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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근 시인. 이 봄에 난 양조장집 노새처럼 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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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1-05-09 17:07:44


있었을까. 나는 문득 문득 그들의 이름과 눈빛과 손바닥에 머물던 땀의 점도를 잊었다. 나는 늙기로 작정한 경운기처럼 낑낑 늙었다.

살구나무꽃을 보러 갔을 때 당신은 내게 말했다. 작년에 당신은 어디에서 꽃잎을 떨구고 울었나요. 나는 작년에 운 적이 없었으므로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당신은 떠난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우물처럼 늙었다.

이토록 진지한 노화를 바라보는 내 가슴은 조금 더 늙어간다. 마지막 기차를 떠나보낸 후 돌연 폐철로가 되어버린 목행리 철길을 기억한다. 코스모스와 해바라기가 상투적이게도 능숙하게 늙어가던 풍경. 나는 이발소에서 나온 아버지처럼 파랗게 늙어간다. 이 봄에 나는 늙었다. 향림 고개 너머 고단하게 웃던 깨꽃처럼이나 나는 늙었다. 술을 쏟고 얻어맞던 양조장집 노새처럼이나 나는 히힝히힝 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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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을 보다 낯선 이가 있어 흠칫 놀랐던 기억이 있으실 겁니다. 나이가 든다는 건 감성이 딱딱해지는 과정인지 세상사 놀랄 일 드물고 열정이 희미해지며 지난 간 옛 여인들이 떠오르곤 하죠.

다만 시인의 말처럼 상투적으론 늙지 않고 과거에 빠지지 않도록 했으면 합니다.


님의 서명
십리 호수에 서리는 하늘을 덥고
푸른 귀밑 머리에는 젊은 날의 근심이 어리네
외로운 달은 서로를 지키기를 원하니
원앙은 부러우나 신선은 부럽지 않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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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2021-05-09 20:20:06

마침 몇일내로 서점에 방문할 계획인데 류근 시인님 책을 구매해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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