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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판도라(스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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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8-05-06 20: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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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원자력 발전소는 1978년 4월에 고리원전 1호기가 첫 상업 운전을 시작하면서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개발되어 왔다. 한국 원전 역사도 40년 가까이 되는 것이다. 지난 수십년간 세계 곳곳에서 만천하에 증명된 원자력 발전소의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영화 [판도라]의 자막에도 설명됐듯 한국은 신규 원전을 계속해서 추진해 나가며 원자력 발전소의 가동을 멈추지 않고 있다. 여전히 공포에 떨게 만들고 있는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일부 선진국들이 원전의 폐쇄를 선언한 것과 달리 한국 정부의 원전에 대한 인식은 당장의 에너지 공급에 대한 편리함과 이익에 근거하여 40년 전에서 미개하게 정체돼 있는 것이다.

 

한국은 원전 밀집도가 세계 1위인 곳이다. 이런 위협적인 상황에서 드디어 이를 소재로 해서 만들어진 영화 [판도라]의 전개는 예사로운 극화로 보이지 않는다. 현재까지 400만이 넘게 본 이 작품은 시민들에게 원전 사고에 대한 인식을 사실성에 근거하여 현실적으로 심어줬다는 점만으로도 의미있는 내수용 블록버스터 기획물이다.  

 

서구에서 원전 사고의 심각성을 다룬 [차이나 신드롬]이나 [실크우드]같은 수작이 나온지도 30년이 넘었는데 한국에선 원전 역사가 올해로 38년이 되는데도 이제서야 원전사고를 다룬 첫 영화가 나왔다는것은 그만큼 국가 사업인 원전이 영화 소재로는 굉장히 민감했다는 얘기가 되기도 한다. 그동안 기술적인 문제나 투자 문제도 걸렸겠지만 소재가 민감해서 기획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국가 눈치도 보였겠지만 원전사 고는 상업물로 극화하기엔 쉽지 않은 소재다. 이제서라도 기획돼서, 그리고 그 결과물이 양호해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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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미국 스리마일 섬 원전 사고가 발생하기 12일 앞서 개봉하여 큰 화제를 모았던 [차이나 신드롬]이나 실제로 일어났고 지금까지 미제로 남아있으며 FBI기밀 서류로 묶여 있는 카렌 실크우드 사건을 극화 한 [실크우드]같은 작품이 원전 사고의 위협성을 사실적으로 그려내 호평을 받았다. 국내에선 이 방면의 걸작으로 남아 있지만 국내 미개봉작이라 동시대성을 획득하지 못했던 [차이나 신드롬]과 [실크우드]보단 1983년 ABC방송국에서 제작한 t.v영화 [그날 이후]가 원전 사고의 후유증이 얼마나 인류에게 위협적인지 생생하게 인식시켜 준 첫 작품일 것이다. 지금은 이 작품이 그렇게 자주 언급되고 있지 않지만 1990년대까지만 해도 원전 사고를 다룬 대표적인 외화로 인용됐었다. 학교에서도 원전 사고의 심각성을 알려주려 할 때 이 작품이 교재로 쉽게 활용 됐다. 나도 수업시간에 이 작품을 감상했던 기억이 있다. 

 

한국에서도 진작에 나왔어야 할 원전 사고의 폐해를 다룬 [판도라]같은 작품이 시의적절하게 나왔으니 지금 보기엔 조악한 기술력의 [그날 이후]같은 30여년 전 외화를 대신해 교과서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것이다. 지금과 같이 불안정한 지구의 변덕스러운 기후 변화 속에서 원전의 가동이 제 아무리 튼튼한 기반 하에 유지된다 하더라도 그것이 예상치 못한 자연 재해가 됐건 미숙한 시설 유지로 인한 사고가 됐건 한번 재수없게 붕괴되면 인류에게 얼마나 해를 끼치는지 경각심을 일으키게 해주는 작품으로 박정우의 4번째 연출작인 [판도라]가 좋은 예시가 됐다.

 

이 작품은 껄끄러운 소재로 인해 제작부터 개봉까지 우여곡절이 많았었다. 지난해 촬영을 마치고 1년 넘게 개봉일을 잡지 못해 표류하던 100억대 국산 블록버스터 기획물이었다. 배우들도 개봉일이 기약없이 지연되기만 해서 과연 개봉을 할 수 있을까 궁금했다고 하고 문정희는 연말에 개봉하게 될 줄은 몰랐다고 한다. 블록버스터 구성으로 봤을 땐 여름에 개봉했으면 더 호응이 좋지 않았을까 싶지만 올 여름엔 [판도라]와 유사한 전개를 타고 있는 재난 블록버스터인 [부산행]이 있었기 때문에 비교가 불가피했을것이다.

 

개봉 전에는 박정우의 전작인 [연가시]의 영향으로 소재에 따른 주목도에 비해 구성에 대한 완성도는 기대하기 힘들었던 작품이 [판도라]였다. [판도라]는 개봉 전까지만 해도 성공한 헐리우드 재난 블록버스터의 온갖 설정을 짜깁기 한 [타워]나 [해운대]류의 CJ표 졸속 아류 기획물로 보여 우습게 보였는데 뚜껑을 열어보니 [부산행]과였다. 수려한 구성으로 전개되는 재난물이다. 감독이 전작들에서 보여줬던 시시한 연출력 때문에 기대를 반 이상으로 접고 보기도 했고 평단의 시들시들한 평가에 이번에도 민망한 국산 블록버스터 서사를 참아주며 봐야겠구나, 하며 그저 화제를 모으고 있는 신작 관람에 대한 의무감으로 접근했는데 영화가 기대 이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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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오랫동안 원전 소재물에 관심이 많아서 주의깊게 본것도 있지만 재난물로써 안정적인 서사를 보여줘서 평단에선 감독의 전작들에 따른 선입견으로 다소 평가절 당한것 같다. 후반부 신파 구성으로 점수를 많이 깎아 먹은듯 하다. [판도라]못지 않게 눈물샘을 자극했던 [부산행]도 정형화 된 국산 블록버스터의 신파 정서에도 불구하고 호평을 샀는데 반해 [판도라]는 촌스럽다고 면박을 당하고 있으니 의아하다. [부산행]의 신파 구성이 극단적인 상황에서 발생할 수 밖에 없는 인간의 나약함에 기반한 신파구성이라 수긍이 간것과 마찬가지로 [판도라]도 최악의 상황이 조성되면서 자연스럽게 신파 감성으로 몰아가기 때문에 받아들이기 수월하다.  

 

억센 지방 방언 대사의 부담스러움이나 이를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 김남길의 어색한 사투리 연기, 영상편지 효과가 왕년의 [편지]에서 보였던 닭살 돋는 신파 정서를 연상시키는 요소는 있었다. 감독이 배우들의 오열 연기를 쳐내기가 미안하여 이렇게 너무도 길고 노골적인 감정의 호소로 질척거리게 만든것같은데 그렇다고 후반부의 아슬아슬하게 늘어지는 감정이 극 전체에서 겉도는 수준은 아니다. 편집의 과감함으로 결단력있게 조절했다면 더 좋았겠지만 현재의 호소하는 감정도 나쁘지 않다. 알고도 속는 기분은 안 든다.

 

중반부까지 광기와 광란의 분위기로 몰아치는 서사를 안정적으로 구현한 덕분에 비슷한 설정의 [타워]보다 신파 감성의 폭발지점을 자연스럽게 물들였다. 1998년에 마이클 베이의 [아마겟돈]이 나왔을 때만 해도 주인공의 희생 정신이 너무 비현실적으로 과장돼 있다고 욕을 먹었는데 이후의 재난 블록버스터들이 툭하면 비슷한 설정을 차용하는 것을 보면 [아마겟돈]의 극적인 설정이 이후의 관계자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친것같다. [판도라]도 피폭 당한 원자력 발전소의 도급 사원들이 희생정신을 불태우는 후반부 결단을 극과 잘 조우시켰다.

 

다소 낯간지럽게 보이기도 하지만 이것이 관객과의 교감을 목적으로 한 신파 정서의 설정을 위한 설정으로 전락하지 않은 것은 원래 인간은 수습 불가능에 빠진 혼돈의 상황일수록 충동적으로 결심하기가 쉬운 동물이다. 절박한 상황이 닥쳤을 때 동물적 본능으로 행동이 앞지르기도 하는게 우리 인간들이다. 영화의 상황이라면 이해가 되는 희생과 결심이다. 피폭되면 어떻게 되는지 더 잘 알고 있는 전문가들 아닌가. 그들 말대로 살아 남는다 해도 피폭으로 결국 오래 살지 못하고 방사능 오염으로 죽었다. 완전한 해결을 보여준게 아니라 원전 사고 이후 거대한 재앙을 겨우 막아내는 것으로 결말을 내서 현실적인 방향으로 마무리를 지었다. 흡족한 처리 방식이다. 

 

민감한 소재로 개봉일이 불투명해진 덕분에 1년 이상을 후반 작업에 매진할 여유를 얻었음에도 군데군데 CG가 어설픈 것이 걸리며 굳이 울산을 배경으로 했다 해서 짙은 지역색으로 억센 사투리 억양을 전반에 깔 필요가 있었나도 싶다. 그러나 소재에 따른 묘사 방식과 책임감 면에서 기본 이상은 했으며 중반부까지 광기의 정서로 몰아치는 서사로 흡인력 있게 전개돼서 재난물로써 만족스럽다. 원전에 대한 묘사가 다소 과장돼 있다고는 하지만 원전 사고 이후 벌어지는 아수라장같은 상황의 묘사는 설득력이 있다. 무능한 대통령이 자리에 걸맞는 움직임으로 발전되는 과정이나 각자의 이익을 위해 각계각층에서 벌어지는 위선도 예리하게 풍자했다. 전형적이고 도식적인 흐름의 전개에도 이 작품에 선명한 인상을 받은데는 현실의 문제인 원전 사고를 생생하게 그려낸 공감대 형성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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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Updated at 2016-12-31 08:50:05

원전 사고 현장의 끔찍함을 적나라하게 표현 했는데도...

청와대와 군/경등 정부의 대처 모습이 몇백배 더 소름 끼치고 무서웠던 기이한 작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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