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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5.18이 빨리 확 지나가 버렸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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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1-05-16 20:42:09


5.18이 빨리 확 지나가 버렸으면... 생각하는 분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다른 이슈가 덮이니까.

근데 어떻하죠. 이번에 지나가도 내년에 또 옵니다.
쿠데타 본진과 지지자들이 외면.왜곡한다 해서
아픈 역사가 사라지지도 않을 뿐더러,
청산되지 않은 과거는 더 선명해지지요.

책장에서 오래된 책 한권 꺼내 봅니다.
[김대중 옥중서신]
전두환이 DJ를 내란음모 혐의 씌워 투옥했고,
1980년 8월 14일 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DJ가 유언처럼 쓴 편지의 모음이 이 책입니다.

민주주의의 생명력은 참 대단하고 위대합니다.
적폐세력이 아무리 짓밟고 불어서 끄려고 해도,
몇번이고 총칼 사용하고 언론 동원해 세뇌해도
불꽃이 살아남아 오늘에 이르렀으니 말입니다.

민주주의는 마치 수천.수만 피스 짜리 퍼즐을
힘겹게 맞춰가는 과정 같습니다.

“봐라 봐라. 몇개만 맞추면 그림이 나온다며?”
“지금까지 맡겼더니 한 게 뭐냐?”
“이게 뭐냐? 시간 낭비잖아.”
“민주주의니 개혁이니 외치면 밥이 나오냐?”

이런 비아냥, 선전선동에 휘둘릴 필요 없습니다.
잘하던 것 계속 하면 되고,
몇개 틀리면 고쳐서 다시 맞추면 되지요.
판을 갈아 엎는 우를 범하면 안됩니다.

여나 야나, 여러분이나 내가 지지진영을 떠나 지금 누리는 언론의 자유와 공정한 방역 혜택이 민주주의 발전의 열매입니다.

피흘림과 희생을 바탕으로 한발자국씩 진보를 일궈온 우리 국민을 존경하고 칭찬합니다.

지금 미얀마의 민주주의는 풍전등화 같습니다.
안타깝고 남일 같지 않습니다. 바로 몇년 전 이 땅에도 똑같은 유혈진압 사태가 또 벌어질 뻔 했죠.

[옥중서신] 앞에 붙은 아웅산 수지의 추천사 중
몇줄을 옮기며 글을 마칩니다.

“김대중 대통령 같은 용감한 민주주의 전사가
무수한 역경을 극복하고 국가 지도자가 되는 데
성공한 것은 아직도 자유와 인간의 기본권을 위해
싸우고 있는 우리들에게 희망의 횃불이 됩니다.”
1999.4.23
양곤, 미얀마
아웅산 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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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2021-05-16 17:24:18

전두환과 그 추종자들 옹호 댓글보고 있으면
민주화의 길은 아직 멀어보이네요
심지어 박근혜 계엄령도 이루어 졌으면 하는
댓글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판치고 있다는게
너무 안타깝습니다

WR
2021-05-16 17:26:29

부패세력에 좀붙어 살아온 언론의 세뇌가 얼마나 큰지 수시로 느낍니다.

Updated at 2021-05-16 17:33:23

독립운동에 대한 모욕 뿐 아니라

민주주의와 그 운동에 대한 모욕 또한 강력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봅니다.

무리가 없는 건 아니지만, 지금 한국에선 매우 필요하다고 봅니다. 

WR
2021-05-16 17:32:33

100% 공감합니다

2021-05-16 23:30:42

그렇긴 한데 요샌 또 그런 일 있으면 다른 나라도 참견해서 표현의 자유를 우려한다 및 FTA시 걸고 넘어지고 그러죠... 중국 상대로나 어느 순간 못하게 된거지.

2021-05-16 17:32:09

제일 황당한게 뭐 좀 의논좀 할수 있는거 아니냐는 반응이죠

아니 계엄령하면 자기들은 살수 있대요? 군부대가 누구는 민주당 지지자라 처벌하고 

누구는 국짐당 지지자라고 봐준대요? 이마에 누가 그런거 낙인찍고 다니나요?

그냥 국민이고 나발이고 다 군화발로 밟아버리는거지.

어처구니가 없어서 

WR
2021-05-16 17:34:29

그냥 의논 좀 한거면 떳떳하게 조현천 잡아들이게 협조하고, 황교안 김무성 등 관계자들 자백해야 맞죠.

2021-05-16 17:51:26

그들의 코맨트가 궁금합니다.

WR
2021-05-16 17:52:52

아닌척 못본척 하겠죠

2021-05-16 17:59:46

진짜로 안타까운것은 민주당에 견제가 필요하다면서(요기까지는 이해가 갑니다) 그 역할을 쿠데타로 피를 뿌렸던 자들에게 주고싶어 하는 분들이 있다는 것..

2021-05-16 18:05:00

내 머리에 m16으로 헤드샷을 맞기전까지는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판단하가 쉽지않죠.

지금은 태평성대입니다.

WR
2021-05-16 18:40:52

우리와 사는 세계가 다른가 봅니다

2021-05-16 23:31:41

그러게요. 후자에 대해서는 일부러 눈을 가린 사람들이 적지 않죠 뭐...

반만 (쳐)맞는 말들을 하는...

2021-05-16 18:27:40

그 원하시는 세력은 아니지만....

애초에 전 스스로를 중도좌파라고 믿는 존재이며, 엄밀히 친 민주당세력에 속하긴 할 겁니다. 단 차이점은 역사를 알고, 역사에서 수많은 조직과 세력의 부침을 알고 있으며, 그 근원을 알고, 그렇기에 절대 어떤 특정정치세력/정당도 무조건 지지할 생각이 없으며, 제가 현재 친민주인 이유도, 민주당이 옳아서가 아닌 제 이념이 그나마 부합된다는 판단에 의한 조건부 지지일 뿐, 국민의 힘을 악으로 간주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질문이기도 합니다... DJP연합이라고 아시나요... 김대중 정권의 창출에는 김종필의 지분이 존재하는 것은요... 현재 군사정권의 잔당이 살아남은 것은 정작 김대중의 잘못이 상당하다는 사실은...

.

애초에 김영삼이 집권하며, 과거사청산이란 내용으로 전두환, 노태우 등 군사정권에 관련된 인물 상당수를 제거하였습니다. 김영삼의 집권이 3당합당으로 가능했던 점을 생각하보면, 그들에게는 결국 배신행위였으나, 그들을 처벌하였다는 것 자체는 부정해서는 안 될 겁니다.

이 과정에서 김영삼에게 버려진 김종필은 내각제를 조건으로 김대중과 손을 잡으니 그것이 DJP 연합입니다. 김대중의 새천년민주당, 김종필의 자유민주연합이라는 완전히 다른 사상을 이들이 손을 잡은 것이며, 그 댓가로 김종필은 김대중 정권의 초대 국무총리가 되었으며,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의 연립정권이 그렇게 탄생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자유민주연합의 원내교섭단체의 조건을 맞추기 위해 의원을 밀려주는 촌극도 발생하였습니다... 애초에 노태우 집권에도 그 이유야 어찌되었든 김대중의 단일화 거부 / 단독 출마가 영향을 미친 것이기에 김대중을 저격하는 대표적 비판이 '대통령병'이었습니다... 

 

항상 중요한 것은 현 지도부가 어떠한 행적을 하고 있는가입니다... 그외의 일부 잔당이 어디에 속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 조직의 근원이 악인지, 선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현재의 행보이죠. 일례로 친일파는 실상 개화파 일부세력이 타락한 것이며, 그 근원을 따지면 황당하게 들리시겠지만 '실학'이 튀어나옵니다... (정확히는 외세에 의존하여 개혁을 추구하려하던 자들이 타락한 것이었죠.) 다른 예를 들어보죠, 여말선초의 승리자 태종 이방원... 모두가 인정하는 급진개혁세력이며, 많은 이들이 왕실우선주의자로 평가합니다. 그러나 그 주변 측극 중 하륜은 고려말 대표적 반동세력이었던 이인임의 측근이었으며, 정몽주 등과 함계 움직인 이들 중 하나였습니다. 이방원에게 합류한 권근, 황희 등 많은 이들이 고려정권을 유지하려던 이들이었죠... 그럼 이방원은 반동세력인가요. 고려정권을 유지하고자 했던가요. 아니라는 것 정도는 당연히 아실 겁니다..

역사 이래로 수많은 세력이 존재해왔습니다. 그럼 이런 세력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모두 죽었나요...

아니요... 제거되는 것은 지도부입니다. 그들과 혈연/지연/학연으로 연결되던 이들은 살아남게 됩니다. 이들은 선택해야합니다. 사상이 유사한 세력에 붙던지, 강자에게 야합하던지... 그러나 그들이 합류한 세력은 더이상 같은 세력이 될 수 없습니다. 지도부의 성격이 다르니까요. 이건 현 국민의 힘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부 헛소리를 지껄이는 자들은 어느 진영이던 존재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해당 정당의 결정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면, 그건 생존을 신고하는 철새들의 발악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그건 아무도 듣지 않습니다. 오직 그 진영을 비난하려는 반대진영의 극성분자들이 악용할 뿐.....

 

WR
2021-05-16 18:44:57

상세한 의견 감사합니다.
우리 정치사에 항상 최선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차선이든 차악이든 선택해서 여기까지 왔고,
그 실체란 것도 지나봐야 확인할 수 있고,
그래도 우리나라가 여기까지 온 게 대단합니다.

Updated at 2021-05-17 18:50:21

왠만하면 넘어가려고 했는데 '대통령 병'이란 레토릭이 가시처럼 박히네요.

 

군사정권의 잔당이 살아남은 게 김대중의 잘못 때문이라고요? 

대통령 직선제 이후 단일화에 실패해 노태우가 대통령이 됐지만 총선에서 여당이 과반을 확보하는데 실패하고 여소야대가 됩니다. 단일화 실패의 책임에서 양김 중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겠지만 저는 사실 김영삼에게 좀 더 책임이 있다고 보는 편입니다. 아직 김영삼 보다는 김대중이 정치적 영향력이 클 때였고 (이후 치뤄진 총선에서도 김대중의 평화민주당이 제 1 야당이 되죠.) 당시 중재위 대표들의 증언을 들어보면 마지막 순간 김대중이 양보를 했었습니다. 다만 대권을 가져가는 대신 당권을 달라는 제안을 김영삼이 거절하면서 그게 김대중의 탈당으로 이어졌고요. 아무튼 당시 이미 김종필은 충청을 중심으로 정치세력화 돼 있었습니다. 

 

애초에 김영삼이 삼당합당을 하면서 한국의 정치지형은 망가져버립니다. 

대선에서 노태우가 승리했지만 과반에 실패해 야당의 합의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어요. 그리고 거대한 야당이 주도한 게 유명한 5공청문회 같은 것이었죠. 노무현이란 스타 정치인을 탄생시킨. 사회 전반으로 민주화 열풍이 불었고 정권의 나팔수 역할을 하던 방송들이 일제히 과거를 반성하고 청산한다는 방송들을 내보냈습니다. 소위 노태우를 찍었던 사람들 조차 각종 방송에서 지난 날 독재정권의 만행들이 소개되면서 노태우의 지지율은 하루가 다르게 박살이 납니다. 어부지리로 5년 더 정권을 연장했지만 노태우의 민주정의당에서 다시 대선에 승리할 가능성은 전무했습니다. 

이에 위기의식을 느낀 노태우와 보수 언론은 태세전환을 위해 <합당>을 계획하게 되고요. 원래 이 합당의 계획은 소수 여당을 뺀 야3당과 여당이 합치는 그야말로 국회를 하나로 통합하겠다는 발상이었습니다. 독재로 정치를 시작하는 게 이렇게 무섭습니다만. 아무튼 노태우 측은 제일 먼저 김대중을 찾아가 합당을 제안하죠. 여당이 제 1 야당을 찾아간 겁니다. 하지만 김대중은 일언지하에 제안을 거절합니다. 국민이 만들어준 정치 지형을 정치인들의 야합으로 바꿀 수 없다는 명분이었습니다. 그리고 이후는 잘 알다시피 김영삼과 김종필이 합당에 참여하게 되면서 3당 합당이 이뤄지게 되죠. 호남vsPKvsTKvs충청/강원 등으로 세분화 돼 있던 정치지형이 이 합당으로 호남vs비호남으로 단순화 됩니다. 대통령에 당선 된 김영삼에게 공이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김영삼 때문에 한국 정치는 기괴한 거대 보수정당을 탄생시킵니다. 이른바 같은 당 안에 독재 세력과 민주화 세력이 공존하게 되는 거죠. 한국의 정치지형은 호남을 고립시키고 민주화 독재세력 할 거 없이 지역주의로 고착돼 버립니다. 역사 속으로 사라질 줄 알았던 독재세력은 다시 정치적 부활을 할 수 있게 됩니다. 그것도 당당히 주류세력으로.

 

김대중은 여러번 정치에서 은퇴를 선언했다 다시 복귀하기를 반복합니다. 

독재는 끝났지만 독재자들이 덧씌워놓은 '빨갱이'라는 꼬리표는 계속해서 그의 정치인생에서 약점으로 작용합니다. 실제로 양김 단일화 논란에서도 상대방에 의해 김대중의 약점으로 거론됐었고요. 우습지만 대통령에 당선되고도 그런 공격을 받게 됩니다. 계속해서 실패하는데 계속해서 도전하는 그를 조롱하며 '대통령 병'에 걸려 저렇다는 비아냥이 나오고요. 김대중이 정치활동을 하면서 가택연금만 55번. 6년간 투옥. 국외로 쫓겨나기도 했고 내란죄로 사형을 언도 받기도 하고 납치돼 죽임을 당할 뻔했습니다. 한때 망명생활도 했었고 정치 은퇴도 어려번 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그가 은퇴를 번복한 건 시대의 부름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대선에 출마하기 앞서 망월동 묘역을 찾아 본인의 정치 인생을 혹독한 겨울에 비유하기도 했었고요.

97년 대선 당시에 김대중이 당선될 확률은 전무했습니다. 호남과 수도권을 제외하고는 거의 압도적으로 이회창이 앞서나갑니다. 이에 김대중은 김종필과 JYP 연합을 출범시켜 충청의 표를 가져오려 했습니다. 그나마 좀 비비볼만한 정도의 세력을 모은 겁니다. 하지만 그래도 겨우 상대가 될 정도이지 승리를 장담할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선거 결과는 40:39의 신승이었습니다. 경선 불복으로 따로 나온 피닉제가 없었더라면 이회창이 무난히 대선에서 승리하고 대통령이 됐겠죠. 이런 저런 부작용도 있었고 비판도 따르지만 김대중은 나라의 부도 상황에서 대통령에 취임했고 누구보다 빨리 IMF를 졸업하고 크게 뒤쳐질뻔한 나라의 상황을 바로잡아 놓습니다. 그리고 IT와 문화강국을 바랬던 그의 꿈은 이제야 현실화되고 있고요.

 

독재잔당이 현실 정치에서 아직까지 세력을 부릴 수 있는 이유는 김영삼의 3당 합당이에요.

 

Updated at 2021-05-18 07:47:31

김대중의 잘못'도' 있다입니다. 책임질 부분이 존재한다는 거예요...

 

6월 항쟁후 야권 단일화도 구체적으로 그 과정을 살펴보시길 바랍니다.

김대중의 구속수감, 망명생활, 광주민주화운동 등으로 인하여 그 지지세력에 상당한 타격을 받는 상태였습니다. 반면 김영삼은 자택연금 상태이긴 했으나, 단식투쟁으로 꾸준히 언론에 보도되었고, 이것을 기반으로 야권 자체는 김영삼의 통일민주당 (상도동계) 를 중심으로 재편된 상태였습니다. 또한 이건 김대중이 2등을 하게 된 구도와도 직결되는데, 그 지지층의 차이로 인하여 당시 야권인사들은 노골적으로 김대중에게 양보를 종용하던 상황입니다... (김수환 추기경 같은 이들까지도요...) 무엇이 차이였을까요. 김영삼의 지역은 '부산/경남'이었고, 중도적 보수적 성향으로 인하여 높은 확장성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반면, 김대중의 지역은 호남이었고, 중도 좌파적 성향으로 인하여 확장성이 부족하다는 것이 당시 야권인사들의 판단이었습니다. 문제는 갈등으로 인하여 야권단일화가 불발되면서 발생합니다... 김대중은 자신의 세력을 끌고 탈당 평화민주당을 창설하였으며, 4자불패론이란 설을 제기하며 승리를 확신하는 행보를 보이게 되었죠... 일각에서는 이들의 분열을 전두환/노태우 등이 조장하였다고 설을 말하기도 합니다. 노태우의 당선은 노태우가 먼저 직선제 개헌을 선언하는 6.29 선언을 하고 이를 전두환에게 통보하는 구도를 보임으로써 전두환과는 대립하는 이미지를 얻는 상태였던 있습니다만. (현재 학자들은 6.29 선언을 짜고 친 고스톱으로 봅니다) 실제 대선에서는 김대중보다 김영삼의 득표률이 더 높았습니다. 언급하신 총선은 개념이 다릅니다. 이건 각 지역에 한정된 다수결 싸움이니까요.... 그냥 간단히 가죠. 그 지지지역이 달랐습니다. 김영삼과 김대중은 동일한 경상도를 기반으로 합니다. 경남/경북의 차이일 뿐이죠. 반면 김대중은 호남을 기반으로 합니다. 그래서 총선의 결과는 김대중이 더 높았던 겁니다. 

 

그리고 김대중의 복귀과정을 구체적으로 보시길...

그전에 김종필을 간단히 정리하죠.

김종필이 정확히 누군인지는 아시나요.... 모르실 듯 하니, 구체적으로 설명드리겠습니다.

김종필은 박정희의 조카사위로 육사를 졸업한 5.16 군사쿠데타의 핵심세력 중 하나였으며, 일각에서는 쿠데타를 사실상 주도한 인물로 평가하기도 합니다... 본인은 자신이 설득하여 쿠데타를 밀어붙였다고 하기도 했고요.. 사실 설득 운운은 다소 과장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이후 중앙정보부를 조직, 초대 중앙정보부 부장이 되었고, 박정희의 정당이던 민주공화당을 극비리에 창당, 박정희의 집권을 도운 측근이기도 했습니다. 이후 박정희 정권에서 국무총리 등을 역임하기도 한 명실상부한 박정희 정권의 2인자이자 실세 중 하나였던 인물입니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박정희 사망 당시 김종필이 국무총리직에 머물렀다면 전두환의 쿠데타도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군부와 정계에서 상당한 입지를 가지고 있던 인물이었으니까요.... 김대중은 그 사람과 손을 잡은 겁니다...

애초에 3당 합당후, 대통령이 된 김영삼은 과거사 청산이란 이유로 전두환/노태우/김종필 모두를 토사구팽해버립니다. 광주민주화운동특별법을 제정하였고, 결국 전두환은 후일 무기징역으로 감형되긴 했으나 당시 사형선고를 내리기도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자유한국당은 김영삼 중심의 신한국당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이러한 과거사청산과 이어진 공천학살로 TK 지역의 지지도 가장 낮았던 보수 정당이기도 했습니다. 전두환/노태우에 대한 공식적인 대우가 사라진 시기 역시 이 때입니다... 이후 보수 정당은 철저하게 김영삼 중심으로 재편됩니다... 이회창은 김영삼 정부시절 국무총리이기도 했고, 이후 등장한 보수계 정치인 상당수가 이러한 구도에서 나타난 이들입니다...

당시 김대중은 선거에 패하면서 정계은퇴선언을 한 상태였습니다. 당연히 야권은 다른 인물을 중심으로 재편된 상태였습니다... 그 상황에서 김대중은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하였고 이로 인하여 야권이 분열됩니다. 그것도 선거가 끝나고 한 행위라 사실상 야권의 국회의원을 빼았는 구도였습니다. 이러한 야권분열로 표가 갈렸고, 보수정당이 선전하는 구도가 다시 벌어졌죠. 지역구도역시 다시 고착화됩니다... 그럼에도 성과가 부족한 상태였으니,  김대중은 김종필과 손을 잡았습니다...

 과거사 청산도 여기서 다시 무산되어버렸고요....  길어지니 그만하겠습니다.

 

모든 정치인/정치세력을 구체적으로 찾아보시길 요청드립니다...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2021-05-18 11:51:44

단일화 실패에 양김 모두 책임이 있지만 김영삼에서 책임이 더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위에도 밝혔지만 중재위의 대표중 하나였던 장을병 의원의 회고때문입니다. 마지막에 김대중이 양보를 결정했는데 김영삼이 대권, 당권 모두 가지겠다고 우기는 바람에 단일화가 실패했다고 직접적으로 얘기를 합니다. 

 

그리고 지역주의가 고착되고 김영삼에 의한 과거사 청산이 무마된 게 김대중 때문이란 소린가요?

호남이 지역주의에 고립된 이유가 호남 때문이란 소리네요. 틀렸어요. 전형적인 가해자들의 논리입니다. 김종필을 그렇게 잘 아시는 분이 구구데타 세력과 신구데타 세력 모두와 손을 잡은 김영삼에 대해선 굉장히 후하네요. 그렇게 탄생한 정당이 이후 어떻게 됐는지. 왜 정치 지형이 호남vs비호남으로 고착화 될 수 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이해는 전혀 없고요. 김대중의 정계은퇴로 야당으로 재편되고 있었다고요? 누구요? 이기택 얘기하시는 거에요? 이걸 뭘 어디서부터 얘길 해야되는 건지. 아무튼. 님의 장황한 소리 대부분은 전후맥락을 무시하고 인과를 다르게 잡아서 하는 소리 같습니다. 

 

님이 하는 얘기를 러프하게 정리하면 김영삼이 김종필 노태우와 손을 잡고 정권을 창출했지만 배신을 때리고 과거사 정리를 잘 하고 있었는데 김대중이 팽당한 김종필과 손을 잡으면서 과거서 창산도 무산되고 야권이 분열디면서 보수정당이 선전하는 구도가 됐다는 식이네요. 이 짧은 문장 안에서도 상호 모순이 있다는 게 안보여요? 

 

2021-05-16 19:5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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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
2021-05-16 20:01:14
2021-05-17 11:27:38

 미얀마가 하루속히 평화를 찾기 바랍니다

WR
2021-05-17 11:29:31

미얀마, 태국, 베트남, 홍콩 등의 민주화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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