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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대한민국 탑 남자배우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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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6-05-17 08:56:49

1. 대한민국에서 남자배우로서 커진다는것은 예능으로 비유하자면 박명수 신정환으로 시작해 유재석이 되어가는 과정에 가깝다고 자주 생각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쿵쿵따 시절의 교활하고 셀프 컨트롤을 잘 하다가도 무너져 빈틈을 보이던 유재석을 좋아한다. 대한민국 연예계에서 탑을 차지하는 과정은 언제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눈에 띈 다음 점점 대중적인 니즈를 채워나가다간- 욕을 안먹는 것에 집중하는 것- 더이상 잘해낼 필요 없이 '욕 안먹고 구설수에 안오르기' 에 온 힘을 집중하는 것이다. 유재석의 가장 큰 본질적 재능은 머리가 좋다는 것이었다. 그는 판국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깨달았고 천재가 되길 포기하고 '욕 안먹는 사람'이 되려했다. 지금의 유재석은 공기업이 오래 버티기 위해 모든 진보적 부분을 관료화하고 거세시킨 채 변치 않는다는 '친근하고 신뢰감 가는 모습'으로  뻐티고 있는 모습과 같다.

 

2. 그 누구와도 차별화되는 강력한 개성과 카리스마를 가진 인물들은 결국 군림하거나 애초에 씨가 잘려나간다. 아무도 안시켜도 스스로 탑을 쌓고 무리를 짓는 우리 사람이란게 그런 것이다. 아직 그 씨앗이 쪼만한데 끼를 좀 부린다하면 고까워하고, 우리 머리 위에서 끼를 부리면 숭배하곤 한다. 배우들이란 원래 그런 존재다. 그들은 쪽팔림, 남 의식하기를 거세시키는 훈련을 평생 하는 사람들이다. 애초에 강한 기운과 재능 없이는 힘든 길이고, 좁게는 카메라 앞에서, 넓게는 스크린 앞의, 더 넓게는 이 나라를 뒤흔드는 카리스마와 아우라를 갖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 이미 상업적으로 꼭대기에 오른 배우들은 모두 그 힘을 갖고 있거나 그 힘을 흉내내는데는 성공한 배우들이다. 폭발하는, 주술적인 연기력. 송강호, 최민식, 설경구, 황정민, 김윤석..다들 소리지르고 오열하고 윽박지르고 하는데는 일가견이 있다. 하지만 이 힘들을 어떻게 구체적으로 사용하는가? 다시 이야기하자.

 

3. 최근 안재홍이 떠오르는 걸 보면서 미운데 없이 두둑한 풍채를 가진 배우가 갖는 장점에 대해 생각해봤다. 조진웅도 그 장점이 있었지만 모두에게 이쁨받기에는 마스크가 너무 강렬했고 결국 살을 빼고서야 물위로 떠올랐다. 안재홍은 딱 표면적으로 캐치되는, 어떤 '편견'에 가까운 이미지로 커리어를 이어나가고 있다. 둔하고, 남을 해칠 맘은 전혀 없으며, 두루둥실하지만 또 자기 앞가림은 하는 남성. 전형적인 대한민국식 생존 전형에 알맞는 남성인 것이다. 나는 안재홍이 소비되는 방식 역시 그 이미지와 걸맞는 것(단독 CF는 드물지만 여기저기 끼어서 결국은 가장 많은 CF를 촬영한) 을 보며 조금 불안했다. 

 

4. 그래, 위협감. 대한민국에선 위협감을 주는 사람은 언제나 거부당해왔다. 진짜로 남을 해치든 말든, 위협적인 이미지나 카리스마로서는 경쟁에 접근조차 못한다. 위협적인 개성을 지닌 사람으로서 꼭대기에 가려면 애초에 그걸 숨겨서 꼭대기에 오른 후 본색을 보이거나, 그냥 악의 캐리커쳐로 소비되며 쪼그라들어 작은 자리에 만족해야 한다. 애써 대한민국이라 얘기할것 없이 이곳에서 자라난 우리 스스로가 이미 그렇게 설정 되어 있다. 심지어 위협적이고 공격적인 아우라가 공인되는 대표적 분야인 운동과 예술분야에서 조차 우리는 그것을 애써 거세하려 든다. 우릴 불안하게 만드는 걸 참을수가 없으니까. '너는 그렇게 생겨먹었구나, 그래, 그것도 사실 섹시한 매력이지. 지켜볼게'하고 두고 볼 수가 없으니까.

 

5. 그래서 그 기세다는 배우들이 '저도 이 나라에 살고 있는 여러분과 다르지 않습니다. 다 똑같은 사람이에요' 하며 뒤집어쓸 탈들을 몇가지씩 준비한다. 말없이 독서만 하고 순대 한입 못먹는다던 청년 송강호는 아주 전형적인 속물 경상도인 묘사의 대가가 되었으며, 데뷔 당시 혼혈인이라는 의심까지 받던 깍쟁이 청년 최민식은 한많은 밑바닥 인생을 수차례나 뒤집어 써주고 나서야 '너도 같은 한국사람이구나!' 환영받더니 이순신을 연기했고, 너무나도 위협적으로 데뷔했던 설경구는 휘청거리더니 이제서야 느긋한 대한민국식 속물 베테랑을 연기하며 안정적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병헌은 난봉질로 우리에게 위협 아닌 위협을 주더니 여우답게 바로 '띨빵한 전라도 깡패역'을 맡아서 성공시켰다. (수많은 어눌한 그의 명대사들이 애드립이라는 점에서 실로 대-한-민-국-적 고수가 아닌가싶다)

 

6. 황정민은 재능과 노력을 동시에 지녀 데뷔 당시만 해도 다재다능했다. 과묵한 카리스마의 게이부터 고뇌하는 청년 예술가, 입체적인 바람둥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살인적인 깡패, 에이즈 걸린 순진한 농부, 거의 천재에 가까울 정도였는데 언젠가부터 그의 기질 중 한가지. 적당히 건들건들하고 적당히 남성적이면서 투박한, 하지만 우직하고 가끔 섬뜩하기도 한 그의 기질이  대중적 니즈와 맞아 떨어지더니 온갖 대한민국식 '괜찮아 임마 형이야' 식의 아재-영웅적 모습으로 잘 팔려나가기 시작했다. 처음엔 장르적 가오로(신세계, 남자가 사랑할때), 그 얄팍한 장르적 가오가 이 나라에서 이젠 서민적 희망의 투영으로 승화(베테랑, 국제시장, 히말라야)되는 대한민국적 파시즘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나홍진이 한창 다작으로 미운 소리 듣던 황정민을 무당역으로 캐스팅한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 가오로 오랫동안 잘 먹고 살았는지 에서도 아직 그 때를 못뺀건 안타깝지만 그래도 데뷔시절의 섬뜩한 오기같은 게 느껴져 반갑긴 했다.

 

7. 30대의 대표적 기수인 하정우와 조진웅도 많이 불안하다고 볼 수 있을텐데. 하정우의 첫 등장은 힙합으로 치면 빈지노의 등장과 같았다. 적수가 없었고, 강력한 개성은 없지만 많은걸 우수하게 해냈고, 모범생 같을 만 하면 파격적인 퍼포먼스도 했다. 무엇보다 그의 기본 베이스는 '능글맞음' 이었다. 그리고 그게 그의 발목을 잡았다. 하정우는 모든 연기를 성대모사처럼 해낸다. 모든 대사에 멜로디컬한 플로우가 있으며, 그 플로우에 대사를 담지 않으면 불안해 못견디겠다는 듯 잘 설계한 플로우에 대사들을 담아낸다. 그래서 그의 연기는 쏙쏙 들어오고 안정적이지만 남는 것이 없다. 깊숙히 뚫고와 찌르는 것이 없다. 전형적인 예술과 대중을 모두 잡았다고 불리는 그런 대중 예술인이다. 좋다. 미워할수가 없다. 귀엽다. 하지만 계속 보고 있으면 질리고 능글대는 꼴이 꼴보기가 싫다. 능글대는 사람들이 항상 듣는 평이고, 이제 그 시기가 온것 같다. 

 

8. 조진웅은 데뷔 시절 조금 기이한 톤을 가지고 있었다. 출처를 알수없는 고조된 말투로 항상 다그치거나 울먹거리듯 연기를 했지만 그의 커다란 풍채와 이국적이고 남성적인 마스크가 어떤 이상한 신뢰감을 주어서 저런 사람도 있구나. 뭐 그런 느낌을 주었던 것 같다. 근데 뜨질 못했다. 그래서 점점 살을 빼면서 그는 마초가 되어갔다. 경상도인 특유의 기질을 포기하지 못한그는 그냥 그걸 드러내기로 했고, 울먹거리며 호소하던 뚱보가 이젠 위협하는 키다리 호남이 된 것이다. 요즘 먹고살려고 어떤 인간적인 훈훈함을 자꾸 불어넣던데, 그게 잘 안맞는다는 건 스스로도 잘 알것 같고...조진웅 최대의 아킬레스 건은 그 불안한 말투다. 경상도 출신 배우들이 서울 말씨와 섞어 '아재식' 말씨를 잘 써먹고 그게 생각보다 매력적이긴 한데, 조진웅은 그걸 써먹는 대신 아예 다른 것을 만들어냈다. 서울말도 아니고 경상도 말도 아니고 그 둘이 섞인 것도 아닌 자기만의 성조, 발음으로 만든 '조진웅어'를 사용하는데, 일부러 위협적이면서 귀여운 그런 뉘앙스를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 머리가 좋은 사람이다. 하지만 듣고 있으면 불안불안한데...잘 헤쳐나가기를.

 

 

9.  아직까지도 본인의 위협적인 기색을 잘 유지하면서 버텨나가고 있는건 박해일과 김우빈 정도인것 같다. 박해일이 그렇게 꼿꼿하게 변태성과 위협성, 양면성을 유지하면서 나아갈 수 있는 건 타고난 개인의 자폐적 기질도 한몫하지 않나 싶고. 하지만 결코 박해일은 대한민국의 흘러가는 한 얼굴을 차지할수는 없을 것이다. 대한민국이 바라질 않으니. 김우빈의 등장과 빠른 성장은 위협적인 매력을 반갑게 받아들이는 차기 문화 기반으로서의 20대를 상징하는 것과 같다. 언제나 인디와 힙스터 세계에만 박혀 있을것 같던 수많은 기형적이고 위협적인 셀렙들은 20대들에겐 주류가 되었다. 혁오가 공중파에서 먹히는건 가히 20대의 승리라고 할수 있을 정도다. 

 

10. 결국 하고 싶은 이야기는, 위협적인 매력을 스스로 인정조차 안하는 대한민국 예술 시장에서, 그 수많은 천재들과 아주 음흉한 섹시한 사람들을 거세시켜놓고 각 시대적 꼰대들의 캐리커쳐들로 덕지덕지 가둬놓고 나서야 안심하고 그들을 소비하는 이 나라의 메이저 시장에서. 압도적인 섹시함은 찾을래야 찾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다 변태다. 틀을 벗어나는 것, 이미 알고 있는 것에서 엇나가는 것, 그것에서 우리는 섹시함을 느끼고, 위협을 느끼며, 황홀함을 느끼며, 유혹을 느낀다. 2000년대 초반의 유재석이 얼마나 섹시했는가? 왜소한 몸으로 맞고 제압당하는 사이에도 낄낄거리며 압도적인 교활함으로 수많은 패널들을 자기 뜻대로 컨트롤 하던 그는 얼마나 섹시했나? 남몰래 수년간 헬스한 몸을 드러내며 젠틀하게 구는 그가 섹시한가? 얼마나 수많은 변태적 재능과 개성을 가진 이들이 결국 대한민국의 거세된 취향에 맞추고자, 스스로를 거세시키고 '여러분 안심하세요 저는 올바르고 여러분이 공감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식으로 커리어를 이어나가는가? 이제 좀 빨딱 세워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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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2016-05-16 18:14:44

좋은글잘읽고갑니다..

2016-05-16 21:22:30

추천할 수 밖에 없는 좋은 글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2016-05-16 22:58:04

좋은 의견 잘읽고 갑니다... 영화배우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에 투영된 모습같네요...

2016-05-17 07:05:33

날카로운 글이네요. 감사합니다!

2016-05-17 07:06:49

그래도 때로는 몸을 사릴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2016-05-17 08:56:49

좋은 글 감사합니다~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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