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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한잔]  뮤지컬 광염소나타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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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28 18:29:59

 

관람일자 : 2017/2/26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1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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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초연된 창작 뮤지컬 [광염소나타]는 김동인의 동명 단편을 각색 혹은 재해석한 작품이다. 원작은 식민지 시절에 김동인이 중외일보에 연재한 단편소설이다. 1930년 1월 1일부터 동월 10일까지 연재됐다. 한국 문학계에서 유미주의 성향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거론되고 있다. 뮤지컬 [광염소나타]의 제작진은 자꾸 원작의 모티브만 차용했다고 강조하며 단편소설 각색물임을 부정하려 하고 있는데 그렇게 독자적인 이야기 구성으로써 자신 있고 원작의 그늘에서 벗어나고 싶었다면 정말로 모티브만 차용하고 제목도 버렸어야 했다.

 

제목은 유명한 원작 단편의 친숙함을 그대로 재활용하면서 극 구성은 빚진 바 없다고 잡아떼고 있으니 어이없다. 극을 보니 모티브만 차용한 수준이 아니다. 배경 설정이나 등장인물의 배치, 사건의 진행과정 등 원작과 일대 일 비교했을 때 대부분의 구성에서 차이가 벌어지지만 작품의 유미주의적 성향이나 극의 어둡고 우울한 정서는 원작의 흐름과 그대로 일치한다. 원작의 제목과 가장 중요한 파괴되는것에서 얻어지는 미칠듯한 예술적 영감과 광기, 음울한 정서를 가지고 왔으면서 모티브만 따왔다고 엉뚱한 소리를 하면 난감해지는것이다. 이게 어딜 봐서 모티브만 차용한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 이 정도면 각색이라고 하기까진 그렇고 재해석이라고 봐야한다. 예를 들어 고영남 감독의 고전 국산영화인 1979년작인 [광염소나타]도 원작의 배경과 인물설정, 전개를 달리하고 있지만 뮤지컬처럼 모티브만 빌려 온것이라고 둘러대지 않는다. 아무리 뮤지컬 [광염소나타]가 김동인의 동명단편과 무관하고 모티브만 살짝 빌려것이라고 되도 않는 변명을 하여도 김동인의 단편을 무대화시킨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원작에 대한 호감으로 뮤지컬에도 관심이 갔다. 김동인의 극단적인 성향의 [광염소나타]를 어떻게 무대극으로 형상화시킬지 궁금했다. 대학로 소극장 창작뮤지컬에서 여심을 자극하는 남자 배우 세명만 등장하는 스릴러, 국내 소극장 뮤지컬에서 선호되는 흥행 재료로 다져낸 영악한 줄거리, 기시감을 일으키는 인물관계도와 배역 설정 등 대학로 소극장 뮤지컬의 전형적인 수법을 동원한 맞춤형 기획 산물로 보여서 안일하게 느껴졌고 관심 밖의 요소로 널려 있었다.

 

그러나 제작진이 모티브만 차용했다고 발뺌 하면서도 유명 원작 단편의 제목은 그대로 끌어 쓴 김동인의 그림자 때문에 여타 작품들보다는 보다 경쟁력있는 창작 구성으로 여겨졌다. 그래서 나로선 모험이었지만 관람을 결정지었다. 2016 창작산실 기획력이 안정적이고 우수한 작품을 여러편 배출해 냈다는것에서 오는 신뢰도 어딜 가나 반값 할인 예매로 선전되는 이 작품의 관람을 부추키는 큰 요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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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산실 기획으로 선보이는 작품들이 모두 단기 공연이라서 트라이아웃 개념이 짙다. 그래서 정식공연이 아닌 시범공연처럼 인식되고 있다. 뮤지컬 [광염소나타]도 요즘 공연답지 않게 2주짜리 단기공연이다. 시대가 많이 변해서 2주짜리 공연을 정식 공연으로 보지 않는 여유도 생긴것이다. 그만큼 공연장 수가 많아져서 장기공연에 대한 가능성이 열려 있다. 10년 전만 해도 공연기간이 석달 반만 넘어가면 오픈 런으로 홍보됐었다. [광염소나타]의 제작진은 아트원씨어터에서 트라이아웃 성격의 2주 공연으로 초연을 끝낸 뒤 계획했던대로 바로 본 공연을 준비중이다.  

 

본 공연에서 손봐야 할 부분이 많을것이다. 이 상태로 본 공연을 올리겠다가 나선다면 곤란해진다. 그만큼 13일짜리 단기 공연으로 아트원씨어터 1관에서 초연된 [광염소나타]는 구성 곳곳에서 삐걱거리며 위태로운 100분을 견딘다. 김동인의 [광염소나타]를 오늘의 입맛에 맞게끔 해체하고 재해석하는 과정에서 원치 않는 충돌이 생긴듯 싶다. 원작에 대한 가능성을 믿고 창작 뮤지컬 구성으로 차용하기는 했는데 흥행을 염두해 둔 새로운 설정과 원작에서 뿌리내려진 구성 사이에서 타협점을 찾는데 실패했다.  

 

본인이 직접 관여한 살인이나 범죄 현장, 잔인하고 끔찍한 상황에서 음악적 영감을 받는다는 기본 설정은 원작에서 가지고 온것이고 뮤지컬에서 주요 인물로 추가된 J의 친구 S는 다양한 용도로 활용된다. 원작의 교화자 역할도 뮤지컬에서 K보다도 더 중요하게 설정된 S가 수행해야 하는 역할이 된다. 문제는 원작과 줄거리 구성이 판이하게 진행되면서도 원작의 파괴적인 정서를 따르고 있는 작품의 애매한 독자성에 있다. S의 비중이 필요 이상으로 너무 많은데 전체 구성에서 보면 S가 왜 그렇게 많이 나와서 노래도 부르고 대사도 치고 피아노도 연주해야하는지 알 수가 없다는것이다. 전개상 그리 중요하지가 않은데 분량만 많다. 이 작품은 설정상 J와 K로 2인극 구성으로 진행시켜도 되는 작품이다. 근데 창작에 대한 고민으로 고통에 시달리는 J의 열등감을 불러 일으키는 인물로 또 다른 작곡가인 S를 등장시켰고 J와 S의 관계도에 주목한다. 

 

작품에서 관건은 예술혼을 위해 살인충동을 억누를 수 없는 J의 정신병적인 분열과 자기파괴적인 탈선 행위에 있다. 그런데 여기에 분량만 잡아 먹는 S를 등장시켜 동종업계 친구와의 경쟁과 우정 등의 관계를 삽입해 버리니 김경수가 좋은 연기를 선보였음에도 배역은 겉돌고 이야기에도 탄력을 받기는커녕 몰입을 저하시키기 일수다. 쉬는시간 없이 100분간 한번에 이어지는 간소한 분량의 극임에도 체감시간이 그보다 더 긴것은 새로 짜맞춘 줄거리가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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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시대배경을 1920년대에서 IMF의 절망적인 그늘이 묻어 있는 1998년이란 세기말로 바꾸었다면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으로 돌아가 그 당시 젊은이들이 경제난으로 느꼈던 불안감과 위기의식, 세기말의 어두침침한 극단성을 양면적으로 파헤쳐 오늘의 시대를 관통하는 이중적인 효과가 있어야 하는데 시대를 읽어내는 뚝심도 없고 하다못해 J의 엽기적인 행각 속에서 마땅히 파생되어야 할 청년빈곤의 문제나 실업으로 인한 불안정한 심리 표현에도 둔감하다. 시대배경을 요즘도 아닌 1998년으로 바꿔야 했는지에 대한 확신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 보니 시대배경에 따른 공감대 형성에 실패했고 정서적으로 흡수되는 지점도 흐물흐물하다. 그저 조명만 극 내내 어둡게 깔아 작품의 우울한 정서를 대변하고 있는데 이야기가 부실하고 산만한 상태에서 조명의 밝기 조절로 분위기만 조성하려고 하다 보니 보는 내내 답답하기만 했다.

 

그나마 건진건 뮤지컬에서 특히 중요한 음악적 성과이다. 현악기의 선율도 깔끔하며 극과의 밀착감도 좋다. 기립박수 유도의 부담스러운 고음 넘버가 아니라 극의 상황과 인물의 심리에 걸맞게 조절된 음악은 완급조절이 잘 돼 있어서 각 곡의 절정부도 힘있게 무대를 받쳐준다. 극이 스릴러로써 의도한 서늘한 감정과 예민한 기운을 살리는데 모자람없이 청각을 자극시키는 힘이 있다. 주연으로 출연한 세 배우들의 호흡도 훌륭하다.

 

보면서 차라리 원작을 제대로 각색해서 정면 돌파를 하는것도 괜찮지 않았을까 싶었다. 식민지 치하의 경성 시대극은 많은 예술계 종사자들을 매료시키는 요소이다. 왜 제목까지 [광염소나타]를 쓰면서 낭만적으로 편리하게 희석되는 매력적인 시대 배경을 버리고 별로 매력도 없는 1998년의 세기말을 택했나 모르겠다. 배경만 바꿨을 뿐 배경에서 오는 시대의 흔적도 드러내지 못했으면서 말이다. 아예 현재로 옮겼으면 배경요소에서 오는 불만을 제기하지도 않았을것이다. 식민지 시절의 경성 시대극이 흔해서 차별화를 노리고 흔하게 건들지 않는 세기말을 택한것일까? 주인공의 폭주하는 광기를 옮기는데 그 시절 세기말의 기괴한 분위기가 어울리기는 하다. 본 공연을 올려서도 1998년 배경을 고수할것이라면 그 시절 분위기를 읽어낼 수 있는 세기말의 독특한 정서를 개성있게 물들여야 할것이다.

 

 

- 이벤트로 유료티켓 한장당 배우 얼굴로 인쇄된 포토카드 한장을 매표소에서 표를 수령 받을 때 준다고 공지했는데 수량이 다 빠졌는지 나는 못 받았다.  

 

 - 배우들이 피아노를 치는게 흉내인 줄 알았더니 직접 연주한거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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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2017-02-28 18:32:25

다방면의 감상이 많으시네요

전문적으로 글을 쓰셔도 좋을듯 항상 감사합니다.

덕분에 시야가 넓어지네요

2017-02-28 18:32:52
디피의 하월님도 글 잘쓰셨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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