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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정치]  1979년 8월 11일 YH무역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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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0-08-11 16:25:41

1979년의 오늘인 8월 11일은 YH무역사건이 벌어진 날입니다. 

 

YH무역은 1960년대 중반 가발업을 시작한 YH무역은 1970년대 초반에 직원이 4천명에 달할 정도로 흥합니다. 하지만 경영진들은 회사의 수익을 해외로 빼돌리는 등의 불법경영을 하게되고, 가발업이 사양산업화 되던 1970년대 중반을 넘기면서 부실경영을 더욱 심화시킵니다. 

 

부당전직과 감봉, 부당해고, 위장휴업, 고용의 하청화등이 노골적으로 자행되는데, 당시 노동자들의 권리를 지켜줄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은 아예 없었죠. 노동자들은 스스로 노조를 결성하지만 노조 집행부에 대한 해고와 부당전출(후에 민노당 출신 국회의원을 지낸 최순영씨를 강원도 하청공장으로 부당 전출시켰었죠)등이 자행됩니다. 

 

사측의 부당해고등이 가속되고, 노동자들의 투쟁이 계속되면서 회사는 개판으로 굴러가다가...

결국 사측은 폐업을 선언합니다. 

 

이 과정에서 노조는 사측이 위장 휴업등을 했다는 지적을 하면서 투쟁을 하기도 했는데요, 폐업이 선언되고 나서는 YH무역 경영진에 대한 기대는 접었던 것 같습니다. 다른 기업의 인수와 고용승계등의 대안을 통해 회사 정상화를 모색했고, 이 과정에서 다른 사회단체나 정치권에 도움을 바라기도 했었죠. 

 

 

1979년 8월 6일, 회사는 최종 폐업을 선언하고 퇴직금등의 정산절차에 들어갑니다. 이에 노동자들은 8월 9일, 야당인 신민당사에 들어가서 농성을 시작합니다. 이에 김영삼이 이 농성의 배후라고 판단한 박정희정권은 8월 11일 무력으로 신민당사에 난입해서 농성을 해산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노동자 1명이 사망했고 많은 노동자와 신민당 당원들이 부상을 입었습니다. 

당시의 상황을 후에 한 언론은 이렇게 보도합니다. 아래에 보도된 신민당 정치인중에 불과 얼마 지나지 않아 전두환의 민정당으로 기어들어간 인물들도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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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8월 11일 새벽 신민당사는 ‘생지옥’으로 변했다.


당원들은 현관 셔터를 내려 경찰 진입을 막으려 했으나 정·사복 경찰 1000여 명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한 무리의 경찰들이 2층 유리창을 부수고 복도로 뛰어 들어와 청년당원들과 난투극을 벌였다. 그 사이 다른 경찰들이 셔터를 부수고 우르르 몰려 들어왔다. 당원들은 경찰관들의 곤봉 세례에 쓰러져 ‘닭장차’에 실렸다.


진입에 성공한 경찰들은 2개 조로 나뉘어 한 패는 4층 농성장으로, 다른 한 패는 2층 총재실로 몰려갔다. 총재실에는 김영삼 총재와 국회의원, 당원, 기자 등 50여 명이 있었다. 경찰은 벽을 부순 뒤 벽돌을 던져대기 시작했다. 이윽고 “총재는 때리지 말라”는 명령이 떨어지고 “키 작고 안경 쓴 놈이 황낙주다” 외침이 나오더니 원내총무 황낙주가 구둣발 밑에 깔렸다. 잠시 후 누군가 “저놈이 박권흠이다” 외치자 대변인 박권흠 손이 뒤로 꺾이면서 얼굴이 피범벅이 되도록 난타당했다. 그는 이날 갈비뼈가 부러졌다.


당 청년국장도 실신할 때까지 두들겨 맞았다. 기자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신분증을 내보였으나 “기자고 지랄이고 입 닥쳐!” “신문기자 좋아 하네” 욕설과 함께 곤봉, 발길질이 날아들었다. 카메라도 박살이 나고 필름도 빼앗겼다. 벽돌에 맞아 팔다리가 부러지는 사람이 속출했다. 대부분의 사람이 피투성이가 되어 끌려 나갔다. 김 총재도 끌려 나와 경찰 승용차에 실려 상도동 집으로 옮겨졌다.

 

‘생지옥’ 신민당사… 경찰 “김영삼 총재는 때리지 말라”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130820/571129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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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과정에서 노동자 김경숙씨가 동맥절단으로 사망했고, 노동자들은 강제해산된후 달랑 2개월치 급여만 받은채로 고향으로 강제 귀향하게 됩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여러 시민단체와 운동가들이 정부에 저항하는 불씨가 되었고,

김영삼총재가 제명당하면서 정치적 문제로 확대되었으며,

결국 부마항쟁의 도화선이 되었고...

박정희가 궁정동에서 술처먹다가 사살당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유신이 무너지고, 몇개월 후 518 저항정신의 시발이 된 사건입니다.

님의 서명
모든 분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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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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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0-08-11 15:05:35

박정희 정권이 몰락하게 된, 결정적 사건이죠.

저 사건이, 부마항쟁으로 이어지고, 궁정동 술자리에서 차지철이, 캄보디아 어쩌고 저쩌고, 우리도 부산마산의 소요사태는 그냥 탱크로 쓸어버리면 된다고 하다가, 김재규의 총에 맞은 거죠.

보통은 그냥 박정희가 술 쳐 먹다가 총맞아 죽은 걸로 들만 알고 있지만, 저 사건이 없었으면, 한국 현대사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 갔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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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11 11:33:47

 김영삼이 아직 민주투사였던 시절의 이야기군요

2020-08-11 11:34:17

잘 봤습니다.유신종말 도화선의 시작이된 사건.
다만 게시물 중간에 1970년이라되어 있는건 1979년이 맞습니다.

2
2020-08-11 11:38:53

https://www.google.com/am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Amp.html%3fidxno=24884

...(선략)...

야당 당사에 들이닥친 경찰 앞에 선 그는…

후일 김영삼의 행적은 역사의 평가를 받아야 하겠지만 절망에 몸을 떨며 죽음을 만지작거리는 노동자들 앞에서 “결코 두려워 말라”고 부르짖던 순간은 김영삼이라는 거목이 내뿜은 가장 큰 빛줄기 중 하나일 거야. 이어서 그는 당사 안에 있던 사복 경찰들을 힘으로 내몰라고 지시한 뒤 당사 밖을 포위한 경찰 대열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 나가. “여공(女工)들이 흥분하니 물러서라.” 경찰을 지휘하던 마포경찰서 정보과장이 뻣뻣하게 나오자 김영삼은 그 뺨을 올려붙였어. “느그들이 참말로 저 여공들이 떨어져 죽게 만들 참이야?” 폭력이었지. 엄연한 공권력에 대한 도전이었지. 하지만 지켜보며 조마조마하던 여성 노동자들은 뭉클해진 가슴에 총재님 만세를 부르짖지 않았을까.

...(후략)...

그리고 빵삼이형 레전드의 시작...

2020-08-11 11:46:27

YS가 딴나라당에 안갔으면 자칭 보수들은 더 일찍 붕괴되었을까요.

결국 저것들이 만든 IMF란 똥물 뒤집어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으니..

2
2020-08-11 12:09:11

저때가 살기 좋았다고 하네요 극우들

2020-08-11 12:14:23

전혀 몰랐던 얘기였는데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2020-08-11 13:14:26

 잊혀져가던 암울했던 역사를 새삼 일깨워주신거 감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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