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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BOm]  <워리어> 이소룡의 유산, 중국계 미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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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2-01-24 21:17:53

* 워리어 (2019~) 시즌 1, 2를 보고 쓴 감상기입니다.
 
 
60년대 후반 워너브라더스는 TV 시리즈 <쿵푸>의 주연으로 이소룡을 염두에 두고 있었는데, 당시 아시아 남성에 대한 미국사회의 인식과 이소룡의 영어발음을 이유로 최종단계에서 그의 출연을 무마시킨다. 할리우드 진출의 야망이 컸던 이소룡에게 이는 큰 실망이었고 본인의 아이디어를 담은 기획안 ('워리어'라는 타이틀을 붙였다)을 작성하기도 했지만 결국 실현되지는 못 했다. 수십 년이 흐른 현재 이소룡의 꿈은 딸 섀넌 리의 손에 의해 시네맥스에서 부활하게 됐고, 액션영화와 MMA의 골수 팬인 나로서는 확인해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종합적인 인상
 
워리어는 펄프 액션물 그 자체다. 섹스씬과 격투씬이 시리즈 전반에 넉넉히 배치돼있어 어떤 에피소드를 보더라도 누군가는 섹스를 하고 누군가는 피터지게 싸우고 있다. 그리고 폭력과 섹스로 일순간 집중된 시청자의 관심이 이내 꺼져버리기 전에 신속히 서사를 엮는 작업을 해서, 내러티브 면에서는 비교적 소박한 욕심을 갖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이건 시네맥스 오리지널 시리즈들이 전통적으로 물려받아온 특징으로, 워리어는 자신의 무술철학을 시각적으로 풀어내고픈 욕심이 강했던 이소룡의 유산을 물려받은 작품이라기보다 시네맥스 프로듀서 조나단 트로퍼의 피를 잇는 작품에 가까워 보였다. 
 
그럼과 동시에 재밌는 점은 회차를 거듭해 갈수록 (특히 시즌 2에서) 시대정치극의 향을 풍긴다는 것이다. 작품의 큰 흐름 자체가 1882년 중국인 배척법의 발효 (워리어의 시대배경은 1870년대 후반)를 야기하는 미국 내 중국인 사회 - 백인 사회 사이의 갈등과 이를 이용하려 하는 정치적 움직임의 빌드업을 다루고 있으니, 근본적으로 가벼운 액션물이라고 해도 어느 정도는 그럴 수밖에 없겠다. 
 

 
스토리
 
워리어는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 주민들로 대표되는 중국계 미국인들의 정체성 탐구 여정에 대한 이야기다. 주인공 아 삼은 강력한 무술 실력을 갖고 있으나 정작 싸워야 하는 이유, 자신의 정체성을 모르기에 끌려가듯 하나 남은 가족인 여동생의 자취를 따라 미국에 건너간다. 그리고 단순히 생존을 위해 타인이 요구하는 싸움만을 하다 어느 시점부터는 생존 이상의 것을 갈구하기 시작하는 인물이다. 
 
그의 여동생 마이 링은 과거 중국 지역 군벌 통치자의 아내로서 삶을 강요당해 생존 이상의 의미가 없었던 시절을 수치스럽게 여기고, 미국이라는 새 세상에서 자신의 인생에 대한 완전한 자율권과 차이나타운 전체를 주무르는 권력을 욕망하는 인물이다. 아 삼 주변의 차이나타운 인물들은 대부분 이런 성질을 갖고 있다. 생존 이상의 의미가 있는, 자기 정체성이 확보된 삶을 바라며 미국이 그 이상을 실현할 낙원이 되어주길 꿈꾼다. 그러나 샌프란시스코는 그들의 희망을 정확히 배반하는, 오히려 생존을 위한 싸움을 더욱 치열하게 요구하는 정글이다.
 
중국인 노동자와 아일랜드 노동자 계급과의 임금 경쟁을 중심으로 한 인종차별의 불길은 날이 갈수록 거세지며, 정부적 차원에서 이뤄지는 차별과 멸시를 견디다 못 해 차이나타운 주민들을 지키기 위해 세워졌다는 '통'은 일반적인 범죄집단으로 전락해 이득권 싸움에서 라이벌을 살육하는 데 바쁘다. 
 
대륙횡단철도 건설에 저임금 중국인 노동자, '쿨리'들을 쏠쏠히 이용해먹은 과거는 없었다는 듯, 정치인들은 백인 표를 얻기 위해 백인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빼앗는 중국인들의 입국을 막겠단 공약을 내세워 안티 차이니즈 여론을 부추긴다. 그리고 이 상황 아래 쿨리들은 큰 돈을 벌어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아메리칸 드림을 사는 대신, 고향에 돌아갈 노잣돈조차 받지 못 해 낮에는 고역에 시달리고 밤에는 아메리칸 나이트메어를 꾸며 죽어간다. 
 

 
워리어는 여기서 미국이라는 정글이 생존경쟁에 중국인들만이 아니라 모두를 참여시킨다는 시각을 더한다. 샌프란시스코 아일랜드 커뮤니티의 대장격인 딜런 리어리는 대기근을 피해 미국에 새 삶을 꿈꾸며 건너왔다는, 사실 중국인 캐릭터들과 별 다를 게 없는 이민자 정체성을 갖고 있다. 
 
처음엔 아메리칸 드림을 꿈꿨을 그 역시 아래의 노동자들로부터는 약속한 일자리는 언제 줄 거냐는 압박을 받고, 위의 정치인들로부터는 정치적 입지도 없는 모리배 취급을 받으며 생존경쟁을 하는 데 바쁘다. 새뮤얼 블레이크 시장은 쿨리의 고용으로 이득을 보는 기업들로부터는 중국인을 배척하지 말라는 압박을, 쿨리에 피해를 입는 백인 노동자들과 그들의 표를 얻고 싶은 상원의원으로부터는 그 반대의 압박을 받는다. 빌 오하라 경사는 정의의 기준 없이 경찰과 범죄집단 사이에 서서 상황에 따라 살아남기 좋은 길을 선택해 그들의 장기말 역할을 한다. 
 
이 정글 속 경쟁은 캐릭터들의 입을 빌려 '이방에서 벌어지는 이방인들의 싸움'에 비유된다. 중국인들을 침략자라 부르는 백인들이야말로 아메리카 대륙 역사 전체를 꿰뚫는 관점에서 아메리칸 원주민들을 침략한 이방인들이었다는 것이다. 자신을 위한 정의만이 존재한다고 믿는 이방인들의 나라에서, 중국계 미국인은 여태 미국 땅을 밟은 모든 이방인들처럼 허황된 꿈을 가지고 도착한 또다른 이방인에 불과하다. 하지만 기존의 자신을 버리거나 세상과 자신의 관계를 재정의하고 싶은 이들에게 이방인이란 시작점은 사회적 재탄생의 기회와 같다. 차이나타운의 워리어들은 그래서 미국에서 싸운다. 
 

 
캐릭터
 
워리어의 캐릭터들은 대부분 플롯에서 자기 역할을 겨우 수행하는 데 그치거나 투박하여 특별히 두드러지지 않는다. 아 삼은 자신의 삶의 방식인 격투에 목적을 부여하고 싶다는, 터지기만을 기다리는 폭탄 같은 편리하고 단순한 동기를 가진 캐릭터다. 때문에 동족 중국인들에게 가해오는 미국 백인들의 폭압에 저항하여 차이나타운 커뮤니티 고유의 영웅으로서 사명을 받아들인다는 발전 방향은 조연들의 캐릭터성과 비교해 특별해 보이지 않거나 때론 고루해 보일 정도다. 
 
양심적인 인간상을 추구하고픈 의식은 어렴풋이 존재하나, 세상은 어차피 변하지 않는다는 관념에 찌들어버린 늙은 경찰로서 가지는 관성과 개인적인 가족애 등에 의해 결국 현실에 굴복하는 빌 오하라 경사가 오히려 좀 더 복잡하고 입체성있는 편이다. 워리어에서 볼 만하다 여겨지는 캐릭터들은 이처럼 각 내면에 서로 상충되는 여러 감정, 사고들을 갖고 있는데, 이들도 그저 특정한 틀에 끼워맞춰 양산한 느낌이 드는 만큼 만듦새가 정교하진 못 하다. 
 
특히 리처드 리 경찰관의 경우, 시즌 1에선 흑인 여자친구가 사촌들에게 살해당한 끔찍한 과거를 갖고 있지만 그에 의한 정신적 고통에서 지금은 해방된 것처럼 그려지다가, 시즌 2부터는 갑자기 과거의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 해 마약에 의존하고 경찰 업무에 기이하게 집착하는 면모가 강하게 드러나는 등 그런 문제가 잘 드러나는 캐릭터다. 
 

 
이 시리즈가 캐릭터 관계 묘사에서 확연하게 실패하는 지점이 있다고 한다면 그건 이성관계다. 아 삼은 시즌 1에서 블레이크 시장의 아내 페니를 우연히 곤경에서 구해준 뒤 그녀와 거의 바로 연인관계로 발전한다. 페니가 차별받는 성별과 차별받는 인종의 처지를 동일시해 느끼는 간접적인 동병상련의 감정과 아 삼의 선행에 대해 느끼는 감사함이 시발점으로 작용하는데, 
 
그것이 관계의 초석이 아닌 몸을 섞는 연인으로 발전하기 직전의 단계로 배치돼 다소 급작스러운 전개로 보인다. 또 페니의 동생 소피는 아일랜드 노동자들의 우두머리 딜런 리어리와 연인이 되는데, 일견 악당으로서만 보였던 리어리의 개인사와 입체성을 묘사하기 위한 도구로서 쓰이고 캐릭터 자체적인 동기나 목적의식은 드러나지 않아 그 얄팍함이 더 뻔히 보여진다.
 

 
액션

워리어의 모든 액션씬들은 그 빈도수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으로 높은 수준을 유지한다. 이소룡의 이름을 전면에 내세우는 마샬아츠쇼답게 안정적인 풀샷이 가지는 투명성과 이 투명성이 요구하는 무술안무의 난이도와 복잡성, 탑클래스 아시아 액션영화들에서 보여지는 특유의 경쾌한 리듬을 갖고 있다 (그래도 어쨌든 TV 시리즈 수준임은 감안해야 하고, 서양배우들이 연기하는 액션씬은 좀 둔탁한 리듬이 나온다). 특히 레이드로 유명세를 떨친 조 타슬림이 등장하는 모든 격투씬은 볼 가치가 있다. 아 삼을 연기한 앤드류 코지도 과거 태권도나 무에타이를 수련한 무술가인 만큼 괜찮은 움직임을 보여주는 편. 
 
개인적으론 자신의 무술 철학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것에 강한 욕심을 드러냈고 맹룡과강에서 그 일을 훌륭히 수행했던 이소룡의 영향이 배어나오는 것까지 기대해봤는데, 그런 요소의 전승은 딱히 없었다. 일차원적이지만 깔끔히 다듬어진 격투논리로 씬을 구성하고 난이도, 강도있는 움직임으로 이를 꾸며 어트랙션의 역할에 충실한 정도다. 그외 특징이 있다면 꽤 잔인하다는 것. 뼈를 부수거나 칼이나 도끼로 사지를 절단 훼손하는 장면이 흔하다.
 
 
 
 
번외) 주인공 아 삼이 미국 백인을 할아버지로 둔 혼혈 중국인이라는 설정과 1870년대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이 배경이란 설정은 이소룡의 메모에서 그대로 가져왔단 걸 보면, 70년대 당시 이소룡도 자신의 정체성을 강하게 투영한 주인공으로 아시아계 인종차별에 대한 주제를 나름 진지하게 다루고 싶어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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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2022-01-24 16:14:01 (211.*.*.216)

이거 아마존프라임에 있나요? 못찾겠네요~(글머리 표시를 아마존으로 하셔서...)

WR
2022-01-24 21:19:30

네 있긴 있는데 지역제한 때문인지 pc로는 안 나오는 것 같습니다. 프라임 모바일 앱에서는 보이실 거예요. 저는 앱으로 봤어요. 

2022-01-24 17:10:10

이거 아마존이 아니라 hbomax 일겁니다...

WR
2022-01-24 21:20:51

아마존으로 봐서 일단 그 탭을 썼는데 현재 있는 플랫폼이 hbo맥스니 그걸로 바꾸는 게 맞겠네요. 변경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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