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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한잔]  [역사] 18세기 중국이 러시아에 파견한 사신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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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14 18:02:22

1712년, 한 만주인 고위 관료가 러시아에 파견되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툴리션(Tulixen)"으로, 팔기에 속하는 유서 깊은 가문 출신이었고, 강희제의 명을 받들어 몽골 사막과 시베리아 툰드라를 건너 러시아에 갔습니다. 

 

볼가 강 근처에 다다르자 러시아의 시베리아 총독 가가린 공은 그를 위해 성대한 환영식을 베풀었습니다. 

그는 러시아의 차르 표트르 대제를 알현하길 희망하였으나, 그 만남은 성사되지 못했습니다. 사실 수도 상크트페테르부르크 방문도 성사되지 못했는데 당시 표트르 대제는 스웨덴과의 전쟁으로 부재중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그는 본래 외교적 목적을 달성하였고 귀국 후에는 중국 최초의 "러시아견문록"을 남기게 됩니다. 

 

당시 강희제가 툴리션에게 내린 훈령은 다음과 같습니다. "러시아에 가거든 그 나라의 예법을 따르라"

 

이와 같은 훈령은 중국 역사상 아마 전무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애초에 사신을 파견하는 행위도 유례가 없는 것이었죠. 조공사절에 대한 회답사신은 있었지만, 어떤 외교적 목적을 위해 타국에 먼저 사신을 파견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그럼 강희제는 왜 러시아와의 교류를 이토록 원했던 것인가?

 

사실 18세기 청나라 입장에서 가장 중요했던 문제는 오늘날 신장 지역의 몽골족이었습니다. 몽골족은 예부터 대단한 전투민족으로, 만주인들도 쉽게 제압하지 못했습니다. 특히 명나라를 멸망시킨 것도 얼마 되지 않고, 만주국가의 존망을 위태롭게 하던 삼번의 난을 평정한 것도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서부의 오이라트, 토르구트, 준가르 등 몽골족이 세력을 일으켜 만주인들의 국가를 위협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같은 시기 러시아는 무섭게 동부로 팽창하고 있었고, 만주족에게 패배한 많은 몽골인들이 러시아로 떠났습니다. 

 

이에 청나라는 러시아와 접촉해서 그들과 동맹하여 몽골을 제압하고자 했고, 동맹이 불가하다면 최소한우호적 중립을 원했습니다. 

 

만주인들은 본래 중국식 "천자"의 개념보다 유목민 기마민족 사이에 통용되던 "칸" 개념에 더 익숙했습니다. 이에 강희제는 러시아를 같은 "칸"으로 인식하였고, 그들과 제휴하여 중앙아시아의 몽골족을 제압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실제로 러시아의 차르는 만주어로 "카간 한"으로 기록되었고, 이는 청나라 황제와 동급이었습니다. 

 

심지어 강희제는 베이징을 방문한 러시아 사절단에 다음과 같이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대의 황제는 방대한 영토를 보유한 위대하고 위엄있는 황제이다. 그대의 황제는 스스로 군대를 이끌고 여러 원정을 수행했다. (중략) 둘째. 비록 20-30명의 러시아인이 중국에 도망왔지만, 마찬가지로 러시아에 도망간 중국인들이 있다. 이러한 무법자들로 인해 양국 간의 관계가 훼손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그대와의 견고하고 영원한 평화를 바란다. 


또한 우리 양국 간에 불화가 발생할 이유는 없다. 당신네 나라는 매우 춥고 멀기 때문에 우리가 군대를 보낸다면 반드시 실패할 것이다. 아무 이득도 얻을 수 없다. 그대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당신네 군대는 우리 기후에 익숙하지 않고 화를 면치 못할 것이다. 우리 양국 간의 전쟁은 아무런 이득이 없다. 그렇다. 우리 둘은 모두 이미 많은 영토를 보유하고 있다." 

 

강희제는 러시아를 완전히 "동격"으로 인식하고 이에 맞는 대우를 한 것입니다. 이는 중국의 "세계관"으로는 매우 부자연스러운 일이죠. 

 

실제로 중국은 이후 한 차례 더 사절단을 보냈습니다. 1734년 토시라는 만주인은 상트페테르부르크까지 갔고 그곳에서 여왕 안나 이바노프나를 알현했고, 놀랍게도 그녀에게 삼배고두례를 했습니다. 

 

그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수개월간 머물렀다고 하는데, 아쉽게도 그가 어떤 기록을 남겼는지는 도무지 알 수 없습니다. 

 

18세기 만주인(중국인)이 보았던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소감은 어땠을까요? 이에 대한 기록이 남지 않았다는 게 굉장히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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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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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14 18:09:41

녹정기가 떠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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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14 18:39:03

상페테르부르크  네바강 가에서 청나라에서 선물받은거라고 쓰여진 중국 돌사자상을 본적이 있습니다.

참 멀리서도 왔다 하는 생각을 했더랬습니다.

 

2020-02-14 19:18:46

중국의 세계관으로 보자면 예외적인 일이지만

어쩌면 강희제는 본토 중국인이 아닌 청나라 사람이라서 가능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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