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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정치]  문대통령 인터뷰 - 서울역 회군으로 광주 시민에 큰 죄책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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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17 14:45:34


http://www.enews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387544

A. 문 대통령 : 우선은 제가 광주 5.18 소식을 들었을 때 정말 민주화의 아주 중요한 그 길목에 다시 군이 나와서 군사독재를 연장하려고 한다, 그 사실에 굉장히 비통한 그런 심정이었고, 한편으로 광주 시민들이 겪는 엄청난 고통을 들으면서 굉장히 큰 죄책감을 느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80년 5월 초부터 매일같이 서울역에 서울지역 대학생들이 모여서 민주화를 요구하는 그런 집회 시위를 열었는데, 거기에 날이 갈수록 숫자가 불어서 5월15일에는 무려 20만 명이 서울역에 운집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 군이 투입될 것이라는 그런 소문이 쫙 퍼졌는데, 그러자 당시 그 집회를 이끌고 있던 서울지역 각 대학 총학생의 회장단들이 말하자면 해산을 결정했습니다. 그게 이른바 ‘서울역 대회군’이라고 부르는 것인데요. 군이 투입될 수 있는 빌미를 줘서는 안 된다라는 명분도 있었고, 또 한편으로는 군이 투입되면 아주 희생이 클 것이기 때문에 나중에 상황이 좋아지고 난 이후에 다시 모여야 한다 그런 의견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런데 나는 그때 그 결정에 대해서 반대하는 입장이었습니다. 나는 그때 경희대 복학생 대표였는데, 나뿐만 아니라 대체로 복학생 그룹들은 말하자면 민주화로 가기 위한 마지막 관문이 군과 맞서는 것이기 때문에 군이 투입되더라도 사즉생의 각오로 맞서야 한다, 그 고비를 넘어야 민주화를 이룰 수 있다, 그리고 국제사회가 주시를 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서울지역에서 대학생들을 상대로 아주 가혹한 그런 진압을 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이런 생각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때 총학생 회장단들의 결정을 비난할 생각은 전혀 없지만 어쨌든 결과적으로는 서울지역 대학생들이 매일 서울역에 모여서 민주화를 요구하는 대대적인 집회를 함으로써 결국은 군이 투입되는 그런 빌미를 만들어 주고는 결국 결정적인 시기에는 퇴각을 하는 그런 결정을 내린 것 때문에 광주 시민들이 정말 외롭게 계엄군하고 맞서게 된 것이거든요. 그래서 그 사실에 엄청난 죄책감을 느꼈고, 저뿐만 아니라 광주 지역 바깥에 있던 당시 민주화운동 세력들 모두가 이 광주에 대한 어떤 부채의식, 그것을 늘 가지고 있었고 그 부채의식이 그 이후 민주화운동을 더욱 더 확산시키고 촉진시키는 그런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당시 광주 오월 영령들을 비롯한 광주 시민들은 우리 1980년대 이후 대한민국 민주화운동의 상징과 같은 그런 존재가 되었죠.

https://youtu.be/5NCG63V0GTc

심재철 - 생애
1958년 광주 금남로에서 7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초등학교 4학년 때 돌아가셨다. 어려운 형편 속에 어머니는 삯바느질로 7남매를 키우셨다.

가난한 형편임에도 공부를 잘해 1973년 광주제일고등학교에 진학했고, 1976년 광주일고를 졸업하고, 1년의 재수[9] 끝에 1977년 서울대학교 영어교육과에 입학했다. 광주일고 시절부터 유신반대 시위를 이끌었던 심재철은 서울대 입학 후 운동권이 되었으며 77학번 동기인 유시민과 함께 서울대 학생운동의 중심에 섰다.

1980년 서울대 총학생회장이 되었고, 당시 '서울의 봄' 정국에서 신군부에 맞서 계엄해제를 요구하는 학생운동 세력의 대표인물로 떠올랐다. 1980년 5월 15일 서울역 앞에는 서울대, 고려대 등 전국 18개 대학에서 온 학생 10만 명이 모여 계엄해제를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를 하였는데, 심재철은 이때 대학 총학생회장단 대표를 맡았다. 해가 저물면서 시위대는 철야농성을 하느냐, 아니면 자진해산을 하느냐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했는데, 당시 고려대 총학생회장 신계륜은 철야농성을 주장했지만, 심재철은 서울대 학생처장 이수성의 권유에 따라 자진해산을 주장했고, 결국 10만 시위대는 자진 해산하였다. 이것이 그 유명한 서울역 회군이다.

'서울역 회군'을 보고 자신감을 얻은 신군부가 5.17 내란을 결행하면서 심재철은 지명수배 되었고, 약 두 달 동안 숨어다닌던 끝에 6월 30일 치안본부 특수수사대에 의해 체포되었다. 그 후 수경사 33헌병단으로 끌려가 혹독한 고문을 받았다.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가담자로 몰린 그는 군법회의에서 징역 5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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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be ev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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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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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17 14:55:56

그 후의 인생이 에라이 라서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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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17 15:02:10

뒷이야기가 빠졌네요. 김대중내란음모사건에서 유일하게 허위증언으로 김대중전대통령을 비롯한 관계자들을 유죄선고 받게 만들었고, 졸업후 운동권 출신임에도 이례적으로 교사로 임용되고, MBC기자가 되었죠. 이후는 광주출신임에도 그쪽 당으로 정계입문하고는...

7
2020-05-17 15:05:31

심재철이 혹독한(?) 고문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법정에서 DJ가 배후에 있다고 증언하여 DJ 사형선고에 기여를 했죠.

2020-05-17 17:02:25

 이름을 심재철이 아니라 가롯 유다로 개명해야 할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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