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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ㅡ 이부영 자유언론 재단 이사장 ㅡ윤석열씨, 정치 그만두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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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1-10-21 21:34:58

https://m.hani.co.kr/arti/opinion/because/1015906.html#cb

“전두환 전 대통령이 군사 쿠데타와 5·18을 제외하고는 ‘정치’는 잘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호남에서도 그렇게 말하는 분들이 꽤 있다”는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의 발언이 나왔다.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국민의힘 후보의 발언이니 그러려니 할 수도 있겠지만 이래서야 우리가 왜 오늘을 살고 있는지 가슴속이 저려왔다. 우리들의 노력이 부족하지 않았나 하는 자괴감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윤석열 후보의 발언은 필자의 개인적 체험에 비춰보면 아무리 생각해봐도 납득할 수 없었다.

최근 필자는 1979년 10·26 사태 이후에 유신헌법의 긴급조치와 계엄령 해제, 언론자유 보장, 정치범 석방, 정치적 피해자의 해직·제적 등의 피해 회복을 요구했다가 계엄포고령 위반으로 전두환 치하에서 복역한 뒤 41년 만에 무죄 확정판결을 받았다. 필자는 전두환 집단의 집권 기간에 겪은 몇 가지 개인적 체험을 들어서 그들이 ‘정치’를 잘했다는 윤석열 후보에게 묻고자 한다.
필자는 1980년 대구교도소에서 수감되어 있는 동안 이른바 삼청교육을 받아야 했다. 그해 초겨울 눈더미를 여기저기 쌓아놓은 연병장에서 국보위(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전두환 신군부가 꾸린 임시행정기관) 몽둥이를 휘두르는 군인 조교들한테 살인적 구타를 당하면서 재소자들은 눈 녹은 진흙탕을 기어야 했다. 한순간 조교들은 눈더미 속으로 파고 들어가도록 명령하고선 엉덩이와 등에 무차별 구타를 가했다. 어느 젊은 재소자가 매에 견디지 못해 벌떡 일어나 항의의 자세를 취했다. 조교들은 전체 재소자를 집합시켜 연병장에 앉혔다. 젊은 재소자를 앞에 불러 세우고 발가벗겼다. 그리고 그의 성기를 지휘봉으로 후려쳤다. 한번 두번 세번, 그는 기절했다. 정치범이라고는 필자 한 사람뿐, 필자 자신도 아무런 항의를 할 수 없었다. 이때의 침묵은 지금도 필자를 괴롭힌다. 그 젊은 재소자는 성불구자가 되지 않았을까, 그의 성기는 엄청 부어올랐었다.

그리고 1981년 2월25일 필자는 삼청교육을 통해 순화되었다는 이유로 전두환의 12대 대통령 취임일에 특별사면으로 석방되었다. 대구에서 서울로 오는 고속버스 안에서는 전두환의 두번째 취임연설이 중계되고 있었다. 그는 대통령 시정방침으로 ‘정의사회 구현’과 ‘폭력으로부터의 해방’을 내세우고 있었다. 감옥 담 안팎은 물론 사회 전반에서 벌어진 폭력과 잔혹행위 그리고 고문은 무엇이었는가.
삼청교육의 체험은 필자로 하여금 민주화운동에 전면적으로 투신하도록 만들었다. 전두환은 체육관 대통령 간선제 선거(1980년 8월27일), 노동·언론·학원 탄압, 남북대결 등의 정책을 밀고 나가면서 민주화운동을 탄압하고 부정했다. 우리 국민들은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 과정에서 박종철·이한열군을 비롯한 수많은 학생과 노동자들이 실종되고 고문·살인 당한 것을 알고 있다. 더 많은 젊은이들과 지식인들이 감옥살이를 한 것도 알고 있다. 그들의 헌신과 희생이 있어서 오늘날의 민주화와 복지국가 그리고 선진국 도약이 가능했다는 것도 안다. 그런데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자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는 전두환의 잘한 ‘정치’를 내세우고 있다. 이런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어떻게 해야 할까. 팔십 나이에 다시 나설 수도 없고 어떻게 해야 할까.

그래도 마지막 한마디는 해야겠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 정치 그만두고 물러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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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2021-10-21 19:37:43

윤석열씨도 정치 그만두고 이부영씨도 입다물고 그러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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