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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한잔]  뮤지컬 보디가드 라이센스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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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7-01-24 11:08:43

 

더블캐스팅 : 정선아, 박성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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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보디가드]의 뮤지컬 무대화에 대한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했었다. 1990년대 가장 성공한 영화 사운드트랙 판매기록을 보유하고 있으며 가수가 주인공인 극의 특성상 뮤지컬적 재료가 풍부함에도 서구에서도 역시나 그 흔하게 변환되는 영화의 무대화에 대한 가능성이 보이지 않았다. 이 작품이 아무리 뮤지컬적 특성이 부족함없이 뭉쳐 있다 해도 굳이 다른 영역으로 확장할만한 가치가 있을까 싶었다. 물론 로렌스 캐스단 각본, 1990년대 초반의 헐리우드 슈퍼스타였던 케빈 코스트너, 1990년대 팝계에서 일어난 디바 열풍의 시초인 가수 출신의 휘트니 휴스턴이 출연한 1992년작 [보디가드]는 뮤지컬 변환에 적합한 작품이 맞다.

 

휘트니 휴스턴이 본업에서 다진 가수로서의 장기를 살려 헐리우드 신고식을 치룬 이 작품의 사운드트랙엔 1990년대 미국 팝계에서 가장 성공한 싱글이자 지금까지 시도된 리메이크 곡들 중 가장 눈부신 성과를 남기며 돌리 파튼이 불렀던 컨트리풍의 원곡을 압도했던 I Will Always Love You가 있다. 이 곡을 포함하여 휘트니 휴스턴이 영화를 위해 부른 6곡의 곡은 모두 엄청난 각광을 받았다. 미국에서 정식으로 싱글발매가 되지 않아 빌보드의 메인챠트에 오르지는 못했던 Queen Of The Night와 Jesus Loves Me도 요즘 같이 라디오 방송횟수나 유튜브 조회수만으로도 챠트입성이 가능한 기준이었다면 메인챠트의 상위권을 충분히 장식하고도 남았을것이다. [보디가드]의 사운드트랙이 발매됐던 1990년대 초반엔 피지컬 싱글CD의 발매가 없으면 빌보드 규정상 메인챠트에 오르는게 불가능했다.    

 

[보디가드]사운드트랙은 대단한 열풍이었다. 휘트니 휴스턴은 [보디가드]를 위해 달랑 여섯곡을 불렀고 그 중 두곡은 리메이크 곡이었는데도 4개를 싱글발매하여 모두 성공시켰다. 총 13곡이 수록된 [보디가드]사운드트랙에서 6곡을 담당했을뿐인 휘트니 휴스턴의 사운드트랙 기여도가 너무나도 거대해서 이 작품의 사운드트랙은 휘트니 휴스턴의 정규앨범으로도 인정 받고 있다. 그래서 휘트니 휴스턴의 누적 음반판매량엔 지금까지 미국에서만 약 1천 7백만장, 전세계적으로 4천 2백만장이나 팔아치운 [보디가드]의 판매량이 합산되었다. 엄연히 사운드트랙으로 구분하는게 맞고 휘트니 휴스턴은 그래봤자 6곡을 부른것이라 이의를 제기할만한 사항이지만 논란을 잠식시킬 수준으로 휘트니 휴스턴이 부른 6곡의 힘이 압도적이었다.

 

[보디가드]의 사운드트랙 트랙순서가 1번부터 6번까지 휘트니 휴스턴이 영화를 위해서 부른 곡으로 채워졌는데 이게 LP와 테이프 시절엔 A면에만 휘트니 휴스턴의 곡이 몰려 있었다. 당시의 [보디가드]사운드트랙 구매자들은 LP나 테이프의 A면만 들었던 사람이 많았을것이다. 나는 테이프로 [보디가드]사운드트랙 소장을 시작했는데 나 역시도 B면은 거의 듣지 않았었다. 휘트니 휴스턴이 부른 곡들의 장악력이 워낙에 컸기 때문에 그랬던거지만 사운드트랙으로써 [보디가드]는 휘트니 휴스턴이 부른 곡 외에도 트랙순서 7번부터 12번 혹은 13번(미국반과 라이센스반에서 곡수의 차이가 있다.)까지 들을만한 곡이 많다. 뮤지컬에선 영화 [보디가드]에 사용된 곡들 중 휘트니 휴스턴이 부른 6곡만 활용했는데 LP기준으로 B면의 곡들을 대놓고 무시한건 무비컬로 봤을 때 아쉬움이 남는다. 영화 사운드트랙이냐, 가수 개인의 정규앨범으로도 인정받을 수 있는것이냐 말이 많았던 [보디가드]사운드트랙을 기점으로 사운드트랙이라도 [보디가드]처럼 동일인물이 여섯곡 이상을 부른 경우라면 그 인물의 개인앨범으로도 인정 받을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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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가 등장하여 극 내내 적당한 간격으로 노래까지 부르는 [보디가드]는 흔하게 제작되는 무비컬로의 가능성이 풍부한 작품이지만 무비컬로써 만만하게 접근하기엔 휘트니 휴스턴이 이 작품에 끼친 영향력이 너무 커서 그런 부담감으로 휘트니 휴스턴 생전까진 무대화의 시도가 일어나지 않았던것같다. 작품 자체는 별 볼일없는 진부한 공식의 드라마이나 사운드트랙의 영향력 때문에 영화가 독보적으로 인식되었다. 이 작품의 뮤직비디오에 쓰인 영화 클립들 때문에 안 봐도 본 느낌의 영화가 됐다. 별것도 아닌 장면들인데도 명장면처럼 기억됐고 말이다. 영화도 흥행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지만 사운드트랙이 너무 떠버려서 사운드트랙에 묻어간 영화가 돼버렸다. 영화는 골든 라즈베리 최악의 작품상 후보로도 굴욕을 당했다. 골든 라즈베리에선 최악의 남녀주연상 후보, 최악의 각본상 등과 더불어 Queen of The Night가 최악의 주제가상 후보에 올랐었다. 이 작품을 기점으로 당시 대스타였던 케빈 코스트너가 하향세를 타기 시작했다.  

 

대중들도 휘트니 휴스턴의 존재감 때문에 [보디가드]는 휘트니 휴스턴의 [보디가드]로써만 받아들이고 싶었던 마음이 컸을것이다. [보디가드]에서 휘트니 휴스턴이 부른 6곡을 공식적인 경로를 거쳐 다른 배우나 가수의 목소리로 듣는것은 여간 어색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저 한국에서나 미국에서나 휘트니 휴스턴같은 팝디바를 롤모델로 삼은 풋내기 여가수들의 오디션용 곡으로 활용하는것 이상의 영역확장이 불필요해보이는 작품이 영화 [보디가드]였고 그 사운드트랙이 내재하고 있는 힘이었다.

 

이 작품이 무대용 뮤지컬로 각색돼 웨스트엔드에서 2012년 12월에 개막할 수 있었던 과정에는 그해 2월 11일에 약물중독으로 이른 나이에 돌연 사망한 휘트니 휴스턴에 대한 추모열기가 어느 정도 거든 면이 있었을것이다. 물론 뮤지컬이 2012년 12월에 개막한것이기 때문에 기획은 그전부터 진행됐을것이다. 웨스트엔드같은 큰 시장에서 [보디가드]같은 대형뮤지컬을 10개월만에 급조한다는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2012년 12월은 영화 [보디가드]의 개봉 20주년 기념에 맞아 떨어지는 기간이기 때문에(북미에서 영화 [보디가드]는 1992년 11월 25일 개봉했다.) 뮤지컬 기획의 결과물이 이왕이면 이 해를 넘기기 전에 개막하는것이 괜찮았다. 그런데 갑작스러운 휘트니 휴스턴의 사망소식이 겹쳐졌고 예기치 못한 상황의 변화로 무대용 뮤지컬로 전환된 [보디가드]는 의미가 남달라졌다. 갑작스러운 상황의 변화로 애초에 뻔하게 시도되는 무비컬 기획에서 휘트니 휴스턴 주크박스 뮤지컬로 추모형식을 추가로 얹어서 작품의 범위를 확장시켰던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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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트엔드 뮤지컬 [보디가드]는 영화 [보디가드]의 무비컬이자 휘트니 휴스턴 주크박스 뮤지컬 형식을 섞은 작품이다. 그래서 원작과 연관해서 봤을 때는 정체가 불분명한 무비컬이 된 감이 있다. 영화 [보디가드]를 뮤지컬로 만들면서 [보디가드]와 전혀 무관한 휘트니 휴스턴의 정규앨범 수록곡들을 10곡이나 실었는데 극 구성은 영화 [보디가드]에 종속되어 있다. 그래서 뮤지컬 넘버의 흐름이 괴상하게 진행된다. [보디가드]의 주연을 맡았고 6곡의 수록곡을 부른 휘트니 휴스턴의 존재감이 아무리 크다지만 무대용으로 이 작품을 만들면서 원작과 상관도 없는 휘트니 휴스턴 정규앨범 수록곡들을 이어 붙이다 보니 곡 자체는 친숙해도 작품과의 연계성은 엉뚱하게 접목된것이다. 휘트니 휴스턴 주크박스 뮤지컬에 미련이 남았다면 그건 그거대로 별도로 만들고 [보디가드]의 무대용 뮤지컬은 무비컬 기획양상의 테두리 내에서 통제를 하는것이 극의 자연스러운 전개를 유도하는데에 보다 현명한 방법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보디가드]를 제외해도 히트곡이 차고 넘치는게 휘트니 휴스턴의 이력인데 [보디가드]에 수록된 6곡과 휘트니 휴스턴의 싱글 중 달랑 10개만 추려 넘버구성을 짜니 휘트니 휴스턴 주크박스 뮤지컬로 봤을 때는 감질날 뿐이다. [보디가드]는 어차피 무비컬 기획에 갇혀 있으니 [보디가드]사운드트랙을 전부 활용하고 그 중 휘트니 휴스턴이 부른 6곡은 뮤지컬답게 편곡의 가능성을 부여하여 재활용의 기능성을 시험해보는게 좋았을것같다. 미국에서만 450만장 이상의 싱글을 팔아 치운 I Will Always Love You는 댄스 리믹스도 유명하다. 휘트니 휴스턴이 [보디가드]를 통해 발매했던 싱글에 각각 수록된 다양한 버전의 리믹스는 뒀다 뭐하나. 이럴 때 쓰지 않고. 적어도 I Will Always Love You의 댄스 리믹스 정도는 재활용했어야 했다. 아니면 무대용을 위해 신곡 몇개를 추가시켜도 괜찮았을것같고 말이다. 뮤지컬 넘버의 분량이 전체 극의 반 정도로 1시간 정도에 그치고 있어서 13곡이 수록된 기존의 사운드트랙만으로도 충분히 뮤지컬적 기운을 감쌀 수 있는데 휘트니 휴스턴 추모열기에 작품이 너무 조급하게 굴었다. 극을 보기 전에는 익숙한 휘트니 휴스턴의 기존 히트곡들도 수록된다고 해서 기대를 했는데 막상 보고 있자니 기존의 휘트니 휴스턴 히트곡들과 [보디가드]에서 부른 휘트니 휴스턴의 곡들이 얽혀드는 지점이 어색하게 맞물려서 집중을 방해했다.

 

영화 [보디가드]는 1990년대를 상징하는 문화현상의 일부로써 오늘 날까지 회자되고 있지만 영화의 세계적인 흥행과 사운드트랙의 비정상적인 신드롬에 무색하게 극 자체는 상당히 졸작이란것이 중론이다. 스포츠로 머리를 밀고 나온 케빈 코스트너가 멋있는 외모로 나오긴 하지만 연기는 극 내내 뚱한 표정으로 똥폼만 잡아내며 나무토막같다. 그는 신보다 더 위대한것같은 설정의 프랭크 파머 역을 자기도취적인 모습으로 소화하고 있으며 케빈 코스트너 못지 않게 일차원적인 배역해석으로 매우 단순한 연기를 선보인 휘트니 휴스턴도 연기자로서의 가능성을 거의 보여주지 못했다. 까다롭고 오만하며 감정기복이 심한 가수 역인데 당시까지만 해도 사고뭉치 약쟁이인 바비 브라운과 엮인지 얼마 안 됐던 시점이라 모범생 이미지였던 휘트니 휴스턴에겐 도무지 건방진 탑가수 느낌이 안 났다. 당시 이 역에 가장 유력한 후보였던 마돈나가 맡았다면 적어도 역할상으론 그럴싸한 효과는 났을것이다. 프랭크를 유혹하는 레이첼의 교태도 끈적끈적하게 살아났을것이고 말이다.

 

휘트니 휴스턴은 한동안 연기에 욕심을 냈고 마약중독에 빠지지만 않았다면 그녀의 연기경력은 더욱 발전적이었을것이다. 사후에 조연으로 출연한 영화도 개봉했던걸 보면 연기에는 죽을 때까지 미련이 남았던것같다. 그러나 [보디가드]뿐만 아니라 이 후에 출연한 영화들에서도 연기력은 별로 향상되지 않았다. [보디가드]의 성과가 워낙에 남달랐기 때문에 이후에 사운드트랙 작업도 겸한 [사랑을 기다리며]나 [프리쳐스 와이프]같은 헐리우드 영화에서 주연을 맡을 수 있었지만 연기 자체는 늘 밋밋했고 [보디가드]이후에 작품 수를 늘려갔음에도 연기력의 발전이 보이지 않았다.  

 

[보디가드]의 촬영당시에는 휘트니 휴스턴과 케빈 코스트너의 불화, 그리고 백인남자와 흑인여자와의 사랑이야기에서 생기는 사회적 편견 때문에 두 배우의 화학반응도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극 자체의 구성이 너무 엉성했다. 까다롭고 오만한 미혼모 인기 여가수가 과묵한 경호원과 사랑에 빠지는 과정에서 마땅히 일어나야 할 감정전달에 실패한것이 문제였다. 설정이나 줄거리보단 두 배역간의 미묘하게 흐르는 감정전달이 관건인 작품인데 도무지가 두 사람이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는것처럼 보이지가 않는것이다. 케빈 코스트너도 원래 연기는 썩 잘 하는 배우가 아니어서 섬세한 감정연기가 필요한 장면에서는 미흡할 때가 많다. 그가 연기한 [보디가드]의 프랭크 파머는 매사가 심드렁해 보일 뿐이다. 동생에 대한 열등감으로 남몰래 범인과 공모하여 사주하다 오히려 자신이 놓은 덫에 빠지고 죽음에 이르는 여주인공 언니에 대한 묘사나 반전도 예측가능하며 너무 편리하게 설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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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은 안 그래도 엉성한 원작의 구성을 의아하게도 축소시켰다. 보강해도 모자를 판인 원작의 빈약한 구성을 축약시키고 인물과 사건을 단순화해서 이야기는 더 재미가 없어졌다. 원작과 달리 뮤지컬에서 니키는 레이첼에 대한 열등감에 시달리기는 하지만 괴한과 공모하여 동생을 사주하지 않는다. 대신 무대극에선 괴한의 비중을 늘렸는데 단순히 스토커라고만 하고 시도때도 없이 등장은 하는데 대체 왜 레이첼을 위협하는지 알 수가 없다. 정신병적인 문제를 앓고 있는 설정으로 인물의 동기부여를 이해시키기엔 한계가 있다. 삼류 설정스럽긴 하지만 그래도 정확한 동기가 있었던 원작의 설정을 그대로 따오는게 차라리 나았을것같다.

 

레이첼 역이 14곡을 부르고(광고에서처럼 15곡이 아닌) 니키 역이 2곡을 부르며 둘은 장면에 따라서 같은 곡을 나눠 부르기도 하는데 그렇기 때문에 자신도 동생처럼 유명한 연예인이 되고 싶은 열등감에 고통을 받는 언니의 심경을 명확히 전달하기 위해선 동생을 사주하는 언니의 모습이 담긴 원작의 설정이 설득력이 있다. 그래도 친자매인데 너무 막장스럽게 보여서 설정을 바꾼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렇다면 다른 대안을 넣었어야 했는데 언니의 사주는 빠지고 대안도 마련하지 않은 채 그저 이유없이 위협만 가하는 괴한만 남겨두니 드라마의 질감만 무뎌졌다. 대신 뮤지컬은 니키도 레이첼처럼 프랭크에 감정을 느끼는 삼각관계 설정을 추가해 감정만 우습게 뭉개놨다.

 

프랭크가 어쩌다 니키가 가끔씩 노래를 부르는 삼류 바에 방문해서 칭찬 몇 마디 해준걸 가지고 여자로서 자신한테 호감을 갖고 있는것이라고 착각하는것도 어이없다. 거기다 프랭크는 마론 자매의 구애 뿐만이 아니라 레이첼의 홍보담당관 혹은 매니저쯤의 역할을 하고 있으며 게이로 짐작되는 임기홍의 관심도 받는다. 새로운 근무지로 발령난 뒤 프랭크는 단기간에 여자 둘, 남자 한명의 눈길을 사로 잡고 그 중 한명과는 가벼운 데이트 한번에 원나잇까지 가는데 이게 주변에 대한 충분한 상황묘사나 감정처리 없이 행동위주로 전개가 쑥쑥 넘어가다 보니 안 그래도 가볍고 얄팍한 구성이 더 한심해지고 날림으로 처리되어 버렸다. 너무 쉽게 원나잇을 즐기는 남자주인공의 모습 때문에 배역의 근엄하고 청렴한 모습도 흐릿해졌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레이첼 대신 프랭크가 총에 맞은 극적인 장면 뒤에 바로 마지막 장면으로 넘어가는것도 당황스럽다. 원래 원작도 그렇긴 하지만 영화는 인물의 감정변화를 보여주며 전환된데 반하여 뮤지컬은 장면만 이행한다. 상황에 걸맞는 감정의 묘사가 결여된 채 주어진 설정만 겨우겨우 재현하는데 그쳐 결말부의 여운을 남기는데도 실패했다.   

 

웨스트엔드에서 2012년 12월 초연된 이 작품은 [아이다]로 유명한 헤더 헤들리가 [아이다]이후 12년만에 뮤지컬 무대에 복귀했다고 해서 화제를 모았었다. 초연 당시 헤더 헤들리의 휘트니 휴스턴 연기는 호평을 받았다. 웨스트엔드에서 높은 유료 객석점유율을 보이며 흥행에 성공했는데 뮤지컬 기획과 맞물린 예상치 못한 휘트니 휴스턴의 사망과 추모열기가 뮤지컬의 흥행에 적지 않은 도움을 줬을것이다. 아시아에선 최초로 라이센스 공연되는 국내에선 CJ E&M이 웨스트엔드 초연 당시 공동제작사로 참여했기 때문에 비교적 이른 시기에 국내 상륙이 가능했다. 당초 예정대로라면 더 빨리 볼 수도 있었던 공연이다. [보디가드]는 국내에서 2014년 하반기에 투어공연이 예정돼 있었고 2015년에 라이센스로 초연될 계획이었는데 일정이 밀리면서 라이센스는 2016년 하반기에 개막하게 됐고 투어공연은 지금까지도 소식이 없다. 현재 아무 작품에도 출연하지 않고 있는 옥주현이 라이센스 기획이 잡혔을 때부터 여주인공 배역에 가장 유력한 후보였는데 이번 초연에 참여하지 않아서 의외다. 참여하지 않은건지 못한건지 Run To You하면 옥주현인데 당연하게 여겨졌던 [보디가드]의 여주인공 명단에 빠져있어서 의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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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보디가드]는 뮤지컬 극으로써의 매력을 살리지도 못했고 뮤지컬 극에 대한 의욕도 없지만 휘트니 휴스턴의 노래들이 나오는 쇼의 구성은 화려한 즐거움이 있다. 역동적인 군무, 섹시한 의상등 무대적으로 볼거리는 많다. 생전의 휘트니 휴스턴이 보여줬던 촌스럽고 투박했던 라이브 무대와는 달리 비욘세와 제이 로 같은 2000년대 팝계의 진화된 여가수들 퍼포먼스와 육감적인 면모를 연상시키는 무대구성이 흥겹다. 여기에 휘트니 휴스턴의 파워풀한 히트곡들의 친근함이 더해지면서 주크박스 뮤지컬의 쾌감과 매력을 살려냈다. 유연한 몸놀림과 뛰어난 가창력으로 모든 장면을 매끄럽게 소화한 정선아의 노련함도 눈과 귀를 즐겁게 한다. 정선아의 흔들림없는 라이브 실력은 원곡의 음정, 박자 다 거르면서도 관객을 쥐락펴락했던 휘트니 휴스턴의 무성의한 스타파워와 뛰어난 순발력과 달리 프로페셔널하다. 휘트니 휴스턴은 라이브 무대에서 원곡대로 부른 경우가 거의 없었지만 뮤지컬에선 [보디가드]에 수록된 곡들을 원곡의 흐름으로 들을 수 있다.       

 

그러나 화려하고 노련하기만 할 뿐 몰개성적으로 장식된 쇼적인 요소에는 휘발성이 크고 쇼 장면 앞 뒤로 배치된 빈약한 구성이 휘트니 휴스턴 주크박스 뮤지컬로써 히트곡 나열에 그치고 만다. 극의 의무적인 쇼장면 이행이 건성으로 처리된 엉성한 각색과 대조적으로 겉돌아서 그만큼이나 공허하다. 레이첼의 무대에 침입한 괴한의 실체를 조명처리와 느린 장면 묘사로 그려낸 방식은 효과적이었다. 굉장히 오싹했다. 이 장면 외에는 딱히 기억에 남는 장면은 없었다. 전반적으로 활기와 긴장감이 부여된 쇼장면을 벗어나면 무대구성도 엉망이고 집안 내부를 그릴 때는 무대의 3분의 1밖에 사용을 안 해서 답답하다. 프랭크의 별장 장면 등 집안 내부 장면에선 동선도 제한적이고 무대활용에도 둔감하여 대극장 무대공간을 상당히 낭비했다. 원작영화에 대한 예우에서인지 예전에 멕 라이언이 출연한 섹시마일드 샴푸광고에도 나왔던 [보디가드]의 유명한 하얀 대저택의 모습을 응용한 레이첼 집안의 묘사가 원작에 대한 추억을 환기시킨다. 

 

휘트니 휴스턴 곡들은 [보디가드]에 수록된 6곡을 포함하여 총 16곡이 나온다. 휘트니 휴스턴이 취입했던 원곡들이 곡 자체를 넘어서면 곡을 거드는 안무나 의상 등에서의 특징이 약하고 굉장히 낡고 촌스러워서 뮤지컬에선 대부분의 곡들을 노래만 활용했을 뿐 의상이나 안무는 뮤지컬을 위해 별도로 만들어졌다. 휘트니 휴스턴의 옛 뮤직비디오나 라이브 실황을 보면 시대를 감안하고 봐도 기겁할만한 수준이 많다. 동시대 팝계를 활약했던 가수들 중에서 휘트니 휴스턴이 보여준 라이브 퍼포먼스와 뮤직비디오 컨셉, 의상설정이 독보적으로 촌스럽다. 21세기 뮤지컬이 수용하기엔 휘트니 휴스턴이 남긴 전성기 스타파워의 결과물들에서 버거운 요소가 많았을것이다. 노래는 의도적으로 편곡을 자제하여 추모 뮤지컬 형식을 우려냈고 웬만하면 원곡 길이대로 흐른다. 반면에 안무는 전면 수정됐다. I Wanna Dance with Somebody정도의 안무만이 뮤지컬로 변환된 휘트니 휴스턴의 히트곡들중에서 살아남은 경우다. 커튼 콜 때 박성웅도 I Wanna Dance with Somebody의 안무를 팬서비스 용도로 잠깐 보여준다. 니키가 단독으로 부르는 휘트니 휴스턴의 곡은 Saving All My Love for You와 All At Once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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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디가드]는 멜로물인 동시에 연예계의 이면을 다룬 작품이기도 해서 니키와 레이첼이 공동으로 노래를 부를 때면 정선아가 출연했던 [드림걸즈]가 떠오르기도 한다. 정선아의 지난 출연작들과 레이첼 배역에서 기시감이 드는데 의도한것은 아니겠지만 쇼 장면에선 [드림걸즈]와의 유사성을 발견하기가 쉽고 무비컬인 [제너두]에서 올리비아 뉴튼 존이 시도했던 배역을 연기했던 정선아가 역시 무비컬인 [보디가드]에선 휘트니 휴스턴이 성공시켰던 배역을 연기하는 교차점도 흥미롭다.

 

훤칠하고 건장한 박성웅은 그 자체로 보디가드같은 존재감이 느껴진다. 가만히 서있기만 해도 무대가 가득 차는 느낌이다. 박성웅은 남자주인공은 노래를 부르지 않는 뮤지컬인 [보디가드]의 캐스팅 발표 당시 이견이 없는 캐스팅이었는데 건장한 체격 때문에 더할나위없이 배역과도 잘 어울리고 다행이 노래도 없어서( I Will Always Love You를 노래방 장면에서 잠깐 부르긴 하는데 음치설정이라 일부러 우스꽝스럽게 부른다.) 대극장 뮤지컬에 도전하는 경력배우들의 아슬아슬한 긴장감도 묻어 나오지 않는다. 나잇대와 배우 자체의 경력과 위협적인 무게감 덕분에 산전수전 다 겪은 프로페셔널한 경호원의 관록이 느껴진다.

 

스토커로 나오는 이율은 배우의 폭넓은 배역소화력을 떠올려 보면 분량도 적고 노래 한곡도 제대로 부르는게 없어서 낭비됐다. 열등감에 시달리는 니키 역의 최현선이 섬세하고 복잡한 감정연기로 주목할만한 조역 연기를 보여주었다. 최현선이 부르는 휘트니 휴스턴의 노래도 감미롭게 청각을 휘감는다. 배우들의 연기만 봤을 때는 원작영화를 능가한다. [보디가드]로 국한해서 봤을 때 휘트니 휴스턴보다 연기를 못하면 배우생활 접어야 한다.   

 

그러나 주크박스 무비컬의 편견을 전혀 벗어나지 못하는 작품의 뚜렷한 한계와 기획력 부재가 쇼구성의 활기와 배우들의 활약을 갉아먹었다. 추모성 공연의 나열식 히트곡 전개가 의무적이고 기계적으로 처리된데다 원작 구성의 궁색함을 이겨낼 고민을 전혀 하지 않은 안일함에 추억팔이용 주크박스 짜깁기의 효력은 한시간 분량의 1막이 끝나기도 전에 바닥을 드러낸다. 쇼장면에서의 세련된 인공미를 벗어나고 나면 이야기에서 매료시키는 힘이 떨어져서 시종일간 민숭민숭, 싱거울 따름이다. 극의 백미로 써먹으려고 2시간 가까이 뜸을 들이다 터뜨리는 고대했던 I Will Always Love You가 나올 때면 이미 극에 대한 흥미를 잃어버린 뒤라 무덤덤하다. 휘트니 휴스턴 재현도 모사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보디가드]는 화려하긴 하지만 계산적으로 풀어낸 타성에 젖은 주크박스 무비컬 전개로 아무런 감흥이 일어나지 않는 작품이다.

 

 - 지난 여름에 [페스트]를 보고 반년만에 엘지아트센터를 찾은건데 오랜만에 방문하니 늘상 마련돼 있던 무료배포용 씬플레이빌이 없었다. 제휴관계가 종료됐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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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7-01-23 21:28:11

흐악, 장문이라서 칭찬 가득한 내용인줄 알았는습니다만,

마지막 문단의 내용, 그 노래에서, 무덤덤 했다니 ㅠㅠ

2017-01-23 21:52:29

 정선아씨 좋아하는 배우인데...

Updated at 2017-01-23 22:46:35

어제 케이블 티비에서 신세계를 봐서 그런지...

저 포스터를 보고 있자니 박성웅씨가 여자주인공에게 금방이라도 "살려는 드릴께~" 대사 칠 것 같은 느낌이 드네요...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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