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시절 열역학 교수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나는 살 빼기 힘들다는 게 이해가 안 가. 열역학 제 1 법칙 배웠지? 그럼 간단하잖아? 먹는 에너지보다 쓰는 에너지가 많으면 무조건 살이 빠지는 거 아냐? 그냥 더하기 빼기 문제잖아.”
저도 이 말이 정답이라 생각하고 살았습니다.
섭취 열량 = 소비 열량 → 체중 유지섭취 열량 > 소비 열량 → 체중 증가섭취 열량 < 소비 열량 → 체중 감소
거시적이고 장기적으로 보면 이 말이 맞습니다. 우주에서 에너지 보존 법칙(열역학 1 법칙)을 거스를 수는 없으니까요.
그러나 한 편의 영화를 보고 이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Fed Up>은 살찌는 진짜 이유가 무엇인지 알려줬습니다. 이하는 그 내용의 요약정리입니다.
적게 먹고 운동하면 살이 빠지나?
미국 사회에 불어 닥친 헬스 붐은 프랑스 생리학자 ‘장 메이에르’로부터 시작됩니다. 그는 살찐 쥐와 평범한 쥐를 관찰하였습니다. 둘은 같은 양을 먹지만 살찐 쥐는 활동을 거의 하지 않았죠. 메이에르 박사의 결론은 ‘운동 부족은 반드시 체중 증가와 관련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이제 미친 듯이 운동하기 시작합니다. 1980년에서 2000년까지 20년 동안 미국 내 피트니스 클럽 회원 수는 2배로 증가합니다. 문제는 같은 시기에 비만율도 2배로 증가합니다...
비만 방지를 위해 적게 먹고 많이 운동하라. 이는 다이어트를 열역학적 관점에서 바라본 말입니다. 섭취 열량보다 소비 열량이 많으면 열역학 1 법칙에 의해 체중은 감소해야 합니다. 그러나 영화는 이러한 관점이 잘못되었다고 말합니다. 500mL 콜라의 열량을 소비하려면 1시간 반 동안 자전거를 타야 합니다. 숨이 턱턱 막히게 1시간을 달려 봤자 600kcal밖에 소비하지 못합니다. 1kg의 지방을 태우려면 12시간을 뛰어야 합니다. 이건 정말 난센스입니다. 하루에 12시간은커녕 운동과는 담을 쌓고 살아도 비쩍 마른 사람이 있습니다. 푸드 파이터라 불리며 다른 사람의 10배를 먹는 사람 중에도 마른 사람이 있지요. 저는 취업에 실패한 후 살을 빼겠다며 하루 4~6시간씩 강도 높은 자전거 주행을 했습니다. 서쪽으로는 서해갑문을 찍었고, 동쪽으로는 팔당댐을 구경하고 왔으니까요. 운동으로 소비하는 열량이 2,000kcal쯤 되었죠. 그래서 제가 살이 빠졌냐고요? 그럼 지금 이 글을 쓰고 있지 않겠죠...
문제는 칼로리가 다 똑같은 칼로리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같은 열량이라도 형태에 따라 우리 몸은 전혀 다르게 받아들입니다.
▲아몬드의 소화 과정 vs 콜라의 소화 과정
여기 두 개의 소화과정이 있습니다. 좌측은 아몬드를 섭취하고, 우측은 콜라를 섭취하죠. 둘의 열량은 160kcal로 동일합니다. 우선 아몬드를 먹어 봅시다. 아몬드는 다량의 섬유질을 포함합니다. 소화기관은 그 섬유질을 헤치고 영양소를 뽑아내죠. 바로 이 섬유질 때문에 아몬드의 열량은 즉각적으로 흡수되지 못합니다. 따라서 혈당 상승은 낮고, 지속기간은 오래 갑니다. 이번에는 콜라를 마셔 봅시다. 콜라는 섬유질이 없으므로 간에서 즉각적으로 흡수합니다. 영양소가 간으로 쏟아지는 셈이죠. 간은 혹사를 견디지 못하고 이내 본분을 포기합니다. 당분을 사용 가능한 형태로 바꾸는 게 아니라 그저 지방으로 변환시켜 축적해 버립니다.
열역학적 관점에 따른다면 얼마나 많이 먹는지가 가장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그러나 진짜 중요한 것은 무엇을 먹는가입니다. 같은 열량이라도 아몬드를 먹으면 살이 찌지 않지만, 콜라를 마시면 지방이 쌓이고 살이 찌는 것이죠. 즉, 다이어트의 핵심은 대사 작용입니다.
설탕, 비만의 주범
설탕의 단 부분인 과당은 간에서만 대사(metabolize)될 수 있습니다. 급격한 과당 섭취로 간이 혹사당하면, 이자는 인슐린이라는 호르몬을 과다 생산하여 간을 돕습니다. 인슐린은 에너지 저장 호르몬(energy storage hormone)으로 저장을 위해 당을 지방으로 전환합니다.
인슐린은 배가 불렀다는 신호를 차단하기도 합니다. 그러면 뇌는 아직도 배가 고프다고 생각하게 되죠. 배가 고프면 어떻게 행동하나요? 힘이 없고, 피곤하며, 게을러집니다. 배가 고프니 무언가 먹고 싶죠. 으레 살찌는 사람들의 행동을 묘사하는 것들과 일치합니다. 이것은 원인이 결과로 뒤바뀌는 것을 의미합니다. 게으르고 식욕이 왕성해서 살이 찌는 것이 아니라 살찌는 식습관이 게으름과 식욕을 고취하는 것이죠. 비만은 의지의 차이가 아니라 생화학적 결과인 셈입니다.
그렇다면 제로 칼로리 음료나 아스파탐 같은 대체 조미료는 어떨까요? 이들이 실제 과당을 생성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들이 인슐린 생산을 촉발시키는 것은 똑같습니다. 그리고 에너지 저장 호르몬인 인슐린은 그 역할을 다하며 지방을 만들겠죠. 제로 칼로리 콜라를 마시면 그냥 콜라를 마신 것과 똑같이 지방이 생성되는 겁니다. 세상에 이 얼마나 억울한 일입니까? 1kcal도 먹지 않았는데 지방이 쌓이다니요. 그럼 지방 생성을 위한 열량은 어디서 충당할까요? 우리가 빼고 싶은 지방이 아니라 엄한 체성분에서 열량을 끌어오게 되겠죠. 근육을 줄이고 지방을 키우고 싶다면 제로 칼로리 콜라를 마시면 됩니다.
게다가 설탕은 중독이 됩니다. 프린스턴 대학 연구팀은 코카인에 중독된 43마리의 실험쥐에게 코카인과 설탕물 중에서 하나를 고를 수 있는 선택권을 제공했습니다. 43마리 중 40마리가 설탕을 선택했습니다. 뭐 이것으로 '설탕이 마약이다.'라고 하는 것은 오버겠지만, 분명한 것은 설탕은 중독성이 있다는 점입니다. 설탕을 끊게 했을 때 폭식, 갈구, 중독 증상이 나타난다는 실험 결과도 있습니다. 이 현상은 뇌 분비 물질을 통해 설명할 수 있습니다. 앞서 썼듯이 설탕을 섭취하면 인슐린이 분비됩니다. 이 인슐린은 당의 흡수를 촉진할 뿐만 아니라 아미노산의 일종인 트립토판을 두뇌로 운반하는 역할도 합니다. 두뇌로 전달된 트립토판은 기분을 좋게 하는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 분비를 촉진합니다. 그런데 세로토닌이 과다 분비되면 이로 인한 좋은 기분에 익숙해지기 때문에 도리어 당분을 섭취하지 않으면 우울감이 나타납니다. 이렇게 설탕은 마치 마약처럼 뇌 내 작용을 하며 중독을 일으킵니다. 결국, 단 음식에 중독되면 이를 끊는 것, 식욕을 억제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 됩니다.
그런데 이 설탕을 우리는 주변에서 너무 쉽게 그리고 많이 섭취할 수 있습니다. 미국 보건계는 건강을 위해 국민의 섭취 열량을 줄이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식품 제조회사로 하여금 저열량 식품을 만들도록 했죠. 식품의 열량을 낮추려면 지방을 줄이면 됩니다. 지방은 g당 9kcal로 에너지 함량이 높기 때문이죠. 그리하야 1980년대 모든 가공식품이 지방을 적게 함유하도록 생산되었습니다. 하지만 음식에서 지방이 빠지면 맛이 없죠. 정말 형편없습니다. 그래서 식품제조회사는 지방을 줄이는 대신에 설탕을 들이부었습니다. 맛은 지켰지만, 건강은 잃게 됐죠.
설탕은 성분표시에 '설탕'이라고 적혀있지 않습니다. 수많은 이름을 가지고 있죠. 그중 가장 많이 쓰이는 것은 '액상과당'입니다. 이렇게 설탕은 갖가지 이름으로 변장한 채 미국의 가공식품 중 80%에 숨어들었습니다. 미국인들은 일상적 식단을 통해 하루 권장량의 6배의 설탕을 섭취하게 되었죠. 이렇게 10년 동안 설탕을 들이켰는데 비만이 안 될 리가 없겠죠.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가 집중해야 하는 부분은 잉여열량의 계산이 아니라 건강한 대사 작용입니다. 대사 작용에 대한 이해가 없는 다이어트는 매우 비효율적이거나 때로는 역효과를 일으킬 공산이 큽니다. 절식을 하고 운동을 하며 고생고생하는 것보다 건강한 대사 작용을 이끌어 내는 것이 더 큰 효과를 발휘할 겁니다. 운동에 관한 관점을 바꾸도록 합시다. 운동으로 살빼기는 힘듭니다. 그러나 운동은 폐활량을 늘리고 혈액순환을 도와 신체를 건강하게 합니다. 심리학자들은 최고의 우울증 치료제로 운동을 꼽기도 하죠. 그리고 운동은 그 자체로 즐거운 일이기도 합니다. 운동은 몸과 마음의 건강을 위해, 즐거움을 위해 하도록 합시다. 살을 빼는 데에는 생각보다 도움이 되지 않으니까요.
그럼 살을 빼기 위해, 건강한 대사 작용을 끌어내기 위해 어떤 것을 해야 할까요? 아래는 제가 직접 고민해본 결과입니다.
1. 직접 요리하자.
요리를 직접 하게 되면 많은 장점이 있습니다. 우선 소금, 설탕과 같은 조미료의 양을 조절할 수 있습니다. 섬유질과 같이 건강한 대사 작용에 필요한 영양 성분을 더 많이 넣을 수도 있습니다. 열량도 조절할 수 있죠. 마지막으로 다소 맛없는 음식이라도 애착이 생겨서 더욱 맛있게 느껴집니다. 남이 만들어준 코다리 강정은 맛 없어도, 내가 만든 코다리 강정은 맛있더라고요.
2. 가공식품, 음료는 피하자.
목마르면 물 마시고, 배고프면 밥 지으면 됩니다. 게을러서 이러한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비만은 따라올 수밖에 없겠죠.
3. 얼마나 먹었나 보다 무엇을 먹었나에 집중하자.
열량의 총량을 따지는 것보다 내가 먹은 음식의 건강도를 채점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섬유질이 풍부한 자연식은 5점. 콜라는 –5점 같은 식으로요.
4. 그래도 운동은 하자.
그래도 운동은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당연히 소비칼로리가 늘어나니 다이어트에 도움이 되고, 각종 성인병을 예방하기도 하니까요. 단 살 빼려고 하지 말고 건강하기 위해 합시다.
마치며...
영화의 나머지는 설탕 중심의 불건전한 식습관을 형성하고 유지하려는 식품회사의 로비와 이에 휘둘리는 정치권에 대한 비판을 다루고 있습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이 미국의 식품 산업을 가리키며 “우리가 잘못했다.”라고 단호하게 인정하는 모습을 보니 이 사안이 존심이나 따질 겨를이 없는 심각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 글에서는 해당 부분은 다루지 않았지만 궁금하신 분들은 찾아보시길 바랍니다. 내용도 알차지만, 편집이나 그래픽작업도 훌륭해서 재미도 쏠쏠합니다.
솔직히 비만은 너무 가혹합니다. 사회의 차가운 시선과 저평가는 차별이라 부를 만 하죠. 육체적으로 불편하고, 정신적으로 자존감도 떨어지게 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식습관은 점점 정크화 되어가고 있습니다. 햄버거 같은 음식뿐만 아니라 삼각김밥, 컵라면, 도시락 등도 결국 당분을 들이붓는 정크 푸드니까요. 제가 서해갑문까지 자전거를 탈 때 끼니를 삼각 김밥으로 때웠습니다. 기껏 빡세게 운동하고, 그 자그마한 삼각김밥으로 다 날려 먹은 셈이었죠. 제가 대사 작용의 중요성을 알았다면 그러지 않았겠지요. 비만인들은 살을 빼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지만, 지금의 식문화 속에서 살을 빼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개인의 의지를 탓하기보다 사회 문제로 받아들이는 시각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글을 보는 모든 분들이 다이어트의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바랍니다.
※ 예전에 썼던 글입니다. 프차 다른 게시물에서 여전히 열역학적 관점으로 다이어트를 바라보는 댓글이 보이길래 수정하여 올려봅니다.
Written by 충달 http://headbomb.tistory.com
대사작용.
논리가 척척 들어맞네요.
좋은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