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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괴한, 그리고 완전히 이경미 감독의 드라마 보건교사 안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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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0-09-26 16:26:41

처음 티저를 봤을 때 참 컨셉 잘 잡았다, 제목도 좋다, 어쩌면 이게 한국식 생활 히로인물, 황학동 스타일 퇴마물이란 신기원을 마련할지도 모르겠다고 기대감이 들었습니다. 

 

이경미 감독의 영화는 <미쓰 홍당무>는 별로였고, <비밀은 없다>는 재밌게 봤습니다. <미쓰 홍당무>는 인터넷 구석의 조울증 게시판에서 꾸준글 올리는 사람들만 줄창 등장하는 것 같아서 뭔 얘기를 하는진 알겠는데 보는 동안 짜증이 났던 반면, <비밀은 없다>는 장르의 틀 안에서 그러한 감독의 기질이 억제되고 서사의 법칙과 융화됨으로써 좀 더 보편적이면서도 접하기 힘든 독특한 쾌감을 이끌어냈거든요. 

 

어쨌든 그 두 영화 다 이경미 감독 특유의 템포, 호흡이 있다는 것만은 공통됩니다. 보는 사람 뭔가 불편하고 뭔가 저 타이밍에 나오는 게 아닌 거 같고 무의미해 보이는 게 갑작스럽게 길게 펼쳐지거나 디테일은 나타났다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는 그런 기괴한 템포 말이죠. 그리고 <보건교사 안은영>은 장장 5시간 가까이 그러한 이경미 감독 특유의 템포들로 꽉꽉 채워놨습니다. 

 

5시간 가까이 그 템포를 계속 보다 보니, 드디어 깨달음 하나가 왔습니다. 예전에는 잘 안 보였던 박찬욱 감독이 이경미 감독을 서포트하는 이유, 그들 사이의 공통점을 이제야 알겠더군요. 박찬욱 감독 영화들에서도 가끔씩 배우의 연기나 앵글 등이 굉장히 과장되게 어필되면서 영화의 호흡에서 잠시 빗나가며 코미디적인 방식으로 기묘한 테이스트를 불어넣는 장면들이 나옵니다. 그게 바로 이경미 감독의 색채와 맞아떨어지는 부분이더군요. 이경미 감독의 영화들은 그러한 씬들의 극장 상영용 확장판이었구나 싶습니다.

 

아무튼 1화를 봤을 때 조금 기대감이 들었던 것은 디테일적인 부분이었는데, 극초반 부분은 이 드라마가 우에시바 리이치의 만화들이 보여줄 법한 황학동 스타일 퇴마물이 되지 않을까 기대를 갖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이경미 감독은 그러한 디테일과 장르적 쾌감보다는 인물들의 감정의 교차와 서사적 재미를 그다지 주지 못하는 답답한 복선 풀이들에 더 관심이 있는 듯하더군요. 그래서 오밀조밀한 즐거움은 뒤로 갈수록 사라지고 감독 특유의 기괴한 템포가 극 전반을 지배하게 됩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이 드라마가 좋았느냐 하면 저로선 그렇진 않았습니다. 이런 류의 결합들에서 최악이라 할 법한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이 떠오르기도 하더군요. 물론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처럼 B급 문화에 대한 몰이해와는 정반대로 접근한 섬세함이 있긴 하지만 방향성이 비슷해서 그랬나 봅니다. 아무튼 이경미 감독의 작가주의에 방점을 찍고 공감하실 분들은 재밌게 볼 수 있겠으나 좀 더 다듬어진 B급 문화에 기반한 장르적 쾌감과 시리즈적 확장성을 기대했던 사람 입장에선 재미를 찾기 힘들었습니다. 

 

음악은 어디서 많이 들은 퍼커션 스타일이기에 봤더니 역시 장영규 음악감독이더군요. 주제가는 제가 기대했던 이미지를 잘 살린 거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혹시 원작소설부터가 좀 어중간한 면이 있어서 이렇게 된 건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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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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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26 15:53:07

감독의 전작에 대한 사전지식 없이 예고편만 보고 유쾌한 퇴마물을 기대했다가 1화보고 당혹감을 느꼈고 꾹 참고 끝까지 봤습니다만 결론은 5시간 동안 스스로 정신적 고행을 자처한 느낌입니다. 굳이 이런 소재와 장르의 장편 드라마에서 이런 연출과 이런 호흡으로 만들어야 했었나 싶네요. 설마 원작소설도 이렇진 않겠죠..

2020-09-26 16:22:16
앗 그정도 인가요.. 일단 기대를 크게 잡지않고 봐야겠네요;
Updated at 2020-09-26 17:22:50

정세랑님 책 안 읽어봤는데(창피하네요) 좀...실망했습니다. 저도 '척'하는 수준으로 밖에는 안 느껴지네요. 재미 없어요. 근데 분위기는 좋네요.  성아라 역 맡은 배우도 좋고요.

1
2020-09-26 20:01:52

 아...저는 정말 재미있게 보고 있거든요....

2
2020-09-26 20:44:48

핵꿀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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