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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그물(스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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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14 02:55:50

영화 [그물]은 오랜만에 관람한 김기덕 연출작이다. [피에타]이후 김기덕 영화를 보지 않았었다. 그러니까 [그물]은 내가 4년만에 접한 김기덕 연출작이다. [피에타]이후 이상하게도 김기덕 영화가 전만큼 손이 가질 않았다. 그래서 일부러 안 봤다. 도통 끌리지가 않았다. 2012년작이자 김기덕 영화 중에 [나쁜남자]다음으로 가장 대중적으로 친숙하다고 할 수 있는 [피에타]는 당시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 효과로 군중심리에 휩쓸려 찾아본것도 있었고 결과적으로 완성도도 우수하여 그 때 베니스 영화제의 유력한 황금사자상 수상후보였던 폴 토마스 앤더슨의 [마스터]를 누르고 황금사자상을 타갈만한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좋은 영화였고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피에타]가 폴 토마스 앤더슨의 [마스터]를 제친 이유로 과대평가 받은 작품이라는데는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피에타]가 3대 국제영화제에서 처음으로 최고상을 수상한 한국영화였다는 점에서 너무 깊은 인상을 받아서였을까? 그 뒤에도 김기덕은 여느때처럼 부지런히 연출하고 제작하고 각본쓰며 다방면으로 영화계 활동을 이어나갔지만 [피에타]이후 만든 [뫼비우스]나 [일대일]은 [피에타]이전에 나오던 김기덕 영화들에 가졌던것과 같은 관심이 가지 않았다. 베니스 영화제의 최고상 수상으로 모처럼만에 한국 극장에서도 수익을 낸 [피에타]의 후광효과로 그 뒤 김기덕이 연출한 [뫼비우스]나 [일대일]은 조잡스러운 교차상영으로나마 동네 일반관에서도 걸렸기 때문에 접근하기도 쉬워졌는데 말이다.

 

1990년대 초기작들은 기술적으로 너무 조잡해서 못 보겠고 작품수를 늘려감에 따라 김기덕 영화의 일관된 맹점인 미흡한 기술력이 딱히 향상되는것은 없었어도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솜씨가 뛰어나서 2000년대 이후 작품들은 챙겨 보려고 신경썼다. 1998년작인 [파란대문]부터 2012년작인 [피에타]까지는 웬만한건 다 봤다. 정작 김기덕 영화 중에 해외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봄,여름,가을,겨울,그리고 봄]을 여태 안 봤다. 2000년대 작품들 중에선 [시간][숨]이 특히 좋았고 [사마리아]와 [빈집]도 기억에 남는다. 김기덕의 연출력이나 특유의 회화적 여백, 이야기 구성력은 2000년대 중반에 만개했던것같다.

 

김기덕의 신작 [그물]은 오랜만에 15세 관람가 등급을 받은 김기덕 작품이다. 김기덕은 미성년자 관람불가 등급을 받을거라 예상했다가 15세 관람가를 받아서 의아했다고 한다. 소재의 극단성과 수위 높은 묘사, 어두침침한 정서 때문에 미성년자 관람불가 영화를 전문으로 만드는 변태 감독으로 인식돼서 그렇지 김기덕 영화 중에 15세 관람가 받은 영화는 [그물]이전에도 몇 편 있었다. [빈집]과 [활][숨]도 15세 관람가 영화였다. [그물]은 [숨]이후 9년만에 나온 김기덕의 미성년자 관람가 연출작이다.

 

[피에타]이후 국내 개봉한 영화들 중에는 [뫼비우스]와 [일대일]은 건너뛰고 [그물]을 접했다. 국내에선 [일대일]이후 2년만에 만나는 김기덕 영화다. 4년만에 김기덕 영화를 보면서 김기덕의 저력을 오랜만에 느꼈다. [피에타]이후 연출력이 느슨해졌다고 느껴져서 기피했던건데 오랜만에 [그물]을 보니 내가 한참 김기덕 영화를 즐겨 봤던 2000년대 중반 시절의 구성력과 예리한 감각을 [그물]에서도 받을 수 있어서 만족했다. 2010년대에도 김기덕의 냉소어린 세계관과 파괴력은 녹슬지 않았다.  

 

평균 이상의 내공과 깊이로 파고든 좋은 작품이긴 하나 소재 구현 면에선 계산적인 수법이 보였던것같다. 차마 영악하다고까지는 하고 싶지 않지만 해외영화제에서 선호하는 한국의 분단 문제를 끄집어낸것에 순수한 저의를 느낄 순 없었다. 그러기엔 그전에 김기덕이 국제영화제 진출을 의식하고 만든 작품이 너무 많다. 분단국가의 특수성을 활용한 이념문제의 대립이나 갈등, 비극의 정서는 내국인 입장에서 보자면 물리는것도 사실이고. 본의아니게 분단국가의 이념문제에 휩쓸려 극단적으로 무너지는 한 인간이 겪는 비극은 김기덕 같이 국제영화제 진출에 의존적인 저예산 다양성 영화 감독이 취할 수 있는 가장 간편하고도 의존적인 대비책이 아니었나 싶다. 

 

분단국가이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았던 평범한 행동들도 빌미의 싹으로 자라나 오해를 받고 억압 당하며통제를 받는 기이한 상황들은 분단국가란 특수성에 적응되어 온갖 해괴한 상황들에도 면역이 될대로 된 내국인들보단 분단과 거리가 먼 한국 외 지역에서 선호할만한 경쟁력이다. 김기덕이 [그물]을 통해 추구한 이념의 대립과 비극의 말로는 이전에 분단국가란 특수성에서 영감 받아 만들었던 작품들처럼 해외관객을 의식한 전개의 양상을 보일 때가 많았다. 그런면에서 한국관객들이 보기엔 [그물]의 관점이나 구성력이 도식적이고 사회주의 국가인 북한과 민주주의 국가인 남한을 묘사하는 방식이나 각 배역의 설정도 이분법적으로 몰아치기 일수다. 

 

군데군데 분단국가의 특수성에서 파생되는 비극의 기운을 낡은 관점으로 무게만 가중시켜 그려내 촌스럽게 느껴지는 와중에도 소재에 대한 책임감을 저버리진 않아서 냉전시대의 간첩물과 같은 차디 찬 기운의 고전미를 획득했다. 요즘 나오는 분단 소재물에 비하면 이야기를 끌어가는 이음새도 거칠고 전개의 논리도 부족하지만 속성으로 찍어대는 김기덕 영화의 저예산 정신이 김기덕 특유의 우화적 개성과 회화적 요소와 결합되면서 강렬한 장면 몇개를 심어 놓았다. 그래서 [그물]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점이 더 많이 작품이 되었다.

 

남한의 착한 경호원의 설정이 개연성을 잡아 먹는 수준으로 너무 착하게만 그려져서 설득력이 떨어지고 남철우가 남한의 고정간첩에게 전하는 암호를 시라고 착각해서 그걸 전해주기 위해 서울 도심 골목을 배회하다 우연히 도와준 술직 작부도 너무 정형화 된 술집여성 설정이라 민망하다. 동생 등록금 마련하고 시골의 가족 부양을 위해 오늘도, 내일도 쥐어 터져가면서도 술을 따른다는 산전수전 다 겪은 애처로운 술집 여자 설정이 딱 1970년대 호스테스 물과 일치해서 보는 내내 짜증났다. 

 

그렇지만 설정을 위한 설정에 갇혀버린 구멍난 서사 속에서도 모순된 이념의 대립에 갇혀 짓밟히고 이용당하다 버려지는 남철우의 비극은 무척이나 가슴아프다. 분단국가 소재를 끌어쓰는 얄팍함이나 이념대립의 낡은 관점에서도 국가가 개인에게 얼마나 무자비해질 수 있는지 보여주는 냉소어린 시선과 적나라한 해부는 섬뜩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어떤 이해관계와 맞닿으면 개인의 인권은 싸잡아 착취하는데 가책을 느끼지 않는 국가의 잔인함은 어제의 일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김기덕의 이전작들처럼 이 작품도 저예산에 짧은 촬영일정으로 완성됐다. 1억 5천만원 예산으로 열흘간 촬영된 작품이다. 그러다 보니 설정과 겉도는 빈약한 배경묘사가 걸린다. 10년간 모은 전재산을 털어 마련한 고기잡이 배이고 가족의 생계수단이어서 남북 경계선의 그물에 걸리고도 버리지 못한것이라면 좀 더 모양 나는 배여야 할텐데 이 작품에 등장하는 고기잡이 배는 돛단배 수준도 못 된다. 겨우 북한으로 돌아온 남철우를 대외 선전효과를 염두해두고 환영하기 위해 나온 북한측의 인원배치도 너무 적어서 없이 만든 표가 확 난다. 완전히 우화의 방식으로 예술영화다운 자아를 실현한것도 아니다 보니 이 같은 사실주의적인 정서와 설정이라면 제작비를 좀 더 썼어야 하지 않나 싶다.  

 

류승범의 호연이 볼만하다. 우직하고 투박한 어부의 어리숙함과 절박한 모습을 근사하게 소화해냈다. 작년에 오랜만에 연기에 나선 [나의 절친 악당들]에서 배역을 건성으로 소화하는듯한 모습을 보여줘 실망스러웠는데 [그물]에선 오랜만에 의욕적으로 배역을 흡수하려는 류승범의 연기를 볼 수 있어서 반갑다. 이번 작품은 홍보활동에도 전혀 나서지 않고 있는데 프랑스에선 대체 언제까지 체류하려고 그러는지, 재능이 아깝다. 꾸준히 연기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특별출연한 성현아는 한 장면 나온다. 남한의 조사관 역을 맡은 김영민은 이번에도 판에 박힌 악역 연기를 보여줘서 배역 해석이 매우 지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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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2016-10-14 09:50:37

일대일이나 뫼비우스는 안보길 잘 하셨어요, 개인적으로 졸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피에타에서 정점을 찍었다고 봅니다 (그렇다고 마스터보다 더 나은 영화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그물 아직 못봤는데 솔직히 극장까지 가서 봐야하나 싶긴 하네요

 

2016-10-14 14:55:43

빈약한 배경묘사에 극히 동감합니다. 아무리 그래도 고기잡이배라면 어느정도는 되야하는데 돛단배수준이고 NLL도 무슨 강에 줄하나 연결해놓은 거 같아서 저예산영화인거 감안해도 좀 거슬리긴 하더군요. 체제에 휩쓸리는 나약한 인간군상도 기시감이 많이 들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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