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정치] 그 나라 옆에 사는 죄
방금 서울 나갔다가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작은 소동이 있었습니다.
한 노인이 이 나라가 미쳐 돌아간다고 고래고래 소리치고 있었죠. 그는 문재인이 우릴 속이고 있고 빨갱이들이 부정선거로 국회를 장악했다고 이게 다 젊은이들이 나라 생각을 안해서 된 거라고 쉴새 없이 외쳤습니다. 마스크를 쓰고 휴대폰만 집중하던 사람들은 슬금슬금 그 노인 곁을 피했고 혼잡한 듯 하면서도 평정을 유지하던 객차안은 어느새 불안과 동요의 분위기가 가득찼습니다. 저는 제 손에 쥐여진 휴대폰, 그 유튜브 화면과 멀찍이 서 있는 그 노인을 번갈아 보면서 과연 우리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존재가 될 수 있는 건가 항상 회의적이었던 그 생각을 다시 한 번 해보게 되었습니다.
작년 7월 이후로 일제를 산 일이 거의 없어요. 딱 하나 파이로트 하이테크 펜 만 빼고요.
글씨 쓰는 걸 좋아하고 필기감에 쓸데없이 민감해서 30년 전부터 그 펜, 0.3미리만 쓰고 있지요.
작년 7월 다른 펜으로 바꾸려고 이래저래 알아봤는데도 도저히 대체할만한 펜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형광펜은 스테들러로 바꿨지만 말이죠.
학생들 앞에서 그 펜을 사용할 때마다 곤혹스럽습니다.
이래도 되나 진정 교육자로서 이래도 되나... 누가 저만 쳐다보는 것도 아닌데 항상 죄지은 심정입니다.
요즘 파이널판타지15 게임을 하고 있어요.
파판7때문에 플스4를 사나마나 하다가 학생 하나가 pc로 ms스토어에서 엑박패드가 구동된다는 말에 설마 했는데 되네요. 그것도 첫달 단돈 1000원에 얼티밋패스하니까 파판15가 공짜고요.
밤 늦게 혼자 패드들고 귀에 헤드폰끼고 앉아서 아름다운 니플하임 제국의 풍경속으로 친구들과 함께 여행하는 녹티스를 조종하면서 대한민국 사람으로서 이래도 되나 하는 죄책감과 그래도 플스는 사지 않았다는 나름의 최선, 그리고 이 게임을 마스터하므로써 지금 쓰고 있는 소설의 퀄러티를 더욱 높여 반드시 국위를 선양하겠다는 조선통신사스런 다짐까지... 그런 고민 속에서 심란해 하다 왜 나는 게임하는 순간까지도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정체성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건가 하는 생각까지 이르면 민주당이 180석을 먹어도 이 나라 국민으로 사는 것은 여전히 머리가 아프구나 하는 결론에 이르죠.
독도 너머에 있는 섬나라를 생각할 때마다 스트레스를 받는 것, 그것은 그냥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태어났기 때문에 지울 수 없는 몽고반점과도 같은 겁니다.
어렸을 때부터 은하철도 999의 테츠로와 마징가 z의 카부토 코우지가 철이와 쇠돌이라고 믿고 자랐고 얼마 못가 그게 다 유관순과 안중근을 죽인 일본놈들이었다는 것을 알고 상처받은 그 순간 이후로 우리는 계속 권력의 최면질에 의해 사는 내내 때로 교묘하게 친일을 주입 당하고 때로 과격하게 반일을 선동 당했죠.
이제 민주정부와 인터넷, 모바일 덕택에 객관적 정보의 크로스체크가 가능하다고 믿는 시민들은 역사의 정당성과 합리적 경제활동 속에서 무엇이 최선인지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립니다.
그 결과 낮에는 익명으로라도 진단시약을 지원해 달라는 뉴스가 그 동안의 불매운동이 이런 보람찬 인과응보로 보답을 받는구나 하면서 기뻐하다가도 밤이 되면 이 나라에 사는 남자로서 건강과 자존감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며 일본 av 여배우들의 영상을 다운 받을 수 밖에 없는, 그러면서도 내가 일본놈들에게 돈을 주는 건 아니라는 당당함, 하지만 결국 저작권 위반이라는 불편한 현실...
말 그대로 하나의 몸뚱아리에서도 배꼽을 경계로 친일과 반일이 나뉘어지고 하나의 뇌에서 하고(또는 사고) 싶다와 해서는(또는 사서는) 안된다는 환멸 어린 고뇌를 반복할 수 밖에 없는 건 그저 그 나라가 옆에 있는 죄, 역사가 다른 덕택에 우리가 가진 것을 그들은 없고 우리가 없는 것을 또 그들은 가지고 있을 수 밖에 없는, 그래서 슬픈 국경의 존재 이유겠죠.
그것은 본질적으로 핵을 두고 매일 일촉즉발 속에 사는 파키스탄과 인도의 관계, 방벽과 동굴, 불법체류자와 마약으로 점철된 미국과 멕시코의 그것처럼 양상만 다를 뿐 인접 국가를 갖고 있는 모든 나라들의 피할 수 없는 운명입니다.
어쩔 수 없습니다. 그게 국가라는 가장 거대하고 강력한 공동체에 속한 모든 개인의 피할 수 없는 운명입니다.
해결방법이요? 있지요.
양국 정치권력이 글로벌스탠더드라는 기준에서 합리적으로 과거사 문제를 해결하고 그것을 양국 국민에게 함께 선언하고 언론과 교육을 통해서 정확한 이해를 공유하고 문화를 통해서 서로의 정서적 특수성을 이해하고 공감대위에 함께 발전적 관계를 모색하면 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아무 죄책감 없이 일본 av도 보고 닌텐도와 플스도 하고 도요타나 렉서스를 몰수 있습니다. 그 나라 역시 혐한의 비난에 눈치 볼 필요없이 k팝과 한국 드라마 원없이 보고 마음껏 한국여행 올 수 있겠죠.
하지만 당분간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그러니까 그 나라에서 우리 나라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당당할 수 있는 가능성과 이 나라에서 그 나라를 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당당할 수 있는 가능성 모두 앞으로 당분간 없습니다. 그리고 상황은 더욱 악화될 거예요. 슬픈 일이죠.
총선 얼마전쯤, 그러니까 그 나라가 올림픽을 연기한 그때즈음, 느닷없이 그 나라와 전쟁이 일어날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날부터 왜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을까 고민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 나라에 관한 이런저런 자료들을 둘러봤지요. 그 나라에 대해서 나름 꽤 안다고 생각했는데 몰랐던 사실이 많았고 그 사실을 알면 알수록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이해가 되었습니다. 그 내용에 대해서는 지금 틈틈히 dp연습장에 글을 써놓고 있고 때 되면 정리해서 올릴게요.
어쨌든 너무 많은 여건이 점점 순수하게 서로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적대적으로 흐르고 있습니다. 두 나라 모두 상대에 대한 너무 강력한 적대적 에너지가 응집하고 있어요. 그 나라나 이 나라나 상대방의 이름만으로도 쉽게 자극받고 분노합니다. 그 나라나 우리나 가까운 시간 내에 서열을 정하기를 원해요. 서로 내가 갑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 나라는 계속 추락하고 있지요. 곧 절벽에 몰릴 거예요. 우리 나라는 계속 질주하면서 앞에서 걸리적 거리는 그 나라가 짜증날 겁니다. 그 나라는 권력이 전쟁을 원하고 우리는 국민이 응징을 원합니다.
그 나라는 전쟁 아니면 해소할 수 없는 국가적 부채를 안고 있고 재정압박때문에 더 이상의 재해는 감당할 수 없는 지경이죠. 경제 반전의 모멘트를 기대할만한 요소도 없고 국가 전체의 혁신 에너지는 완전히 고갈되어 있습니다. 무엇보다 국민이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습니다. 그리고 바로 옆에 세계로부터(특히 서양!) 사랑받는 존재라는 자신들 궁극의 꿈을 현실에서 실제로 이뤄가는 나라가 있습니다. 그들은 그런 존재가 있으면 언제나 죽여버리고 싶어했죠. nhk에서 수십년동안 드라마로 방영하는 전국시대, 오닌의 난으로 시작되는 150년, 피비린내나는 그들의 로망이 바로 그런 이야기입니다.
자민당의 중심은 전범의 직계후손들이고 그들은 조선침략, 청일/러일 전쟁, 진주만 습격의 그 때를 일본의 가장 위대했던 때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군국주의자로서 그들의 장기는 언제나 급습이고 그들의 숱한 전쟁의 역사에서 선전포고는 단 한번도 없었습니다.
섬밖으로 쫓겨나면 그 자체가 죽음으로 여기는, 그래서 일상에서도 이지메의 공포때문에 할말도 제대로 못하는데 수백년동안 길들여진, 그러니까 객관적 현실인식 능력과 비판적 사고가 철저히 거세된 그 나라의 국민들은 아무리 총 한 번 쏴본적 없다할 지라도 권력의 전쟁선포와 극우혐한의 선동질에 절대로 맞서지 못하고 전쟁터에 내몰릴 것입니다. 그래야 자민당이 자신의 위패를 신사에 모셔주고 남은 가족들을 보살펴 줄 테니까요.
우리는 어떨까요?
이 나라의 역사에 이렇게 세계적으로 국운을 떨치던 때가 있었나요?
경제, 문화, 과학기술, 국방에 이어 마지막으로 정치까지 민주주의 세계적 모델을 세우며 모든 면에서 완성형을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북한은 우리의 공장이 되어 자력갱생으로 나가길 원하고 있죠. 통일과 함께 민주적 사법/경제개혁, 코로나 이후의 새로운 경제 질서에서의 역할이라는 상승 모멘텀이 아직 남아 있습니다. 무엇보다 국민들의 자신감이 하늘을 찌를 듯 높습니다. 이제 국민들은 일본과의 과거사, 아니 모든 면에서 서열관계에 대한 속시원한 해결을 원해요. 여기나 거기나 모두 자신이 갑이라고 생각하고 서로 상대방을 한번 제대로 밟아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지금이야 평화적 방법을 우선하는 듯 하지만 여러 상황이 그 나라에게 전쟁 외에는 선택권이 없도록 만들 겁니다. 일단 그들은 무력도발을 하겠죠. 그들은 국지적 도발보다 훨씬 큰 규모로 저지를 것입니다. 우리 정부 역시 당장 전면전을 선포하겠죠. 이 나라 역시 70년 가까이 전쟁 대비를 해왔던 나라입니다. 국민들은 너나없이 자원입대를 외칠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국난극복이 취미인 민족이니까요.
게다가 지금 민주정부는 이전 친일정부와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그 나라가 도발하면 그래 해보자라고 나서는데 주저하지 않겠죠. 그날을 위해서 미사일과 함대 전력에 돈을 쏟아 붓고 울릉도에 공항을 만들고 있습니다. 최소한 전쟁을 먼저 시작할 생각은 아니어도 일단 시작되면 여기도 끝을 보겠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왜냐구요?
작년 7월 경제전쟁의 현재 결과를 봤듯이 어떤 형식이든 선전포고없이 일본의 침략으로 시작될 게 뻔한 대일전쟁은 그 자체로 단기적으로든 장기적으로든 무조건 역사적, 정치적, 경제적, 외교적, 문화적, 모든 면에서 우리에게 이득이라고 판단될 테니까요. 동시에 내가 일본놈들의 손에 죽는 한이 있더라도 내 후손의 미래를 위해 이 한목숨 기꺼이 바치리라 선언하는 국민들은 차고 넘칠 테고요.
결국 한 국가의 국민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그것은 투표할 때는 주체이지만 그 외에는 법과 권력에 종속될 수 밖에 없는 나약한 존재이죠. 동시에 나약하기 때문에 강성한 국가가 어떻게든 자신을 지켜주기를 바라며 또한 강한 나라가 바로 자신이라는 자부심으로 나약한 자신을 위로합니다.
20세기 많은 미래학자들이 21세기에는 국가의 역할은 축소되고 궁극적으로 국가는 소멸되고 기업의 세상이 될 거라고 예상했었죠. 소련 몰락후 정치학자들은 이제 세계는 민주주의라는 보편적 정치시스템 안에서 극우적 전체주의나 민족주의는 공산주의처럼 사라질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2000년대 초 인터넷이 보편화되고 배용준이 일본에서 한류열풍을 일으켰을 때만해도 선진 민주 사회라고 믿었던 일본에서 혐한이, 이제 진보적 민주주의가 정착된 이 나라에서 친일이나 일베, 박정희 부활을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죠. 미국이 극우가 될 거라는 예상은 또 누가 했을까요? 그러나 지금 미국에서 히틀러가 나오거나 일본에서 관동학살이 다시 일어나도 아무 이상할 게 없을 정도의 세상이 되었습니다.
이 와중에도 우리는 인터넷과 유튜브의 넘치는 정보 덕택에 충분히 우리 스스로 최선의 판단, 최적의 선택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믿게 되었고요.
우린 정말 진보적이 되었을까요?
또 합리적이며 이성적이 되었을까요?
우리가 아무리 합리적이며 이성적이라 한들 어제는 수출물자 봉쇄를 하고 오늘은 진단시약 지원을 원하면서도 동시에 우리에게 익명을 요구하는, 용인 66번처럼, 지하철 태극기 노인처럼, 상또라이 외부 변수, 그 위협요소를 해협 하나 건너에 두고서도 우리는 여전히 합리적 판단을 유지하며 심적인 안정을 추구할 수 있을까요?
애시당초 문명을 이루고 민족과 언어의 차이에 맞춰 국경을 나누게 된 이후 인간이 그런 합리적 존재가 되는 게 가능했던 때가 있었을까요?
결국 또 다시 개인에 대한 존중과 공동체에 대한 신념이라는 양극단 사이의 미묘한 균형에 더욱 집중하는 것밖에는 답이 없겠죠. 대의으로서 정치의 역할과 주권자로서 국민이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이해, 각구성원의 판이한 가치관에 대한 존중과 동시에 공동체의 존립에 대한 굳건한 공감대, 더 나아가 인류의 보편적 가치와 인권에 대한 이해도 필수일 테고요.
그런 다양한 요소들 사이에서 균형을 이루고 평상심을 유지하면서 각 사안마다 합리적인 근거와 논리, 단호한 결단을 내릴 수 있는 소양을 기르는 것 그게 우리의 이 민족주의와 합리적 경제활동이라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영원한 딜레마를 그나마 해결할 수 있는 당장의 미봉책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두서없이 해봅니다.
나는 미소지었지
이토록 가시가 많으니 곧 장미가 피겠구나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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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스러운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정말 문자마약상 이시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