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한잔] 인간에게 위험이란 어떤 것일까 (원전, 교통사고 등...)
드라마 '체르노빌'을 보면서 내내 '사람들은, 그리고 나는 위험이라는 걸 어떻게 대하며 살고 있는 걸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911 테러가 일어난 후에 미국 사람들이 비행기를 타는 게 무서워서 비행기 탑승객이 줄고 대신에 자동차로 여행하는 일이 늘었었다고 합니다.
근데 일반적으로 자동차 사고가 항공기 사고보다 더 많으니, 결과적으로 이 시기에 교통사고 사망자는 더 늘었다고 합니다.
위험을 피하려고 했던 사람들이 결과적으로는 더 위험한 상황을 맞은 거겠지요.
원자력 발전소 문제도 비슷하게 얘기하는 측이 있습니다.
비행기 사고와 자동차 사고의 경우처럼, 원자력 발전은 사고가 날 확률은 적지만 사고가 나면 피해가 크고, 화력발전은 지속적으로 환경에 악영향을 미치고 질병을 유발하여 사상자를 내고 있지만 원자력 발전소만큼의 한 건당 피해를 내지는 않는다구요.
(아마 제 짐작으로는 지금까지 발생한 피해의 총량은 화력발전 쪽이 원자력발전보다 크지 않을까 싶습니다)
인류의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인간 활동의 가능성은 커져왔고, 위험도 함께 커져왔습니다.
매체의 발달, 금융의 발달, 사회 통제기술의 발달 등 각 분야가 발달하는 것 못지않게 그로 인한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큰 규모의) 사고도 겪어가면서 살고 있죠.
자동차가 없던 시절보다 지금은 훨씬 위험해졌지만 인간은 그 위험을 감수하면서 자동차로 인한 큰 가능성을 받아들이고 살고 있습니다.
원자폭탄은 전 인류를 멸망시킬 위력을 갖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원자폭탄은 대규모 전쟁을 억제하고 있기도 합니다. 어쩌면 인류는 원자폭탄이 없었다면 2차대전 이후로도 큰 전쟁으로 더 많이 죽어나갔았을지도 모를 일이죠.
위험을 피하고자 한다면 아무 일도 하지 않고 히키코모리처럼 밖에 나가지 않는 편이 좋을텐데,
사람들은 차에 치어죽을 위험을 감수하고 밖에 나가서 경제활동을 하고 오락을 즐기죠.
‘괜히 위험하게 사업이나 주식 같은 거 하지 말아라’라는 사람도 있고, ‘투자하는 것보다 투자하지 않는 게 더 위험한 것이다’라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울리히 벡은 1986년에 낸 ‘위험사회’라는 책에서 현대의 위험사회에 필요한 게 ‘진지한 성찰’과 ‘민주주의’라고 했다고 합니다.
위험 자체도 문제겠지만, 인간이 위험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가 점점 더 중요한 문제가 되어가는 것 같기도 합니다.
WR
Updated at 2021-05-15 17:45:38
근데 그렇게만 생각하면 아이들을 학교에도 보내지 않고 집안에만 있게 하는 게 안전할텐데, 사람들이 보통 그러지는 않는단 말이죠. 각 사람들은 위험을 어떻게들 측정하며 살고 있는 건지... WR
Updated at 2021-05-15 17:54:39
교통사고로 인한 사상은 아마 통계가 있지 않나 싶은데 (일단 금방 검색해보니 나오는 게 : 어린이 통학버스 사고, 최근 5년 동안 410명 사상자 발생 - 데이터솜 )
어쨌든 말씀하시는 바로는, 숫자 등으로 확인할 수 있는 위험과 그렇지 않은 위험('실체가 모호한 위험') 중 앞의 위험은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피하려고 하지만 뒤의 위험은 그렇지 않다는 거겠지요. 1
2021-05-15 18:00:06
지금까지 원전사고로 사망한 사람은 체르노빌 원전사고 때 화재진압에 참여했던 소방관 43명이 전부입니다. WR
2021-05-15 18:22:52
한국의 석탄발전소에서 배출하는 대기오염물질 탓에 연간 995명의 조기사망자가 발생한다는 연구도 있다는데, 그렇다면 화력발전으로 발생하는 전체 피해도 만만치는 않을 것 같습니다. 어느 쪽이 더 공포스러운가의 주관적인 평가의 문제일지, 이걸 객관적으로 비교할 수 있는 것인지, 라는 생각도 드네요. 1
2021-05-15 18:53:05
앞서 말씀드린 3건의 원전사고 중 피해가 컸던 체르노빌과 후쿠시마는 격납건물이 없거나 있어도 일반 아파트 벽체수준입니다.
2021-05-15 19:23:32
같은 원리로 기술 발전에 따라 다른 덜 위험한 에너지원들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도 있겠지요. 엄청난 위험이 내재된 핵 발전 안하고도요. 1
2021-05-15 19:42:58
당연합니다. 2
2021-05-15 17:50:49
(175.*.*.60)
사고의 정도가 감당가능하냐 안하냐에 대한 고려가 없네요. 체르노빌만 봐도 지금도 완벽히 감당이 안됩니다. 사고날 확률*사고났을때의 강도 양측이 다 고려되어야죠. WR
Updated at 2021-05-15 17:57:32
한편으로는 '밖에 나갔다가 차에 치어서 죽는 상황'은 감당이 가능한 위험일까... 라는 생각도 들긴 합니다. 2
Updated at 2021-05-15 18:20:31
(175.*.*.60)
감당가능하죠. 그걸로 사회가 붕괴하진 않으니까요. WR
Updated at 2021-05-15 18:28:20
어느 쪽이든 저는 죽는걸요 ㅠㅠ 본문에 언급한 '위험사회'라는 책에는 사회 차원의 위험 인식과 개인 차원의 위험 인식에 대해 아래와 같이 얘기한다고 합니다. "어느 정도의 손실을 볼 것인가를 기업 입장에서 계산하는 산업사회의 제도들은 위험을 경제적 비용으로만 계산하기 때문에, 비용을 줄이기 위해 위험의 실재적 차원, 즉 발생 가능성과 파괴력을 과소평가한다는 것이 울리히 벡의 진단이다. 위험을 축소하려는 사회 제도와 실질적으로 위험에 노출되는 개인이 대립하게 된다. 개인의 '위험 인식'이 제도적으로 과소평가된 '위험인식'과 대립하는 결과가 초래된다는 것이다. 그는 산업사회가 번영하면서 초래한 위험을 '개인'에게 떠넘기는 현대 산업사회의 '제도화된 무책임성'을 지적했다. " (지금 대한민국은 '악성' 위험사회 (pressian.com))
2
2021-05-15 18:32:57
(175.*.*.60)
고르바초프는 체르노빌을 막는데 일년치 국가예산 정도를 썼다고 했으며 소련이 무너지는 가장큰 요인이었다고 했습니다. 알고보면 체르노빌은 사고치고 굉장히 잘막은 사건입니다. 사실 소련이었으니까 가능했던... 원전사고의 강도란건 사람 하나 죽고 말고의 문제를 아득히 넘어섭니다. WR
2021-05-15 18:54:35
비행기 사고가 나면 전세계적인 뉴스가 되지만 자동차사고로 지금 이순간에도 죽어나가는 사람들로 인한 피해량은 더 많을텐데도 사람들이 비행기를 더 두려워하는 것처럼, 저같은 경우는 그게 본문에서 얘기한 것처럼 크게 한 건 터지는 사고랑 자잘하게 많이 터지는 사고의 차이는 아닐까 하는 걸로 느껴집니다. 소련은 큰 사고를 혼자서 피해받고 처리한 거고, 화력발전으로 인한 사고는 전 인류가 나눠서 피해받고 처리한 차이가 아닐까 하는 거요. 물론 후자 쪽이 넘기기에는 더 쉽기는 하겠지요.
Updated at 2021-05-15 18:01:36
배리 글래스너 저 <공포의 문화>라는 책에서 언론이 어떻게 그런 공포를 파는지 지적했던 기억이 납니다. 15년전에 읽은 책이지만 흥미롭게 읽은 기억인데 지금 댓글 쓰려고 검색해보니 트럼프 시대 이후 이책이 미국에서도 소위 역주행했고, 한국에서도 개정판이 새롭게 작년 출시되었다고 하는군요. 딱 이글에서 말씀하신 항공사고에 대한 챕터도 있습니다. WR
2021-05-15 18:18:17
"테러에 대한 공포로 온통 정신이 곤두선 나머지, 나날이 시급해지는 국내 문제는 뒷전으로 밀려났다. 미국인의 건강과 복지 문제는 심각한 상태로 오랜 기간 방치됐고, 규제가 턱없이 부족한 금융 제도는 2000년대 말부터 2010년대 초까지 세계 경제를 위기로 몰아넣는 주범이 됐다. 취약한 금융 제도는 ‘테러와의 전쟁’에 대한 끊임없는 선전, 선동에 밀려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졌고, 미국의 국가 안보는 오사마 빈 라덴과 알카에다를 두려워할 때보다 더 크게 훼손됐다. 중요한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방치할수록 가장 두려운 최악의 미래는 도래하기 마련이다."
"우리는 왜 진짜 문제는 놔두고 가짜 위험에 이토록 관심이 많은 것일까? 전면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큰 문제에 대중이 관심을 갖게 하고, 이것을 바로잡을 수 있는 계기를 만들려고 하는 것은 아닐지 나는 생각했다. 지금도 무수히 많은 총기가 미국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감당이 안 되지만, 그래도 차량 안에 싣고 다니는 총기는 그나마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진실은 그게 아니었다. 이러한 가짜 위험들은 심각한 도로 정체와 총기 문제를 비롯해 다루기 힘든 사회 문제들을 외면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훌륭한 방편이 된다."
위에서 얘기한 '공포' '진짜 문제' '가짜 위험'들 모두 실존하는 것들이긴 할텐데, 그게 큰 것이냐 작은 것이냐에 대한 평가가 개인마다 다르니 논쟁이 일어나는 것이리라 생각합니다.
사실 위에 언급된 것들 중 '테러'와 '규제가 턱없이 부족한 금융 제도' 중 무엇이 더 위험한 건지에 대해 객관적인 비교를 할 수는 없을테니... ㅠㅠ
2
Updated at 2021-05-15 18:08:56
(1.*.*.72)
앞으로 온난화가 심각해질수록 기상이변도 잦아질텐데 주로 바닷가에 있는 원전들이 거기에 대비가 되있을지 모르겠네요.
2021-05-15 19:28:59
핵 발전 문제를 끼워넣는 바람에 WR
2021-05-15 19:42:34
'체르노빌'이라는 드라마를 보면서 떠오른 생각이라서...--;;;
2021-05-16 00:12:32
조금 다른 생각일수도 있는게 언론 혹은 유튜브 및 그외 sns 라고 생각합니다. |
글쓰기 |
30%의 리스크를 안고서도 선택을 감수할 경우가 있죠. 태풍으로 항공료와 호텔비 날릴 걱정을 하면서도 여름휴가 여행을 계획한다던지 말이죠.
0.0001의 상대적으로 훨 희박한 확율로 내 자식을 죽음에 빠뜨릴수도 있는 선택은 하지 않죠.
걸릴 확율이 아닌 치명적인 수준이 넘사벽이라서 말이죠.