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 모아나 - 정치적 올바름과 프린세스물의 자가당착
약간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블로그에 올린 글이라 반말투임을 양해바랍니다.
모아나는 굉장히 현대적이고 건강하려고 노력한 작품이다.
그러나 대단히 중세적이고 비현대적인 면모의 작품이기도 하다.
라푼젤, 겨울왕국, 주토피아의 계보를 이으며
페미니즘적 여주인공이 꿈을 쟁취할 수 있다고 말하고,
디즈니 프린세스도 유색인종이 될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세상을 구하는 건 족장의 딸, 금수저다.
"넌 자질 있어 (영어로는 넌 선택받았어 라는 뜻으로 들림)"
금수저 딸만이 세상을 구할 수 있다고 한다.
민주주의 시대에 봉건계급적 질서를 놓지 못한다.
그리스 신화에서부터 모험을 떠나고 세상을 구할 자격은
신의 피를 물려받은 영웅이나 왕, 혹은 왕의 아들에게 주어졌다.
헤라클레스, 아킬레우스, 오디세우스, 이아손, 페르세우스, 오이디푸스, 테세우스 등등.
그런 봉건적 계급사회 질서의 주인공을 여성으로 바꿨을 뿐이다.
아니, (디즈니가) 바꿔줬을 뿐이다.
여전히 이 세계는 중세나 다름없는 봉건계급사회이고,
상류계급의 혈통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하는 작품이다.
이것은 정치적으로 올바른지 낡았는지는
미국 백인상류층이 다수일 디즈니의 눈에는 들어오지 않는 모양이다.
<모아나>는 전작 <주토피아>의 주디가 시골 흙수저 출신임을 본다면
굉장히 정치적 후퇴인 선택으로 보인다. (물론 제작팀은 다를 것 같다)
모아나는 미국의 오바마같은 캐릭터다.
유색인종이지만 주류(디즈니)에게 선택받고
백인상류사회(디즈니)에 편입된 아메리칸 드림이다.
더 심하게 들어가보면 무의식적으로
2000-3000년전 신화 속 영웅들만이 세상을 구했듯이
금수저라는 미국의 패권과, 미국의 패권이 선택한 마이너만이
세상을 구할 수 있다고 믿는 이들이 만들어낸 작품으로 볼 수도 있다.
<모아나>는 21세기의 페미니즘과 다문화주의가
중세의 봉건계급주의와 불편하게 동거하는 작품이다.
전작 <주토피아>에서 선언했던
"모두가, 뭐든 될 수 있어! Everyone, Can be everything!"를
스스로 뒤엎는 모순된 작품이다.
정말 올바르고 싶으면, 프린세스를 버려야 하지 않을까.
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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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자와 공주 신화는 서양인들에게는 뗄 수 없는 그림자인 것 같습니다.
영웅 서사에서 주인공은 언제나 왕족, 최소한 귀족 출신인 얘기는 아이들 동화부터도 필수적이니까요.
로빈 훗 같은 경우도 (가공의 인물이지만) 원래 평민으로 알고 있었는데 영화를 보면 한사코 귀족 출신으로 만들거든요.
결국 그들에게는 영웅은 언제나 "고귀한 피"를 가져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지 않나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