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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이재명의 웹자서전] ep.16 홀로 끙끙 앓던 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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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29 17:40:17

 

악착같이 공부하겠다는 마음으로 도금실에서 락카실로 옮겼다. 락카실은 이중으로 밀폐된 구역이어서 덜 방해를 받았다. 나는 최고 속도로 작업 물량을 끝내놓고 남은 시간 공부했다. 그 시간이 내겐 유일한 도피처였다.

 

그런데 몸이 자꾸 말썽을 부렸다. 두통이 잦아졌고 코가 헐기 시작했다. 락카실은 독성물질이 배출되지 않아 화공약품 냄새가 지독했다. 결국 나는 그곳에서 후각의 반 이상을 잃었다. 좋아하는 복숭아 냄새를 맡을 수 없게 됐다.

 

프레스기에 치인 손목도 통증이 심해지고 있었다. 한 해 키가 15센티나 컸는데, 두 개의 손목뼈 중 성장판이 파손된 바깥뼈만 자라지 못하고 있었다. 팔이 눈에 보일 정도로 뒤틀리면서 밤새 끙끙 앓는 날이 많았다.

 

몸까지 아프니 이러다간 시험을 망치겠다 싶어서 공장을 그만두려 했다. 하지만 공장에선 불량률 낮은 숙련공을 순순히 보내주지 않았다. 결국 시험 한 달 전에 그만둘 수 있었다.

 

4월에 대입 검정고시를 봤다. 결과발표는 한 달 뒤였고 대입시험은 7개월 남아있었다. 7개월 공부해 대학에 붙어야 하는 상황. 마음이 급했다. 빨리 대입학원에 다니고 싶었지만 아버지는 검정고시 결과를 보고 가라고 했다.

 

공장을 알아봤지만 마땅한 곳이 없었다. 손목을 치료하려고 의료보험이 되는 공장도 찾아봤지만 그런 공장은 없었다.

집에서 미적거리고 있으니 아버지는 새벽 3시에 나를 깨워 함께 쓰레기를 치우러 가게 했다. 새벽부터 아침까지 리어카를 밀며 쓰레기를 치우고 오후에는 빈병과 깡통을 골라 고물상으로 팔러 가야 했다.

 

검정고시 발표가 났다. 합격이었다. 내겐 뿌듯한 성취였지만 아버지는 학원에 다니지 않아도 되는 야간 전문대학을 가라고 했다. 그럴 듯한 대학에 들어가 공장을 벗어나려는 내 발버둥이 아버지의 눈엔 가당치 않은 도전으로 보였나 보다.

 

- 아버지에게 학원 보내달라고 해도 직장 안 나간다고 안 보내주고 미칠 노릇이다. 괜히 주먹으로 벽도 쳐보고 머리로 막 받았다. 산다는 사실이 귀찮아진다. - 1980. 5. 16

 

아버지는 자신이 할 일이란 악착같이 돈을 모아 번듯한 집 한 채를 마련하는 것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결국 가족을 위한 일이었고 종일 일하는 아버지가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아들을 응원해줄, 든든한 지원군이 절실했다.

 

아버지가 쓰레기 잔뜩 담긴 리어카를 끌 때 뒤에서 밀던 것은 나였다. 하지만 아버지는 앞만 보고 힘겨운 발걸음을 내딛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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