벌 떨지만 도망치지는 않고 고디의 눈동자를 마주한다. 그들의 손이 맞닿으려는 찰나, 고디는 경찰들에 의해 사살된다.

 이후 리키는 당시의 기억을 트라우마로, 어떻게 보면 일종의 추억으로 지니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성인이 된 뒤로도 그 현장에 있던 신발을 기념품으로 전시하고 바라보며 당시를 회상하고는 한다. 리키는 자신이 고디를 이해하고 있었다고, 감정이 통했다고 믿는다. 그런 리키에게 설명하기 힘든 거대한 생명체가 찾아온다. 리키는 자신이 그 거대한 생명체와도 교감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렇게 리키는 '진 재킷'의 눈을 마주한다.

 

 영화 전반에 걸쳐서 또 다른 동물, 말이 등장한다. 주인공 남매 OJ(다니엘 칼루야)와 에메랄드(키키 팔머)는 아버지의 말 목장을 운영 중이다. 그들은 말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교감한다. 하지만 할리우드 산업 시스템 속에서, 말들은 언제든지 대체될 수 있는 소모품에 불과하며 생명체로써 존중받지 못할 따름이다. 그럼에도 OJ는 말들을 돌보기를 멈추지 않는다. 생명의 위협을 느낄 때마저 생명을 포기하지 않는다. 이후 OJ가 진 재킷의 행동습성을 파악하고 확신하는 데엔, 말들과 정서적으로 교감해왔던 경험이 깔려있다.

 아직 제대로 언급하지 않은 영화의 또 다른 생명체가 있다. '진 재킷'은 UFO와 같은 외형을 지녔다. 하지만 진 재킷은 겉보기와는 다르게 우주선이 아니라, 그 자체로 하나의 생명체이다. 진 재킷은 무턱대고 생명체를 포식한다. 청각 등 말초적인 자극에 곧잘 반응하는 야생동물이자 포식자이다. 그의 포식은 40명 가까이 되는 사람을 잡아먹고도 멈추지 않는다. 마을과 OJ의 가족의 관점에서는, 그들에게 닥친 하나의 재앙과도 같다. 동시에, 관객의 시선에서는 영화로서의 서스펜스, 스펙터클의 현현과도 같다.

 극 중에서 등장인물들은 이 재난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이거 팔면 돈이 될 거라며. 사람들이 좋아할 거라며. 하지만 재난은 쉽사리 기회를 내어주지 않는다. 진 재킷이 자신의 육체를 렌즈에 투영시킬 때는, 욕망이 발화하고 비로소 순수함만이 남아있을 때다.

 진 재킷의 입은 카메라의 렌즈를 감싸고 있는 후드를 연상케 한다. 이제 영화 역사를 거슬러올라가 보면, 그 옛날 사진들을 이어 붙이던 시네마토그라프의 형상을 닮았다(영화의 극초반, 진 재킷의 입에 주인공 남매의 고고고조부가 찍혔다는 머이브릿지의 활동사진이 영사된다). 그러니까 진 재킷은 재난이자 서스펜스이고, 스펙터클임에 동시에, 카메라다. 진 재킷의 입(렌즈)은 수많은 사람들을 처참하게 섭취하고, 찌꺼기는 가차 없이 내뱉는다. 이 렌즈는 현상을 윤리적인 고민 없이 담아내고 단편적으로 소모하는 우리 핸드폰의 눈이며, 방송 카메라의 눈이다. 더 나아가 서스펜스를 위해 폭력적인 시선을 마다하지 않는 할리우드 카메라들의 눈이다. 지상에서 그 눈을 마주했을 때, 과연 우리는 그 폭력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이 폭력의 시선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영화는 그 질문에 명확한 답을 제시한다. NOPE. 그 폭력의 렌즈를 쳐다보지 말라고. 교만함에 빠져 생명을 쉽게 조종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던 리키는 그 눈을 마주하자 자신의 눈을 감았다. 이해와 교감을 멈추지 않으며 눈을 마주한 OJ와 에메랄드는 렌즈에 진 제킷의 사진을 담을 수 있었다. 그러니까 영화는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정녕 바라보고 싶다면, 충분히 이해하고 교감한 뒤에, 조심스럽게 바라보라고. 그래야 비로소 우리는 렌즈에 현실을 오롯이 담고, 영화를 제대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님의 서명
영화 좋아하는 흔한 20대 공대생입니다. 대학원 2년차
블로그(brunch): https://brunch.co.kr/@samo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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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2022-08-18 01:24:05

다른 부분도 좋지만 마지막 문단의 해석이 특히 인상깊네요. 2회차 관람 때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WR
Updated at 2022-08-18 09:26:53

감사합니다ㅎㅎ 저도 다음 주에 2회차 관람하려고 합니다

2022-08-18 04:15:08

좋은 해석 잘 읽었습니다.

WR
2022-08-18 09:00:46

다양한 층위의 메타포들이 얼기설기 얽혀있어 여러 면에서 해석이 가능한 흥미로운 영화였습니다. 그렇다고 장르적인 재미가 뒤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여러모로 전작들보다 마음에 들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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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18 09:16:21

네 어젯밤에 영화 잘 봤어요. 많은 메타포를 가지고 있어서 이런 영화를 수박을 겉만 핥아먹어보고 맛없다고 할까봐 걱정이 되네요. 숨은 레이어를 없이도 재미있으면 더 좋겠지만(전 재미있었는데 평이 그닥) 말이에요. 좀 음미할 영화같아요. 

WR
2022-08-18 09:28:50

사실 장르의 재미도 부족한 영화는 아니지만, 근본적인 불호의 원인은 메타포로 작동하는 곁가지 플롯들을 관객들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데에서 나온다고 봅니다. 필요없는 이야기라고 느낄 수 있으니까요

2022-08-18 09:53:42

아무 생각 안해도 충분히 재미있는 영화인데 뭔가 다른 것을 기대하고들 가시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또 조동필 감독이 워낙에 오마쥬를 좋아해서 군데군데 다른 영화, 만화 등등 레퍼런스가 많은데 모두가 아는 것들은 아니겠죠 ㅎㅎ

WR
Updated at 2022-08-18 10: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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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18 11:47:41

네, 레이어가 단순한 탑건만 좋아해서 속상해요. 그건 그것대로 맛이고 숨겨놓은 여러 레이어가 있는 놉같은 영화는 두고두고 음미하는 감칠맛의 영화인데.. 수박을 겉만 핥으면서 밍밍하다고 하는 것 같아서 안타까워요.

Updated at 2022-08-18 17:43:56

등장하는 요소들이 서로 잘 붙지 않는다고 느껴지더군요.

이야기에 비해 런닝타임은 긴데 디테일은 부족하고 

초반은 설명이나 묘사가 부족하고 늘어지다가 후반은 얼렁뚱땅이라 이게 참 애매합니다.

나름 낄낄거리며 봤지만 남에게 추천은 못하겠더군요. 

샤말란 생각도 나고 말그대로 놉! 입니다.

WR
2022-08-18 17:44:28

미디어의 폭력, 생명 경시, 이해와 교감, 교만함, 인종차별, 영화의 역사, 기타 등등 너무나도 많은 모티프들이 유기적으로 얽혀있고 어떤 면에서 상충하는 부분들도 많기 때문에 그렇게 느끼시는 바 또한 이해합니다ㅎㅎ 확실히 친절한 영화는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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