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레이]  [Blu-ray] 그래비티 Gravity

글 : 백준오(junobaek@naver.com)

---

알폰소 쿠아론의 스페이스 스릴러,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과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걸작 는 우주라는 공간이 갖는 '무중력'이라는 모두가 익히 알고 있는 과학적 특성을 섬뜩한 위험 요소로 치환시킨다. 내가 아닌 타자, 즉 그 대상이 외계종족이든 우주 괴물이든 혹은 지구를 향해 돌진하는 소행성이든 다른 무언가와 사투를 벌이는 공간으로서 우주공간을 활용하던 그간의 스페이스 서바이벌 영화와는 조금 다른 시선이다.

라이언 스톤 박사의 위기를 초래하는 직접적인 원인은 러시아가 발사한 미사일에 파괴된 인공위성으로부터 발생된 우주 쓰레기이지만, 이 영화의 실질적인 공포와 스릴을 유발하는 요소는 제목 그대로, 눈에 보이지 않는 (무)'중력'이기 때문이다. '망망대해'라는 익숙한 표현도 부족해보이는 우주 공간에 홀로 남겨진 초보 우주인 라이언 스톤 박사가 온갖 어려움을 이겨내고 지구로 귀환하는 90분이 채 안되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 는 반대의 의미에서 고착화된 장르인 '폐쇄공포' 스릴러들과 완전히 반대의 위치에 놓인 작품인 셈이다.

끝이 없는 우주 공간의 광활함을 공포의 대상으로 삼고 있음에도 이 영화는 이름모를 은하계가 아닌 맨눈으로 지구가 내려다보이는 대기권 바로 위의 우주 공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도 흥미롭다. 평소에 그 고마움을 인지하지 못하는 '중력'이라는 힘이 당연하게 존재하는, 두 발을 딛고 땅에 설 수 있는 지구를 바로 '눈 앞'에 두고 벌이는 우주적 스케일, 아니 진짜 우주 공간 속에서 한 명의 초보 우주인의 사투를 벌이며 펼쳐지는 공간적 아이러니는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치밀한 연출과 그를 뒷받침하는 경이적인 시각효과로 그 감흥이 극대화된다.

(이 것 역시 쉬운 기술은 아니지만) 20분 짜리 디지털 애니메이션에 두 배우의 얼굴만 합성한 시퀀스라고도 할 수 있는 오프닝의 압도적 롱테이크는 감독의 전작 의 롱테이크 장면과 비교하면 기술적 성취 면에서 그리 놀랄만한 것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사실 영화의 진짜 볼거리는 이 오프닝 이후에 벌어지는 결말이 정해진 70분 남짓한 러닝타임을 어떻게 끌고나가느냐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알폰소 쿠아론 감독은 3시간짜리 영화를 만드는 것이 대작의 기본 조건이 된듯한 할리우드에서 이 짧은 러닝타임 안에 여느 블록버스터 못지 않은 시청각적 스펙터클과 모골이 송연해지는 스릴은 물론이고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삶과 죽음에 대한 사유까지 쉬운 화법과 효율적인 연출로 멋지게 담아냈다.

Menu Design

영상 & 3D

평균 비트레이트 수치만 보면 워너 타이틀답게 아주 높은 편은 아님에도 전체적으로 매우 뛰어난 화질을 보여주고 있어 효율적인 트랜스퍼로 블루레이 영상이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 65mm 코닥 필름과 알렉사 디지털 카메라의 조합에 방대한 분량의 컴퓨터 그래픽이 여느 디지털 애니메이션 수준으로 사용된 작품이기에 순수 실사 촬영 영화와는 화질을 평가함에 있어 조금은 다른 기준으로 바라봐야 하겠지만, 이같은 까다로운 악조건(?) 속에서도 주목할만한 1080p 영상을 보여주고 있음은 분명하다.

필름 촬영 시퀀스와 디지털 카메라 시퀀스 그리고 구분의 의미가 모호해질 정도로 정교한 풀 C.G 시퀀스 간의 위화감을 최소화 하는 데에 많은 중점을 둔 본 영화의 영상은 그저 티없이 깔끔하고 투명하기만 한 성향보다는 아날로그 촬영의 질감을 충분히 강조하면서도 디지털 촬영의 기술적 수혜를 제대로 살려 완성한 '디지털 3D 영화'의 결정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마치 바닷속 심연과도 비유되는 어두운 우주공간을 주요 배경으로 하는만큼 진중하게 가라앉은 블랙 레벨과 대조적으로 강조되는 하얀 우주복, 그 중간단계의 계조표현 등은 1080p 미디어인 블루레이의 한계를 고려하면 대체적으로 '최선'에 가까운 화질이라고 평가할 만 하다.

해상력 측면에서는 파손된 우주정거장의 디테일한 세부묘사나 주기적으로 화면을 채우는 자잘한 우주 잔해 등을 볼 때 아무래도 대화면에서는 4K 영상을 갈망하게 되는 부분이 있지만, 2D보다는 3D 감상이 매우 중요한 이 영화에서 체험의 연장선인 '입체감' 쪽이 화질보다 비중있게 강조되는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런면에서 블루레이의 3D 효과는 매우 만족스럽다.

극장에서 이미 본 사람들이 많겠지만 의 3D 효과는 대놓고 원근감을 극대화시키는 성향과는 거리가 멀다. 화면 밖으로 튀어나온다기보다는 화면 안쪽으로 들어가는 깊이감이 더 강조되어 있어, 어떤 이들에게는 DEPTH의 폭이 다소 좁은게 아닐까 싶지만 이같은 성향은 크로스토크를 최소화 하여 눈의 피로감을 저감시키며 결과적으로 영화자체에 대한 몰입감을 향상시킨다.

3D 영상의 레이어는 크게 3개 층으로 분류되는데 인물, 우주물체, 우주 배경이 그것으로 각각의 레이어는 화면 속 상황에 따라 적정한 원근감을 벌리고 좁히며 충분한 거리감을 느끼게 한다. 특히 극장에서 본인을 포함한 많은 관객들이 그랬듯 우주 파편이 화면 정면으로 날아오는 장면은 이미 예상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블루레이를 보면서도 눈을 깜빡이게 된다.

이제 사물이 많이 돌출되어 보인다는 것만으로 3D 효과의 탁월함을 논하는 시절은 지났다. 3D 영화는 이제 더 이상 새롭고 신기한 기술이 아닌 익숙한 영화 감상 방식의 하나가 되었고. 오히려 어떤 이들은 3D 영화가 작품에 대한 몰입을 저해한다고도 말한다. 그러나 는 절대적으로 3D 영화로서의 가치가 매우 중요한 작품이며, 3D 블루레이 디스크는 이같은 영화적/기술적 장점을 극장에서와 마찬가지로 잘 살리고 있다. 당신이 3D 시스템을 갖췄다면 굳이 이 영화의 2D 버전 디스크는 꺼내지 않아도 될만큼.

음향

사실 이 영화는 음향에 대한 비중이 적을 것 같으면서도 절대적이다. 모두가 알고 있듯 우주 공간에는 소리가 없으며, 나 속 우주 전쟁 장면의 음향은 영화적 장치일 뿐이다. 그렇다고 의 우주 장면에서 '소리'가 없을 수는 없기에, 제작진은 단발적인 음향 효과를 최소화 하여 대부분의 관객들이 경험해볼 수 없었던 현장감을 살리면서도 영화적 연출 양 측면을 적절히 타협한 디테일한 음향 정보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있다. (실제로 알폰소 쿠아론은 앞서 존재하던 몇몇 영화에서 힌트를 얻어 의 영화 전체 사운드를 아예 '무음'으로 처리하려고도 고려했었다. 이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부가영상 중 'Complete Silence' 참조)

의 음향적 묘미는 여기저기서 꽝꽝 터지는 사운드 효과로 승부하지 않는다. 이 영화에서 음향 디자인이 가장 복잡한 시퀀스는 정작 우주 장면이라기보다는 지구 대기권으로 진입하는 마지막 장면인데, 소리가 존재할 수 있는 영역으로 바뀌면서 '마침내' 들려오는 파열음과 각종 기계 장치, 화염 소리 등이 그것이다. 1인칭 시점의 장면에서 라이언 스톤의 숨소리와 심장 박동 소리만을 강조하는 최소의 효과도 최대의 효율을 얻고 있다.

그 외에는 우주 공간의 다양한 소리의 조합보다는 앰비언스, 즉 분위기를 강조하는 쪽으로 사운드 디자인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여기서 음악을 담당한 스티븐 프리어스의 놀라운 프로그레시브 스코어는 절대적인 역할을 한다. 그의 스코어는 이 영화의 어떤 기술적 요소 못지 않게 영화의 흐름을 끌고가는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으며, 우주 공간의 재현과 3D 효과의 탁월한 구현 못지 않은 '성취'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의 블루레이를 감상하면서 초반에는 3D 효과에 감탄하다가도 어느샌가 이 영화의 놀라운 스코어 트랙에 빠져들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부가영상

사실 본편보다 부가영상이 더 궁금했던 영화다. 결과물은 물론 만족스럽다. 수록된 HD 메이킹 영상은 크게 3개 섹션으로 분류되어 있고 전체 러닝타임만 3시간에 가까워서 음성해설의 부대에 대한 아쉬움을 충분히 달래준다.

이중 'GRAVITY : MISSION CONTROL'이 메인 피처라고 할 수 있는데 9개 섹션에 걸쳐 100분이 넘는 매우 충실한 구성으로 스토리의 기획부터 롱테이크 및 무중력 효과의 구현, 프리비주얼 애니메이션, 우주 공간에서의 물리적 고려 사항, 우주 기술의 고증, 산드라 블록과 조지 클루니 두 주연배우의 호흡에 대한 이야기, 최종 애니메이션, 음향효과에 이르기까지 제작 전부문을 자세히, 그리고 흥미진진하게 소개한다.

매번 할리우드 대작의 메이킹을 보고 있으면 그들의 기술력에 감탄하게 되지만, 의 메이킹 영상을 보면서는 정말이지 천의무봉에 달한 그들의 압도적인 기술력과 창의적 예술성이 효과적으로 결합된 모습에 감탄을 넘어 감동까지 받게 된다. 이 복잡하고 거대한 프로젝트를 설명하는 알폰소 쿠아론의 인터뷰 및 기타 해설은 매우 자신감이 넘치고 체계적이라 그가 영화 제작 단계 전체를 아우르는 감독의 역할을 그야말로 완벽하게 수행했음을 알 수 있으며, 함께 등장하는 그의 아들이자 공동각본가 조나스 쿠아론 및 기타 주요 제작진들 또한 이 영화의 예술적, 기술적 성취에 대한 자존감을 충분히 드러내고 있다.

두번째 섹션 Shor Breakdonws는 37분의 분량으로 조금 더 깊은 제작 이야기의 디테일을 다루며, 예상치 못했던 놀라움을 안겨준다. 특히 연출, 기술적 측면 모두에서 영화의 중요한 요소 였던 '바이저', 즉 우주용 헬멧의 구체 유리를 C.G로 구현하는 장면은 이 영화의 많은 '무비 매직' 중에서도 흥미로운 대목이다. 이 외에 실사 촬영과 디지털 엘리먼트 합성의 진수를 보여주는 우주정거장 내부 화재 장면을 비롯하여, 이미 많이들 회자된 자궁과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연상시키는 닥터 스톤의 'Rebirth' 장면 시각효과 비밀, 스티븐 프리어스의 영화음악 작곡에 대한 인터뷰, 지구 도착 후 수중 장면의 특수 촬영 등을 상세히 소개한다.

세번째 Collision Point는 영화의 메이킹이라기보다는 의 연장선 상에서 볼만한 23분 분량의 짧은 우주 소재 다큐멘터리로, 중점적으로 다루는 내용은 영화 속 위기를 불러온 '우주 쓰레기'이며 이로 인한 실제적인 피해가 어떤 방식으로 전개될 수 있는 지에 대한 흥미로우면서도 조금은 섬뜩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우주과학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영화와는 별개로 상당히 재미있게 볼만한 다큐멘터리이다.

마지막으로 이미 유튜브 등의 채널을 통해 공개된 바 있는 스핀오프 단편 영화 (Anningaaq)가 수록되어 있다. 알폰소 쿠아론 감독과 그의 아들 조나스 쿠아론의 인터뷰가 인트로 영상으로 함께 담겨 있어, 이 단편 영화의 기획 의도를 명확히 알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총평

2013년 최고의 영화라고 많은 사람들이 입을 모으는 는 2014년을 장식하는 대작 블루레이의 시작으로 꼽기에 손색이 없는 훌륭한 레퍼런스 타이틀이다. 뛰어난 화질과 음질, 영화의 기술적 호기심을 충분히 해소시켜주는 양질의 메이킹 영상 등 모든 면에서 결코 놓칠 수 없는 타이틀로 강력추천한다.

2014. 2. 22 | 백준오(junobaek@naver.com)

※ 주의 : 본 컨텐츠의 저작권은 'dvdprime.com'에 있으며 저작권자의 동의 없는 무단 전재나 재가공은 실정법에 의해 처벌 받을 수 있습니다. 단, 컨텐츠 중 캡쳐 이미지에 대한 권리는 해당 저작권사에게 있음을 알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