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정치] [미국 정치]피트 부티지지와 샌더스의 아이오아 승리
실제로 부티지지가 조금 더 앞섰지만, 어쨌든 두 후보 모두 아이오아에서 승리했다고 했네요.
인구 10만의 도시의 재임 시장이며, 시장 재선 전 커밍아웃한 무명의 게이 정치인이 민주당 첫 경선지인 아이오아주에서 버니 샌더스와 1위를 치열하게 다투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트럼프는 부티지지의 성이 희소성을 비아냥 거리듯이 Buttigieg는 'boot edge edge'라고 발음하는 것이라고 놀리기도 하였습니다.
12년전 오바마는 아이오아주에서의 승리를 시작으로 전국적인 붐을 일으키며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될 수 있었고, 오바마의 선거 캠프에 참여했던 부티지지는 12년만에 본인의 선거를 치루고 있습니다.
오아이오 주 캠패인에서 부티지지는
1. 미국 연방정부가 동성 결혼을 허용하는 것보다 6년이나 먼저 동성 결혼을 허용한 것이 아이오아주라는 점과 그것이 자기 같은 사람에게 어떤 의미인지,
2. 아이오아가 오바마를 선택한 것이 미국의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점, 그리고 자신이 그 역사에 있었다는 점
등을 강조하였습니다.
이런 부티지지의 선거운동의 결과인지 당초 예상은 조 바이든과 버니 센더스의 경합이었으나, 다소 다른 결과가 나온 듯 합니다. 어느 미국 뉴스에서는 경선 2~3일 앞두고 지지를 결정한 민주당내 부동층 중 압도적으로 부티지지를 지지하는 쪽으로 결정하였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민주당 경선에서 아이오아주의 승리가 마치 노무현의 광주 경선 같은 의미를 가진다는 의견이 있는데, 이는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리는 것 같습니다.
맞다는 것은 오바마의 경우인 것 같습니다. 오아이오주의 선택이 민주당의 선택이었습니다. 왜냐하며, 오바마는 민주당내에서 진보적이었으며, 흑인이었는데, 민주당 내 거의 가장 보수적이었던 아이오아주에서 1위를 차지한 것이 매우 의미있는 것이었다고 보여집니다.
부티지지에게는 조금 다른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부티지지는 중도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민주당 관점에서 보면 비교적 보수적이라는 의미입니다. (이로 인해서 LGBTQ 내부에서도 부티지지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즉, 아이오아주의 성향과 잘 맞는다는 의미입니다. 더불어, 시장으로 재임하면서 지역내 흑인들과의 문제가 부각되면서 흑인 및 마이너리티의 지지도 받지 못하는 편입니다. (부티지지의 지지층의 연령대를 보면 젊은 층보다 중장년 층이 2배 이상 높습니다.)
즉, 오아이오주가 오바마에게는 열세 지역이었지만, 부티지지의 경우는 우세 지역이라는 의미이기에 그 의미가 서로 다르게 보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아이오아주에서 샌더스의 선전에 주목해야 할 것 같습니다. 심근경색, 나이, 건강 등으로 꾸준히 공격받고 민주당내 지지기반이 없는 사회주의자가 아이오아에서의 선전한 것은 오바마의 그것과 비슷하게 봐야 할 것 같습니다. 4년전에도 아이오아에서 힐러리와 접전을 펼친 것은 같지만, 이번에 조금 다른 것 같습니다. 지난 번엔 샌더스가 도전자의 입장이었다면, 이번에는 샌더스의 입장이 도전자의 입장이 아니라는 점, 바이든, 부티지지이건 민주당내 보수적 성향의 특출난 후보(지난 번 힐러리 같은)가 없다는 점 등에서 이번 경선에서 샌더스의 선전이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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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드루 양의 성적이 생각보다 많이 저조해서 아쉬웠습니다. 아이오와도 자동화때문에 피 많이 본 주 아닌가요? 그래서 앤드루 양의 비전에 공감하는 사람이 많을 줄 알았는데요 ㅠㅠ
몇몇 미국인 친구가 민주당 주류가 샌더스를 찍어내려고 바이든 대신 부티지지를 민다고 하던데 성향상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군요. 저는 부티지지가 처음 내셔널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시작할 때 쯤에 팔로우 하기 시작했는데, 민주당이 16년 대선에서 패배한 중요 요인인 민주당 텃밭 러스트벨트 (위스컨신, 미시건... 펜실베니아는 경합주) 주 들에서 일단 본인 출신이 러스트벨트이다 보니 뉴욕 금수저 출신인 트럼프보다 조금 더 호소력 있고 공감되는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서 본선까지 나가도 좀 유리하지 않을까 생각해서였습니다.
그런데 앤드루 양은 실질적으로 그런 러스트벨트 주에서 재교육 사업을 했던 사람이다보니 민주당이 그런 러스트벨트 주들을 되찾아오기 위해서는 앤드루 양이 제기하는 논의를 보다 진지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