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역사의 구석구석] 대한제국이 명을 다 했던 1910년 12월 말의 105인 사건
대한제국! 이 멋진 이름을 여러분은 얼마나 알고 계신가요?
부끄럽게도 저는 알고 있던게 거의 없었습니다.
1897년~1910년의 13년간 한반도에서 조선왕조를 이어 군주국의 마지막 불꽃을 불태웠던 나라였으며
광희제(고종)와 융희제(순종)의 2명의 군주가 다스리되 아직 법을 세우지는(입헌군주국) 못했기에
전제군주국으로 분류되기도 합니다.
고종이 아관파천후 환궁했던 1897년도에 광무라는 연호를 정하고 원구단에서 천제에게 상제를 올리고 국호를 대한제국이라 칭했다고 하는데 어렴풋이 배웠던 것 같기도 줄줄이 암기하여 셤을 봤던 기억도 나는 듯 합니다.
불과 110년전 우리의 역사인데 이렇게 무심할 수 있을까 싶어 심히 부끄럽기까지 하네요.
그런데 오늘 글을 쓰려고 했던 것은 대한제국의 역사는 아니고, 대한제국이 일본에 의해 병탄이 되던 해인 1897년 1910년 12월 27일부터 발생했던 사건들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1910년 8월 29일 한일병합조약(경술국치)의 공포
1910년 12월 27일 안명근사건(안악사건)
1911년 1월 신민회사건(105인 사건)
바로 1910년말부터 1911년 초 까지 "**사건" 이라고 불리우던 일들을 모두 묶어 "105인 사건"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발단은 망명중이던 안명근이 독립군을 양성하기 위한 무관학교 건설을 위해 모금활동차 황해도의 부호들을 만나러 잠입하였다가 관계자 전원이 체포되면서 시작 되었습니다.(안명근 사건)
안명근 등을 체포한 즉시 조선총독부는 다시 평안도 일대의 항일지도자와 기독교 세력을 일소시키기 위하여 '일당 60여명이 1910년 12월 27일 주모자 이승훈·안태국의 인솔 하에 압록강철교 준공식에 참석한 조선총독부 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를 암살하려고 했다' 라고 허위의 사건을 조작하고는 1911년 1월 1일부터 신민회 중심 인물 600여명을 체포하였는데 이것이 신민회 사건입니다.
이 사건으로 신민회의 전국 조직은 모두 와해되고, 1심에서 105명 모두 유죄 선고되었으나 항소심에서는 99명은 무죄, 나머지 6명은 유죄가 선고되어 옥고를 치렀습니다.
기독교 인사이자 반일인사로 지목된 이승만은 미국 선교사들의 도움으로 출국, 체포를 모면하였고, 김규식은 이 사건 이후 일제의 꾸준한 회유와 협박을 피해 1913년 차량편으로 만주에 인삼장사 하러 간다는 핑계로 몽골로 망명하였으며, 윤치호는 6년간 수감되어있으면서 받았던 일본의 회유로 인해 독립운동 활동에 소극적으로 변신하였다고 합니다.
독립운동 하며 있었던 사건들이 어디 이것 뿐이었습니까? 그리고 사건이 조작된 일 들 또한 저 당시에만 있었던 일도 아니었겠지요. 하지만 침략자로서 자행되었던 일본의 사법 폭력은 110년이나 지난 지금의 대한민국에서도 종종 자행되어 왔다는 것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요?
110년 전 보다눈 훨씬 정의롭게 운영되고 있으니 그냥 가만히 있으면 된다는 말을 철썩같이 믿고 기다리기만 하면 괜찮을까요?
Veritas liberabit vos.
ἡ ἀλήθεια ἐλευθερώσει ὑμᾶ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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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지는 아니지만 ^^
대한제국이 일본에 의해 병탄이 되던 해인 1897년 12월 27일부터 발생했던 사건들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1910 12 27 로 수정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