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한잔] 낭만고양이
노래 제목으로 접했을 때, "응?" 했던 조합이어습니다. (혹시나 해 체리필터 그 노랫말 다시 찾아봐도) 거리의 고양이가 화자인 게 분명 맞는데 그렇다면 더더욱 맞지 않는 수식어라 여겼죠.
길고양이의 처지를 가까이 접해보기 전에도 우연히 맞닥뜨린 그들 행색은 거의 겁에 질려 도망가기 바쁘고 주눅 든 채 눈치 보던 게 대부분이었는데 낭만이라니, 뭔 소리 했습니다.
그런데 길냥이들 접촉하면 할수록 그리고 집의 고냥씨를 보면 볼수록 낭만고양이란 조합에 끄덕이게 됩니다.
작은 것 하나에도 힘차게 하늘 향해 수직으로 치솟는 녀석들의 꼬리, 참치캔 하나에 똥꼬발랄해지는 명랑함, 조금 배 부르면 지들끼리 뒷발팡팡 투닥투닥 장난스런 싸움질, 절망스런 순간에도 침착해지는 놀라운 평정심..
차가운 공기를 칼의 날보다 더 서늘하게 가르는, 생을 걸고 싸우는 길냥이들의 먹이와 짝짓기 다툼 소리에 불편을 넘어 소름 끼침을 느낄 수 있습니다.(산을 이웃한 주택지는 고라니의 특유의 울음도 혐오의 대상이죠)
그럴 때, 인간이 내고 만드는 도시의 소음으로 어둠 너머 공포에 짓눌리고 삶의 질이 수명에까지 영향을 받는 존재들이 있다는 것을 환기해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애초 상당수 도시는 들이었고 산이었던 그네들의 삶의 터전을 인간이 치고 들어 와 만든 곳이니까요.
조금 덧붙이면, 몇 년 전 산중 가르는 지방도 옆에 살았는데 그때 가장 큰 고통 가운데 하나가 자동차(+오토바이크)가 내는 소리와 행락객이 내는 유흥의 괴성과 정신 없던 노랫소리였습니다.
주변 인가 없어 조용했지만 그런 만큼 더 도드라지게 도로를 채우는 자동차 굉음은, 송이철이나 나물 채취 시기가 되면 끊임없이 어두컴컴한 새벽부터 울려서 사람은 알고서 소음만큼의 고통과 불편이지만 동물들, 새들, 나무들은 공포공포겠구나 싶을 정도더군요.
낭만 얘기하다 소음으로 빠지는 삼천포 흐름을 여기서 이만 끊어야겠습니다.
분명 사는 건 지난 날과 비교할 수 없이 누리는데 갈수록 팍팍해지고 죽을맛이란 2020년을 사는 우리에게 끝으로 낭만고양이의 사진 몇 장 덧붙입니다.
#배 고프다고 길 막으며 울던 녀석에게 밥셔틀 인연이 5년 지났는데, 그 전 버려진 교회에서 6~7년 넘게 쥐잡이 노릇했다니 사람으로 치면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 든 길고냥씨죠.
많이 지쳐 보이는 녀석이 겨울 잘 지나 캣닙의 황홀함과 캔따개의 충성을 잘 받아주길 빌어봅니다. (스크래처로 쓰는 죽어 쓰러진 나무에 캣닙 뿌리니 세상 가장 제일 낭만고양이가 된 녀석의 이름은 레몬입니다. 첨 봤을 때 너무나 노랗게 빛 나서 레몬이라 불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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녀석 엄청 장수했네요! 저희 동네 냥이들은 그렇게 챙겨 주고 보호해 줘도 2년 이상 가는 녀석이 거의 없어요.ㅜ 속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