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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정치]  역사학자 전우용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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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8-10-11 12:30:13

님의 서명
쓴차 한 잔이 저 혼자 식었다.
그도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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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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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11 02:50:05

평범해 보이는 말들 속에 숨어있는 의미를 잘 찾아내는 사람이네요. 오늘도 하나 배웁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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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8-10-11 03:22:24

어느 건축가인지 모르지만 조선시대의 소박한 건축양식이 역사적 변화의 산물임을 모르는 분이었네요. 

  

"소박한 조선의 건축양식은, 고려시대의 문벌 엘리트가 추구했던 제한 없는 사치와 호화생활을 혐오하고 당시 불교를 '내세에 대한 터무니 없는 약속으로 대중을 호도'한다고 비판했던 사족들이, 절제를 강조하고 현실을 중시하는 성리학을 무기로 삼아 지주인 자신들과 경작자인 농민이 공존하는 유교적 이상향을 꿈꾸었던 결과물이다. 집을 지을 때 나무 자재 하나하나의 규격까지 법으로 정할 만큼 그들의 자기 절제는 엄격했다. 

 이처럼 자기 절제속에 탄생한 그들의 소박한 생활문화를 중국 쯔진청의 거대함이나 아라비아 사원의 아라베스크, 고려 불화의 화려함과 단순 비교해 깎아내릴 수는 없다. 거기에는 범접하기 어려운 품격, 겉으로는 판단하기 어려운 정신의 힘이 깃들여 있다. 16세기 사족은 소박하지만 재미없고 꽉막힌 사람들은 아니었다. 더 흥미로운 것은 그들의 아내. 16세기 여성은 삼종지도에 찌든 순종형이 아니었다. 그들의 당당한 생활 태도와 풍성한 의복은 전통적 여인상을 흔들기에 충분하다. 나아가 16세기 향촌은 고즈넉한 조선시대 마을풍경이 주는 선입견과 달리 시끄럽고 북적거렸다. "  -조선생활사 1권中- (사계절 출판사)

 

전우용선생이 다룬 건 좀 더 다른 차원의 논의지만서두, 건축과 관련된 부분에서는 과거에 읽던 서적내용이 생각나서 옮겨봤습니다.^^

 

2018-10-11 03:25:19

zeitung님/ 조선의 건축양식이 성리학과도 관련이 있는 줄은 몰랐네요. 인용하신 글이 참 재밌습니다.

1
Updated at 2018-10-11 03:36:17

그 책 재밌습니다.삼국시대부터 구한말까지 시리즈로 나오는데 그림이 많아서 읽기도 편해요.^^

해당 서적 1권이 조선초기에 해당되는 내용이고, 조선 후기로 가면서 또 많이 바뀌지만 

요는 기술이 없어서 못한 게 아니고 안 한거다라는...^^

기술 하니까 생각나는 게,  조선시대 도자기 기술은 8,90년대 세계를 주름잡던 소니의 워크맨에 버금가는 당대의 첨단기술이었다는 나레이션이 과거 MBC 임진왜란 편에 나온 적이 있습니다. (풍신수길이 조선 도공들 납치해가던 장면이었던 것으로 기억..)

 

Updated at 2018-10-11 04:07:11

오! 삼국시대 부터 구한말까지면 아주 좋은데요.
올려주신 짧은 인용글만 봐도, 문체가 아주 착착 감김니다. (표현이 좀 이상한가요. 먹는 것도 아닌데....)

'....집을 지을 때 나무 자재 하나하나의 규격까지 법으로 정할 만큼 그들의 자기 절제는 엄격했다.' 

참 재밌는 얘기네요. 

일본 사람들이 조선 '백자'를 좋아했다는데, 관련된 얘기도 재밌겠습니다.
'한국생활사박물관' 꼭 읽어 봐야겠네요. 재밌는 책 가르쳐주셔서 감사합니다.

2
2018-10-11 03:45:55

<한국 생활사 박물관 - 조선생활관.1>

알려드리는 김에 정확하게..^^;

2018-10-11 03:50:05

오, 정말 감사합니다. 빨리 사서 읽고 싶네요. : )

Updated at 2018-10-11 04:08:44

평민들의 밥그릇 크기 편차는 문명/경제 수준의 격차라기보단 식문화의 차이겠죠. 저 때에도 일본의 1인당 GDP가 우리보다 높았습니다. GDP의 개념 자체가 근대적 통계의 산물이기 때문에 19세기까지의 내용은 실질구매력 관련 사항을 중심으로 추정할 수밖에 없긴 한데, 일본의 경우 이미 개항 훨씬 이전에 전반적인 경제규모뿐만 아니라 1인당 GDP도 한국(조선)을 추월한 것으로 보고 있죠.

* 참고 : https://m.blog.naver.com/lord2345/50179739160 (外)

그리고 우리 조상들의 대식(大食) 문화는 꽤 유명했습니다. 저 당시만 해도 하루에 2끼를 먹는 것이 일반적이었기 때문에 1끼당 식사량 자체가 많았고, 오늘처럼 반찬이 많지 않아 밥을 비롯한 곡물로 부족한 칼로리와 영양분을 보충했죠.

* 참고 : http://m.ohfun.net/?ac=article_view&entry_id=18465&adtbrdg=e#_adtReady (外)

추가로 고기 문제는 일본이 명치유신 이전에 육식 자체를 금기시했던 것도 고려해야 될 겁니다.

* 참고 : https://m.blog.naver.com/dymg98/220760396636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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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8-10-11 04:38:40

/사천호수

 

그거와는 또 다른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조선시대 우리나라 사람들이 일본인보다 대식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과 별개로 일본의 농민 수탈은 좀 더 가혹했습니다. 이건 소작인의 토지 지대율에서 드러나는 데, 조선시대의 소작료는 30-50%가 보통이었습니다. 병작반수제 라고 해서 수확물의 50%를 소작료로 내는 것이었죠. 그런데 일본의 소작료는 5:5제가 아니라 4:6제에서 심하게는 3:7였다고 합니다. 소작료로 60~70%까지 뜯긴 겁니다. 대신에 조세제도를 통한 수탈이 덜 가혹했다고는 하는 데, 그래도 전체적으로 비교해보면 일본 농민들이 조선보다 좀 더 수탈을 가혹하게 당하는 편이었습니다. 

 

정말로 배 곪으며 죽을 때 까지 일하는 건 조선농민보다도 일본 농민쪽이었죠.

2018-10-11 04:44:16

본문에 캡처된 내용 관련 당사자가 당시의 수탈 관계까지 얘기한 것인지는 알 수가 없죠. 그리고 당시 한국/일본의 식문화 차이를 알고 있는 사람으로서 소작료 관련 사항으로 밥그릇 크기 관련 얘기는 좀 뜬금없다는 생각도 들고요. 역사학 박사 학위에 연구교수까지 역임한 분으로 알고 있긴 한데, 일단 저 SNS(페이스북) 내용은 뭔가 핀트가 좀 안 맞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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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8-10-11 12:07:26

밥그릇 크기 이야기가 아니라 식사량 이야기입니다.

둘은 달라요. 저 얘기는 오늘날로 치자면 가처분소득 이야기에 가깝습니다.

 

가처분 소득 이야기를 식문화에서 밥그릇 포션 사이즈 이야기로 이해하시니까 얘기가 계속 엇갈리는 거 같습니다.

 

전우용님의 본문 글은 누군가가 일본의 왕조시대 건축물의 화려함을 이야기하니까, 그러나 일반 평민들은 가난했습니다 라고 받아친 이야기입니다. 그 가난의 상징으로 식사량을 언급했죠. 그런데 전우용님은 소득 이야기를 하는 데, 사천호수님은 그걸 식문화에서 대식가 문화로 이해하시려 드니까, 얘기가 핀트가 안맞게 되는 것이죠.

Updated at 2018-10-11 12:30:37

첨부된 기사까지 확인해 봤는데, 밥그릇 크기는 진짜 비유가 아닌 오리지널 의미로 쓴 것 같더군요. 그리고 기사 내용(신장계) 관련 당시 한국인/일본인의 키 차이에 대해 영양학적 요인 중심으로 서술했던데, 이건 유전적 요인도 봐야 되는 문제입니다. 사실상 같은 인종이라고 하지만, 일본인의 유전 형질에는 남방 태평양 쪽에서도 미친 영향이 있습니다.

그리고 밑에도 언급했지만, 생활수준 관련 19세기 당시 일본이 우리보다 떨어지지 않고 오히려 더 나았습니다. 수탈에 따른 차이가 있었을 것으로 말씀하시는데, 구글링 통해 답글 다신 내용도 확인해 봤습니다. 해당 게시판에 그에 대한 반론도 꽤 있더군요.

19세기 당시 평민 기준 우리 생활수준이 일본보다 나았다는 별도의 실증자료나 확실한 근거가 있으면 저도 알고 싶군요. 당시엔 삼정의 문란과 그에 따른 민란 등으로 소위 우리나라 민초들의 삶이 그리 녹록치 않았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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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8-10-11 12:39:52

그 생활수준 이야기는 희한하게 굴러가던데,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인터넷에서는 자기가 말하는 게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많더군요.

  

예를 들어 그 사회(문명) 전체의 평균적인 상업적인 부유함/발전정도가 더 높다고 해서 그 사회에서 사는 서민들의 삶도 더 좋은 것은 아니거든요.

미국은 평균 GDP 5만 8천달러의 부유한 강대국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미국내에서 청소부 생활하면서 사는 히스패닉 노동자가 부유한 것은 아니거든요. 본국에 있는 자기 친척들이 중산층이라면, 미국에 와서 살고있는 이 청소부는 그들보다 가난하게 살고 있는 거죠.

 

하지만 그 히스패닉 노동자는 남미 본국에 있는 자기 친척들보다 더 기술적으로 진보된 장치 (예를 들어 구글 크롬캐스트)를 쓰면서 살고 있을 수 있습니다.

미국은 자동차가 필수적이고 중고차도 많으니까 저임금에도 불구하고 중고차를 몰고 있을 수도 있죠. 그럼 이 사람은 최신 구글 전자기기에 자동차가 있으니, 남미 본국에 있는 중산층 가족들보다 잘 사는 것인가?  

안 그렇거든요. 더 많이 일하고 월급받아서 더 빠듯하게 살고 있죠. 

 

하지만 달러 기준으로 명목달러로 전환을 하면, 본국에 있는 중산층보다 이 청소부 노동자가 더 소득이 많은 것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착시현상이죠. 

 

이런 기본적인 것 조차 구분 못한채 그냥 막 뒤섞어서 쓰면서 일본이 우리나라 보다 사정이 나았다고 강변하는 사람들을 여럿 봤습니다. 

Updated at 2018-10-11 12:44:17

그리고 그 키 문제는 유전적인가 아닌가는 좀 의문의 여지가 있습니다.

키는 유전적인 요인이 크게 작용하지만, 그 유전자가 발현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충분한 영양공급입니다. 식사량이 부족하면 키가 안자랍니다.

둘 중에 어느쪽인가는 좀 더 제대로 된 연구를 통해 가려져야 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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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11 07:45:43

본문은 문명을 논하고 있는데 은근슬쩍 GDP를 끌어들이시는군요.

1
2018-10-11 12:17:19

문명을 구성하는 요소가 1~2가지가 아니죠. 그리고 문명만큼 다의적인 의미를 내포하는 용어도 그리 많지 않고요.

처음 댓글을 달기 전 본문에 캡처된 내용 관련 몇 번 곱씹어 봤는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결국 얘기하려는 바가 당시 생활수준인 것 같더군요. 그럼 시계열적 관점에서 1인당 GDP를 포함한 한일 양국의 경제상황 추이를 비교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19세기 당시 일본이 우리보다 못살진 않았습니다. 오히려 상대적으로 우리보다 나았죠.

만약 대규모 기근의 사례나 민란의 발생 빈도 같은 구체적인 예시라도 했으면 그나마 참조를 했겠는데, 그냥 식문화 차이로 볼 수 있는 밥그릇 크기 얘기를 하니까 진짜 뜬금없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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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11 06:30:51 (121.*.*.36)

전우용은 황교익때문에 타켓이 되어 무슨글이든 반론이 나올수 밖에 없겠군요
그 동안의 수많은 어록에는 반응 없던 사람들의
글이 갑자기 등장하는것 보니

Updated at 2018-10-11 07:06:32

일본이 육식을 금지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학창시절 읽었던 '상식밖의 일본사'(1995)란 책을 통해서였습니다. 우리 조상들의 대식(大食) 문화에 대해 알게 된 것은 예전에 모 밀리터리 게시판에서 한국전쟁 당시 한 군인이 식사하는 사진을 본 적이 있는데, 그 밥그릇의 크기가 거의 철모 수준이라 관심이 생겨 역으로 추적한 결과이고요. 한국/일본의 GDP 추이는 앞의 두 사실보다 뒤에 알게 된 내용이긴 하지만, 이것도 인지 시점은 몇 년 정도 됐죠.

 

사람들이 흔히 범하는 오류 중의 하나가 자신이 아는 것은 남들도 알고, 자신이 모르는 것은 남들도 모를 것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실제론 개인별 관심분야ㆍ배경지식의 차이 때문에 실상은 천차만별입니다. 어제 저녁에 애와 함께 VOD로 '전설의 마법 쿠루쿠루'(마법진 구루구루ㆍ2017년판) 보다가 중간에 잠이 드는 바람에 오늘 새벽에 일찍 깨 DP 접속했다가 흥미가 있는 주제라 답글을 단 것이고요. 전우용이란 분이 어떤 사람인지는 아까 나무위키를 검색해 알았습니다. 게시판 제목에 몇 번 뜨는 것을 보긴 했지만, 같은 역사라고 하더라도 제가 관심이 있는 쪽은 주로 과학/전쟁/기술/문명사 방향이라 여태까지 그냥 지나쳤던 것이고요.

 

예상보다 답글이 길어지긴 했는데, 너무 한 쪽의 관점으로 글을 쓰게 된 동기를 추단하진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예전에 비슷한 일을 겪은 적이 있는데, 별로 좋은 경험은 아니더군요. 하여튼 님이 쓰신 리플 때문에 당사자가 황교익과 - 솔직히 황교익氏도 DP에서의 논란을 통해 인지하게 됐죠 - 관련이 있는 인물이란 것을 알게 됐지만 말입니다.

2018-10-11 07:08:52 (211.*.*.135)

황교익 이전에도 반론 의견이 있던 사람입니다.

Updated at 2018-10-11 07:57:33 (211.*.*.33)

집에서 식사할때 반찬 좀 많이 먹으면 와이프가 "반찬 조금만 먹고 밥 많이 먹어"라고 꼭 한마디 합니다.

같은 양을 먹어 배를 채울려면 반찬들 보다 밥이 싸다고 합니다.

밥을 많이 먹은건 다양한 먹거리의 부족과 단백질섭취가 힘들어 밥을 많이먹어 영양분을 채운것입니다.

고기를 안먹은게 아니라 못먹은 겁니다.

조선시대의 궁핍함을 절제로 포장하지 맙시다.

없어서 못한것 뿐입니다.

8
2018-10-11 08:09:07

sns내용은 조선이 고기를 더 많이 먹었다는 것 아닌가요? 절제얘기는 건축물과 관련이 있고요.

2
2018-10-11 09:19:31

본문의 전우용씨 글을 잘못 읽으신 것 아닌가요?

17
2018-10-11 08:38:36

이 분이 하고자 하는 말은 문명이나 gdp는 일본이 앞섰는지 모르지만 일반 서민들 생활이 풍족한 조선이 더 백성을 위한 문명이란 점에서 나은 것이 아니겠느냐 가 아닐까합니다.  물론 댓글 중에 먹을게 그거밖에 없어서 그나마 밥을 많이 먹었다는 글도 있지만 어쨌든 일본 서민에 비해서는 풍족하게 먹은 거 아니냐라는 뜻 같습니다.

5
2018-10-11 10:31:06

이 글의 핵심은 바로 그건데 본인들이 오독을 해놓고 이상한 소리들 하는 사람이 많죠.

시쳇말로 "뭐라고 해도 뭐라고 알아들으니 더이상 할 말이 없다"에 해당하는 경우입니다.

9
2018-10-11 09:48:00

 본문글과 댓글이 미스매치되서 읽으면서도 뭔 얘기들 하는거야 싶네요

 제가 이해하기로는 그냥 백성들 배불리 먹던 조선이 좋더 좋았던거 아닌가 하고 묻는 글로 보이는데...

1
2018-10-11 09:58:17

아....내용은 진지한데.....먼가 코믹스러운 상황이....

3
Updated at 2018-10-11 10:40:21

숙종 때 조선통신사 신유한이 쓴 해유록을 보면 임진왜란에서 패한 일본이 개방과 무역을 통해 엄청난 발전을 이룩한 것을 보고 충격을 받는 대목이 곳곳에 나옵니다. 조선이 소중화(小中華)에 취해 왜놈이라 무시하며 유교와 당쟁에 몰두하고 민생을 등지는 100년 동안 왜는 패전을 극복하고 국제교류를 통해 조선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발전하여 거리와 하천을 정비하고 의식주를 개선하여 사람들의 차림이 화려해지고 각종 산업과 문화는 물론 향락업 마저 찬란하게 발달한 것을 보고는 놀라죠. 


한편으론 조선인보다 체구가 작은 왜의 노동자들이 밥을 적게 먹으며 고된 일을 할 수 있는 것에 의아함을 품기도 하고, 그렇게 발전한 왜가 여전히 중국과 조선의 문을 숭상하여 자신의 숙소에 글을 받으려 장사진을 친 모습에 우쭐해하며 당황하기도 하죠. 뿐만 아니라 조선에서 잡혀 갔던 포로들의 상당수가 자발적으로 훨씬 발전한 일본을 선택하여 남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기도 합니다. 


국제적 흐름 속에서 왜의 발전 상을 직접 목격하지만 통신사를 파견하는 나라라는 자부심으로 애써 자위하는 저자 자신의 씁쓸한 심경 마저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러한 시대의 변화를 제대로 받아들이고 해석하지 못한 조선은 200년 뒤 결국 일본에 합방되어 식민지가 됩니다. 그리고 나라는 두 동강이 나죠. 그렇게 또 수십 년이 흐른 뒤 과거 참담했던 실수를 불굴의 노력으로 만회하여 경제적, 문화적 발전을 이룩한 옛 조선의 반쪽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약소국에서 어느덧 작지만 제법 잘사는 나라가 된 것에 큰 자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앞선 선조들이 저질렀던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고 지금의 번영을 조금이라도 더 지속 발전시키려면 역사를 제대로 해석해고 현재를 냉철하게 인식해야 합니다. 때문에 다른 나라의 문화를 해석할 때 특수한 배경과 맥락을 이해하고 상대적으로 우리를 들여다 보는 것이 훨씬 유의미합니다. 조선이 소중화의 관점으로 왜의 발전을 왜곡, 외면했던 오류를 저질렀던 것처럼 현재의 일본이나 중국 혹은 동남아시아의 어떤 나라를 바라볼 때 강대국의 논리를 무조건적으로 수용하거나 혹은 민중의 밥그릇이라는 미시적 관점에 치우쳐 해석하는 것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예시이죠. 한술 더 떠서 그 해석을 우화로 삼는 것은 역사학자로서의 바람직한 스탠스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약소국 컴플렉스 만큼이나 소위 국뽕도 바람직하지 않은 이유죠.

2018-10-11 12:34:14 (211.*.*.33)

못난부분은 못났다고 얘기합시다.

꿈보다 해몽이 좋다고, 자꾸 미화하지 말자구요.

집을 크게 못지은건 거기에 상응하는 경제력과 자재가 부족해서였고,

밥그릇이 큰건 밥 말고 달리 먹을게 부족해서 밥이라도 많이 먹은겁니다.

일본이 육식이 금지되었다고는 하나, 생선을 계속 먹었습니다.

이제 지나친 국뽕사관도  경계합시다.

1
Updated at 2018-10-11 14:01:44 (58.*.*.109)

집을 크게 못 지은 게 경제력과 자재가 부족 했다는 것은 어디에 근거한 의견 인지요?
식민지배사관에 젖은 자기비하도 그닥 바람직한 모습은 아닙니다.
아직도 조선시대 백성들 흰 옷이 염색기술이 없어서 그랬다는 헛소릴 믿는 부류도 있던데..

2
Updated at 2018-10-11 13:54:26

'상대적'이란 말뜻을 모르시나요?

한일양국 서민들의 밥그릇을 통해 상대적 생활수준을 비교하는 글에 웬 없어서 못했다는 타령입니까?

그리고 조선이란 나라가 유학의 철학적 이상에 따라 세워진, 유래가 없는 나라였으며 그 철학이 사회 곳곳에, 그 중 건축과 공예를 예를 들어 그런 검박함이 반영이 되었다는 설명입니다.

있는 티를 굳이 내느냐 안내느냐의 문제를
있으면 티내고 없으면 못내겠지의 문제로 바꿔버리시는군요.

1
Updated at 2018-10-11 13:38:49

애초부터 조선시대나 에도막부 시대나 200년이 넘는 시기인데 단순 비교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임진왜란 전같으면 조선시대가 더 잘 산 건 맞죠. 근데 그 이후에 서서히 국력이 교차되긴 하니까 애매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건물은 다 불타서 없어진 것도 많고요 일본이야 불탄 것도 적지만 돈이 워낙 많아서 나중에 복원한 건물도 많고요.

결국 동양이 변화에 늦었던 이유 중에 동아시아 국가들이 꽤나 합리적인 정부를 가지고 있어서 서민생활이 풍족한 편이었던 점도 이유라고 볼 수 있죠. 어쨌든 르네상스 이전까지만 해도 명백하게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문명권이었던 것은 사실이잖아요. 거기에 너무 안주한 나머지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했던 폐해를 이야기 할 수는 있으나 건물 몇층 더 높고 덜 높고 가지고 따지는 것도 좀 의미 없는 이야기 같습니다. 

Updated at 2018-10-11 14:37:39 (39.*.*.249)

동아시아의 문명영향권일 뿐입니다.
서민인 농민의 표준주택 초가삼간만 보더라도 결코 서민생활이 풍족했다고 말할수 있을까요?
농경사회에서 상업사회로 변경하지 못해 도시화를 이루지 못했고, 도시에 효율적인 고층건물이 필요없었죠.그러고 백의 민족이라 흰옷을 즐겨 입은게 아니고 고가의 염색연료를 사지못해 그냥 입은겁니다. 그렇게 흰색을 좋아하면 왜 돌이나 환갑때 색동저고리를 입습니까? 그만큼 중요하고 의미가 있는날이라 입었죠. 대부분은 염색못한 누런옷을 입었습니다. 하얀와이셔츠 하루밖에 못입어요. 흰옷을 입은 사람은 노동을 하지않던 양반들입니다. 안한게 아니로 못한겁니다. 못한걸 안한걸로 위안삼지 맙시다.

Updated at 2018-10-11 15:11:30 (58.*.*.109)

초가집이니까 삶이 풍족하지 못했다? 그 당시에 일본서민은 벽돌집 짓고 살았나보군요.

조선이 상업사회가 아니었다? 송도사개부기라도 한 번 검색해보시고 그런 말 하세요.

조선인 가난해서 염색못한 옷만 입었다? 평소에 밭 갈러 나가는데 색동옷 입고 나가겠습니까..

일본 서민들은 무슨 비단옷 입고 농사지었는 줄 알겠어요. 

조금만 생각해봐도 말이 안되는 것을..

이런 오래된 식민지배사관 좀 벗어날 때도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2018-10-11 14:45:42

그렇게 단순히 비교할 수 없다는 걸 말하기 위한 건데, 그 문맥은 읽지 못하면서 단순히 국뽕이라고만 하는군요. 

달을 가리키는데 손가락보고 뭐라하니 대화가 통할 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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