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한잔] 메탈리카후기] 펑펑 울어버린 18세 락키드로의 복귀....
안녕하세요 동방전기입니다.
적응안되는 베이비메탈을 어영부영 보내고 엉아들의 신곡으로 화려한 첫 스테이지가 펼쳐집니다
사실 신곡들이 몸으로 반응하기엔 저는 나이가 너무 들었던거 같습니다
그리고 나서 sad but true 를 연주하는데 갑자기 가슴에 무언가가 팍 칩니다
첫소절부터 따라 부르는데 목소리가 안나오고 목이 막힙니다
그리고 감격인지 뭔지 모르는 상태에서 눈물이 하염없이 흐릅니다
펑펑 흐르는 눈물이 범벅되서 사마귀 수술한후 붙인 밴드는 젖어서 이미 나가 떨어집니다
절규인지 감격인지 뭔지 모르는 상태에서 계속 따라 부르는데 갑자기 제가 음악이라는 것을 들은 시간부터 어제 그 공간까지의 시간이 머릿속에 주마등처럼 흘러갑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저는 사운드엔지니어입니다
제가 처음으로 락을 접한게 고등학생때 본조비의 slippery when wet 음반입니다
다시 그전으로 돌아가면 저희집엔 제가 중학교때부터인가 일체형컴퍼넌트가 있었습니다
길거리에서 파는 불법편집 댄스음악만 듣다가 사촌형이 기타를 치는게 너무 멋져 보여서 저는 아버지를 졸라 중2때인가 삼익기타를 한대 사게 됩니다
그 기타로 이루어질수 없는 사랑이나 연가같은 포크성을 혼자 마구리로 독학합니다
그리고 고등하교 올라가서 다시 그 사촌형이 들려준 음악이 위의 본조비 음반의
you give love a bad name입니다 이 음악을 듣는데 가슴이 터질것 같고 당시에 반항스런
저의 마음을 대변하는거 같아서 바로 레코드샵에 가서 이 음반을 사서 계속 듣습니다
다시 그전으로 가서 중학교때부터 급격히 기울던 저의 집 가세에 저는 대학이란걸 포기하고
이공계로 진학합니다 당시에 많은 선생님들이 적극 만류를 했지만 이런 상태로 대학진학을 고집하면서 갖게되는 부모님들의 부담이 가장 먼저 생각이 나니 장남인 제 입장은 확고했습니다.
그래서 당시 서울공고 전자과에 나름 괜찮은 내신으로 입학합니다
고등학교 졸업후 제 나름대로 청운의 큰 뜻은 있었지만 입학 첫날부터 저의 기대는 산산히 무너집니다
당시 공고의 문화는 제가 생각한 학교와는 너무 거리가 멀었습니다
순간 아 이게 아닌데 라는 생각도 들면서 가슴속엔 항상 뭔가 모르는 불안감이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수업도 등안시하고 헐렁한 시간을 보내던 순간 들은게 바로 위 본조비의 음악입니다
저는 그때부터 락음악에 심취합니다 그리고 전 전공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녹음실에
고3 2학기에 취업을 나갑니다
당시 아무 근본이 없던 제가 잘할수 있는건 일찍 출근해서 청소하고 늦게 나오는 거였습니다
그러면서 녹음실에서 차차 인정을 받고 제가 받은 월급으로 집안의 형편을 조금이나마 돕게 됩니다
제가 1992년 10월군번인데 군대가기 전에는 집에 150에서 200만원 정도를 가져다 줄수 있을 정도로
많은 일을 했습니다
제대후 저는 점점 더 인정을 받게 되고 엔지니어라는 직업 특성상 귀에 대한 자극을 철저히 피합니다
이때에 저의 락키드 본심이 사라진거 같습니다
본조비의 첫번째 내한공연을 접했을때도 이런 감동 없이 그냥 무미건조하게 공연을 즐겼고
메탈리카 공연때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그후엔 직업병이 도집니다 시끄러운 곳은 철저하게 피하고 공연장을 가면
소리를 분해하고 장단점을 찾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결국엔 공연을 즐기기 보단 평가를 합니다
그리고 2000년대를 맞이하고 저는 엔지니어로서의 황금기도 보내고 디피도 알게 되고
이래저래 인생사 우여 곡절을 보냅니다
그러면서 어느덧 저는 많이 지친 중년의 남자로 홀로 남았습니다
근데 어제 전 18세당시 첫 락음악을 듣던 저의 심장을 잠깐이나마 찾았습니다
그리고 지나온 시간을 단 한곡의 눈물범벅인 상태로 때창을 따라부르면서
위로하고 반성하고 감사하게 생각했습니다
메탈리카 엉아들 고맙다 ~~~!!!!
다시 열심히 살께~
PS: SAD BUT TRUE 이후엔 안울고 정말 즐겁게 뛰었습니다
그리고 후반부엔 휴식 모드로....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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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사마귀 제거수술 부작용인 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