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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한잔]  교화(敎化)의 가능성 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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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9-05-22 00:40:13

http://www.beopbo.com/news/articleView.html?idxno=53939 

 

어쩌다가 못된 짓을 했더라도
착한 행동으로 덮어버린다면
그는 이 세상을 비추리라
구름을 벗어난 달처럼 - 『법구경』 
 
 

교화(敎化) - 교도감화(敎導感化)의 준말. 가르쳐 이끔. 사람을 일깨워 고통 받는자를 편안히 하고 의심하는자를 믿게 하고 잘못을 저지르는 사람을 바른 길로 돌아가게 함을 말한다.

법화경 방편품에 여러 부처님께서는 다만 보살이 되도록 가르칠 뿐이다. 라고 했듯이 불교에서는 중생을 가르쳐 악에서 선으로 이끌어 주는 것, 즉 불법에 귀의시키는 것이다.

이런 종교적인 의미뿐 아니라, 오늘날 비행 청소년들의 문제가 심각한 이때 그들이 바르게 자라도록 이끌어 주는 이 그것이 곧 교화인 것이다. [다음 사전]

 

 

어느 의미 '소통'과 '설득'이랑도 통하는 말이죠.

이게 가능하려면, 기본 전제 자체가 공감과 자각의 필요성입니다.

 

타인의 고통에 대한 공감, 자신의 행위에 대한 도덕적 자각이 없이는 반성이 나올 수가 없고, 반성이 없다면 개과천선이라는 다음의 해결책-행위가 따라올 수도 없죠.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이고 잘못인가..?

이에 대한 고민과 토론은 철학적으로 파고 든다면, 밑도 끝도 없이 갈래를 칠 주제이긴 하나.. 적어도 범용으로 통할 수 있는-우리사는 인간세상을 기준으로 한다면, 인간의 기본인권에 관한한 침해가 없는 영역일 것입니다. 홍익인간(弘益人間)으로 발전한다면, (적어도 인간세의 기준으론) 더없는 이상향이겠지요.

 

인간성 발현과 완성의 궁극으로 인정되며 존경받는 지구상의 성인들 중에서 부처님을 한 예로 든다면,

기본적 소양을 갖춘 평범한 인간성만 띄더라도 아마 그분을 직접 친견하게 되면, 그 성스러운 오라에 감화되어 자연히 흠모와 귀의심을 품게 될텐데.. 그 부처님 당시에도-심지어 부처님이라는 상대를 대하고도 일말의 자애심을 띄지 않고 부처님께도 살의를 품고 실행한 데바닷타와 같은 인물도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배신한 유다는 후에 죄책감에 못이겨 자살을 했는데, 데바닷타는 그런 것도 없어서 곧바로 지옥행..

수많은 살업을 행한 앙굴리말라라는 대살인마도 부처님께 귀의해 개심한 것과 비교하면, 부처님의 친족으로서 한때 유망한 제자이기도 한 그의 타락?-불변한 악마성은 그야말로 답이 없는 수준입니다.

 

문제는 이 지구상엔 이와 같이 답이 없는-안 나오는 부류들도 존재한다는 점.

인간도의 대의를 선의(善意)로 둘 수 밖에 없고 그로 인해 마땅히 교화라는 대전제로 경영해야할 사회이지만, 결국 지옥이 심판하고, 복수는 신의 영역이라는 혹자의 말은.. 종교적 신심이 없는 자이거나 범인(凡人)들에게는 너무나 먼 곳의 말인 것도 사실입니다.

당면한 이 현실에서 무고한 피해자가 오랜 시간 감내하기에는.. 정말 수월하지 않은 일이지요.

그렇기에 엄정한 단죄란 이 현실을 경영하는 자에게는 무시할 수 없는 숙제입니다.

 

 

아무에게나 허락되지 않는-긴 생애, 아무에게나 허락되지 않는-드물게도 주어진 무수한 기회라는 천복(天福)을 가지고도 끝끝내 개심치 않고 반성과 사죄의 일언반구가 없는 이들의 추례한 말년의 면목을.. 근래 접한 이들이 많습니다.

본래 사이코패스로 태어난 것은 아닌데, 자기 생의 정당화를 위해 사이코패스가 되기로 마음먹은 이들의 선택은.. 정말로 불쌍하고 어리석기 그지 없습니다. (천년을 쌓은 복을 수겁의 형벌로 날리는구나..)

저는 종교적 신심이 있기에 더욱 그렇게 느껴지는 듯 합니다.

 

대부분의 말과 글은 쓰는 이 스스로의 생각이고 주장이지만, 들어주는 이 없이 쓰는 글이 아닌 이상에야 소통의 도구로서 기능하는 것이지요.

그렇게 본다면, 이 세상에서 언론이 담당하는 영역이 참 크고 그 책임 역시 참으로 막중한 것입니다.

기레기 취급을 받는 언론인은 자신의 말로가 결국에 쓰레기가 된다는 경고도 그 '문자'에서 감지해야 할텐데요..

그저 하루살이로서 하루만을 살려고 살아가는 우(愚)입니다.

1년의 시간만 살 수 있어도,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계의 존재를 알 수 있을텐데.

 

 

정의로운 말과 글은 그 뜻처럼, 결코 부패하지 않습니다.

천년 전에도 그러한 것이고, 지금도 그러한 것이기에. 천년 전 사람의 말과 글이 마치 어제의 일처럼 자연스레 받아들여지고 여전히 가능성을 품은 이들을 향상일로(向上一路)로 이끌고 있지요.

 

가능성이 있다는 것, 열린 틈이 있다는 건 그래서 중요합니다.

물고기는 용(龍)을 보고 그 위용과 풍채에 압도되어 경외심을 품지만 그렇다고 그에 비교되는 자신의 초라한 면만을 되새길 필요는 없습니다. 그 용도 아주 먼 옛날에는 자신과 같은 그저 한마리의 물고기였다는 사실을 알 것. 그래서 아주 늦은 때란 결코 없고, 초발심(初發心)이 곧 성공의 반임을 느낄 것.

땅 속의 씨앗이 마침내 큰 거목이 되듯. 하루하루의 작은 적공(積功)이 이윽고 커지고 높아지는 이치를 안다면, 개과천선.. 그 첫 실행의 의미도 크게 다가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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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untain is blue, water is flow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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