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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놀라 홈즈]를 보고- 얄팍한 2차 창작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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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29 13:08:41

주말에 아내와 모처럼 신작영화를 감상했습니다.  

 

예고편을 보고 종알종알 떠드는 밀리 보비 브라운 a.k.a. 일레븐과 헨리 카빌 셜록의 신선한 매력을 기대했건만, 그 기대는 큰 실망으로 돌아옵니다. 

 

이 영화의 세일즈포인트는 무엇일까요. 제가 생각할 땐 2가지입니다. 

1. 셜록 홈즈 세계관(feat.영국 빅토리아 시대)에서 펼쳐지는 

2. 신캐릭터(에놀라&유도리아)와 기존 캐릭터들의 앙상블! 인데요. 

이 2가지가 정말 엉망입니다.  

 

먼저 앙상블 부분을 보자면, 많은 이들이 이 2차 창작물에서 셜록은 어떻게 그려졌을까를 궁금해했을 겁니다. 왜냐면 "셜록 홈즈"이니까요. 그리고 주인공은 대담하게도 셜록의 친동생이라는 설정이니까요. 그렇다면 셜록 홈즈가 감초처럼 나오는 다른 매체들과는 한결 더 강한 앙상블을 보여주리라 기대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셜록의 역할? 에놀라를 각성시켜줍니다. 어떻게? 에놀라가 갖고 놀던 장난감을 엄마 베갯속에서 찾아주는 걸로. 놀랍게도 이게 답니다. 우리가 익히 아는, 코난 도일의 작품들과 동호인들에 의해 탄탄히 구축되어있는 셜록의 모습은 본작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그냥 '동생보다 능력이 떨어지는' 평범한 조연으로 그려지죠. 이럴 거면 왜 셜록 홈즈인가요? 

그러나 이 질문에 대해 감독은, 각본가는 대답을 하지 못합니다. 그게 이 영화에 높은 점수를 줄 수 없는 이유지요.  

 

마이크로프트는 성 고정관념이 강하고 지극히 보수적이어서 에놀라를 구속하는 진부한 캐릭터로 묘사됩니다만 어차피 마인크래프트 정도야 뭘로 그려지든 크게 중요하진 않죠. 셜록 캐릭터가 망해버렸는데 마이크로닷 정도야.  

 

앙상블의 한 축인 홈즈 형제가 망가져있습니다. 에놀라와 유도리아의 관계는 괜찮을까요? 

아니요. 이들의 멘티-멘토 관계는 실패했습니다. 초반 30분도 안돼서 이미 완성을 지어버렸는데 결말부에서 달라질 게 있겠습니까? 사건이 시작되기 전에 유도리아는 모든 걸 다 가르쳐줬고 에놀라는 모든 걸 다 배웠대요. 애초에 결함이 없는 최강의 조합이었는데 어디를 어떻게 채울 수 있을까요. 이들의 관계에서 유일하게 빈 부분은 '엄마가 날 놔두고 없어졌어!'였는데 영화의 중반을 넘어가면 튜크스베리 자작 찾는 서브플롯이 엄마 찾는 메인플롯을 잡아먹으면서 엄마와 재회하는 결말부의 임팩트가 확연히 떨어지지요. 

 

그나마 에놀라-튜크스베리 자작 둘의 조합이 괜찮습니다. '여자가 위험에 빠지고, 남자가 구한다'를 성별역전시킨 점이 그리 신선하진 않지만. 그냥 두 배우가 이뻐요. 우리 엘이야 원래부터 귀여웠지만 자작 역의 루이 파트리지의 꽃미모는 경탄스럽습니다. 사심 담아 사위 삼고 싶어지는 외모 에놀라가 이유도 없이 귀족 출신인 그를 업신여긴다든지 하는 이상한 묘사가 거슬리긴 했지만, 모험물로서의 매력이 증발하다시피한 이 영화에 그나마 두 선남선녀 커플이 꽁냥대는 게 위로가 되더군요.

(아이돌스러운 루이 파트리지의 외모)

 

그밖에 찻집 2층에서 뜬금없이 유도하는 유색인종 아줌마가 나오는데요. 이 영화에서는 기존의 똑똑한 역할을 하는 대신 각종 여성 캐릭터들한테 한소리듣는 무능한 남자가 되는 조건으로 출연한 셜록 홈즈한테 "정치에 관심을 가지라"느니 "부끄러움을 알라"느니 하는 뜬금없는 일침들을 날리는 장치로 쓰인 이후 영화에서 분량이 날라갑니다. 제가 생각할 땐 감독/각본가가 인종차별주의자라서 '흑인은 이런 소모품으로 써야겠다'하고 버린 것 같아요. 그러고 보니 작중에서 "쓸모없는 남자"로 지칭된 레스트레이드 경감도 인도계였죠? 가히 PC의 안티테제라 할 법합니다.

 

아무튼 이 정도로 캐릭터도 날아가고 내러티브도 날아가고 딸랑구 재우고 남은 귀한 내 시간도 다 날아가는 영화라 차라리 경비행기 나는 액션 신이라도 담아냈다면 재미라도 남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데드풀처럼 제4의 벽을 넘어 재잘대는 에놀라의 모습은 예고편에서나 재미있었지, 캐릭터가 갈피를 못 잡는 와중에 저러고 있으니 고구마를 먹은 듯하고요. "여자도 할 수 있다", "너 자신을 믿어라" "네가 존중받고 싶으면 네 의견을 큰소리로 말해야 해" 등등의 대사는 적재적소에 쓰이는 대신 '이 영화는 여성서사니까 까먹기 전에 등장인물 통해서 말하게 해야겠다' 식의 퍼레이드라 감동 대신 쓴웃음이 지어집니다. [명량]의 그 유명한 대사, "아 후손들이 우리가 이렇게 고생한 거 알아줄까?" "모르면 후레자식이지~!"를 보는 기분이랄까요.

 

(매력 넘치는 두 배우도 이 곤란한 캐릭터들을 살릴 순 없었다.)

 

정리하면,

셜록 홈즈는 셜록 홈즈 같지가 않고

그렇다고 주인공이 주인공다운 오리지널리티가 부여된 것도 아니며

울림을 주기엔 유치하고

가볍게 감상하기엔 불편한

그런 영화였습니다.

왜 셜록 홈즈였는지, 아직도 알 수가 없네요.

그냥 패러디 캐릭터 하나 만들지. 

 

셜로키언(&홈지언)들에게는 위로와, 

넷플릭스에 이 영화를 판 워너에게는 칭찬을 전하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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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Updated at 2020-09-29 13:38:35

그래도 전형적인 일본애들 이세계물에서나 나올법한 사기캐가 뚝딱 해치워 버리는 전개라 이런 거 좋아하면 괜찮을 거에여

왜냐면 그나마 "아아 소까. 이것은 [추리]라는 것이다" → "스게에에에"같은 기가막히는 전개까지는 안 나왔으니깐여

WR
2020-09-29 13:29:26

맞아요. 약간 이세계물 느낌도 나죠. ㅎㅎ

1
2020-09-29 13:24:29

모두 공감합니다
훨씬 더 흥미로울수 있는 설정이었는데
캐릭터도 추리물로써의 이야기도 수준이하였죠
어린이영화 같다는 생각이었어요

WR
2020-09-29 13:47:01

원작이 아동소설이었나 하는 의구심도 듭니다. 여러모로요.

2020-09-29 13:53:50

애초에 원작이 영어덜트물이죠. 구스범프(를 비하하는건 아닙니다)급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1
2020-09-29 13:38:47

초반 좀 보다가 셋이 모여 노가리 까는 장면에서 껐는데 끄길 잘한듯

WR
2020-09-29 16:45:03

손절 타이밍 무엇...ㄷㄷ

1
2020-09-29 13:48:15

제기준에서 킬링타임도 아까웠던 영화

1
2020-09-29 14:07:18

홈즈에게 굳이 여동생을 붙인 의도부터가 뭐 뻔하죠 ㅋㅋ 뻔한 상상력에 뻔한 메시지 ... 창의적인 아이디어라곤 찾아보기 힘든 따분한 영화였어요 . 그나마 일레븐 때문에 참고 봤습니다

2020-09-29 16:17:12

뭐랄까 넷플릭스 영화는 공짜로 보는거 같은 느낌이 들어 평점을 후하게 주게 되네요.
뭐 이정도면 괜찮네 라고... ㅎㅎ

1
2020-09-29 16:26:43

극장영화였다면 아마 난리났거나 소리소문없이 종영했을 영화죠 

WR
1
2020-09-29 16:48:32

넷플릭스에 팔자고 제안한 워너 담당자는 포상금 두둑이 챙겼을 듯합니다.

2020-09-30 02:27:57

헙..원래는 극장 개봉용 영화였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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