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한잔] [역사] 19세기 프랑스인의 눈에 비친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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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19 14:29:31
당시 풍물과 역사 제도 국제관계를 면밀히 파악한 것은 그것이 “기독교를 앞세운 제국주의자들의 침략 사전작업”이기 때문입니다. 너무 피해의식적으로 보시는 것 같네요... 선교사들이 선교를 할때 그 지역 풍속같은 것을 세세하게 기록하였으며 그 지역에 혹은 교황청에 보고가 되어지고 그 자료를 모아서 책을 내며 돈을 모아 선교자금을 하거나 새로운 선교사를 모을 자료로 쓰곤 했죠..
그 뒤 제국주의자들이 그 책을 자료삼아 침략을 한 것입니다. 그게 그소리다라고 하시겠습니다만...
아프리카의 침략을 가속화 한 것이 선교사 리빙스턴이 의료사업을 하면서 남긴 자료덕분이었습니다. 리빙스턴은 그 선교자료로 아프리카인들에게 더 많은 문화 혜택이 갈 수있게 하려고 했지만, 그 자료를 받은 미국인 스탠리는 제국주의들이 아프리카 내륙까지 미치게 만들죠. 스탠리를 욕해도 리빙스턴을 욕하는 사람 없습니다... 4
2019-11-19 15:02:51
피해의식이 아니라 역사적 사실이 그러합니다. 소위 탐험가라는 것들이(실제로는 제국주의 침략의 선봉장이죠) 이런 지역에 뭐가 있다라고 보고하면 그 다음으로 선교사들이 들어가서 밑밥 깔아놓고 다음에 상인과 군인들이 들어가는 겁니다. 그건 그냥 공식이에요 피해의식 어쩌고도 아니고요 물론 당시 개개인들은 본인의 부와 명성을 종교인들은 포교를 위해서 활동한거겠지만 결국 제국주의라는 거대한 틀 안에서 역할을 수행한 겁니다. W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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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19 15:18:03
현재 이미 학계에서 사장되고 있는 견해입니다. 대부분의 경우 상인, 관료, 군인, 선교사 등의 이해관계는 상충되고 달랐습니다. 이 서로 다른 집단이 동일한 목적이나 계획으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인 게 아니라는 말이죠. 다만 한가지 확인할 수 있는건 당시 서양의 기록문화가 굉장히 꼼꼼했다는 것입니다. 군인이든, 상인이든, 선교사든 모두 아주 자세하고 방대한 기록물을 남겼습니다.
2019-11-19 14:31:59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추천하고 갑니다. 1
2019-11-19 14:42:39
코리아는 고려때 벽란도를 드나들던 아라비아 상인들이 부르던 이름입니다
Updated at 2019-11-19 16:35:54
님의 동서고금을 넘나드는 방대한 지식에 늘 감탄합니다. 님의 정체가 궁금해지기도 하는군요. ^^
전주시내 신흥고등학교 건너편에 선교사 묘역이 있습니다. 이곳을 방문하고 숙연해지면서, 종교 여부를 떠나서 초기 기독교 선교사들이 우리나라 근대화에 기여한 노력에 감사를 드렸습니다. 이 곳에는 당시 지금 아프리카 이상으로 열악한 생활환경이었던 우리나라에 와서 우리나라 풍토병과 부족한 의료시스템때문에 사망한 선교사들과 그들의 어린 자녀들이 잠들어 있습니다. 특히 어린자녀들의 무덤앞에서는 눈물이 흐르는 것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https://blog.naver.com/kjyoun24/221345608194
예수회 선교사에 관한 글이라서 개신교 선교사에 대한 감상을 잠깐 적어보았습니다.
2019-11-19 21:23:47
굉장히 흥미로운 데요 잘 읽었습니다
2019-11-20 00:35:55
음....구황이 나라의 중요정책이라 고구마와 감자를 퍼뜨리고 재배에 대한 책도 나왔다는 얘기는 봤는데요. 감자경작 금지는 좀 상충되는 얘기라 의아합니다. 조선후기면 대동법이 시행되고, 보가 발달하며 밭도 논으로 바꾸던 시기였을텐데 세금문제였을라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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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의 시각으로 본 우리의 모습은 흥미로운 소재입니다.
물론 당시 서구인의 시각에서는 극동의 비문명국으로 묘사되었을 가능성이커서 걸러봐야겠지만은요.
본문에 올려주신 조선교회사는 검색이 안되는 걸 보니 아직 국내에는 번역이 안된모양이네요.
아마 원서로 읽고 계신것 같은데 번역하셔서 출간해보심이??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