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 윤석열은 어떻게 검찰총장이 되었나?
예전에 저는 대통령 문재인이 왜 남득하기 힘든 인사를 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문재인 전 대통령의 개인적 성격에서 비롯된 문제와 총선을 앞둔 당정 관계의 문제, 그리고 실수를 초법적 조치로 만회하려 하지 않았던 문재인 대통령의 태도에 중점을 두고 글을 쓴 적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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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분들이 공감을 해주셨던 글이지만 다소 불만족스러웠던 부분은 그 글에서 윤석열과 법무장관들의 역학관계, 즉 어째서 윤석열을 퇴진 시키지 않고 조국, 추미애 두 법무장관들만을 날렸는지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했지만 분량이 길었던 관계로 윤석열이 검찰총장에 취임하게 된 내막에 대한 이야기를 누락했다는 것이었습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윤석열 커플이 양정철을 비서실장 하며평에 올려놓고, 양정철이 그런 이야기가 지속되는 걸 막느라 트로트 도전을 하니 어쩌니 하는 모습을 보면서 다시 분통이 터져서 지금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제 생각에 양정철과 주진우는 이낙연과 함께, 민주당이 재집권을 실패한데에 가장 큰 책임이 있는 내부자들 중하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윤석열이 어떻게 계통을 무시한 고속승진으로 서울지검장을 거쳐 검철청장에 오르게 되었는지, 그동안 정부의 이너서클에 있었던 내부자들의 증언등을 토대로 재구성 하는 시도를 해보겠습니다.
첫번째 고리는 윤석열 사단과 주진우의 친분관계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박근혜 정권 당시 윤석열은 박근혜 정부하에서 자행된 국정원, 기무사 등의 여론주작 사건을 수사하기 시작하며 정부와 척을 지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윤석열은 좌천을 당하고 권력의 압박에 굴하지 않는 정의로운 검사로 국민들에게 인식되기 시작했습니다. 마침 주진우는 이명박과 다스의 관계를 추적하면서 정권의 깊숙한 비리에 대한 탐사보도로 주가를 올리기 시작되었고, 나중에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이후 전임 대통령들의 비리와 위법사항들들에 대해 모은 자료들을 검찰측의 수사협조 요청에 따라 제공하게 됩니다. 이 때 주진우는 대통령들 뿐 아니라 삼성에 대한 각종 비리에 대해서도 국내 그 어떤 기자들보다도 많은 정보를 알고 있다고 스스로 자부할만큼 깊숙하게 알고 있었고, 이 정보들 또한 검찰측에 제공하면서 검찰 사람들과 광범위한 친분을 쌓게 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삼성 바이오 로직스 분식회계 사건, 일명 삼바 분식회계 사건인데, 이를 수사한 것은 바로 한동훈, 이복현이었습니다. 당시는 아직 검찰의 무도한 행태가 국민들에게 알려지지 않았고, 박용수 특검팀과 거기 합류했던 윤석열 등이 언론의 호의적인 태도를 등에 없고 기세 등등하게 국민적 지지를 받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러니 주진우가 친검찰적 행태를 보인다고 해서 딱히 비판을 받거나 할 이유가 없었죠.
또 한 편에는 양정철과 김어준이 있었습니다. 양정철은 속칭 3철(양정철, 이호철, 전해철)이라 일컫는 문재인 핵심 측근 그룹 중 한 명으로 그 중에서도 가장 영향력이 큰 인물이었다고 합니다. 양정철의 스타일은 아주 미세하게 업그레이드 된 이준석 쯤 될겁니다. 이준석처럼 아주 이기적이거나 포퓰리스트는 아니지만, 이준석과 마찬가지로 막후정치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전략통으로 자신을 자리메김했습니다. 그러나 양정철은 적당한 선을 잘 지키지 못하고 자신의 영향력을 과시하기 좋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한 성향이 지지난 17년 대선과정에서 드러난 예가 있었는데, 바로 영정철이 지휘하는 광흥창 팀의 선거전략 월권 행위였습니다. 당시 김정숙여사의 동창이자 유명한 브랜딩 전문가였던 손혜원은 정계에 뛰어들어 문재인 대통령의 선거 캠페인을 전담하고 있었습니다. 선거 포스터, 문구, 폰트, 현수막 등의 디자인 전권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는 문재인 대통령 분인의 인사였고 확인해 준 것입니다. 그러나 손혜원의 브랜딩 작업에 불만이 있었던 양정철은 선거운동이 한창인 시점에서 자기 멋대로 손혜원의 선거포스터 디자인과 사진들을 멋대로 바꾸고 인쇄에 들어갑니다. 손혜원은 이 사실을 알고 매우 분노했으며 문재인 대통령에게 직통으로 보고했습니다. 손혜원의 보고를 들은 문대통령은 직권으로 손혜원에게 상황에 대한 전권을 위임했고 손혜원은 즉시 윤전기를 멈추고 상황을 정리했습니다. 손혜원이 개인 라이브와 여러 인터넷 방송을 통해서 당시 광흥창 팀의 조잡한 선거 홍보물들을 보여줬는데 정말 참담한 수준이었습니다.
이 사건 뿐아니라 양정철은 이미 여러번의 월권행위로 문재인 대통령의 눈 밖에 났었다고 손혜원은 전합니다. 양정철은 내심 청와대 비서관 자리를 꿈구고 있었지만 이런 이유들로 정권 인수기에서부터 철저하게 밀려나게 됩니다. 그런데 그때 양정철을 띄워준 것이 바로 김어준이었습니다. 김어준과 양정철이 어떻게 친분을 맺게 된 것인지는 모르지만, 아마도 주진우가 중간에서 서로를 소개해줬을 가능성이 커보입니다. 주진우는 그 이후에도 양정철과 윤석열을 소개시키기도 했으니까요. 아무튼 그렇게 밀려난 양정철을 김어준은 그의 인터넷 방송과, MBC에서 새로 맞게된 프로그램인 블랙하우스를 통해 띄우기 시작합니다. 대충 그동안 문재인 대통령을 충심으로 보좌했으나 자의로 문재인 대통령에게 부담을 지우기 싫어서 물러난 사람으로 포장하면서 말이죠. 당시 그 포장이 얼마나 감상주의적이고 어설펐는지는 지금도 남아있을지 모르는 유튜브 동영상을 통해 확인할 수 있을 겁니다. 제가 김어준이 진짜로 위험하다고 생각햇던 것이 바로 그 방송이었습니다. 양정철 띄우기는 전혀 저널리즘의 기본이 되어있지 않은 어설픈 감성 자극에 불과했습니다. 이전에도 황우석 변호, 개표조작 음모론, 세월호 고의 변침 음모론 등으로 김어준에 대한 의심이 있어왔지만 그것은 김어준이 과학적 사고에 익숙하지 않아 허황된 사고를 해서 그런 것이지, 어떤 다른 욕심이 있어보이진 않았거든요. 그때까지 저에게 김어준은 직관은 번뜩이지만 체계적인 사고를 할 줄 모르는 아마추어 저널리즘 엔터테이너에 가까운 사람이었을 뿐입니다. 그나마 상식적인 정의감이 있었기에 아주 싫어하지는 않았을 뿐이죠. 그러나 양정철 띄우기는 그 전의 어설픈 음모론들과 궤가 달랐습니다. 밀려났다 하더라도 양정철은 어디까지나 정치인이었고 당시에는 문재인 대통령과의 갈등 문제도 밖으로 불거지지 않아서 여전히 파워풀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렇게 노골적으로 양정철을 우상화하는 작업을 한다? 지금와서야 그것이 단순한 김어준의 호의였고, 김어준 특유의 선입견에 기반한 오판이었음을 짐작하고 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김어준이 이명박근혜 정권동안 싸워온 업적은 대단한 것이었으므로 그렇게 물렁한 인물일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습니다. 무슨 다른 욕심이 있는 줄 알았죠.
이 때 문재인 대통령은 정권 초부터 민주당의 숙원중 하나였던 검찰권력의 해체를 위해 착실하게 준비를 합니다. 조국을 임명하기 전 문재인 대통령은 학자 출신(연세대 법학과 교수) 박상기를 법무장관으로 낙점해 정지작업을 하고, 핵심적인 개혁작업은 조국으로 하여금 처리하도록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차기 법무장관과 보조를 맞춰 검찰 내부의 반발을 무마하고 제대로 개혁작업을 할 수 있도록 차기 검찰총장을 물색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때 양정철과 윤석열이 주진우의 소개로 만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당시 양정철은 한동훈이 총선 직전 그랬던 것처럼 미리 동원된 듯한 기자들의 사진기에 모습이 포착되는 등, 이상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아무래도 자신의 존재감을 어필해서 총선을 통해, 혹은 다른 경로로 권력의 중심에 접근하려는 의도가 아니었을까 추측할 뿐입니다. 나중에 같은 나꼼수 멤버였던 김용민의 취재에 의하면, 주진우는 윤석열과 양정철의 만남에 합석하면서 반농담조로 윤석열에게 양정철을 행해 충성맹세를 하라고 시켰다는 이야기를 전합니다. 주진우는 이 의혹에 대해 해명을 하지 못했고 여러 의심스러운 상황을 스스로 만듭니다(김용민에게 오해를 풀기 위해 전화를 했다고 하는데 김용민은 그런 전화가 온 사실이 없다고 바로 반박을 하는 등의)
또한 이 때, 윤석열은 검찰 총장 인선을 위한 청와대 비서실 주재의 인터뷰에서 아주 강력하게 자신을 어필합니다. 조국 장관에 의하면 윤석열은 조국을 한국에 케네디로 만들고 싶어한다고 조국의 주변 인물들에게 말을 흘렸고, 그것이 조국 귀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조국은 그 말을 듣고 참 "재미있는" 사람 다보겠다는 식으로 반응하고 말았지만 그런 아첨을 곱게 볼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조국 자신은 그 당시 인사검증의 책임이 있는민정수석으로서의 입장을 선명하게 밝힌 적이 없지만 공직기강 비서관이었던 최강욱의 증언에 의하면 반대입장이었던 것으로 열려져 있습니다. 최강욱 본인은 물론 윤석열의 인사파일에 온통 빨간 칠로 범벅을 했을 정도로 강력하게 반대했고요. 그러나 결국 어떤 연유였는지 윤석열은 검찰 총장에 취임하게 됩니다. 나중에 유인태 전의원은 청와대 내부인사의 전언을 통해, "문재인 대통령이 윤석열에게 꽃혔다"고 밝힙니다. 물론 유인태 본인이 사실 상당히 의심스러운 인물이지만 그의 전언은 어느정도 신빙성이 있습니다. 이후 문재인 대통령이 윤석열의 배신을 알았을 때, "조국과 윤석열이 환상적인 팀을 이뤄 검찰개혁을 할 것을 기대했다"고 말한 적이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번 글에서도 이야기했듯 문재인 정부의 인사는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습니다. 통계청, 검찰청, 감사원 등의 독립기구들 수장이 모조리 문재인 정부에 반기를 들었으며 특히 검찰청과 감사원장의 개인 정치를 위한 배신은 우리 헌정사에 남을 수치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아마도 이 문제는 나중에 철저하게 다시 반성적으로 검토해야할 사건들로, 인사권자였던 문재인 대통령 본인의 책임을 피할 수 없습니다. 전에도 밝혔듯, 저는 아마도 이것이 사람을 무턱대고 믿고 호의적으로 대하는 문재인 대통령의 성품이 만들어낸 비극일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윤석열은 밖에서는 양정철을 통한 인맥으로, 내부에서는 인사권자와 검증 책임이 있는 인사들에게 적극적으로 아첨하고 자신을 어필하는 작업을 통해 로비를 벌인 것 같습니다. 여기서 양정철의 인맥이 얼마나 영향을 끼쳤을지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당시 양정철은 문재인 대통령 눈 밖에 난 상태였지만 그 당시에는 그런 내막을 정확하게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러니 양정철이 전화 통화나 사적인 만남을 통해서 청와대 내부의 기류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은 있습니다. 설사 양정철의 영향력이 미미했고, 그것이 문재인 대통령의 온전한 선택이었다 하더라도 그런 상황에서 윤석열과 사적인 만남을 갖고 그에게 호의적으로 굴었던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여기까지의 얼개를 보면 당시 이상했던 김어준의 태도도 이해가 갑니다. 당시 김어준은 윤석열의 반란이 명확했을 때 조차도 사실 윤석열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충성심을 거지고 그랬을 것이라는 이상한 소리를 다스뵈이다를 통해 하곤 했습니다. 그것이 친검찰 기자였던 주진우의 인맥을 통해 형성된 김어준, 주진우, 양정철, 윤석열의 느슨한 친분의고리 때문이었다면 설명이 되지 않을까요? 그 이후 주진우의 이상하리만치 기계적 중립을 지키는 포지션도 그렇고요. 물론 윤석열이 조국을 치자마자 사태를 파악한 문재인과 김어준은 윤석열의 적의를 알아차리고 태도가 변합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김어준은 반 윤석열 태도를 명확하게 했고, 중간에서 난감해진 주진우는 있는 듯 없는 듯 라디오 프로그램 하나를 맡아서 연명해갔죠.
문제는 문재인 대통령이었습니다. 윤섣열의 배신을 알아챘지만 원칙주의자였던 문재인 대통령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언론의 집중포화를 당한 조국이 법무장관 역사상 최단기간 낙마하고 후임으로 추미애가 들어와서 윤석열을 통제하려 하고 있을 때, 윤석열의 온갖 비위사실을 알게 된 문재인 대통령은 추미애의 보고를 받고 윤석을 "목불인견"이라고 까지 말하며 분노를 표시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석열에게 물러나라고 의사를 전달하지 못했습니다. 거기에는 두 가지 큰 이유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나는 법으로 보장된 검찰총장의 임기였고, 또 하나는 당시 조국 사태로 문재인 정권과 민주당의 지지율이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었기 때문에, 윤석열을 건달지 말아달라는 당시 당대표 이낙연의 요청을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추미애의 증언) 그래서 결국 추미애는 문재인 대통령의 요청에 따라 장관직에서 물러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영화 서울의 봄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입니다.
사건 당시 국정원장이었던 박지원은 문재인과 조국이 두 가지 실수를 저질렀다고 말합니다. 당시 조국 또한 원칙주의자로서, 민정 수석 시절, 그리고 범부장관 지명자 시절 일절 윤석열 검찰총장과 소통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윤석열이 갑자기 조국에게 수색영장을 발부할 때도, 그 전에 총장 후보자 시절에도 조국은 윤석열이 향후 어떤 액션을 취할지 전혀 예상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박지원은 자신이 조국과 윤석열 사이의 메신저 역할을 자청했으나 거부되었다고 합니다. 만약 조국이 박지원의 권고를 들었다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었다고 박지원은 말하더군요. 또 하나는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최소한 추미애를 날릴 때, 윤석열도 동시에 날렸어야 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원칙적으로는 문제의 소지가 있지만, 국민들의 불만과 지지율 하락을 무마 저지, 하고 사태를 수습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고 합니다.
결국, 이 사태로 인해 조국은 커리어를 완전히 망쳤고, 추미애는 총선을 포기하고 입각했다가 야인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민주당으로서는 차, 포를 동시에 잃었던 사건이었고, 그 배후에는 경쟁자를 제거하고 싶었던 이낙연의 입김도 작용했던 것 같습니다. 이낙연은 이후로 윤석열에 대한 비판을 한 번도 한 적이 없었습니다.
이 사태를 어떻게 처리했어야 하는 것이 최선이었는지는 저도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교훈 하나는 확실하게 얻었습니다. 이런 위급한 상황에서 원칙을 내세우면서 신속한 사건처리를 하지 않는 것은 송양지인에 불과한 어리석은 행위고, 견제를 위해 사람을 불러들였으면 최선을 다해서 임무를 수행하도록 도왔어야 했다는 겁니다. 당시에는 판단이 어려웠기 때문에 문재인 대통령의 통치행위를 무턱대고 비난할 수는 없지만 이제는 한 번의 사례를 참고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기 때문에 앞으로 민주당이 정권을 잡는다면 같은 실수를 되풀이 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인사검증에 만전을 기하고, 반란이 일어났을 때 그 징후를 미리 파악할 수 있는 공식적 비공식적 통로를 만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이 일어났을 때는 원칙보다 상황을 정리하는 것이 더 중요했다는 것을 다시는 잊지 않기를 바라면서 글을 마치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위에서 김어준의 실수들을 비판했고 이 부분은 김어준도 철저하게 반성해야 할 문제라고 아직도 생각하지만(그러나 김어준의 그 덜렁대는 성격상 그럴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ㅎㅎ) 지난 총선까지 오는 과정에서 김어준은 실수를 만회할만한 큰 공(겸공, 꽃 설립)도 세웠고 어떤 개인적 욕심을 발견하기 힘들었기 때문에 고마운 마음이 큽니다. 그러나 주진우는 책임을 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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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이낙연..문통안목이 대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